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섬기는 교회 (렘 33:3)
> 인터넷방송 > 예배 > 주일예배
 
 
제목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
설교날짜 2017.4.2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이사야 55 : 6 - 11
 

 

  

하나님의 마음
-사순절 5번째 주일-
1. 아버지의 마음
 2.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


말씀 사 55:6-11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면 그 사람의 말에 대해 오해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저 사람이 나를 시기해서 저래.’ 하는 마음에 오히려 관계가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성경말씀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제대로 풀어서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성경을 보면 성경 말씀 속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 무슨 의도로 주신 말씀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성경을 보면 때로 무섭고, 큰 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목회를 갓 시작한 전도사가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교회의 한 성도가 서원한 것이 있는데, 몸이 아파서 그 서원한 것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목회자로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렵고 힘들더라도 서원한 것이니 반드시 지켜야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몸을 추스르고 치료를 잘 받은 다음에 부족한 부분은 목회자인 제가 채워 가겠다고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후자라고 대답했습니다. 일단 몸을 잘 추스르고, 부족한 부분은 목회자가 채워 주고, 나중에 성도가 못 다한 것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그 분이 보다 분명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는 기회가 될 것이었습니다. 저의 대답을 들은 전도사는 매우 기뻐하면서 고민이 해결되어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렇다고 제 말을 오해하고 서원은 안 지켜도 된다고 단순하게 흑백논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어떻게 하실까?’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많은 말씀과 행동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을 보며 사람들이 “왜 안식일을 어깁니까?”, “안식일에 왜 병자를 고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시며 사람의 부족함을 생각하시고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할 때 “몸이 부서지고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서원을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잘 돌본 다음에 그것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 실수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왜곡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인 것처럼 생각이 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고 그래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되고를 결정합니다. 그럴 때는 “당신이 하나님입니까?”라고 질문하고 싶기도 합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생각이 곧 하나님의 생각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한 성도가 매우 깨끗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어느 집회에서 “너희들은 다 지옥에 간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틀린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지만, 꼭 맞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죽어 보아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겸손하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느 한 순간에 구원의 확신이 생겼다고 구원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내가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습니다.”라고 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의 완성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너희들은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보니 미달이다. 그래서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라고 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받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신앙생활을 하고 말씀을 공부할 때 보다 분명하게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실수하고 정죄하고 두려움과 공포심을 심어줄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일까요?

첫째, 아버지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자그마한 컵 하나가 우리의 지식의 한계라고 할 때, 그 컵에 태평양의 물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경죄에 해당합니다. 하나님께 아무리 설명을 해도 우리는 알아들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 분은 어떤 철학으로도 세상의 어떤 학문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분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던져주는 단어가 ‘아버지’라는 단어입니다.
 아무리 신학적으로 설명을 해도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이해할 수 없지만,  “내가 너희의 아버지가 된다.”는 말을 들으면 쉽고도 가장 가깝게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랑을 훨씬 초월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비슷한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이해하면, 말씀의 의미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만나게 되는 문제도 쉽게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가끔 “나는 아버지가 싫어요.”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자기의 위치를 잘 지키지 못하면, 자녀들이 하나님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갖습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가장이 부모로서의 역할과 신앙인으로서의 역학을 잘 감당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마음은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실수하면 징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내 자녀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아도 항상 기다리는 것이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또한 그러합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 55:7

 이사야서 55장 7절에는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잘못했으면 교도소에 가야 한다고 하며 정죄합니다. 그리고 누구든 법 앞에 공평해야 하고 특별한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실수를 하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일을 버리고 돌아오면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시겠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서 나갔습니다. 이것은 동네 사람들에게 돌을 맞아 죽을 일이었습니다. 유산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받아야 하는 것인데,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몫을 달라고 해 집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동네 사람들이 불효한 자라 생각하고 돌을 던져 죽일지라도 그들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아버지가 먼저 가서 아들을 기다리지 않으면 아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돌을 맞아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와 아들을 기다렸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즈음에는 종말론 이야기를 매우 많이 합니다. 저에게도 SNS로 종말론에 관련된 내용이 오는데 “이 나라는 망한다.”와 같은 내용입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신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세상에 휩쓸려 나라가 망한다고 하며 큰 일이 날 것처럼 이야기하지? 자신들이 마치 성경에 나오는 예레미야나 세례 요한쯤 되는 줄 알고 이런 것들을 올리는데, 우리 성도님들이 흔들려서는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심판하신다.”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외국에서 선지자들이나 예언자들이 왔다고 하면서 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데 빠져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적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요즈음에 예언자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생각을 전합니다. 이것은 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왜 망하게 하실까요? 어떤 사람은 이 나라가 회개하고 돌아서지 않으면 북한에 종속시킨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이가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어느 나라가 악합니까? 망하면 북한이 망해야 합니다. 남한을 북한에 종속시킨다고 하실 만큼 하나님이 생각이 없으신 분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되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이 부족하다고 해서 망하게 한 다음 갖다 버릴까요? 그래서 물어야 하는 첫 번째 질문이 “천지를 지으신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여러 사람이 떠드는 것처럼 엉망진창이 되게 하셔서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도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은 촛불이세요? 태극기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촛불이면 어떻게 할 것이고 태극기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교회는,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람은, 복음은 모든 사람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태극기를 안 들면 내가 잘못된 사람 같고, 젊은 층들은 촛불을 들지 않으면 구닥다리 목사처럼 여깁니다.
 복음은 어느 편에 치중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도 한국 국민이고 저 사람도 한국 국민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품어지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기독교라는 것, 복음이라는 것은 경제와 정치 위에 서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 편을 들고 한쪽을 잘라 버리는 것은 절대 복음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것이 복음이라면 하나님의 복음은 복음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자, 어려운 자들도 구원해 내는 것이 복음입니다. 또 풍요하게 사는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 앞에 차별 대우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는 성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악해서일까요? 물론 악한 것도 망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그 땅 가운데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회라 할지라도 의인 10사람이 있다면 그 의인을 악인들과 함께 망하도록 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이 이것을 증거 합니다.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창 18:23-33

 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유는 오늘도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골방에서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들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걸 안다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나라가 망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북한에 편입을 시킬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더 기가 막힐 일은 많은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거기에 휩쓸려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헛소리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가 되고 나니 자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어떻습니까? 때로는 속이 상합니다. 혼내주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고 합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히 12:8

 내 자식이니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권면하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징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망하도록 내버려 두는 부모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반면에 아이들이 아프거나 힘들 때 부모의 마음은 같이 아픕니다. 대신 아프고 힘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5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오해해서 하나님을 무자비한 심판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원로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새벽에 엎드려서 기도를 하다 너무 답답해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이러십니까? 앞으로 어떻게 하시려고 혼란 가운데로 몰아넣으십니까?”라고 하며 울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랑하는 종아, 염려하지 마라. 내가 이 나라를 안 버린다. 이 나라도 내 나라다,”라고 하시며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 순간 두려움과 불안은 평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매우 감동이 되어 “목사님, 청년 시절부터 성장하면서, 늘 국가적인 위기가 올 때는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서 답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위기를 넘어 왔습니다. 목사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참 감사합니다. 지금 이렇게 흔들리는 현실을 보면서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는 많은 사람들 앞에 이런 말씀이 필요합니다. 귀한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요즈음 우리들의 문제는 들어야할 목소리는 듣지 않고 듣지 말아야할 인터넷상의 많은 말과 세상 사람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흔들리고 불안해한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13장에서 그러한 모습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보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입니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했습니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고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입니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는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입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아주 정확하게 보고를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하며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다는 유업을 얻지 못하고 40년을 광야에서 떠돌다 죽게 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또한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적인 상황이 안 좋아졌다고 하나님이 더 이상 우리의 아버지이시기를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경제적인 상황이 조금만 나빠지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을 포기하실까요? 아닙니다. 사회적 여건이나 상황이 바뀐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을 포기하신다는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생명까지 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은 육신의 아버지가 아버지인 것보다 더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이 펼쳐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끝까지 신뢰하고 더욱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긍휼이 여기시는 마음

 ‘긍휼’이라는 단어는 참 좋은 말입니다. 이사야서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가 오실 것인데, 그 분이 어떤 분인지를 소개하면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라고 합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상한 갈대가 있으면 꺾습니다. 꽃꽂이 하는 사람이 가위로 꽃을 자르면서 자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까? 가지를 자르면서 ‘아이고, 마음이 아프네.’ 풀을 뜯으면서도 ‘아이고, 마음이 아프네.’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잘라냅니다. 그런데 메시아로 오시는 분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상한 갈대조차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예전,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에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으면서 참 가슴이 설렜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시 구절을 읽다보면 온 몸이 찌릿찌릿해졌습니다. 바람에 잎 새가 흔들리는 것을 볼 때도 괴로웠다는 시 구절은 여리고 섬세한 사람의 감정을 참 잘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가 명시로, 서정시의 대표적인 작품이 된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예민하고 섬세하고 여린 인간의 감성에 비해 하나님은 강하고 강직하시고 타협이 없으시고 절대 흔들리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에 대해서 철저하셔서 규칙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돌아가게 만드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우리의 생각이 틀렸다고 합니다. 오실 메시아인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우리 모든 국민을 김밥을 말듯이 통으로 싸서 망하게 하시고, 종말에는 지옥으로 집어던지실까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면 그 이야기가 100% 틀린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흔들려서 소란스러워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그런 경고의 소리에 대해 전혀 무관심해서도 안 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잘못하는 것 같으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수치를 가지고 그 수치를 넘어서지 못할 때는 가차 없이 망하게 하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기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식민지로 외세의 지배를 받으니, 메시아가 오시면 칼과 창으로 강력하게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그런 하나님, 그런 메시아를 예언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죽어 마땅한 죄인들까지도 감싸 안으시고 우리가 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대신지시며 “내가 대신 죽어줄게.”라고 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자녀들을 살리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고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오셔서 실제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모습이 긍휼의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긍휼의 대상이 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당신에게 나오는 모든 사람은 부자든 가난하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피곤하심에도 불구하고 밤이 늦도록 온 사람들에게 “내일 와라.”라고 하시며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고, 밤사이 겪어야할 고통은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이 늦더라도 “내일 다시 오라.”고 하지 않으시고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고치시고 치료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만 하더라도 피곤하면 “내일 오세요.”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알고 나니 예수님 앞에 긍휼히 여김을 받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을 보면 불쌍하지 않습니까?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 쳐진 어깨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자녀들을 보면 불쌍하지 않습니까? 부자는 부자라서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서 불쌍합니다. 아무 염려와 근심과 걱정 없이 태어난 갓 난 아기를 보아도 불쌍합니다. 이 아이가 성장하면서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을까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불쌍하게 생각됩니다. 세상사는 모든 사람이 다 불쌍합니다.
 하나님의 눈에 긍휼히 여김을 받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재산을 가졌어도 천년만년 살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드니 등이 굽고 지팡이를 의지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를 시키지 못합니다. 불쌍합니다. 우리는 다 그런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긍휼이 여기시며, 들에 핀 백합화도 먹이시고 입히시고, 공중을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섬세하게 돌보시는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볏짚을 묶듯 통으로 나라를 묶어 망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지난 주간에 인도네시아에서 있었던 집회에 다녀왔는데, 교회가 대단히 성장한 것을 보고 왔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그 곳까지 마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여권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었더니 이미그래이션(immigration)도 하지 않고 바로 짐 찾는 곳에 가서 짐을 찾아 나갔습니다. 또 다니는 내내 엄청난 사람이 호위를 했습니다. 자카르타는 20분, 30분이면 갈 거리도 2시간 3시간이 걸리는 곳입니다. 앞뒤로 경찰 싸이카가 왱왱 거리면서 길을 비키도록 하고 가는데 좋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시간도 많은데 이게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려서도 5명 10명이 에워싸고 가니 주목받지 않을,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오히려 타겟이 되었습니다. 집회가 모두 끝나고 오면서 함께 한 팀과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들 집회 가운데 받은 은혜가 컸습니다. 그래서 참 감사했고, 성공적으로 집회를 잘 마친 것에 모두 들떠 있었습니다. 게다가 최상의 대우를 받은 것에 흥분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할 때쯤 되자, 하나님의 책망이 시작되었습니다.

"너희 눈에는 너희가 받은 좋은 대우만 보이고 길가에 앉아있는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지?"

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제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대단하듯이 호위를 해 주니, 그렇게 생각되었고 그런 대접을 해 주는 사람들만 보였습니다. 복음이 필요하고 예수님이 필요한 수많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울며 “하나님, 아직 제가 많이 모자랍니다. 용서해 주세요.”라고 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함께 간 팀원들이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비행기에서 내려 아픈 사람처럼 있으니 “목사님,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럴 일이 있어요.”라고 하고는 더 이상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보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느끼는 마음을 느끼고 싶습니다. 제 마음에 그 마음을 담아 주세요.”

 세상에는 복“너의 눈에는 너희가 받은 좋은 대우만 보이고, 길가에 앉아 있는,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들   어 오지 않았지?”음이 필요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 곳에 가 있는데, 우리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입니까? 그 사랑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희망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실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힘을 내야 합니다.”라는 것이 우리 사회 가운데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거짓으로 전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마음을 알면 그렇게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호세아 6장 3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호 6:3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때,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며, 세상에 꿈과 희망을 주는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번호
날짜
설교자
제목
성경본문
영상
572
2018.2.11
박동찬 목사
 창세기 12 :...
 
571
2018.2.4
박동찬 목사
 창세기 8 : ...
 
570
2018.1.28
박동찬 목사
 히브리서 4 ...
 
569
2018.1.21
박동찬 목사
 마가복음 11...
 
568
2018.1.14
박동찬 목사
 잠언 3 : 1 ...
 
567
2018.1.7
박동찬 목사
 출애굽기 14...
 
566
2017.12.31
박동찬 목사
 빌립보서 3 ...
 
565
2017.12.17
박동찬 목사
 마태복음 2 ...
 
564
2017.12.10
박동찬 목사
 요한복음 1 ...
 
563
2017.12.3
이승우 목사
 에베소서 1 ...
 
562
2017.11.26
박동찬 목사
 열왕기하 2 ...
 
561
2017.11.19
박동찬 목사
 사도행전 9 ...
 
560
2017.11.12
박동찬 목사
 마태복음 8 ...
 
559
2017.11.5
박동찬 목사
 골로새서 3 ...
 
558
2017.10.29
박동찬 목사
 빌립보서 3 ...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운영자에게 메일보내기

SSL certific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