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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을 감동시킨 믿음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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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감동시킨 믿음의 사람
설교날짜 2017.7.2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마태복음 8 : 5 - 13
 




예수님을 감동시킨 믿음의 사람
1. 예수님을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
 2.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3. 예수님을 깊이 신뢰해야 한다.


말씀 마 8:5-13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인생은 한번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산다고 살아도 잘못 살게 되면 나중에 가서 후회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갈 때 ‘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다 살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 것으로만 만족한다면 그 인생도 허전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후회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이 된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리고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예수님이 감동하시는 그런 삶을 살았다고 하면 그것보다 더 인생을 잘 사는 길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중에 예수님을 감동시킨 내용의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하나가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딸은 귀신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가서 고쳐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라고 하면 화를 내고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라고 하며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은 예수님을 감동시켰고 백부장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에 성지순례를 가보면 이스라엘의 제일 꼭대기에 헐몬산이 있고, 헐몬산에서부터 요단강까지 물줄기가 내려와서 갈릴리 호수를 거치게 됩니다. 갈릴리 호수를 거쳐서 요단강물은 제일 낮은 곳인, 해발 마이너스 400m인 사해에 이릅니다. 더 낮은 곳이 있어야 물이 흘러가는데 사해는 가장 낮은 곳이어서 물이 빠져 나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여 있습니다. 게다가 염도가 바다보다 8.6배나 높고 39도에 이르는 수온은 생물이 살아갈 수 없게 합니다. 사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갈릴리는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데 눈물 같은 모양의 갈릴리 꼭대기에는 가버나움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은 예수님의 도시라고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늘 가버나움에서 활동을 하셨고, 호숫가였기 때문에 거기에서 바로 나오면 배를 타고 여러 곳으로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버나움 근처에는 뒷동산과 같은 산이 있습니다. 험하지는 않지만 구릉丘陵입니다. 산상수훈을 전하신 것도 바로 그 자리입니다. 그 산에서 기도도 하시다 내려오시고, 사람들이 모이면 그 산에서 말씀을 전하시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갈릴리 호수에 배를 띄워서 그 배를 타시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씀을 전하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이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지형입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에 들어가 보면 말씀을 가르치는 회당이 있고 베드로의 장모의 집으로 추정되는 집도 유적으로 남아있습니다. 가버나움은 유대인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나라로, 로마의 군대가 주둔하려면 가이사랴나 디베랴와 같은 큰 도시가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로마의 백부장은 100명의 부하를 거느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장교가 로마인들이 살지 않는 가버나움에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래서 “하인이 아픈데 도와주실 수 있으면 좀 도와주세요.”라고 요청했습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8장 5절부터 13절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매우 믿음이 좋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래. 네가 도움을 요청하니 너희 집에 가서 도와줄게.”라고 하시자 그는 “오지 마시고 말씀만 하세요. 그러면 나을 것입니다. 번거롭게 옆 동네도 아니고, 제가 온 곳이 멀리 떨어져 있는 로마 군인들이 주둔한 곳입니다. 거기까지 어떻게 가시려고 하세요? 그저 말씀만 하시면 나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보통 믿음을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오셔야 됩니다.”라고 하면서 “바쁘시더라도 우리 집에 오셔서 세게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안수하실 때는 머리에다 손도 얹고 머리도 꾹꾹 누르시면서 오래 기도해 주세요. 소리도 좀 질러가면서 해 주시면 얼마나 감사할까요?”라는 것이 아마 우리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기도할 때 좀 성의가 없어 보이면 ‘무슨 기도를 저렇게 하시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셔도 낳을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말씀만 해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기도에는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국에서 기도할 때 미국에서 역사가 일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저곳에 다니면서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디가 되었든 있는 그 곳에서 기도할 때 우리가 기도하는 그 자리에서, 또 우리 기도의 대상이 되는 그 나라에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백부장의 이런 믿음을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참 감사해야 할 것은 예배의 자리에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라고 서로 인사를 하며 고백하도록 하는 이유는 진실로 예배의 자리에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하겠다.”라고 하신 말씀을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백부장과 같은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고 요청하게 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자리는 종교의식을 위해 오는 자리가 아닙니다. 예배 가운데 우리 가정을 매고 있는 죄와 저주의 사슬들이 끊어지며,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무능한 자에게 능력이 주어지는 자리가 예배의 자리고 주님을 만나는 자리가 예배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에게 감동을 주는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대체 백부장은 어떻게 했기에 예수님의 마음에 감동을 드렸을까요? 성경에서는 백부장의 말을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놀랍게 여기셔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하시며 감동하시고 감탄하셨습니다. 저는 이러한 백부장이 참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예수님을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백부장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다 보면 백부장이 예수님을 참 존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자기의 상관처럼 생각합니다.
 당시 로마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 아래에서 일본의 장교가 조선인 선생을 찾아왔다면 하대를 했을 것입니다. 부하를 시켜서 “그 예수라는 사람 좀 불러와 봐라.”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백부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친히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어려워하며 쩔쩔 매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마 8:5

 백부장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명령한 것이 아니라 간구했습니다. 간구는 간청하고 구한다는 것입니다. 쩔쩔 매면서 부탁을 한 것입니다.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마 8:6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지배당하는 나라의 선생일 뿐인 예수님께 정중하게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먼저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사람의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 태도 속에 사람의 속마음이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존경하면, 그 사람을 향한 태도가 달라집니다. 전화를 받을 때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쪽에서 나를 볼 수 없더라도 벌떡 일어납니다. 어떤 분은 전화를 끊을 때 저쪽에서 보지도 않는데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비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 하나를 보아도 진심으로 존경하고 존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존중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나에게 충성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막 대하지는 못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떡을 하나 주더라도 더 주게 되고, 무슨 일을 할 때에도 그 사람을 찾게 됩니다. 이처럼 서로 존중히 여기는 관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청년들을 가르칠 때에도 세상에서 정말 잘 되고 싶으면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사람 앞에 설 때 그 사람의 태도가 미래를 결정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한때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 “너희 꿈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아이돌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스타의 집 앞에 더우나 추우나 장사진을 이루고 모여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 많은 사람이 “너무 극성스러운 것 아냐?”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극성스럽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극성스럽게 하느냐?”라고 물었더니 좋아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밥을 안 먹어도 그 사람 집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극성스러운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진짜 좋아하면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에게 “너희들 극성떨지 마라.”라고 하기 이전에 ‘아, 정말 누군가를 좋아하면 저런 반응이 나타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내가 예수님을 정말 세상의 그 어떤 것이나 사람보다도 좋아한다고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는 하는데 ‘그 마음이 진짜 내 속마음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좋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진짜 좋으십니까? 예수님이 좋은데 아무렇지도 않게 예수님과 상관없는 사람처럼 살아갑니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진짜 예수님이 좋다면 나에게 나타나는 반응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즐거워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즐거워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도 즐겁고,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좋아야 합니다.
 군에 있을 때 사랑하는 여자 친구로부터 편지가 오면 그것을 한번 읽고 ‘아, 그렇구나!’ 하고 쓰레기통에 구겨서 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고이 접어서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닙니다. 훈련을 받을 때도 넣어 가지고 다니며 힘들 때는 그것을 꺼내서 읽습니다. 주야로 그 편지를 묵상하는 것입니다. “잘 있느냐?”라고 물으면 ‘잘 있느냐고 왜 물었을까?’부터 해서 깊이 빠져 묵상을 하고 또 묵상을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편지를 보내면 ‘뭘 이렇게 길게 썼어?’라고 하며 대충 읽고 버립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짜 사랑한다면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입니까? 저는 성경이 무엇이라고 신학적으로 정의를 내리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귀에 익숙하듯이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 주시는 러브레터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면 ‘이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할까?’라는 것부터 해서 우리의 모든 생각이 그 사람에게 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진짜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을 받기에 마땅하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것이 마땅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생명까지도 내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사람이 인간관계를 맺을 때 가장 마음 아플 때가 언제입니까? 내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해서 그 사람이 해 달라는 것을 다 해주고 생명까지도 주었는데, 그 사람은 나에게 무관심하게 살아갈 때입니다. 이런 일을 당해 보았습니까? 부모는 자식에게 이런 일을 당합니다. 내 생명을 줄 것처럼 키워놓아도 점점 성장하면서 “이제는 신경 좀 끊으세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합니다. 특히 남자 아이들이 그렇습니다. 딸들은 좀 덜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신경을 끊습니까? 그렇게 사랑을 하고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하면 전화도 끊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상처를 받습니다. 호렙산에서 눈물을 흘리며 우는 엄마들은 다 자식들 때문입니다. ‘이 놈의 자식.’ 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모의 속을 상하게 하는 자녀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주시고 어떻게 해서든지 진심으로 우리를 붙잡아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신경 끊으세요. 그냥 주일에 올게요. 자꾸 내 집에 들어오려고 하지 마시고 찾아오려고 하지 마세요. 주일에 올 테니 하나님은 교회에 계세요. 일주일 동안 자꾸 따라다니지 마시고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의무감에 찾아와 “하나님, 인사하러 왔어요. 약속은 지켜야죠.”라고 합니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존귀하게 여긴다면 그 분과 동행하는 것이 즐거워야 합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는 같이 있어도 또 같이 있고 싶습니다. 잠시 돌아서도 또 같이 있고 싶은 것이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이라는 말을 남발합니다. 그런데 진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을 돌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생명까지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는 영입니다. 서로 하나 되어서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아는 마귀와 사탄은 우리 가운데 시기하는 마음과 질투하는 마음과 분열의 마음을 주어서 서로 싸우게 하고 경쟁하게 해 무너지게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전략에 넘어져서는 안 됩니다. 성령을 힘입어서 서로 돕고 섬기는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갈 때 주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붙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 최후의 만찬을 드시며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그래서 “주여, 그러시지 마세요. 제자가 스승을 섬기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그것이 옳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섬김의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면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고 감동을 주는 비결이 됩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부하를 위해 간청하려고 예수님 앞에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왔습니다. 부하를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백부장은 나온 것입니다. 자기 하인이 어찌되든지 상관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더 그랬을 것입니다. 그저 안 되었다고 동정만 해 주면 끝날 문제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예수님을 찾아와 간청했습니다.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을 위해 간청하는 모습은 스승 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어제 저희 교회에서 다문화 가정 5쌍이 합동결혼식을 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결혼식 주례를 많이 했지만, 어제는 5쌍이 제 앞에 서 있으니 어디다 주례 말씀을 해야 할 지 당황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감사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 분들은 고향을 떠나 한국 땅에 이주해 살며, 사는 것이 바쁘니 결혼식과 같은 것은 멀리 하고 ‘일단은 살고 보자.’ 하는 생각으로 적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낯선 땅에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었고 눈물 나는 일을 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착해 살다 보니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하나씩 둘씩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결혼사진도 없었습니다. 사진이라도 걸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에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결혼식을 준비했고 필요한 비용도 감당했습니다. 주례를 하면서 “이 분들이 이 땅 가운데서 예수님을 잘 믿고 구원 받게 해 주세요. 좋은 일만 있게 하시고 복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며 축복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런 일을 한다고 하니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드레스 디자이너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도록 해 주셨고, 사진을 찍는 분은 사진을 찍어 주셨습니다. 음식 장만을 비롯해 많은 분이 도움을 주시니, 조금씩 도와주신 것이 큰 잔치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교회에서 이런 일을 감당하는 것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요즈음에 젊은이들은 페이스 북이라는 것을 많이 합니다. 핸드폰을 이용해 자기의 소식을 올리기도 하며, 페이스 북에서 친구가 된 사람을 페친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페이스 북에 2015년 한 여대생이 글을 올렸습니다. 미국의 뉴햄프셔에 사는 캐시라고 하는 젊은 여대생으로 한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던킨 도너츠에 자주 갑니다. 이 여대생도 쉬는 시간에 무엇을 사려고 던킨 도너츠에 가니, 입구에 한 노숙자가 자기 앞에 떨어진 동전을 주우며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노숙자가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런가 보다!’ 하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노숙자가 따라 들어왔습니다. 그는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동전을 세어 보았지만, 1달라가 안 되었습니다. 그 돈으로는 무엇을 사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잠깐 앉으시라고 하면서 커피와 도넛을 사서 제공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동안 만났던 어떤 사람보다도 진솔했습니다. 그는 단지 노숙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자기를 괴롭혔던 이야기부터 해서 어머니가 자기 어렸을 때 암으로 돌아가신 이야기, 아버지는 태어나면서부터 얼굴을 본 적도 없다는 이야기, 소원은 엄마가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 등을 두런두런 했습니다. 그러다 그녀가 학교에 가야 될 시간이 되어 가봐야 되겠다고 했더니, 잠깐만 앉으라고 하고는 영수증에 끄적거리며 글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며 고마웠다고 하며 나갔습니다. 나간 다음에 영수증을 펴 보고는, 글을 잘 못 써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준 쪽지의 사진을 찍어 페이스 북에 올렸습니다. 저는 그것을 확대해서 영문으로 무엇이라 적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난 오늘 자살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당신 덕분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사랑과 관심이 한 생명을 살렸고, 또 세상을 살아갈 힘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학생이 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된다는 마음의 자세를 잊어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쳐다봅니다. ‘나도 저 사람처럼 살아야겠다.’고 정해 놓고 그 사람이 나의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쳐다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못난 사람, 지금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눈길이 머문다는 것을 크리스천이라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길이 가는 곳에 내 눈길이 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그것을 내가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하기 원하시는 그 일을 내가 하기 원합니다.”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마음이 백부장의 마음이었습니다. 자기 하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푼 작은 마음의 사랑이 한 생명을 살리고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는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 나보다 멋있는 사람, 나보다 성공한 사람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을 보아야 부러울 뿐입니다. 우리가 보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곳입니다. 그런 곳을 볼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을 깊이 신뢰해야 한다

 백부장에게는 예수님을 깊이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믿음이 있습니다. 다른 종류의 믿음일 뿐입니다. “저는 믿음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사 먹을 때 그 안에 독이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먹습니까? 맛있게 먹지 않습니까?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지 않습니다. 다 믿음이 있는데 세상을 믿느냐 하나님을 믿느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10%, 어떤 사람은 20%, 어떤 사람은 50%, 어떤 사람은 90%, 어떤 사람은 100%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금이 몇 %일 때 순금이라고 할까요? 순금이라고 해 놓고 100%라고 적혀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99.9%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은 99.9%가 아니라 100%입니다. 100%의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정금 같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의심 없는 믿음, 예수님을 위해 생명을 내어줄 수 있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99%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돌아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이 예수님을 향해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100%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백부장은 이렇게 믿었고 그것을 보신 예수님은 놀라고 감동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전자 계산학과에서 컴퓨터를 전공했습니다. 그래서 4년 내내 컴퓨터만 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입력이 정확하지 않으면 출력이 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철저하게 검증을 해서 입력해야 정확히 출력이 되는 것입니다. 점 하나만 틀려도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의 몸에 배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할 때도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논리적으로 비약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되어 확증되어야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늘 무조건 믿으라는 설교를 합니다. 이런 저의 설교를 듣고 “말도 안 되게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 보기에는 안 그렇게 보이는데 보는 것과 다르게 무식해.”라고 평가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가 논리를 무시하고 설교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달라고 하소연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검증했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검증된 것이기 때문에 자신 있게 믿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100%의, 정금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나타난다는 것이 검증이 된 것입니다.
 저는 그 동안 수도 없이 응답받은 케이스를 보고 들었고, 그것들을 자료로 모아두었습니다. 전자 계산학과에서 4년 내내 컴퓨터만 하며 체득하게 된 기질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분에게는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응답이 임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분석해 보니, 대체적으로 순수하게 믿는 분이 응답을 받았다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고 따지고 분석하는 분은 제 통계표에 의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 받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분은 “나는 여태까지 기도했는데, 응답이 하나도 없다.”고 하며 자신의 경험을 근거해서 “기도해도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 분은 평생 가야 은혜도 못 받고 응답도 못 받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집니다. 그러나 그런 자기의 경험이 아니라 ‘오늘 저 말씀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말씀을 붙잡는 분에게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믿으라고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증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이 우리의 키를 한자라도 더 크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있습니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지식과 경험입니다. 그런데 나의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우리가 애써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께 맡기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맡겨보라는 것입니다. “맡기면 어떻게 되나요? 나중에 돈을 내야 하나요?”라고 염려하고 근심할 필요 없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하면 “아멘.”이라고 하고 와서 “예수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왔습니다. 다 맡깁니다.”라고 하고 나면 끝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하셨는데, “내려놓기 싫습니다.”라고 하고 다 짊어지고 가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맡기라고 하셨으면 맡기면 됩니다. 사업장도 자녀도 맡겨야 합니다. 사업장도 내 것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자녀도 내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건강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의 선하심으로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실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나의 인도자가 되시고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삶과 무거운 모든 짐 그리고 나의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맡깁니다.”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우리의 삶 속에서 기적을 만듭니다.
 인생을 살면서 후회하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가치 있고 보람 있게 사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 감동을 주고 하나님께 감동을 주는 인생이라고 하면 그 인생은 승리하는 인생이고 성공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며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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