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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에 실수가 없는 자
[일자] 2014.1.12
[성경] 야고보서 3:1~10
[설교] 박동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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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씀 약 3:1-10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 하는 것이라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많은 말을 하면서 삽니다. 어떤 사람은 수만 마디의 말을 하루 동안 합니다. 이것이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 엄청난 양이 됩니다. 그런데 말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로 쓰일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로 인해서 상처 받는 사람이 생기기도 하고, 용기를 얻고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인간관계가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서 말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은 이것을 경험으로 알았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이런 연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말이 중요하기 때문에 조심해서 해야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복해서 실수를 하게 되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저는 오늘 ‘말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에도 말에 대해서 언급된 부분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우리가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항상 새해를 맞이하면서 올해는 무언가 특별하고 좋은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 합니다. 똑같은 것을 심으면서 다른 것을 거두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려고 하면 전에는 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자기 개혁과 자기반성을 통해, 삶에 변화가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달라져야 할 것은 우리의 말입니다. 말이 달라질 때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말과 관련된 세 가지 교훈의 말씀을 전하고, 함께 은헤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말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말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것은 말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의미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말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일 뿐만 아니라, 날에는 특별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약 3:4
 배에는 배를 조종하는 키가 있습니다. 그래서 키의 방향에 따라 배가 움직입니다. 항공모함과 같은 커다란 배에서 키는 매우 작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작다고 해서 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배의 방향을 키가 조정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말이 배의 키와 같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어떤 사람은 큰 꿈을 꾸고, 어떤 사람은 작은 소망을 가지고 살 것입니다. 큰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작은 가계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크기에 상관없이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말입니다. 어느 한 의학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많은 신경계가 있는데, 그 중의 말을 주관하는 언어중추신경에서 우리의 온 몸을 지배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대로 모든 신경들이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서 ‘감기가 오려나보다!’라고 이야기를 하면, 모든 신경계통이 감기가 걸릴 준비를 하다가 결국에는 감기에 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원리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정신을 차리자. 이겨야 돼.”라고 이야기를 하면, 아무리 힘든 일이 와도 힘든 줄을 모르고 그 문제들을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온 몸이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 그에 맞는 준비를 하게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운명이나 팔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배를 움직이는 것도 작은 키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운명은 작은 혀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좋은 말, 축복의 말을 많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약 3:5
 작은 불씨 하나가 산에 떨어졌습니다. 바람이 불면 꺼질 것 같은 작은 불씨였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불씨가 온 산을 태워버렸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라든지 호주 같은 곳은 불이 한 번 나기 시작하면, 한 달이 지나도 그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이런 불도 작은 불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은 우리의 생활에 매우 유용합니다. 그러나 잘못 쓰게 괼 때에는 매우 위험한 것이 됩니다. 집에서도 불이 나면, 전 재산을 다 태워 버리고 심지어는 사람의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말 한마디가 우리를 죽음의 위기 가운데로 몰아넣을 수 있는 위험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고 신중하게 말을 해야 합니다. 옛말에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말 한마디가 중요합니다. 말은 또한 가정교육에서도 중요합니다. 요즘에 우리 자녀들이 방황을 많이 하는데, 사춘기가 되면 겉잡을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면 본인이 벌떡 일어나서 부모보다 더 큰 목소리로 ‘왜 소리를 지르느냐’고 합니다. 사춘기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비행 청소년이 되어 옆길로 나가기 시작하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많은 심리학자는 청소년들이 이렇게 되는 이유가 어려서부터 듣지 않아야 할 소리를 너무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부모가 속상해서 내뱉은 말이 아이들을 병들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악한 말이 세상의 어떤 독보다도 강한 독이 되어서 우리 자녀들의 꿈을 짓밟습니다. “공부도 못하는데, 네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어?” 라고 하는 한 마디가, 일어나지도 못하는 절망에 빠지도록 만듭니다. 생각을 병들게 만들고, 가슴에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포자기해 버립니다. 되는 대로 살자고 생각하고,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함께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안 되는 인생인데 뭐.’ 하는 생각에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10대의 50%가 부모님을 증오한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반대로 부모의 좋은 말 한마디가 어떤 희망보다 강한 희망이 되어서 아이들을 살게 만듭니다. 제가 작년에 설교 말씀을 전하면서 “우리 부모님들, 자녀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안 해 보셨으면 오늘이라도 집에 가서 사랑하는 딸아, 네가 내 딸인 것이 너무 고맙다. 하나님이 너를 나에게 딸로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고, 내가 너의 엄마일 수 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주간에 한 집사님이 사춘기에 있는 중학교 1학년 딸에게 그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겉잡을 수 없이 우니까 엄마가 놀랐습니다. 아이는 방에 들어가서 한참을 울고 나오더니 “엄마, 나도 엄마가 내 엄마인 것이 너무 감사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아이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말 한마디로 인해서 ‘사춘기’라는 힘든 문제가 한 번에 해결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자녀라 할지라도 말을 가려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생각해서 말을 해야 합니다. 좋은 말이 아니면 농담이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농담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작은 불장난이 산불을 일으켜 온 산을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다음에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말과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둘째, 될 수 있는 대로 찬송과 감사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찬송과 감사를 많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생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마 10:29-30
 하나님은 우리가 호흡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내가 모르는 순간에 건져 주셨고, 내가 모르는 순간에 악한 영들이 공격하는 것을 막아 주셨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며 필요한 것을 더해 주셨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신 그 분이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데, 우리는 늘 이야기를 할 때 되는 일이 없다고 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는 듣지 않으시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럴 때, 주님의 마음이 어떨까요? 만약에 우리가 늘 누군가를 도와주었는데, 그 사람이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사람들은 다 나를 싫어한다고 하면 우리는 마음에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 저 사람은 도와줄 필요가 없구나! 저 사람과는 될 수 있으면 만나지 말아야 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관계를 끊어 버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을 쏟아낸다면, 하나님의 마음도 아프실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애굽의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통곡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400년 전의 약속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보내셔서 출애굽을 시키셨습니다. 그들은 광야로 나왔습니다. 더 이상 채찍을 맞지 않아도 되었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에 나왔더니, 먹을 물도 양식도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차라리 애굽에서 죽는 것이 나았습니다. 왜 우리를 출애굽 시켜서 광야에서 죽게 만듭니까?” 하며 불평하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민 14:27-30
 하나님을 원망하는 백성들을 하나님은 악한 회중이라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이 하나님께 들린 대로 행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죽게 만들었다고 한 불평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단 두 사람.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처럼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약 3:11-12  깊은 산 속에 들어갔더니 그 곳에서 샘물이 올라오는데, 그 물을 한 모금 떠먹어 보았더니 매우 달고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그 물을 떠서 먹어보니까 썼습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옹달샘에서는 항상 단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인생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감사한 것 같고 찬송을 하는 것 같은데, 어떤 때는 불평과 원망과 저주를 쏟아냅니다. 성경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단 샘물 같은 인생은 우리가 하는 말에 달려있습니다. 늘 사람들을 보며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다녀도,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은 것입니다. 반면에 많은 것을 넉넉히 가지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교양 있고 좋은 말을 하면, 그 사람은 어딜 가나 인격자로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저 사람이 어떤 연유로 저렇게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구나! 저렇게 하고 다니는 사정이 있나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내 인생이 어떤 인생이 되느냐 하는 것은 내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더 그러합니다. 병이 들어서 몸이 힘들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원망 대신 감사를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을 것 같아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며 불평 대신에 감사와 찬송을 고백하면 치유의 영이 급속히 임합니다. 누군가가 마음을 다해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사람일지라도 더 도와주고 싶습니다. 하물며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은 더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어린 마음으로 감사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고 치유가 급속히 일어납니다. 주변에도 감사함으로 불치병이 치료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아프고 견디기 힘든 날을 만난다 해도, 감사와 찬송의 고백을 쉬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믿음의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답이 없는 것 같고 소망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불평대신 감사를 올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잠시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해서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감사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고 들으시며,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의식하고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말을 조심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람들에게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서 하는 것은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비결입니다.
 셋째, 만나는 사람들마다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만나는 사람을 축복해야 합니다. 물건을 사러 가서도, 미워하는 사람을 만날 때에도 축복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도와주려고 하면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마음속으로 축복을 빌어주고 축복의 말을 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웃을 이렇게 축복하고 살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유익은 매우 큽니다. 남을 축복하는 것의 몇 배가 되어서 나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에코 현상’이라고 합니다. 산에 가서 “야호”라고 소리를 지르면 “야호”소리가 되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해”라고 외치면 “사랑해”라는 소리가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안 돼”라고 소리를 지르면 “안 돼”라는 말이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실 때, 하나님의 신비를 자연세계에 많이 담아 두셨습니다. 그래서 자연의 이치와 원리를 볼 때, 하나님의 속성이 어떠한가를 깨닫게 되고 인생의 교훈으로 삼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영적으로 보았을 때도 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의 원리에 담겨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메아리’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사랑하고 축복한다’고 외치면 세상이 나를 향해 ‘사랑하고 축복한다’고 반응합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3
 이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서로를 축복하고 사랑한다고 할 때, 서로 간에 축복과 사랑이 넘쳐 나게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매일을 살았다고 생각을 하면, 70년, 80년이 지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을 내고 용기를 내며 일어나게 될까요? 넘어질 것 같던 아이가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서게 되고, 꺼져 가던 생명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타박을 하고 겁을 주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불평하고 원망하며, 안 된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만 했습니다. 이런 인생이 어떻게 아름다운 인생이 되겠습니까? 저는 중고등부가 비전 트립을 갈 때면 아무리 힘들어도 동행을 합니다. 그리고 그 기간 내내 아이들에게 칭찬만 하고 다닙니다. 특히 공부를 못해서 어깨가 쳐져 있고, 눈치만 보며 다가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먼저 다가가서 “괜찮다”고 해 줍니다. 그렇게 여러 날을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마음이 열리고, 작지만 소망을 품게 됩니다. 그 뒤로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저의 설교에 집중하게 되고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를 인정해 주는 자기편이 있다는 든든함과 사랑받는 데서 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은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인생을 복되게 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을 복되게 사는 방법은 사람들을 축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원수를 만났을 때에라도 원수로 대하지 마십시오, 성경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축복으로 갚아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미소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입니다. 우리가 말로 축복하고 격려하고 세우기를 시작하면, 많은 사람이 주위에 모여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일이 주변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잘 되고 축복 받는 길은 축복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축복은 저주를 이깁니다. 빛이 어둠을 이기듯이 축복은 저주를 이기에 됩니다. 기다리지 말고, 상대방이 하는 만큼 하려 하지 말고, 먼저 손을 내미십시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과는 대단합니다. 말은 의사소통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말에는 매우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말의 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작년보다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고 싶다면, 특별한 힘이 있는 말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말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찬송과 감사의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은 들리는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의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설사 상대방이 나에게 악한 마음을 품고 저주의 말을 할지라도, 나는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축복은 저주를 끊기 때문입니다. 밉치 잇는 곳에 어둥미 물러가듯이 축복의 말이 저주를 이깁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말의 중요성을 잘 알고, 하나님께는 항상 감사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좋은 말을 할까 생각하여 그들을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복에 복이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