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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니엘의 결단 
 
다니엘의 결단
설교날짜 2017.1.22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다니엘 1 : 8 - 9
 

 

  

다니엘의 결단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결단했다.
 2.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결단한 것을 지키려는 결단이 있었다.


말씀 단 1:8-9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목힞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인생에서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모습은 사람들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버티며,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어떤 사람들은 운명이라 생각하고 ‘될 대로 되겠지. 운명대로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늘 하는 일마다 안 돼 왔어.’라고 자책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갖습니다. ‘나는 하는 일마다 안 됐으니, 이번에도 안 될 거야.’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낙심하고,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 거죠?”라고 하며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나는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대처합니까? 이것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람직한 자세는 쉽게 포기하거나 원망하며 불평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도전하고 극복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도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이겨나갔습니다.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것은 그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도 어려워서 풀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문제에 답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풀지 못한다 하더라도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문제는 내가 어쩔 수가 없어. 답이 없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것뿐이지, 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섰을 때도 홍해 바다가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서 길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홍해 안에 길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길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답이고 모든 것이 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짜 문제는 문제 앞에 서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자에게는 길이 생깁니다. 우리 주변에 어떤 문제 앞에서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도전하려고 하는 자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해도 안 될 것이다.’라는 자포자기의 마음과 잘못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자기는 원래 되는 일이 없었다고 이야기를 하며 운명이 꼬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쉽게 포기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제일 하고 싶은 권면의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인간들의 삶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잘 나와 있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때 불가능한 상황을 넘어서고 극복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절망적인 상황이 희망으로 변화된 이야기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도 “절망해라.”, “두려워해라.”, “안 될 것이다.”라는 의미의 구절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일어나라.”, “도전해라.”, “요단 강물에 들어가라.”, “홍해 앞에 서라.”, “기도는 이제 그만하고 뚫고 나가라.” 등의 말씀이 성경에는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답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 보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다 보면 우리 안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위에 믿음이 자라게 되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것을 체험하게 되면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2017년도에는 모든 성도가 체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생기면, 예전에는 뒤로 물러났던 순간에 맞닥트린다 할지라도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다니엘서 1장 8절에서 9절 말씀이 이것을 잘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해 주셔서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번성과 축복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되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잘 되는데.’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가 세워졌지만, 그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들의 생각과 뜻대로, 이방나라들이 행하는 잘못된 관행과 습관을 따라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청소년 시기의 다니엘은 볼모로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나라는 이미 망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나라가 망해?”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남다른 결정을 했습니다. “이제는 절망이다. 어쩔 수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습니다.

라는 결단이었습니다.
 참 대단합니다. 이런 면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입니다. 보통의 사람들 같으면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는데, 바벨론에 갔으니 바벨론의 법을 따르면 될 일이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는 

      나라는 망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망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 삶 속에 어려움이 오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상황일수록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는 결단으로, 야채만 먹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야채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왜 야채만 먹겠다고 했을까요? 왕은 환관장에게 볼모로 잡혀온 아이들에게 고기를 포함한 음식을 주어 얼굴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만들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환관장은 볼모로 잡혀온 젊고 예쁜 동안의 청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니엘은 “우리는 고기는 필요 없고 야채만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환관장이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그는 “야채만 주었다가 너희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징계를 받는다. 그러니 그럴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다니엘은 1장 12절에서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라고 했습니다. “10일이 지나서 피부 빛도 좋아지지 않고 하면, 그때는 당신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채소만 주어도 얼굴빛이 더 환하고 밝아질 것입니다.”라는 믿음의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환관장은 다니엘의 요구대로 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9절에 기록되었습니다.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할 때, 하나님은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믿음생활을 하려고 할 때, 어색한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나가겠습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상황을 만들어 주시고 그 말씀을 지키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야채만 먹는 것이 율법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대 율법에 있는 ‘코셔법’입니다. 이것은 유대의 음식율법입니다. 요즘에 유대인들의 ‘할랄식품’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할랄식품’이 ‘코셔법’을 그대로 모방한 것입니다. 이슬람의 마호멧은 성경의 내용을 마음대로 바꾸었습니다. 그것이 ‘코란’입니다. 그래서 성경과는 많이 다릅니다. 성경을 모방했지만, 자기 민족 중심적으로 쓴 것입니다. ‘할랄’이라는 단어와 ‘코셔’라는 단어의 공통된 의미는 ‘허락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코셔’라고 하면 먹어도 되는 것이고 ‘코셔’가 아닌 것은 먹어서는 안 됩니다. ‘할랄’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셔법’을 보면 채소와 과일은 모두 ‘코셔’입니다. 채소와 과일은 모두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어류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갑각류나 비늘이 없는 장어, 미꾸라지와 같은 것은 먹어서는 안 됩니다. 당연히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은 ‘코셔’가 아닙니다. 또 조류에 있어서도 닭, 칠면조, 집오리와 같은 것은 먹어도 됩니다. 그러나 야생 조류 중에 독수리와 매 같은 육식성 조류는 ‘코셔’가 아닙니다. 그래서 먹어서는 안 됩니다. 되새김질을 하고 발굽이 갈라진 것은 ‘코셔’입니다. 그래서 소, 양, 염소, 사슴은 먹어도 됩니다. 그러나 말, 당나귀, 낙타와 같은 것은 되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많이 좋아하는 삽겹살은 돼지고기입니다. 이것은 굽은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먹을까요?
 구약의 율법은 우리의 죄와 한계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정한 법이 무엇인지 알아야 은혜의 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이방인에게는 복음을 전하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우리가 이 음식을 먹어도 되는 근거가 생깁니다. 베드로는 환상을 보게 되었는데, 하늘에서 바구니가 내려왔습니다. 그 바구니에는 ‘코셔’가 아닌 음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서 “먹어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아니, 이것은 모두 먹지 못하는 부정한 음식인데 어떻게 먹습니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정하다 한 것을 네가 부정하다고 하지 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음식은 음식일 뿐이고 그것이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음식을 가리지 않고 은혜와 감사함으로 먹습니다.
 그런데 ‘코셔법’에 있어서 중요하게 본문과 연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코셔’가 아닌 음식이 그릇에 담기게 되면 부정한 그릇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정한 그릇은 물에 넣고 삶아야 합니다. 아니면 불로 소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한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야채만 먹겠다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 의해서입니다. 출애굽기 23장 19절에는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마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양이든 소든 고기가 나오면 유제품은 함께 접시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유제품은 어미의 젖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미와 새끼를 한 접시에 놓고 먹는 것은 잔인합니다. 그래서 유제품과 고기는 따로 먹어야 합니다. 지금도 정통 유대인들은 이 법을 지킵니다. 유제품을 먹었으면 고기를 못 먹고 고기를 먹었으면 유제품을 먹지 못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할까요? 고기를 먹고 나서 3시간에서 6시간 쯤 지난 후에 소화를 시키고 유제품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에는 이런 음식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해진미를 한 접시에 마구 담았습니다. 음식을 먹기 위해서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의 율법을 어겨야 되었습니다. 작은 일이었지만, 매일 세 번씩 음식을 통해 율법을 범하는 것이 마음에 거리꼈습니다. 그는 ‘바벨론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고 “고기는 안 먹겠으니 야채만 주세요.”라고 요청했습니다. 야채만 담아 주면 문제가 될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다니엘의 결단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까짓 음식 먹는 것이 이스라엘도 망한 상태에서 뭐가 그렇게 중요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작은 것처럼 보이는 것을 작게 보지 않았습니다. 작아 보이는 것을 작게 보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계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리 작은 것이고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때로 이런 작은 것에 소홀하고, 작다고 간과해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작은 것을 소홀히 여기고 간과하면, 큰 것도 소홀히 하고 간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어디까지는 지켜야 하고, 어디까지는 지키지 않아도 됩니까?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받고 지켜 나가는 것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소홀하지 않고 모두 지키려고 했던 다니엘과 같은 결단을 가지고 말씀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결단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그런 결단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니엘을 굉장히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성경 중에 가장 존귀한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다른 많은 사람도 있지만, 저는 다니엘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다니엘에게는 고난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100살이 될 때까지 총리대신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에 대해 계시하셨고, 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것이라면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지켰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망해서 괴로워하던 다니엘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70년 후에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이다.”라고 했던 그 말씀을 받는 순간 ‘에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라고 간과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붙잡는 순간부터 기도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겼던 다니엘의 모습입니다. 그랬던 다니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니엘을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런 다니엘의 결단이 중요한 이유와 우리의 결단과 다른 점에 대해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결단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결단할 때 나를 위해서는 많이 합니다. 살도 빼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영어 공부도 해야 하고, 승진도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결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결단했습니다. 이것이 다니엘과 우리의 차이점입니다.
 다니엘은 나라도 망하고 자신도 포로로 끌려온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망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므로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라가 회복되는 길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 있다.”는 것을 다니엘은 분명히 믿었습니다. 우리도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정치인들이나 누군가 나서서 회복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에 의해서 이 세상의 역사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전을 회복하기 위해 ‘아닥사스다’라고 하는 믿지 않는 왕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결단하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 결단하고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가시고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우리의 삶과 다니엘의 삶이 다른 점은 다니엘은 음식 먹는 것과 같은 지극히 작아서 우리가 흘려버릴 수 있는 것도 지키려고 했지만, 우리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하나님의 규례를 어기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이야기에 혹시 “요즘에 어떻게 그렇게 말씀을 지키며 삽니까? 그런 식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목사님이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나와서 살아보세요. 그렇게 말씀을 지키며 살 수 있는지.”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절망의 상황 속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총리대신의 일을 감당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요? 하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 속에서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사람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다니엘처럼 사는 사람도 매우 많습니다. 드러나지 않지만, 말씀을 지키며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타협한다고 모든 사람이 타협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는 문제에 너무 깊이 빠져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기 위해 죄와도 타협하고 세상 사람들과도 타협하고 세상 법과도 타협합니다. 그러면서 신앙인이라고 교회에 와 예배를 드리며, 어떤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기적은 그렇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뚫어낼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부분까지도 감찰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몸부림으로 결단했다면,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는 마태복음 10장 42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결단이라 할지라도 기억하시고 그것을 통해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믿음 안에서 충성되게 살려고 하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하나도 헛되게 땅에 떨어지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2017년을 살면서 나를 위한 결단은 많을지 모릅니다.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결단 또한 해야 합니다. ‘3+1운동’은 ‘교회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세 가지 결단과 ‘세상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한 가지 결단을 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결단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기 위한 섬김과 봉사를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결단으로는 ‘한 예배 책임지기’, ‘한 사역 책임지기’, ‘한 생명 책임지기’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세 가지를 모두 지키지 못하면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두 가지를 할 수 있으면 두 가지를 하면 됩니다. 이것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 성도들을 A, B, C, D 그룹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A 그룹은 모든 것에 있어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합니다. B 그룹은 하기는 하지만 가끔 합니다. C 그룹은 주일 예배에만 나옵니다. D 그룹은 일 년에 한두 번 제가 잘 있는지 확인하러 옵니다. 이 모든 그룹이 하나님 앞에서 같은 대접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그렇지 않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헌신하는가?’에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목회자의 사명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목회자의 사명은 교인수를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맡겨 주신 양 무리들이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책망 받지 않는 교인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목사님들, 전도사님들과 함께 모든 성도가 A 그룹이 되도록 하는 것에 대해 상의를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주요한 관심사입니다. 사실 맡겨주지 않으신 양 무리에 대해서는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맡겨주신 양 무리인 일산광림교회 3천명이 넘는 성도만 해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모두 칭찬 받는 성도가 되도록 하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입니다.
 ‘3+1운동’을 만든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저를 위해서나 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세월은 얼마나 빨리 가는지 한 순간에 지나가고 맙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머리가 백발로 희어져 버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살면서 매 순간 또는 하루에 한 가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일산광림교회 성도들 모두 마지막 날 칭찬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결단은 결코 헛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둘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결단한 것을 지키려는 결단이 있었다

 결단을 했어도 그 결단을 지키려는 결단을 또 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생명의 위협이 오는 순간에도 자신의 결단을 지켰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여기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집어넣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보면 어리석습니다. “왜 그렇게 생명을 헛되이 버리느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에서 말씀을 어기면서 불의한 삶을 살며, 조금 더 부귀를 누리는 것보다는 영원한 삶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이 훨씬 유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정말 영원한 삶,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는 그 삶을 분명하게 믿는다면, 이 세상에서 불의와 타협하며 살 수 없습니다. 많은 성도가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서 불의와 타협하면서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가끔 가다 ‘나의 믿음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니엘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믿음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한계가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내놓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니엘의 세 친구 같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다가 사자굴에까지 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도 대단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런 성경의 인물들에 비하면 나의 믿음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습니다. ‘과연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저에 대해서 괴로워합니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다면 괴로워하는 마음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물론 괴로워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몸부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라고 했습니다. 그도 괴로웠던 것입니다. 세상의 법과 육신의 소욕을 따르고 싶은 욕망이 계속해서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성령에 따르고자 하니, 그런 것들을 끊어버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 그 안에 계신 성령의 요구에 응해야 했습니다. 만약 이런 것 때문에 갈등한다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목사님, 저는 그런 갈등 하나도 없이 잘 살고 있는데요.”라고 한다면, 정말 엉터리로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살지 않고 세상 사람처럼 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에 걸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는 고난이 있어야 되고, 마음에 걸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라는 마음의 걸림이 있는 사람은 이 안에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생명이 없는 사람은 죽은 물고기가 물을 따라 흘러가듯이 흘러가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결단한 것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사자굴 앞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다니엘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6장 10절의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서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감사는커녕“하나님, 왜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주세요? 한 달 동안 기도를 못한다고 하니, 살기 위해서는 기도를 멈추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상황을 만들어 주셔야 기도를 하죠?”라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는 줄 알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에게서 이러한 점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을까요? 다니엘은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는다’라고 고백은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그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을 실천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나는 내가 신앙생활을 잘 하는 줄 알지만, 결국은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렇게 살아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 분명한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다니엘은 자기 생명보다 하나님 앞에 결단한 것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자기의 생명보다도 하나님 앞에 결단한 것을 지키는 것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니엘을 축복하지 않으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하늘의 신비한 계시를 통해,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에서도 시기하는 사람,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존귀하게 여김 받고 왕의 총애까지 받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2017년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세상 사람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2017년도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 성도들이 성경의 인물들이 받은 이런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게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이것만이 저의 유일한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 앞에 칭찬받게 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될까?’, ‘어떻게 하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시는 기적을 경험하는 성도님들이 되도록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이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다니엘을 보며 ‘우리 성도님들이 다니엘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다니엘이 받았던 은혜와 축복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실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축복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처럼 복된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평생 설교를 해도 교인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은혜를 받았어도 저 문을 나가 차를 타는 순간에 모두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꼭 지켜야 할 세 가지 지침이 있습니다. 첫째, 2017년을 살면서 어디에 가도 그리스도인임을 먼저 밝혀야 합니다. 상가에서 사람을 만날 때에도, 사업 동역자를 만날 때에도, 그 외에 여러 이유로 사람을 만날 때에도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먼저 밝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남에게 거짓말을 하고 속이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작은 것이라도 올 한 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결단 없이 평생을 사는 것보다 100배, 1000배, 10000배 축복이 됩니다. 세 번째는 나쁜 죄의 습관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끊어야 합니다. 2017년도에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네 번째는 이렇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 이 세 가지를 지키며 살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주소서.”라고 매일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2017년 한해에는 다니엘에게 허락하셨던 축복과 은혜를 동일하게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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