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섬기는 교회 (렘 33:3)
> 인터넷방송 > 예배 > 주일예배
 
 
제목   유업을 성취한 갈렙의 믿음 
 
유업을 성취한 갈렙의 믿음
설교날짜 2017.2.19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여호수아 14 : 6 - 12
 

유업을 성취한 갈렙의 믿음
 1.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랄 수 있는 믿음
 2. 포기하지 않는 믿음
 3. 도전하는 믿음


말씀 수 14:6-12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도 우연히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살게 되었네요.”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하심 가운데 만들어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러면 계획이 있으셔서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망하도록 만드시고 어떤 사람은 악하게 살도록 만드시고, 어떤 사람은 고생만 하도록 만드셔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에 우리를 향한 계획도 선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선하게 살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 가운데 살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때로 결말이 좋지 못한 사람도 있고, 악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망하는 사람도 있고, 좌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며 “하나님이 선하게 만드셨으면 다 잘되고 축복받아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길 가운데로 순종하며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섭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거역하고, 내가 가고 싶은 데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안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망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서 14장 6절에서 12절 말씀은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여호수아서 14장 6절에서 12절 말씀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고역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며 한 가지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구원하시고 자유하게 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가나안에 가서 좋은 나라, 자유가 있는 나라를 세우고 자녀들에게도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지시를 받는 삶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을 한 다음 홍해를 건너 광야 길로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가는 길목에 서서 보니, 자기들의 환경이 너무 좋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집에서 자는 것도 아니고, 천막을 치고 광야에서 잠을 자야했습니다. 먹을 것도 풍부하지 않았고 먹을 물도 풍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괴로웠습니다. 툭하면 이웃 족속들이 이스라엘 배성들을 죽이기 위해 전쟁을 하자고 덤벼들었습니다. 너무 힘이 든 나머지 가나안으로 가기보다는 광야에 주저앉아서 “이제는 더 이상 못 가겠다.”라며 포기해 버렸습니다.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에는 어려움도 있고, 때로 그들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좋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갔더라면, 그들은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중간에 포기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유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하나님의 유업을 끝까지 붙들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에는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으니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라는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하심을 다 이루고 약속하신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크고 놀랍고 선하고 좋은 계획입니다. 이런 복된 유업을 누리기 위해서는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버티고 나아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초반에는 잘 가던 사람들 중에는 중간에 탈락한 사람도 많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처음에 하나님의 복음을 붙잡고 마음이 뜨거웠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자리를 버리고 떠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12명의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에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아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너는 망해라.”, “너는 축복받아라.”, “너는 울어라.”, “너는 고통당해라.”라고 결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항상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는 여정은 우리의 인생과 흡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죄의 유혹은 무섭기도 하지만,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고생합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어린 양 예수님이 피 흘려주심으로 이러한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은, 출애굽 당시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를 통해 그들이 자유함을 얻게 된 것과 똑같은 사건입니다. 애굽에서 출애굽을 한 사건은 우리가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 사건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했을 때, 바로 가나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죄에서 구속함을 받았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후에도 우리가 살아야할 광야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광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광야를 돌고 있고, 갈렙처럼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전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단계가 사람들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가나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하시고 허락하신 축복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불평하고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광야에서 떠돌다가 죽는 인생이 되고 압니다. 갈렙처럼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갈렙의 분명한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첫째,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는 믿음

 우리에게는 아무리 보아도 어렵고, 힘들고, 불가능한 상황이 펼쳐질 때가 많습니다. 그때에는  무언가를 바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해결이 될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해결이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전혀 해결이 될 것 같지 않은 상황을 살아갈 때가 많은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부도의 위기 가운데서 당장 어찌해야 될 바를 알지 못합니다. 자녀와의 깊은 갈등으로 지옥 같이 된 가정도 있습니다. 또 어떤 가정은 불치병에 걸린 가족으로 인해 아파합니다. 불치병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돈이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한 사람이 아프면 가족 모두에게 근심과 걱정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파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며 ‘에이, 모르겠다.’라고 자포자기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랄 수 없는 중에는 다 포기하고 ‘이제는 어쩔 수 없다.’라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마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라는 의미입니다. 현실을 분석해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맞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 상황이 어려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은 없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2017년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안 되는 일’, ‘불가능한 일’과 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한 일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출애굽을 성공시킨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힘든 광야 길을 거쳐 가나안 입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은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가데스바네아에서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선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이니 그 지파에서 한 명씩 선출한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그 땅을 한번 보고 와라.”라고 시험했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 서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내는 장면을 읽으며 제 마음에 와 닿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기 위한 믿음의 시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2명의 정탐꾼들은 똑같은 땅을 보고 왔는데도, 두 편으로 나뉘어 다른 보고를 했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아주 정직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땅을 보고 왔는데, 좋은 땅은 맞습니다. 그런데 이미 주인이 있습니다. 거인족입니다. 거인족은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그랬다가는 죽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백성이 통곡했습니다.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광야까지 왔는데, 이제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라고 하며, 대성통곡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에 똑같은 땅을 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은 좋은 땅이 맞습니다. 거인족이 산다고 해도, 하나님이 주신 땅이니 들어가면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기로 축복한 땅인데, 왜 주저합니까? 들어갑시다.”라고 했습니다. 많은 백성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정확하게 현실을 판단해서 보고했던 10명의 정탐꾼의 이야기를 더 신뢰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왜 그런 보고를 했을까요? 자기들도 거인이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자고 한 이유는 10명의 정탐꾼이 가지지 못한 한 가지를 그들은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살아 있는, 진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10명의 정탐꾼은 하나님을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닥치게 되니, 하나님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현실의 문제의 벽이 아무리 높고 그 벽을 넘기가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그보다 더 크신 이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면 문제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주저하지 않고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이 10명의 정탐꾼과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의 보고를 통해 자신을 한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평소에 아무 문제가 없을 때는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라고 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라고 하면 “아멘. 내가 믿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나에게 닥쳤을 때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다윗이 거인 골리앗 앞에서 물맷돌을 던졌더니 골리앗이 맞고 쓰러졌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물맷돌을 던져야합니다.”라고 하면, “아멘. 나도 이제 던지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내 앞에 골리앗이 서 있으면 “나는 못합니다.”라고 합니다. 많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뒤로 물러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 문제 앞에 담대하게 다윗처럼 믿음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물러 있을 때가 많은 것입니다. 세상은 늘 어렵다고 힘들다고 안 되다고 합니다. “지금은 섣불리 덤비면 안 돼요. 창업은 어림도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우리도 매일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말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다 맞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말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안 됩니다.”가 아니라, “세상 사람은 못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로마서 4장 17절에 있는 말씀처럼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입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 4:17

 세상에서는 없으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없어도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순간 없던 것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유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지만, “있다.”라고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새로운 것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로마서 4장 17절에서는 “하나님은 죽은 자 까지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없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자녀에게 지혜가 없고 우리 가정에는 되는 일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있다.”고 해야 합니다. 세상에 답이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그 시험을 이겨나갈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더 큰 것으로 채우시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 그것은 바른 믿음이 아니잖아요? 목사님은 우리에게 맹신을 요구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맹신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이해되는 것만 믿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해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수많은 성경 인물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시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로마서 4장 18절에도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롬 4:18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믿음은 망상이고 헛된 맹신이고 잘못된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믿는다면, 맹신이 아닙니다. 거짓을 믿는 것이 아니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기적의 역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1년 12달 말씀을 전할 때마다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제가 능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도님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믿음의 능력을 소유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부 예배가 끝나고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부모님이 췌장암 4기였습니다. 그런데 가서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암세포가 하나도 없이 깨끗이 치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한 순간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납니다. 죽어가는 사람도 하나님이 얼마든지 고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는 지식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 이런 놀라운 역사들은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험난한 길들이 많습니까? 광야를 건너는 것도 힘들고 요단강을 건너는 것도 힘들고 전쟁을 치르는 것도 힘들고 다 힘이 듭니다. 우리 눈에는 힘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대장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 주님과 함께 가면 그 모든 위기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앞으로 밀고 “너 혼자 잘 살아보아라. 어떻게든 건너와 봐. 못 건너오면 난 상관 안 한다.”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늘 우리 옆에서 동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힘든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 내 손을 잡아 주셔서 이 문제를 건너가게 해 주소서. 그래서 승리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의 결론은 결정되어 있습니다. 승리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 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기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포기하지 않는 믿음

 갈렙의 믿음이 위대한 이유는 상황이 바뀌었어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함으로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너무 답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려 하니, 믿음으로 “믿습니다.” 하고는 건너면 바로 가나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10명의 정탐꾼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다 어그러졌습니다. “모두 광야로 돌아가.”라고 하시니, 들어가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축복을 뒤로하고 돌아가야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이때 갈렙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기는 다 틀렸어. 저 10명의 사람들 때문에 망했어. 더 이상 소망은 없어. 이스라엘은 끝이야.”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를 뒤로 돌려보내시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야. 그러니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1년 뒤가 될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회복시키실 거야. 나는 그때를 기다려.”라고 하며 하루하루를 소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소망 가운데 ‘혹시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실지 모른다.’, ‘오늘이 하나님의 때인지 모른다.’라는 기대함을 가지고 나아가다 보니 45년이 흘러갔습니다. “아이고 45년이나 기다렸어요?”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45년이나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45년이라는 숫자는 여호수아나 갈렙에게는 무의미했습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는 소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았기 때문에 지나온 45년의 인생은 갈렙에게는 소망의 인생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하루하루 ‘하나님은 살아계시니 나를 인도하실 것이다.’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모든 문제를 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도 은혜이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또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갈렙은 그의 평생이 즐거웠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이었고,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과 역경이 와도 그것을 견뎌내고 참아내고 이겨갑니다.

믿음이 없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으면 어려움이 올 때 절망하고 쓰러지는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셨을 때 가르치신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너희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인생을 살다가 어려운 문제가 온다 할지라도 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면서 이렇다 저렇다 결론을 내리면 안 됩니다. 그 상황을 만지시고 문제를 해결하시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상황은 다 지나갑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어려운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남아 있습니까? 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천지는 없어지거니와 내 말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안개처럼 사라져 없어질 상황을 의지하지도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사라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 축복의 은혜, 기적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을 받을 때 지식으로 받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 말씀을 읽다가 어느 순간 그 말씀이 내 가슴을 두드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아, 감동받았다.’가 아니라 ‘아, 하나님이 이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구나! 약속의 말씀으로 주시는구나!’ 하고는 그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을 때 그 말씀에 대한 나의 믿음이 역사해서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없는 곳에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저게 누구야? 목수의 아들이잖아?”라고 하며, 너무 잘 아는 사람이라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성경에는 “저희가 믿지 아니함으로 예수님이 그 마을을 떠나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믿는 곳에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설교 말씀을 들을 때도 박 동찬 목사의 이야기로 들어서는 안 됩니다. 감동이 올 때는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록 인간의 말로 전하지만 내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지나가다가 제가 하는 이야기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말도 ‘아멘’으로 받습니다. 믿음이 있어서 ‘아멘’으로 받을 때, 그 말씀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권사님, 잘 될 거예요. 낙심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목사님이 몰라서 그러세요. 지금 상황이 어렵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답답합니다. 주의 종이 그렇다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전하는 말이라 해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나옵니다. 그 당시 엘리 제사장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기도도 안 하고 영감이 떨어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환상이나 이상을 꿈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한나가 자식을 달라고 엎드려 기도하는 것을 보고 기도하는 것인지 술 취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왜 술에 취해 그러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나는 “술을 먹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마음이 답답해서 기도하는 중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척이나 겸연쩍었던 엘리는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셨으면 좋겠다.”라고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그 말을 듣고 “뭐 그렇게 성의 없게 하세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믿음으로 취했습니다. ‘아멘’이라고 하고 한나의 얼굴에 근심이 사라졌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고 나서 한나는 사무엘을 잉태하고 출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상황 판단을 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면 그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이 역사합니다. 이사야서 55장 1절에서 1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사 55:10-1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부터 내립니다. 내려서 어떻게 합니까?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합니다.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줍니다. 음식을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줍니다. 비와 눈이 내리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양식을 얻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이와 같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 땅을 적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갈급한 심령에 단비가 되어 우리의 심령을 적시니 우리의 심령에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않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룬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심령 가운데 놀라운 열매들이 맺히게 됩니다.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나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며 설교 말씀을 듣는 것이나 매우 복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계시고 놀라운 기적을 이룹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아야 합니다. 포기하거나 뒤로 돌아서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의지해서 승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 도전하는 믿음

 갈렙의 믿음이 대단한 것은 갈렙은 믿음을 믿음으로 끝내 버리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갔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서 6장 10절에 

     “내가 오늘 85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은 언제입니까? 40세 때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전히 강건해 내 힘이 그때나 같아서 싸움이나 출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      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했습니다.

    “45년 동안 기다렸지만, 나는 여전히 기운이 빠지지 않고 힘이 똑같습니다.”

라고 한 것입니다. 정말 똑같을까요? 어떻게 40세와 85세가 같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이 똑같다고 이야기하며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힘이 강건하다고 해서 아낙자손을 이길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청춘의 힘을 가졌어도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갈렙은 40세 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것처럼 85세가 된 지금도 함께 하시니, 비록 힘이 빠지고 연약해졌다 할지라도 그때와 지금이 다를 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어짜피 이기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갈렙과 같은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못해요. 젊었을 때는 했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걸요.”라고 하는 것은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님이 아닌 내 힘을 의지해 살았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나는 어렸을 때도 청년의 시절에도 믿음으로 살았고 지금도 믿음으로 삽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갈렙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나는 내 힘을 의지해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 믿음으로 삽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의학계의 발표를 보았더니 사람이 나이가 들어 죽는 것은 근육이 부족해서라고 합니다. 그래서 연세가 드시면 근육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근육에 물도 저장하고 에너지도 저장하게 됩니다. 뼈도 곧게 세우고 활동도 하고 걷습니다. 그러나 근육이 빠지면 잘 걷지도 못하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을수록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은 근육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영적으로 신앙생활에도 적용을 해 보았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근육은 무엇일까요? 영적으로 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나이가 어리거나 나이가 많거나 믿음으로 도전하는 일을 멈추면 그때부터 죽기 시작합니다. 내 나이는 하나님이 보실 때는 나이도 아닙니다. 영원이라는 세월에 비쳐보면 100년이라고 하는 것은 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나이가 얼마’라는 나의 생각에 매이지 말고 믿음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기적의 역사를 만든 성경의 인물들은 평균 나이가 80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이 75세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기 위해 바로 앞에 섰을 때가 80세였습니다.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내가 저 거인족속들을 쳐서 멸하고 승리하겠습니다.”라고 외친 나이는 85세였습니다. 이쯤 되면 성경의 논리로는 인생은 몇 살부터입니까? 80부터입니다. 이제 100세 시대가 오니, UN에서는 ‘60까지는 청년’이라는 발표를 했습니다. 100년으로 볼 때는 60세는 청년입니다. 60부터 청·장년기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나 갈렙은 청·장년기에 활동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내 숫자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이 역사하기에 믿음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믿음으로 달려가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나 역경도 이겨 나갑니다.
 17살의 한 소년이 암벽등반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암벽등반을 하다가 떨어져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17살 청춘인데 얼마나 고민이 되었겠습니까? 그는 ‘절망하고 포기하는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도전하며 나아갈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다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의족을 달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의족이 딱딱해서 너무 아팠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맞는 의족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일반 의족보다 훨씬 더 편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신고 다시 암벽 등반에 도전했습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좋은 자기 몸처럼 움직이는 다리를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면서 물리학과 기계공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세계 최초로 로봇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신경신호를 인식하고 사람의 다리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원리를 이용해 의족을 만든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보았던 6백만 불의 사나이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상당한 군인들이 다시 뛰게 만들었습니다. 테러로 다리를 잃은 댄서로 하여금 다시 춤을 추게 만들었습니다. 사고 후 20년이 지났습니다. 인생의 큰 역경은 청년을 미국의 MIT대 교수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바로 사이보그의 아버지라 불리는 휴허입니다. 17살에 불행한 일을 당했지만, 좌절하고 절망해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다리를 달 수 있을까? 하는 자기의 꿈으로 말미암아 로봇 다리를 만드는 최초의 MIT교수 사이보그의 아버지라 불리는 휴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답이 없는 문제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보고 주저앉으면 그 문제는 풀리지 않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2017년이 두렵습니까? 안 풀리는 문제로 마음에 근심이 가득합니까?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번호
날짜
설교자
제목
성경본문
영상
557
2017.10.22
박동찬 목사
 디모데전서 ...
 
556
2017.10.17
박동찬 목사
 느헤미야 8 ...
 
555
2017.10.10
유경동 목사
 요한복음 14...
 
554
2017.10.1
박동찬 목사
 이사야 43 :...
 
553
2017.9.24
깜 폰 목사
 요한복음 20...
 
552
2017.9.17
박동찬 목사
 에스더 6 : ...
 
551
2017.9.10
박동찬 목사
 사사기 7 : ...
 
550
2017.9.3
박동찬 목사
 창세기 15 :...
 
549
2017.8.27
박동찬 목사
 요한복음 8 ...
 
548
2017.8.22
박용관 목사
 요한일서 3 ...
 
547
2017.8.13
박동찬 목사
 역대하 34 :...
 
546
2017.8.9
박동찬 목사
 로마서 8 : ...
 
545
2017.7.30
박동찬 목사
 창세기 37 :...
 
544
2017.7.23
박동찬 목사
 사도행전 16...
 
543
2017.7.16
조동욱 목사
 민수기 14 :...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운영자에게 메일보내기

SSL certific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