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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혜를 잊지 않는 성도 
 
은혜를 잊지 않는 성도
설교날짜 2016.11.6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여호수아 4 : 19 - 24
 



 



은혜를 잊지 않는 성도
-추수감사주일-
 1.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라
 2. 하나님 경외함을 가르치라

말씀 수 4:19-24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사람은 살면서 흔히 “사람다워야 된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사람다워야 된다는 이야기는 동물하고는 달라야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과 동물의 다른 점을 이야기 하라면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을 이야기 하라면,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은 오직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러면 예배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예배는 하나의 예식이나 절차가 아닙니다. 의전도 아닙니다. 예배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 앞에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를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한 주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 가운데 살았던 것과 지켜 주시고 동행해 주신 것에 감사해서, 주일이 되면 주의 성전으로 모여 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늘 때마다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하셨으며, 기도하면 들으셨습니다. 부족하고 잘난 것 없는 죄투성이 인간이었지만 “너는 죄가 많으니,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라. 나는 거룩하니 너희 같은 존재들은 올 수 없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불쌍히 여기시고 붙잡아 주시고 씻어 주시며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 은혜로 가득합니다.
 여호수아서 4장 19절에서 24절 말씀도 그런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4백 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옛날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선택하셨고, 그를 보내셔서 출애굽을 시키셨습니다. 그 뒤에는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을 돌았습니다. 40년이 지나 불순종했던 어른 세대들이 다 죽고 나니, 어린 세대들이 커서 어른 세대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대를 위해 하나님은 떠난 모세 뒤를 이어 여호수아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었습니다. 40년 전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으로 들어갑시다.”라고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며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 하고 오히려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제는 옛날 40년 전에 반복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말자.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들어가자.”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들어갔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그렇게 결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결단을 하고 들어가려고 하니, 요단강이 가로막혔습니다. 모맥을 거두는 시기에는 요단 강물이 범람해 바다와 같이 넓습니다.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하지만, 현실 앞에 닥치는 문제를 보면 호락호락하지가 않습니다.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배를 만들어서 건너갈 수도 없습니다, 답이 없습니다. 답이 없을 때는 항상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매고 일단 요단강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급류가 흘러 물살이 세기 때문에, 들어가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신뢰하고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매고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릎 쓰고 들어가 요단강에 제사장들의 발이 잠기니, 위에서부터 물이 끊어졌습니다. 요단강은 마른 땅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어렵고 안 될 것 같은 문제들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방법은 늘 간단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시고 인도하시고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은혜와 기적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4장 19절부터 24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희들이 이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 되니,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서 있는 곳에서 각 지파의 수대로 돌을 하나씩 취해라. 그래서 나중에 길갈에 가서 돌을 세워 기념비를 만들어라. 너희 후손들이 이 돌들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느냐고 물으면, 예전에 요단강을 건널 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도와주셔서 요단강물이 멈추었고, 배를 탄 것이 아니라 걸어서 이 강을 건넌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길갈에 세워진 열두 돌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가 늘 당신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운 순간이 닥치면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해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색을 내시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어려운 인생살이에서 그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돕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4장 19절에서 24절 말씀에서 길갈의 열두 돌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라

 길갈의 열두 돌이 의미하는 것은 첫 번째로 돌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이 아닌 전략과 방법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건넜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무슨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어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지금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이든 안 믿는 사람이든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삽니다. 우리가 마시고 호흡하는 공기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발로 디디고 선 땅도 하나님이 우리가 디디고 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사람이 살 수 있는 모든 환경은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모든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주에 보면 지구와 같은 별이 또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못 찾습니까? 천체 망원경이, 엄청난 전자 망원 렌즈가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몇 십만 년 떨어져 있는 곳의 별을 본다고 해도 지구와 같은 별은 우주 가운데 지구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 만든 것은 지구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화성에서 물의 흔적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소용이 없습니다.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이 있다 해도 그곳에서 살라고 한다면, 살 수 있을까요? 달나라에 가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별 하나만 봐도 하나님이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드시고 창조하시고 베풀어주신 은혜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았어요.”라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키려고 하며 “나는 딱 5백 년만 살아야지.”라고 한다고 해서 5백년을 살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는다고 해도 2백년을 살기 힘듭니다. 이백년은 고사하고 100년도 살기 힘듭니다. 100년을 사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합니다. 뜻하지 않은 질병으로 인해, 어려움으로 인해 인생을 다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자잘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위기와 자잘한 문제들을 극복한 것이 내 힘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 번의 홍수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도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천국에 가게 되면, 기대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서게 되면 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내가 모르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이 보호해주셔서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나간 많은 순간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기대가 됩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성경에 있는 말씀처럼 낮의 해가 우리를 상하게 하지 않으시고, 밤의 달이 우리를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하십니다. 어린 아이들이 잠을 자는데 모기가 오면, 부모는 부채질을 해 모기를 쫓아냅니다. 아기는 구유에 누운 자기를 부모가 돕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의 돕는 손길에 의해 성장해 갑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크신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느끼지 못하지만,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에 나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는 불신자이든 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 4장 5절에서 “이스라엘 지파수대로 돌을 한 개씩 가지고 와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2지파가 있었기 때문에 12개를 취했을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너무 약하니 베냐민 지파는 빼라. 그리고 11개만 취해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잇사갈 지파도 문제가 있으니 빼고, 10개만 취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족한 지파도 있었고, 뛰어난 지파도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지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지파의 수대로 돌을 하나씩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부족함을 다 덮고 채우기에도 충분한 은혜입니다.
 우리는 한 해를 지내고 추수감사주일을 맞을 때마다 지난 한 해 동안 결실하게 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추수 감사 주일의 기원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영국의 청교도들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1620년에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당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 비추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당시 미국은 매우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중죄인들을 잡아 유배를 보내는 곳이 미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청교도들은 영국과 같은 좋은 땅을 버리고 왜 미국 땅을 택했을까요? 비록 땅은 척박했고 먹을 것도 없었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없었을지 몰라도, 그 곳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겠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달에 걸쳐 배를 타고 모험을 하며, 미국으로 건너갔던 것입니다. 이들은 그곳에서 보잘 것 없는 종자씨를 뿌리고 옥수수를 비롯한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수확이 화려하거나 멋지거나 풍성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잘 것 없고 얼마 되지 않는 수확을 놓고서도, 지난 1년 동안 살아있게 하시고 첫 수확을 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주일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자유를 위해, 하나님을 마음껏 믿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영국 땅을 버리고 미국에 간 개척자의 정신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국을 존귀한 나라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서고 하나님을 붙잡고자 할 때, 우리를 붙드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미국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꾸 버립니다.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없어지고 이제는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을 조롱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곧 성탄시즌이 올 것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즐거운 주님의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날은 그리스도의 날이며, 주님께 예배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캐롤을 부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안에 보면 다른 종교들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데, 기독교의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면 다른 종교에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는 캐롤을 부르지 못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도 하지 못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 대신에 해피 홀리데이라는 말을 하도록 합니다. 즐거운 휴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날을 휴일로 정한 이유를 물어 보면,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은 하지 못하게 하고 공휴일로 정해 해피 홀리데이라고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미국의 현실을 볼 때 매우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내가 바브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이른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매주일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예배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고 도우십니다.
 우리가 길갈에 세워진 열두 돌처럼 우리 신앙의 삶에 있어서도 내 나름대로의 열두 돌을 취해서 놓고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 경외를 가르치라

 여호수아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돌을 세워서 후손들이 돌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게 될 때, 이 돌은 과거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셔서 요단을 건너가게 했다는 것을 꼭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후손들을 가르치기 위한 기념비가 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꼭 감당해야 될 사명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후손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에 신앙을 가르치지 않으면 나라의 운명이 바뀌고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의 경상도만한 크기의 작은 나라입니다. 인구수를 다 합쳐도 8백만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서울시의 시민이 천만 명이 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수상자의 22%가 유대인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은 교육방식에서 그 해답을 찾습니다. 이스라엘의 교육방식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쉐마 교육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쉐마라고 하는 말은 신명기 6장 4절에 있는 것으로 “들으라”라는 의미입니다. 신명기 6장 4절에서 7절까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세상의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또한 신명기 6장 8절에는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 보면 통곡의 벽 앞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머리와 왼쪽 팔에 검은 상자를 묶었습니다. 그리고 검은 줄을 팔에 감기도 했습니다. 상자 안에도 말씀이 들어있고, 줄 안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신명기 6장 9절에는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보면 집은 물론이거니와 호텔에도 방문 위 조그마한 막대기 같은 것이 붙어 있습니다. 막대기 뚜껑을 열면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메주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쉐마를 지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유대인들을 보며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읽어야지.”라는 말을 비롯해 다양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손목에 매라고 하시니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라고 하시니 미간에 붙입니다. 그리고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여전히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킵니다.
 신기한 것은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재건했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에는 사라진 종족과 민족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비록 망해서 없어진 나라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고,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켰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나라를 재건하고 세상 모든 민족 가운데 뛰어난 민족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이들은 나라가 망했어도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경외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매우 열심을 다했습니다. 지난 100여년이 넘는 기독교 역사의 시간이지만, 그 어렵고 힘든 시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우리 조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우리 자녀들에게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산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길이 네가 형통할 수 있는 길이고 네가 세상을 이기는 길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된다.”고 가르칠 수 있는 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존재하는 말씀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이유는 후손들을 위해서입니다.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한 결코 망하지 않는 후손들이 될 것입니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 후손들에게도 이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우리나라와 민족 우리 자손들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려 나가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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