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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설교날짜 2017.11.19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사도행전 9 : 23 - 31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1.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행하실 때 사람을 택하신다.
 2.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신다.
 3. 하나님은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반드시 이루신다.


     ■ 말씀 행 9:23-31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일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세상을 살아 보면 쉬운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들 염려하고 불안해하며 삽니다. 우리가 세상일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이유는 결과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잘될까? 혹시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혹시라도 이 일 때문에 가정이 어려움을 당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등의 염려를 합니다. 불확실성이 우리의 염려거리가 되어 담대하기보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고 세상일을 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나의 잘못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돌이키게 하시고 그 모든 일을 통해 영광을 거두시기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나의 뒤에 계시다는 든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그래서 미래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덮어주시고,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때 담대할 수 있습니다.
 축구경기를 볼 때, 특별히 국제 대회 같은 경우에는 이겼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봅니다. 혹시 상대방이 우리 골문을 뒤흔드는 때가 되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염려합니다. 경기가 진행되는 90분 내내 손에 땀을 쥡니다. 그러나 재방송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1대 0, 2대 0으로 지고 있다고 해도 역전이 되어 3대 0으로 이긴다는 결과를 안다면, 상대방이 한 골을 넣을 때마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TV를 시청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결과를 아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더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일은 항상 놀라운데, 그런 놀라운 일을 행하실 때 독단적으로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한 동네에 사는, 그저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그를 통해 믿음의 역사가 어떤 것인지 펼쳐 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서는 출애굽의 역사를 펼쳐 나가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혼자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모세라는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또 기드온과 삼손 등의 여러 사사들을 통해 적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해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족해 보였던 사람이지만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통해 전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으키시고 그들을 통해 역사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일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당신의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승천하시면서 그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시고 하나님과 동역할 사람들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영광스러운 일에 부름 받은 존재라는 것은 매우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에 동참하고 함께 일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9장 23절부터 31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사울이라는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사울은 나중에 이름을 사도 바울로 바꾸게 됩니다.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양성경의 3분의 1을 기록한 사람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본을 보였던 사람이고 복음 전파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전에 좋은 집안 배경을 가지고 자신이 가진 지식과 지혜와 유대교의 배경 등 모든 것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 날도 지금의 시리아인 다마스커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잡아서 핍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 스데반 집사를 핍박하고 죽게 만들었던 일에 앞장섰던 사람도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과 같은 사람이 다메섹에도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곳을 향해 가다 다메섹 노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사울이 “주여, 누구십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 사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복음을 전하는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데,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인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했습니다. 그러자 성경에는 사울의 눈에서 비닐 같은 것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되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런 신비한 경험을 통해 사울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9장 23절부터 31절에서도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시요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다.”

라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울을 따라 다니며 함께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유대인들이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사도행전 9장 22절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유대인들은 적어도 사울만은 자기들 편이고 같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다.”라고 하니 당혹스러웠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여 “사울이 이상해졌어. 그러니 죽여야겠다.”라고 공모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과는 달리 사도 바울을 통해 전 세계가 복음화 되고 신약성경이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사도 바울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펼쳐져 간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23절부터 31절 말씀은 오늘도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어떻게 그 일을 행하시는지에 대해 말해줍니다.

 첫째,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행하실 때 사람을 선택하신다

 당신의 일을 행하실 때 사람을 선택하시는 하나님께 선택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당신 스스로 다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의 역사를 이루셨고 모세를 통해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고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정복을 이루셨습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사람을 통해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스스로 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선택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다 하시면 편하고 좋을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선택하시는 이유는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무엇이든지 같이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도 함께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실 때 하나님의 사람들을 불러 세우시고 그들과 함께 동역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 사람을 선택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상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구나! 내가 너희에게 무언가 더해줄게.”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을 주시기 원하시지만 그냥 아무에게나 상을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함께 진행하십니다. 사람이 하는 것 같아도 배후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하시고 그 사람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선택하시고 일을 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다 하시고 우리에게는 상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 축복하시고, 상을 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위해 일을 만들어 가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택하실 때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아휴, 저런 사람하고는 일 못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하나님, 저 사람은 안 되고 다른 누군가를 선택하십시오. 지금은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을 보면 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연약하고 더 큰 실수를 저지른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아브라함은 자기가 죽게 될까 두려워 자기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하며 왕에게 바쳤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왕권을 이용해 부하의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을 위대한 나라로 만들어가셨습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제자를 선택하실 때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선택하신 제자 중 한 사람인 베드로는 다혈질이었습니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성격이 급한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는 신중하고 계획적이고 치밀한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와 같은 제자를 선택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베드로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사울을 선택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울이 누구입니까? 스데반 집사 같은 훌륭한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일 때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이 돌로 맞는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뒤에서 흐뭇하게 웃으며 팔짱을 끼고 있던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하나님이 지켜보셨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당한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을 거쳐 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선한 사람을 선택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예수 믿는 사람을 특별한 열심을 가지고 핍박하고 박해하던 사울을 선택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만들어가셨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과정들을 볼 때

하나님이 선택하는 사람은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뛰어난 사람을 하나님이 선택하실 것 같습니다. 똑똑한 사람을 선택하실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교회에는 때로 어려움을 주는 교인도 있고, 인간관계가 불안한 교인도 있습니다. 어느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런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지 않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런 사람이 변해 오히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더 충성하고 훌륭한 일꾼으로 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을 마음대로 평가하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다.”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녀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쟤는 안 될 거 같아.’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쟤는 소망이 없는 것 같아.’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에게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담대함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면 부족해 보이는 아이가 다윗과도 같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될 수 있고 갈렙이 될 수 있습니다. 기드온이 될 수 있고 드보라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변화를 일으키셔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행하는 그런 하나님의 일꾼으로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려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내가 선택받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서는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신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배후에 누군가의 기도가 있습니다. 르비딤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군사들을 이끌고 아말렉과 전쟁을 할 때 승리하게 되는데, 그 이유를 출애굽기 17장에는 “모세가 산에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모세가 산에서 기도하니 이스라엘이 이기고 팔이 무거워서 내려오니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손을 들고 끝까지 기도하니 승리했습니다. 소돔 성에 있던 롯과 그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된 이유는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소돔성을 하나님이 멸망시킬 때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롯과 그 가족이 나오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반드시 배후에 기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언가를 이루실 때 누군가를 세워 놓고 기도하게 만드십니다.

 그런데 진짜 감사한 것은 로마서 8장 34절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기도 많이 하는 분의 기도도 감사하지만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100% 응답되는 기도입니다. 중보자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기도 많이 하는 목사님의 기도와 예수님의 기도가 비교가 되겠습니까?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로마서 8장 34절의 말씀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중국 가정 교회의 지도자들을 교육하고 왔습니다. 지금은 편안하게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굉장히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요즈음에 중국에서는 교회를 많이 단속합니다. 얼마 전에도 대만 목사님 한 분이 중국에서 말씀을 전하다 잡혀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중국에 간다고 하니 많은 목사님이 말렸습니다. 성도님들께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갔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있어서 취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요주의 인물들로 찍혀있고 지도자들이 모여 교육을 받는 곳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드러나 있을 텐데 가야 되나? 가지 말아야 되나?’라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취소가 되지 않아 평소에는 기도 부탁을 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기도하시는 분들에게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지만, 가게 되었으니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서 가기 전에 부목사님들에게 만약에 금요일에 못 오게 되면 이번 주일에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미리 정해 놓고 “주여 믿습니다.”라고 하며 갔습니다. 많은 중보자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참 놀라운 것은 첫째 날 첫 시간부터 말씀을 전하는데 성령의 역사가 매우 강하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던 한 청년에게서 귀신이 쫓겨 나갔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기도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 저쪽에서 쓰러져 부들부들 떨더니 악한 영이 쫓겨 나갔습니다. 두 번째 말씀을 전하는데 성도님들 거의 반 이상이 눈물을 닦으며 울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내가 전하는 말씀에 그렇게 눈물이 나지는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 시간마다 은혜가 넘쳤지만, 마지막 날에는 결국 공안들이 집회를 못하게 해서 오전과 오후 집회가 취소되고 저녁에 모여 집회를 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오전과 오후에 못 들었으니 말씀을 많이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제 입에서 그렇게 막힘이 없이 말씀이 나가는지 처음에는 ‘어떻게 3시간 동안 말씀을 전하나?’라는 걱정을 했는데, 나중에는 3시간도 모자랐습니다. ‘성령님이 제 입술 가운데 무엇을 말해야 되는지 담아 주시는구나!’라는 것을 느끼면서 말씀을 전하다 보니 3시간이 넘어가도록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그 동안 내가 중보기도를 부탁하지 않고 다닌 것이 얼마나 오만이고 교만이었던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 부탁을 하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줄 때 말씀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참 큰 은혜가 넘쳤던 집회였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나니 마치 제가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끌어안고 박수를 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놀라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지난 수요일 저녁에 호텔 입구에 들어오는데 공안 두 명이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숙소가 4층이었는데 불안해서 문을 잠그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제방 문을 노크했습니다. 다른 방도 많은데 왜 제 방을 노크하는지, 알고 왔는지 우연의 일치인지 헷갈렸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다 알고 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까짓 호텔 문이야 마스터키를 가지고 열면 다 열리는 것입니다. 좀 있다 가겠지 했는데 10분이 지나도 안 가고 15분이 지나도 안 가고 계속 노크를 했습니다. 베란다에 나가 서 있는데 불안했습니다. 밑을 내려다보니 4층인데 중국은 왜 그렇게 높은지 아파트 6층 높이였습니다. 사도행전 9장 25절을 보면 사울을 죽이려고 할 때 그의 제자들이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광주리도 없고 달아 내려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잘못 내려갔다가는 죽을 것 같았습니다. 손으로 잡을 곳도 없었습니다. 이러다가 잡힐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제 신분이 드러날 것이고, 저는 중국말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몇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아내에게도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사방에서 기도를 하고 저도 베란다에서 “주님, 동행해 주소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고는 잡혀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그냥 가는 것입니다.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경찰차가 떠났습니다. 저는 그 순간 운이 좋다가 아니라 ‘아, 정말 하나님이 돌보시고 인도하시는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상황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에 저에게 한국을 떠나오기 전 이미 기도할 사람들에게 기도부탁을 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역사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것이구나! 이렇게 귀한 것이고 이것보다 더 귀한 축복이 없구나! 하나님 없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저는 이번 일을 통해 중보기도의 강력함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기도를 쉬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교회와 자녀와 사회 그리고 민족을 위한 중보자들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져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들으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길을 가면서도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 가든지 기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하시고자 하는 일을 반드시 이루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자 할 때 일이 순적하지 못하고 꼬이는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목사님,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성경 속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볼 때 믿음의 눈을 갖게 됩니다.
 홍해 앞에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너 갈 길이 없었습니다. 방법은 없고 문제만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홍해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문제였지만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길을 내주셨습니다.
 우리가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홍해 사건을 마음에 담아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갖습니까? ‘내가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은 상황이로구나! 그렇다면 하나님이 홍해를 갈라주시듯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담대해집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난공불락인 여리고성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성 앞에 서서 무너트리려고 하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안 됩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너트리셨습니다.

 우리가 세상 앞에 섰을 때 “도대체 세상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잠잠히 서서 그 문제를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무너트리셨듯이 내 앞에 있는 큰, 넘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벽을 무너트리실 것이라는 확신이 옵니다. 이것이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내가 속한 환경을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절망할 수 있었습니다. 노예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인도하신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다.’라는 것을 요셉은 알았습니다. 그는 노예로 갔을 때나 감옥에 갔을 때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만드셨습니다. 그 모든 고난의 과정들도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도록 하시기 위한 길로 가게 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등산을 할 때 대청봉 같은 높은 산에 가려면 또 다른 산을 넘어야 갑니다. 정상에 오르려면 험한 코스들을 다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평탄한 길을 가다 갑자기 꼭대기에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인생을 살 때 믿음의 눈을 가지게 되면 그런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절망 중에 있고 어떤 큰 문제나 위기 앞에 좌절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좌절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뜻을 이루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에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믿음의 눈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우리는 그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그와 같은 유대인들이 그를 매우 핍박하고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광주리를 타고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이 복음은 증거 될 수 없습니다. 믿으라고 외치는 사람은 소수이고 안 된다고 방해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쏟아져 들어오는 물이 많은데 바가지로는 감당이 안 됩니다. 금방 물에 침몰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반대하는 사람, 거부하고 죽이려는 사람은 훨씬 많습니다. 세상적인 논리로 보면 복음은 증거 되다 제자들은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그렇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31절을 보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오히려 든든히 서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늘 이런 식입니다. 없어질 것 같고 망할 것 같고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박해 당하고 핍박당하면 교회가 사라질 것 같아도 반대의 결과가 옵니다.

 중국에 내년 2월부터 종교법이 만들어져 시행이 됩니다. 그 종교법에 의하면 모여서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됩니다. 저는 그 곳 젊은 지도자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입니까? 상황이 어려워져서 모여 예배를 드릴 수도 없게 되는데 걱정이다.”라고 했습니다. 30대 후반 정도 밖에 안 되는 청년 지도자인데 아주 담대하게

“목사님, 힘든 상황일수록 더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날 것을 믿습니다. 핍박과 박해 속에서 교회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부끄러워졌습니다. 우리는 온실 안의 화초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중국 교인들은 야생 들꽃 같습니다. 아무리 태풍이 불어도 절대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 또한 강인한 정신과 믿음을 가진 야생 들꽃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나서는 저에게 양꼬치나 먹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피곤해서 자고 싶었지만 가보았더니 별의 별 것이 다 있었습니다. 매미를 구워 먹으라고 하는데 ‘이걸 꼭 먹어야 되나?’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꼬치구이를 함께 먹으며 보니 그들은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이분들에게는 분명한 믿음이, 샬롬의 믿음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오히려 웃었습니다.
 어려운 상황과 절망적인 상황이 우리를 에워싼다고 할지라도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결국 당신이 행하실 일을 행하십니다. 교회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이루실 것이고 가정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밤이 점점 깊어진다는 것은 새벽이 가까워 온다는 것입니다. 겨울 추위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은 봄이 점점 가까워 온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어려워진다고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작정하신 일을 이루시는 놀라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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