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큰 용사로 부르시는 하나님 / 사사기 6장 11 - 16절

영상팀
202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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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1 박동찬목사님


사사기 6장 11-16절


<<나를 큰 용사로 부르시는 하나님>>



오늘날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착각이라는 것을 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오해하고 착각하고. 그것이 무엇이냐면 우리 인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래요. 한계라는 게 있습니다. 내가 그저 아는 범위 안에서 내가 경험한 범위 안에서 우리는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실수하고 착각하고 오해하고 이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근데 그런 많은 착각과 오해가운데 제일 안 좋은게 뭐냐면 자기 스스로에 대한 착각을 하는 경우가 참 안 좋은거 같아요. 나는 하는 일마다 안되고, 어떻게 보면 하나님 내 기도도 안 들어 주시는 것 같고,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싫어하는 것 같고, 미워하는 것 같고, 나는 부족한 것 같고, 못난 것 같고 이런 어떤 못난 자화상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보면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공황장애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여러가지로 어려움,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는 '나는 잘났습니다' 이런 사람은 별로 없어요. 거기다 난 왜 이렇게 못 났을까? 부족할까?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고 사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이것이 사실 중요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를 뭐라고 부르시는가? 그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얘기를 우리에게 해주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시는데 기드온을 뭐라고 부르시냐면 '큰 용사여'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근데 기드온은 자기네 집이 므낫세 지파중에서 가장 작고 연약하고 또 지금 미디안 사람들의 이런 공격 속에서 이렇게 공격을 당하는 걸 보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같고, 뭔가 앞으로도 소망은 보이지 않고, 나는 할 수 있는게 없고, 뭐 이런 어떤 패배 의식 속에 살던 사람이 기드온이었다는 말이에요. 


근데 어느날 이 기드온 앞에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음성은 큰 용사여 이렇게 부르니까 기드온이 뭐라 그럽니까? "아닙니다. 나는 가장 작은 자입니다. 우리집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도 작은 자이고, 또 그 집안 중에서도 나는 가장 작은 자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가장 작은 자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큰 용사 라고 부르시고 자기 스스로는 가장 작은 자라고 얘기를 하고 있고 누구 이야기가 옳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큰 용사여! 라고 부르시면 내가 큰 용사가 아니라도 큰 용사가 될 수밖에 없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하나님의 부르시는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사는 그런 존재가 되어 질 때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생각은 스스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동일하게 기드온을 부르셨던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큰 용사여 라고 부르고 계신 것을 믿음으로 취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 내가 큰 용사로 살아 가려고 할 때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3가지 말씀을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서 교원의 말씀을 전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큰 용사로 살아 가려고 할 때 내 삶속에서 우상을 제거해야 된다 라고 하는거예요. 



내 삶 속에서 우상을 제거 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단순히 생각할 때 그저 어떤 뭐 형상을 만들어 놓거나, 부적을 붙이거나, 뭔가 또 어떤 물건을 목에다 걸면서 이것이 나를 지켜준다 생각하는 그런 것들을 우상이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근데 사실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거죠. 


그러니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또 다른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아니라 이것이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을 할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는가? 얼마나 상하시겠는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네가 진짜 나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네가 그동안 의지하던 그 모든 것들을 다 제거하라는 거에요. 하나님도 믿고 내가 믿는 또 다른 무엇도 믿고 이것도 믿고 저것도 믿고 그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도 내가 믿습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신앙의 자세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이 모든 것들이 주어지는 것이 다 하나님께서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시면 열 자가 없는 이 사실을 내가 분명히 안다라고 하면 내가 그동안 의지하던 것들에 대해서 '더 이상 그것을 의지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하나님만 바라보겠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라는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이 기드온은 12지파 가운데 므낫세 지파에 속해 있는데 이 므낫세 지파가 이 가나안에 들어가 가지고 무슨 일을 하냐면 바알을 숭배하고 아세라 신을 숭배를 하는데 바알 신은 돌로 만든 신상이고 아세라는 나무로 만든 신상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은 그것이 가증스럽게 보이는 거예요. 어떻게 사람이 만든 그런 돌의 형상과 나무의 형상이 우리의 인생을 지키고 인도하고 다스리고 보호해주고 축복을 한다고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느냐? 이 말이죠. 


그것을 제거해라! 제일 먼저 그래서 기드온에게 요청한 것이 너희 집안의 우상을 제거하라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이런 결단이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의 삶에 정말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실 때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진짜 믿음을 가지고 나를 따르느냐. 진짜 믿음을 가지고 나만 의지하느냐. 이것을 하나님은 시험에 보실 때가 많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제거해라. 하나님만 의지해라.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너의 아들 이삭을 나에게 바쳐라. 그게 뭐에요? 아들이 필요한 게 아니죠. 그 믿음을 보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이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을 진짜로 믿느냐? 이걸 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이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순종하느냐? 안하느냐?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라는거에요. 오늘 기드온에게도 너희 집안의 우상을 제거해라. 그런거 믿고 의지하고 그런 것이 너희를 지켜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말을 의지해라. 이것을 지금 기드온에게 요청하는 거죠. 


오늘 우리의 삶에도 보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거 있죠? 하나님보다 하나님은 나를 안 지켜주시고, 가끔 기도할 때만 지켜주시고, 어떠할 때는 날 안 지켜주시는데 돈은 영원토록 나를 지켜준다. 이런생각 가지고 있죠? 성공해야 된다. 명예를 가져야 된다. 더 높아져야 된다. 어떤 세상적인 그런 만족함이 있어야 된다. 이런 것들이 나를 지켜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구제하여도 부유하게 되는 거구요.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된다. 잠언서에 있는 말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보장해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어도 누리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그런 세상적인 것도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추구합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비로소 인도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하나님도 섬기지만 나는 돈도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도 섬기지만 나는 세상적인 만족도 있어야 되겠습니다. 세상적인 지위도 있어야 됩니다. 세상적으로 높아져야 됩니다. 안그러면 세상 속에서 무시 당하면서 삽니다. 그러니 나는 하나님도 열심히 믿을께요. 그렇지만 내가 추구하는 이것도 추구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사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거에요. 태반이 그렇게 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세요. 이게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진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진짜 하나님과 동행하고, 진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기를 원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른 것들을 의지하려고 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부분이라는 거에요. 이 부름 앞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우리 성도님들 정말 하나님 앞에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너희 가문의 우상을 제거하라 그랬단 말이에요. 옆에다가 잠깐 숨겨놔라, 옆으로 치워놔라, 그랬다가 필요하면 다시 꺼내놔라, 이것이 아니라 제거해라 바알 신당을 헐어 버리고 아세라 목상 쪼개 가지고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릴 때 그 우상 아세라 목신은 어떻게 해요? 그냥 불쏘시개로 사용해라. 이런 우상이라고 하는 걸 우리가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불쏘시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말씀이죠. 


오늘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내가 하나님외에 더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외에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회개하는 마음으로 내려 놓으시고, 내 삶 속에서 그런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나는 섬기기를 원합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우리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번째는 '나를 훈련 시키시는 하나님을 따르라' 라고 하는 거에요. 



나를 영적으로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을 따라 가야 돼요. 하나님이 참 좋으신 이유는 오늘 우리의 삶을 이렇게 돌아볼 때 하나님은 매 순간 순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면서 훈련시킨다는 거에요. 여러분, 작년보다 올해는 더 신앙이 성장되어 있는 거예요. 내년에는 아마 올해보다 더 신앙이 성장되어 있을 거에요. 이런 실수, 저런 실수, 이렇게 넘어지고, 저렇게 넘어지고, 근데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다 가르침을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날마다 성장해 간다는거에요. 


하나님이 참 좋으신 이유는 이렇게 우리를 교육할 때 감정적으로 교육을 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참 인내하고 사랑하시고 참으시고 그러면서 하나하나 깨닫게 하실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드온을 불렀더니 기드온은 아닙니다. 나 못합니다. 우상을 제거해라 우상 제거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어떻게 해요? 그 다음에 하나님이 나를 시험해봐라. 그러니까 이 기드온이 하나님을 시험하잖아요? 


진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증거를 보여주세요. 그러면서 시험하는 게 뭐예요? 양털 뭉치 하나를 가지고서는 하나님 앞에 보여주면서 하나님이 양털 뭉치 마당에 놓을 테니까 내일 아침이 되면 이 양털 뭉치에만 이슬이 맺히게 하고 나머지 땅은 마른 땅이 되게 해주세요. 그랬는데 그 다음날 보니까 정말 이 양털 뭉치를 잡아가지고 이렇게 쥐어짜니까 물이 주르륵 흐른단 말이에요. 땅은 말라 있고. 그쯤되면 '아, 하나님 정말 나랑 함께 하시는 분이군요. 알겠습니다.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그래야 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죄송한데 한번만 더 시험할게요. 이게 우연일 수도 있으니까. 이번에는 반대로 해주세요. 땅은 다 젖고 이 양털 뭉치만 말라서 아무런 물기가 없도록 그렇게 해주세요. 그 다음날 자고 일어났더니 정말 땅은 다 적셔져 있는데 그 양털 뭉친 잡았는데 아무리 쥐어 짜도 물이 안나오고 뽀송뽀송 하단 말이에요.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막상 전쟁이라고 하는 그 위기 앞에 서려고 보니까 두려운 마음이 되는거예요. 


그런데 그럴 때 하나님께서 "야 이녀석아 내가 이렇게 보여줬는데도 못 믿느냐?" 하나님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확증을 주기 위해서 "기드온아 네가 부하 하나를 데리고 저 미디안 지역으로 내려가라.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봐라." 그래서 부하 한 사람을 데리고 미디안 지역으로 내려 가잖아요? 내려가서 들어보니까 그들이 대화를 하는데 우리는 이제 죽었다. 이거 기드온의 칼에 다 죽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기드온에게 붙혀진 사람들이다. 이런 얘기들을 하는 거예요. 


기드온이 그 얘기를 듣고 '아, 하나님께서 지금 이렇게 모든 것들을 만들어 놓으셨구나.' 이제 자신감을 비로소 갖는 거죠. 그 하나님이 참 좋으신 것은 이런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다 얼마나 섬세하게 가르쳐 주시는 지 몰라요. 


모세도 네가 이 집에 내려가서 내 백성을 구원해야 되겠다. 그랬더니 모세가 "못합니다. 그렇게 어떻게 해요." "너의 손을 들어서 가슴속에 넣어봐라." 넣었다 빼니까 손이 문둥병이 걸렸어요. 다시 넣어라 다시 넣었다 빼니까 손이 깨끗해졌잖아요? 지팡이 던져라 던졌더니 뱀이 되고, 잡아라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되는 거에요. 말 못합니다 하니까 아론 붙여 줄게 하나님은 그저 하나하나 다 이렇게 섬세하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보여 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켜 주시고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저의 일상을 돌아볼 때도 정말 여기까지 오기까지 내가 노력한 것 같고, 내가 공부한 것 같고, 내가 준비한 것 같고,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깨닫게 하시는 것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섬세하신 인도하심 가운데 이 여기에 서게하셨다고 하는거에요. 


우리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죠.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세요. 여러분들 우연인 것 같아도 세상에 우연을 하나도 없어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아요. 여러분 우연인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 실수하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교보재로 사용하셔서 가지고 봐라, 이렇게 되는거지. 우리 회개하고 돌아섰고 또 성장하고, 회개하고 돌아서고 성장하고 오늘 이 자리 까지 이르게 하신 것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신다는 말이에요. 그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때로 한번 실수하고 넘어졌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때리시고 너는 이제 낙제다! 너는 이제 더 이상 볼 것 없다. 그리고 우리를 제해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라는 거예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고 나서 깨닫고 보니까 정말 하나님의 사랑 안에 품어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에요.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 하고 저 사람은 아닙니다 라고 얘기하는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 품으시는 우리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사랑을 깨닫고 나면 우리가 누구를 함부로 정죄하거나 판단하거나 그럴 수가 없는 거죠. 다 존중이 여겨야 되는 것이고 당신도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얘기할 때 그들이 회개하고 또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가지고 보면 모든 것이 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모든 것이 시련이나 좌절이나 저주나 절망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모든 것조차도 협력해서 선이 되도록 만드시니 그 모든 것들도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는 교보재다 이렇게 봐야 된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면 우리가 보는 눈이 달라지는 거에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나에게 다가 오면 시험과 시련과 역경이 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버렸습니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없는거에요. 이 모든 것들도 결국 하나님이 나로 훈련시키고 나를 성숙시키는 위한 이 단련의 과정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욥의 세 친구가 욥을 찾아 가지고 그 형편없는 지경을 보면서 야 이 불쌍한 친구야 너 죄진 게 있어서 이렇게 고난 당하는 거야 만약에 죄 지은 게 있어서 그런 고난당한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 지금 살아있을 사람 아무도 없단 말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얘기할 때 욥은 뭐라 그래요? 아니 이건 하나님이 나를 저주하는 거나 벌 주시는 것이 아니고 뭐라 그럽니까? 


욥기서 23장 10절에 보면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런 시련이 아니라, 역경이 아니라, 환란이 아니라, 뭐라고요? 하나님이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으로 보는 거에요. 믿음의 눈이 열려 있는 사람은 오늘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당하는 그 모든 문제들이 어떻게 비춰지느냐? 단련으로 보여지는 거에요. 


그럴때 오늘 우리는 아 하나님께서 나로 훈련시키고 단련시키시는 것이면 내가 이 모든 과정을 넉넉히 이겨나갈 수가 있겠다.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는 거에요. 결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우리가 무기력하게 그저 실패하고 좌절하고 낙망하고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드시는 거예요. 


천인이 내 우편에서 만인이 내 좌편에서 덤벼든다 할지라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잖아요? 오늘 우리 성도님들이 이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날마다 더 훈련받고 연단받음을 통해서 성장해 가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마지막 세번째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싸우자' 라고 하는거예요. 



하나님의 방법으로 싸워야 돼요. 준비된 기드온을 하나님은 전쟁터로 내보내는데 그 미디안과 전쟁하자! 모여라! 그랬더니 몇 명이 모이냐면 3만 2천 명이 모이는 거예요. 3만 2천명이 모이니까 하나님께서 너무 많다 너희들이 전쟁에서 이겨도 하나님이 도와서가 아니라 너희들이 잘 싸워서 이겼다고 얘기 할 테니까 무서운 사람들은 다 떠나라 그래라. 전쟁이 두려운 사람은 돌아가라. 그러니까 3만 2천 명 중에 몇 명이 돌아가냐면 2만 2천명이 돌아가고 만명이 남았어요. 


하나님이 그걸 보시고 만 명도 많다. 물가로 내려가서 물을 먹여라. 물가로 내려가서 물을 먹이는 데 몇몇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사주 경계를 하면서 손바닥으로 물을 떠서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냥 다 무장 해제하고 이렇게 세수를 하면서 물을 먹는 그런 사람들이 있단 말이에요. 저들은 다 돌려보내고 조심성 있게 이렇게 손으로 물을 퍼서 먹는 사람들만 남겨라. 그래서 남은 사람이 300명 이란 말이에요. 300명. 


근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 3백 명을 데리고 어떻게 싸우라 그러냐 무슨 뭐 놀라운 전략과 전술을 세우는 게 아니라 나팔 들게 하고, 항아리 하나씩 다 가져오게 하고, 그 항아리 속에 횃불을 넣어 가지고 하라. 아니 이게 무슨 전쟁하는 모습입니까? 전쟁을 하려고 그러면 칼과 활과 창과 그냥 뭐 화살도 많이 만들어 가지고 나가야 될 것 같고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거 다 필요없고 무기라고 하는 것 하나도 없이 나팔, 항아리, 횃불 이거 들고 나오라는 거예요. 누가봐도 이건 뭐 밤에 가서 물고기 잡으러 가는 거지 이게 전쟁 하러 가는 모습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하고 나오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나왔어요.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밤중에 이 항아리에서 횃불을 꺼내 가지고 흔드니 꼭 도깨비 불 처럼 보이는 거죠. 거기다가 나팔을 부니까 이 사람들이 자다 깨 가지고 정신이 없으니까 서로 지리멸렬 하는 거에요. 서로 죽이고 그렇게 해서 전쟁이 끝이 나고 기드온과 삼백 용사가 승리가 하더라는 거에요. 그 오늘 우리가 세상 살면서 우리 신앙인들이 교회에서는 열심히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지만 세상 나가서 살아 갈 때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 힘으로 싸우려 그래요. 내 방식대로 싸우려 그러고 내 경험대로 싸우려 그러고 그것이 잘못된 방법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싸우면 안 된다는 게 하나님의 방식대로. 


성경에 보면 많은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느냐? 하나님의 방식대로 싸울 때 이기는 거에요.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도 하루에 한 바퀴씩 돌아라 그리고 7일째 되는 날은 일곱 바퀴 돌아라 아니 이게 무슨 상관입니까? 두 바퀴씩 돌면 어떻고 10 바퀴씩 돌면 어때요? 그런다고 무너지느냐? 이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도 안되는 얘기를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이것은 무엇이냐?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따르느냐? 이걸 보시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방법대로 우리가 살아가게 될 때 우리는 300명의 용사를 가지고도 수만명의 미디안 군사들을 이길 수 있게 되는 거에요. 


오늘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방법 많은 분들이 기도해도 안 돼요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 돼요 여러분 그 원인이 어디있냐하면 세상 나가서 싸울 때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내 방법대로 싸우려 그러니까 내 논리대로 내 경험 대로 내가 이렇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어떤 논리를 가지고 세상을 싸우려고 하니까 우리는 질 수밖에 없다는 거에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 있어요. 그게 뭡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이게 이기는 방법이란 말이에요.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 이게 뭐에요?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라는 말이에요. 예수님이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다 가르쳐주셨다는 말이에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마라 이 모든 것들은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면서 가족관계 안에서도 어려움이 있고 또 세상살이 하면서도 또 어려움이 있고, 갈등이 있고, 싸움이 있고, 경쟁이 있고, 힘들고, 내가 지면 안 될 것 같고, 이겨야 될 것 같고, 여러분 그 이기는 방법은요? 양보하라는 거에요. 

성경은 나눠주라는게 원수 사랑해라, 관계 틀어지게 하지 말아라 니가 이익을 갖는 것보다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더 나쁘다. 사랑해라. 여러분 사랑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십니까? 결국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패배처럼 보이죠? 그렇지만 그 십자가가 온 세상을 다 변화시킨 거예요. 그 십자가 안에 있는 거룩과 사랑이 온 세상 인류를 변화시켜 버린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경쟁력이 있다 그러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거룩과 사랑이란 말이죠.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세상을 이기는 방법은 이거다! 서로 사랑해라! 원수도 사랑이라! 원수를 축복해라! 이런 얘기에요. 


우리가 살면서 '그 말씀을 내가 믿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지만 세상 나가서 원수를 보면 그렇게 원수로 우리가 축복하느냐 말이에요. 그렇게 격려하느냐 말이죠. 상종을 안하려고 그러고 우리는 결국에는 그런 싸움에 현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는거에요. 


지금 미국에 있을 때 한분 목사님이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지지난주에 전화가 와서 목사님, 너무 힘이 들어서 전화를 했대요. 나는 미국이다. 그렇게 미국인과 어때요. 전화 받으시라고 좀 여기서 전화를 통화를 한참했어요. 너무 힘이 드는 거에요. 그러니까 왜 힘드냐 그랬더니 자기를 모함을 하고 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이러고 저러고 너무 힘이들고 정말 막 울더라고요. 저한테 전화를 해서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막 울면서 목사님 가 가지고 그냥 쥐어 패고 싶다는거예요. 목사님인데 쳐맞을 사람도 목사님이란 말이에요. 


참 목사가 목사를 때리면 참 볼만 하겠다 싶어요(웃음). 예, 제가 목사님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세요. 내가 볼 때 하나님께서 당신을 한 단계 더 영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과정으로 내 눈에는 보여요. 그러니까 절대로 원망하지 말고 대응도 하지 말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 하세요. 하나님의 종인데 그 사람도 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축복하고 기도하셔야 돼요. 그렇게 하라 그러니까 자기는 그럴 수가 없다는데 그렇게 하라고. 순종을 해요. 


그럼 이제 제가 한국 온 다음에 얼마 전에 만났어요. 이제 그 때는 야속한 마음도 있었던 거에요. 그때 막 누가 그러잖아요? 화날 때는 옆에서 같이 화 내주고 뭐 어 죽일놈 그럼 아주 죽일 놈 같이 이렇게 해줘야 힘이 나는데 죽일 놈 그러는데 나만 거룩한 척하고 기도하라 그러니까 얼마나 꼴보기 싫었겠어요. 약도 오르고 말이죠. 근데 진짜 한주가 지나고 나니까 불쌍해 보이더라는 거예요. 


계속 더 이상 공격도 안하고, 대응도 안하고, 자기는 정말 골방에서 기도만 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 그렇다 보니깐 또 안쓰럽다는 거에요. 자기를 공격하던 그 사람이 너무 안쓰러워 보인다. 그래서 기도하게 됐다. 얘기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것 봐라. 당신 얼마나 하나님이 당신 사랑하는지 당신이 영적으로 지금 깊이가 달라진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싸워야 된다.


오늘 우리는 세상에서 교회 와서는 신앙적으로 기도 열심히 하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그렇지 못하고 누가 한마디 하면 나는 열 마디를 하려고 누가 나를 비난하면 뭐 있는 말 없는 말 다 해서 그 사람을 공격하려고 그리고 이기면 이겼다고 신나하고 이것은 절대 하나님의 방식의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는 우리는 세상을 절대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다보면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는데 누구냐면 다윗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에요. 


다윗이 어린 소년으로 보이니까 만만하게 보이는 가봐요. 그런데 다윗을 대적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왜? 다윗에게 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잖아요. 그 골리앗도 다윗의 앞에서 죽임 당하고 이스라엘 군대를 가졌던 사울 왕도 어떻게 됩니까? 다윗 앞에서 꼼짝 못하는 거에요. 결국은 그 나라를 왕국을 다윗에게 넘겨 주잖아요? 다윗을 대적하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란 말이에요. 우리 성도님들 또 세상 싸울 때 다윗을 대적해서 싸우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을 대적하려 그러면 안 돼요. 근데 더 중요한 건 뭔지 아세요? 더 중요한 건 여러분이 다윗이 되셔야 되는거예요. 우리 한분 한분이 다윗이 되셔야 되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기드온이 되셔야 되고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세가 되고 여호수아가 되셔야되요. 성경에 있는 이 이야기들은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다 부럽지 이러고 끝나는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성경에 나오는 그 모든 얘기는 이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다 그 이유는 이런거다 그러니 너희도 이 사람들처럼 살아라. 하나님이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메시지란 말이에요. 


오늘 우리가 살면서 '아 기드온이 이런 삶을 살았구나. 기드온이 하나님을 경외하니까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정말 큰 용사가 되게 해서 가진 것도 없고 정말 배운 것도 없고 내세운 것도 없지만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만드시는구나.' 


다윗을 보니까 목동이 어떤 다윗을 하나님의 이렇게 존귀하게 만드는구나 다윗은요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이잖아요? 사울이 그렇게 자기를 죽이려 그럴 때 도망치다가 굴속에 동굴 속에 숨었단 말이에요. 동굴 속에 숨었던 이 사울이 쫓아다니다가 저 동굴 속에 들어가서 좀 쉬어야 되겠다 들어와서 잠을 자고 있는 거예요. 다윗에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원수를 갚으라고 나한테 바로 이렇게 보내주셨구나. 그러고 이 동굴에서 칼로 찔러 죽일 수도 있었잖아요? 다윗은 다윗의 부하들은 그러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당신에게 기회 준 거니까 빨리 죽여라 

그렇지만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래서 사울의 옷자락만 살짝 베었어요. 내가 사람을 굳이 죽일 필요 없지요. 하나님의 알아서 할 건데 내가 왜 살인을 합니까?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그럴 수 없어요. 그냥 옷자락만 살짝 베었어요. 그러고도 마음이 아팠다고요.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에 옷자락을 살짝 벤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파가지고 다윗이 아파 했어요. 그게 하나님의 눈에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자의 모습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다윗은 어린 소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누구보다도 강한 용사라는거에요. 


여러분 기드온을 하나님의 큰 용사여 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가 큰 용사가 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에요. 다윗이 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고 모세가 아무 것도 가진 것도 없고 지팡이 하나 들고 이집트 그 당시에 최대 강대국이었던 이집트 바로 앞에 서서 내 백성을 가게하라고 강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용사의 모습으로 설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지금 함께하고 계신 걸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들 붙들고 계신 거 다 알고 계십니까? 그러면요. 우리는 원수를 향해서도 축복하셔야 돼요. 축복해도 결국은 내가 이겨요. 내가 나눠 줘도 내가 이기는 자가 되는거에요. 나는 나누고 베풀고 그저 모든 것을 양보해도 하나님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셔서 높아지고 존귀한 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이게 기독교인이 세상을 사는 방식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내 것을 다 내어 준다 할지라도 우리는 망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구제 하여도 부유하게 되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여러분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 라고 하는건 그런거예요. 나는 믿습니다. 


"믿음으로 삽니다." 그러시지만 내가 뒤에 돌아서 앉아 가지고 내가 계획하고 내가 가져야 될 거 내가 이루어야 할 목표 이런거 하나씩 둘씩 다 챙기고 그 과정에 누가 덤벼들면 원수로 생각하고 그 사람을 잘라버리고 이건 그리스도 인의 삶이 아니라 세상사람이 사는 모습이라는 거예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중요하고 또 내가 만나야 될 사람들이 중요한 거에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라. 이것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싸워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은 사랑합니다. 그러나 난 인간은 싫습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게 정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내 것을 다 나누어 주고 베풀어 준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도록 채우시고 인도하시고 내가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메어 있던 잘못되었던 관계들이 다 회복되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경험하며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목사님 나는 왜 이렇게 사는게 힘든지 몰라요. 이 사람도 날 괴롭히고 저 사람도 날 괴롭히고 그 이유는요. 여러분들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힘든 거에요. 그 사람을 사랑하면 힘들 것이 없단 말이에요. 사랑해 보세요 그들의 나를 향한 그 시선이 달라질 거에요. 나를 향한 그들의 마음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나누고 베풀면서 격려하고 희망을 주면서도 부족함이 없는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가?" 이것을 늘 기도 하면서 세상 살아갈 때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 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이웃을 사랑 하면서 살아가게 될 때 정말 우리는 큰 용사로 세상앞에 당당히 서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체험하며 사는 우리 모든 복된 성도님들이 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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