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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시키자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시키자
설교날짜 2016.7.10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요한복음 1 : 9 - 13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시키자
1. 하나님 앞에 달려 나올 수 있는 특권
 2.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권세
 3.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권세


말씀 요 1:9-13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사람은 누구나 권세와 권력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이 의지는 매우 강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목적도, 돈을 벌려고 하는 목적도 권세와 권력을 가지려는 마음에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과 같은 지위를 얻으려고 하는 것도 같은 마음에서일 것입니다. 그만큼 권세나 권력의 매력은 큽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권력과 권세를 얻고 나면, 기대했던 것만큼 좋지는 않습니다.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글쎄요. 그거 뭐 별 것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감리교 연합운동과 같은 활동을 하다 보면, 장관과도 같은 높은 지위에 있었던 장로님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땐 그분들에게 "그렇게 올라가실 만큼 올라가 보셨는데, 인생에 후회가 없으시겠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장로님 같은 분이 부럽네요. 신앙도 좋으시고 세상에서 권세와 권력도 누려 보셨으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싸늘하게 쳐다보시며 "목사님,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라고 물어 보십니다. 장로님의 눈에는 목사인 제가 훨씬 부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냥 해 본 소리이지 제가 진짜 부러워서 한 소리이겠습니까? 그렇게 한 이야기가 그분들의 마음에 기쁨이 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그 시간에, 주님께서 기뻐하실 더 선하고 가치 있는 일을 많이 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머리에는 백발이 성성합니다. 그래서 젊어서부터 선교사로 나가고 목회의 자리에서 교회의 여러 일을 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던 모습이 부럽다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덧없음을 이야기 하는 말 중에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꽃이 아무리 붉어도 백일이 넘게 붉은 색을 유지하는 꽃은 없다는 의미입니다. 꽃은 잠시 꽃을 피운 다음에는 집니다. 이처럼 세상의 권력가 권세도 덧없이 사라집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와 권력과 영화를 누렸던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솔로몬으로 성경 중 전도서를 썼습니다. 그가 쓴 전도서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와 권력과 영화를 누렸던 그가 주님 안에 있지 않은 모든 것들이 헛되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 권세와는 다른 권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 얻게 되는 권세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이 권세는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사라지지 않는, 우리에게 기쁨과 참 만족을 주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1장 9절에서 13절 말씀에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잘 놀라지 않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가슴이 뛰어야 하는데, 우리 가슴을 뛰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쁘지도 않고 간절하게 원하지도 않습니다. '목사님이나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지 나와 상관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시면 열 자가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천지가 개벽하는 것보다도 더 놀라운 기적이고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뛰지 않는 이유는 현실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저의 매일의 삶이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어야 합니까? 왜 이렇게 기쁨이 없어ㅑ 합니까? 왜 하는 일마다 안 되고 대로는 속상하고 불안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데 왜 삶이 이래야만 합니까? 이런 저의 삶을 보시면서도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까?"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감이 오지 않기 때문에 가슴이 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이 들지 못하게 될 만큼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본인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늘 "나는 그래요. 성경에도 그렇게 쓰여 있고 목사님도 그렇게 말씀 하시니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인정해요. 그런데 현실 속에서는 자녀답게 살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자녀의 권세가 있는데, 그 권세를 활용하려고도 누리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돈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 돈의 힘을 누리게 됩니다.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먹어야 배가 부른 것입니다. 아무리 음식과 물질이 쌓여 있어도 먹지 않고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야기를 했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권세를 활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냅니다. 돈이 있어도 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음식이 있어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왜 내가 이렇게 배가 고픕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음식을 주셨다면, 배가 불러야지요."라고 합니다. 배가 고픈 이유는 주었는데도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주셨으면 꼭꼭 씹어서 삼켜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있다고 하면, 그 권세를 활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세상 속에서 할용하며 살려고 했던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문제 속에서 허덕이는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세 가지의 권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달려 나올 수 있는 특권

 아무나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습니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특권은 아무 때나 스스럼없이 부모에게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염치 불구하고 새벽에도 찾아갑니다. 이것은 자녀로서 갖는 특권입니다.
 대통령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는 예약을 해야 하고, 예약을 한다고 해도 다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근처에는 얼씬하기가 힘듭니다.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자녀들은 예약을 하지 않아도 대통령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밤에도 불쑥 들어가서 "아버지, 이런 문제로 힘들고 어려워요."라고 하며, 얼마든지 자기의 이야기를 합니다.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녀로서 갖는 특권입니다. 또 그렇게 만날 때 부모는 "그만 좀 찾아와."라고 하지 않습니다. 언제든 찾아오면 기쁩니다. 새벽에 찾아와도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고 자녀를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그런 관계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찮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기뻐하시고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분 앞에 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런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얼마나 귀한 축복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당당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대단히 귀한 축복입니다. 문제는 요즘에 아버지가 아버지의 역할을 잘 못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철이 없어서 못하기도 하고, 바빠서 또는 힘들어서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녀들이 잘 알아서 커주면 좋은데 아이들은 미숙합니다. 또 사춘기를 지나다 보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해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갖는 이들도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아이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된다."라고 하면, "육신의 아버지도 짜증나는데, 하나님까지도 아버지가 되신다고 하면 싫어요.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싫어요,"라고 하는 아이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청년 중에도 그런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 된 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모델로서 아버지의 사랑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철이 없던 아이들도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아버지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며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되고 나면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며, 그 사랑에 대해 마음으로 깨닫습니다. 커다란 아버지의 사랑으로 건강한 인격을 갖춘 존재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호렙산 40일 기도를 하면서 참 감사했습니다. 한 참을 기도하고 나가려다 보면 그때까지 앉아있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어린 아들을 살리려고 뒤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이 됩니다. 설교를 하면 성경구절을 일일이 적고 밑줄을 그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하나님, 저 분의 기도를 들어주세요.'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딸을 살리기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감동적입니다. 어머니이기에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하나님, 저 분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라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부모라고 하는 존재는 자식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지쳐도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아들과 딸은 기도의 자리에 나오지 않았을지라도 부모는 자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문제도 아닌 자녀의 문제를 붙잡고 기도합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젊은 엄마는 어린 딸을 위해서 기도하고, 70이나 80이 되신 분들은 50, 60된 딸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기도하는 그 자체가 감동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안쓰러운 것입니다. '저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사는구나!'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얼마 전에 동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아무리 덩치가 큰 장정이라도 그렇게 큰 개를 보면 도망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큰개 세 마리가 달려드는데도 도망을 가지 않고 난투극을 벌였습니다. 개를 주먹으로 때리고 물고 잡아 뜯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영상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 뒤에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5살 내지 6살 정도 된 아이였습니다. 그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도망치지 않고 큰 개와 싸웠던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싸움이었습니다. 개를 떼어내기 위해 자기도 물어 뜯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저렇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개가 무섭지 않았을까요? 아들 앞이기에 무서움을 떨쳐 버린 것입니다. 어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이 찢기는 한이 있어도 달려 들어 개와 싸웠습니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무슨 일인가 보다가 뒤에 어린 아들이 있으니, 막대기를 들고 쫓아가 개들을 몰아냈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참 대단합니다.
 자녀가 위기 가운데 있을 때 물불을 가릴 수 있는 부모는 없습니다. 무조건 위기 속으로 달려듭니다. 상대적으로 고아인 아이의 인생은 받아야 될 사랑을 받지 못하고 누려야 될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삽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당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그 하나님 앞에 달려 나갈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아버지, 내가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힘든 상황이 있습니다."라고 하면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할 수 있는 특권과 권세가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에 가든지 늘 주님 앞으로 달려 나오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 나와야 합니다. 새벽에 자다가도 돌아누워 엎드려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한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이 특권과 권세를 잘 활용하고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권세

 하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 되신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왕자들이고 공주들이라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겼어도 공주에요?" 공주입니다. "전 할 줄 아는 게 없는데요." 세상에 할 줄 아는 것이 있어서 왕자와 공주가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왕자와 공주는 신분이 왕자와 공주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존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무능해도 왕자와 공주를 멸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옛날 어린 아이들의 동화를 보면 왕자들은 모두 잘 생기고 공주들은 다 예쁩니다. 그리고 공주들은 꼭 드레스를 입고, 키가 큽니다. 노래도 잘 합니다. 그래서 공주님이라고 하면 아름다움의 대명사 같습니다. 그런데 왕자와 공주가 다 그렇게 생겼을까요? 현실에서는 아닙니다. 저도 왕자와 공주는 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서 역사책을 펼쳐 드는 순간, 환상이 다 깨졌습니다. 구한말 시대의 왕가의 사진이 하나 올라왔는데, 왕자는 무척이나 키가 작았고 공주님도 공주님처럼 생기지 않았습니다. 동화 속과 현실은 다른 것입니다. 자매들도 백마 탄 왕자님을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백마는 탔지만, 아주 키가 작은 왕자님이 올 수도 있습니다. 백마 탄 왕자라고 하면, 무엇을 상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왕자나 공주가 썩 훌륭한 존재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 착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배우자를 구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왕자나 공주는 그들의 외모가 어떠하든지 존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신분자체가 왕족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에는 아직도 왕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왕자들이 있습니다. 손자들은 왕세손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찰스 황태자가 다이애나라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도 그것을 TV로 봤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큰 성당에서 대단히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이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찰스라는 황태자가 대단한 존재여서입니까? 아닙니다. 능력이 있고,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구한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단지 영국이라고 하는 한 나라의 황태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광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떠한지, 삶이 어떠한지는 보지 않습니다. 단지 그 사람이 황태자이기 때문에 존귀하게 여김을 받고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못났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거나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다는 것은 우리를 존귀하게 여김을 받게 하시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세상에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지 못하고 삽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그 답은 분명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의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세상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영적인 세계가 우리의 세상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아야 합니까?"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은 영적인 세계의 영향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픈 것이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도 영적인 세계의 영향 때문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끊어집니다. 아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손을 얹었더니 낫는 역사도 일어납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살 때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능히 이길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이 세상을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 또한 존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귀하게 여김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영적인 세계에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존재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그 나라에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가면 존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존귀하게 여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이 슬퍼한다면 이상한 것입니다.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나라가 아닌 곳에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또 다른 나라에서 존중받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존귀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저전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나의 존재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는 우주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입니다. 세상에서 누가 무어라고 해도 이 세상은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자기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권세

 아버지의 첫 번째 관심은 자녀들의 안전입니다. '나쁜 친구를 만나면 어떻게 하나?', '길거리에서 불량배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나?', '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나?' 등 안전에 대한 것이 부모의 첫 번째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왕은 왕자들을 내보낼 때 항상 군사들을 대동해서 갑니다. 어린 왕자가 어디에 간다고 할 때 혼자서 내보내지 않습니다. 호위 무사 그것도 최고의 무사를 뽑아 호위를 하면서 안전을 책임지도록 하며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는 더욱 더 강력하게 보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하나님께서 보호자를 보내주십니다. 누구입니까? 천사입니다.
 많은 사람이 "천사는 어렸을 때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죠."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변질된 천사가 악한 영들이고, 하늘에는 변질되지 않은 천사들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전쟁이 벌어질 때 악한 영과 천사들의 싸움입니다. 악한 영들이 우리를 공격해도 천사들이 우리를 보호하면 안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할 때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하나가 있을 수도 있고 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셋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서 1장 14절을 보면,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구원받을 자들이 실족하지 않고 미혹과 유혹 앞에서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주도록 천사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에게는 돕는 천사들이 있어 위기 가운데서 건져내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합니다. 악한 영이 우리를 공격하려고 할 때 천사들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난 여태까지 천사들의 도움은 받은 적이 없고 악한 영의 공격만 받았는데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믿음으로 바로 서 있지 않아서입니다. 우리가 세상 편에 나가 있으면 악한 영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자리에 서 있으면 천사의 도움을 받습니다. 우리가 늘 믿음으로 살아갈 때 천사가 우리의 머리털 끝 하나까지도 상하지 않도록 보호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창세기부터 수도 없이 천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가 천사를 이야기 하면 커피숍에 걸린, 큐피트의 화살 같은 것을 든 작은 날개가 달린 아기 그림을 상상합니다. 아닙니다. 천사는 크게는 이 지구를 밟을 만큼 큰 천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천사, 날개 달린 천사, 큰 칼을 든 천사, 심판하는 천사도 있습니다. 이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100%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천사들을 우리의 보호자로, 수호 천사로 보내주셨습니다.
 민수기 20장에도 출애굽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셔서 출애굽을 시켰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역대하 32장에 보면 전쟁을 할 때도 한 천사를 보내셔서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은 천사의 손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다니엘이 모함을 받아서 사자 굴속에 빠지게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그 사자의 입을 붙들어 매셨습니다. 사자는 다니엘을 먹고 싶어도 먹지 못했습니다.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먹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다음날이면 죽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형당하기 전날 천사를 보내셔서 베드로를 감옥에서 빼내주셨습니다.
 이런 천사의 보호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위기에서 건지시기 위해 천사를 보내시기도 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실 때도, 문제를 해결해 주실 때도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때로는 예배의 자리에서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도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할 때 천군과 천사가 화답합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함께할 때 악한 영은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집이나 다른 곳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는 별로 은혜를 받지 못했다가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쉽게 은혜를 받습니다. 이미 이곳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고 천군과 천사가 지키고 보호 하니 악한 영이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부 예배 때에도 성도 중 한 분이 서서 찬송을 하는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옆에 아내가 있고 하니 창피해서 고개를 하늘로 들었습니다. 남자들이 고개를 하늘로 들 때는 눈물이 날 때입니다. '저는 목이 아파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나는 것을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웃음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 마음속에 감동이 되어서 저렇게 눈물을 흘리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배에 은혜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수호천사들이 보호할 때, 우리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일일이 수호천사를 붙여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참 감사합니다.
 광림교회의 김 선도 목사님이 오래 전에 미국에서 큰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런데 큰 도시이다 보니 찻길에 차들이 달리는데, 횡단보도가 없었습니다.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차가 오지 않을 때 걸어가야 했습니다. 김 선도 목사님도 길을 건너기 위해 땅을 보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큰 대형트럭이 달려왔습니다. 꼼짝없이 치여 변을 당하게 생겼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옷자락을 세게 잡아당겼습니다. 그래서 뒤로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트럭이 지나갔습니다. 겨우 생명을 건진 것입니다. 누가 자기를 잡아 당겼는지 너무 고마워 뒤를 돌아다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한국에 돌아와 천사가 목사님의 생명을 구했다는 간증을 하셨습니다.
 시편 91편 11절에는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목사님도 그렇게 지켜 주신 것입니다. 시편 91편 12절에는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발이 돌에 부딪히면 굉장히 아픕니다. 신발을 신고 부딪쳐도 아픕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샌들을 신었습니다. 바닥은 고무이지만, 위로는 발가락들이 다 나왔습니다. 그렇게 가다 돌에 부딪히면 발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달리다가 돌에 부딪히는 것만큼 아픈 통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돌에 부딪히는 것과 같은 섬세한 부분까지 피하게 하시면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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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3
박동찬 목사
 여호수아 24...
 
504
2016.10.16
박동찬 목사
 누가복음 19...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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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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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25
박동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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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2016.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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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28
유경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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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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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왕기하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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