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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들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들
설교날짜 2017.12.10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요한복음 1 : 1 - 5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들
 1.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2. 하나님은 우리 삶의 소망이 되신다.


말씀 요 1: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사람의 말은 매우 중요해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저도 목회를 하다 보면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될 때가 많습니다. 잘못된 말 한마디에 사람이 상처를 받고 죽기도 합니다. 그리고 좋은 말 한마디가 생명을 살리기도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쉽게 경험합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할 줄 알고 가려서 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타인에 대해서는 말조심을 합니다. 예의를 지키기도 하고 말을 가려서 합니다. 그러나 정작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말을 조심하지 않아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상처를 주는 사람은 부모님입니다. 부모님이라는 존재는 늘 우리의 모든 것을 받아 주시고 아낌없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희생해 주십니다. 내가 힘들 고 지칠 때는 버팀목이 되어 주시기도 하고 당신을 희생해서라도 우리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은 마음의 고향과도 같고 인생을 지탱해주는 버팀목과도 같은 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의 부족한 부분까지 다 내어 놓으면 세상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겠지만, 부모님은 그것을 품고 가려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생각하면 나이가 들고 철이 들어갈수록 눈물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참 좋습니다. 여기서 선을 넘으면 안 되는데 선을 넘을 때가 많습니다. 부모님을 편한 존재가 아니라 쉬운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화가 나면 분풀이 하는 곳이 부모님이라고 생각해서 막말을 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모르면서 왜 그런 이야기를 해?”, “아빠는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런 이야기를 해?”라고 합니다. 요즈음에 청년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아빠와 딸 사이가 원수지간인 경우가 참 많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부모님을 증오하는 모습이 세상에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사실은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운 분들이고 가장 고마워해야 될 분들입니다. 그리고 가장 사랑해야 될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서로를 오해하고 상처를 주고 원수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볼 때 ‘뭔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모님께 상처를 드리는 말 중에 가장 큰 상처가 되는 말이 무엇일까요?
 며칠 전에 어느 목사님의 설교 동영상을 보는데 부모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을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서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난 더 이상 아빠가 필요 없어.”라는 말이었습니다. “아버지, 내가 부도가 났어요.”, “아버지, 내가 큰 사고를 냈어요.”, “아버지, 내가 큰 실수를 했어요.”라고 하면 속이 터지고 화가 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상처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빠, 난 더 이상 아빠가 필요 없어요.”, “엄마, 난 더 이상 엄마가 필요 없어요.”라는 말은 죽고 싶을 만큼 큰 상처가 되는 말입니다. 부도를 내고 차 사고를 내는 것과 같은 일은 실제적으로 경제적인 손실이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빠, 난 더 이상 아빠가 필요 없어.”라는 말은 가정에 더 이상 경제적인 손실을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외관적으로 큰 어려움이 오는, 그런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사실 차사고가 나고 부도가 나는, 외관적으로 큰 어려움이 오는 일보다 더 상처가 되는 말은 “나는 당신이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라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상처가 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삶의 의지를 꺾어 버리는 일이 됩니다. 물질적으로 보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담은 따뜻한 말 한 마디, 배려하고 사랑하는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드는 생각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 우리는 당신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 부모들도 자녀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상처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말은 하나님께 엄청난 큰 상처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당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우리는 당신이 필요 없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이 없어도 돼요. 그냥 그 자리에 계세요. 내 삶 속에 그렇게 하나님이 필요한 존재가 아닙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 마음 대로 계획을 하고 무언가를 꾸미고 살아보려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진짜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진정한 마음이 담긴 신앙고백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습니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십니다.”라는 고백이 아닙니다. 진정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은 “하나님, 내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나에게 다가와 주시니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이런 깊은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기도 하고 읽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 중에 주제가 되는 한 말씀을 뽑으라면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입니다. 그리고 그 한 절 말씀을 또 한 단어로 줄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 신약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 하며 축복된 삶을 누리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 분의 이름과 사역과 그 분의 모든 정체성이 이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너희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표현입니다. “너희에게는 내가 필요하다. 너희는 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다.”라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존재는 없습니다, 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권력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공 못 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하나님 없이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대강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대강절이라는 것은 약속하신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기를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소망의 절기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왜 오셔야 했습니까? 그 이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리시기 위해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오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절기가 바로 대강절입니다.

 우리에게 왜 하나님이 필요할까요?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

 세상의 수많은 사람은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아왔습니다.”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자기 힘으로 살아왔다고 믿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습니다. 갓난아기가 성장해서 어른이 된 다음에 “저는 지금까지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성장해서 성공을 이루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면 바보입니다. 혼자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갓난아기는 태어나서 자기 몸을 뒤집지도 못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서 30분이 되면 걷고 뛰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존재는 1년이 지나도록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빠른 아이가 겨우 벽 잡고 일어나서 뒤뚱뒤뚱 걷는 정도입니다. 그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요리를 해먹을 수 있습니까? 10살이 되어 고아가 되어 구걸을 하는 아이가 있는데, 구걸을 해서 먹을지언정 그 전까지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혼자 성장해서 지금까지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고 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어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여기까지 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고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 논리로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잘 살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이야기도 가만히 보면 어린 아이가 “성장하기까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아왔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못 삽니다. 사람은 공기가 있어서 공기로 호흡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발을 디디고 살아갈 땅이 없다면 날아다닐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땅이 있어야 살고 공기가 있어야 살고 물이 있어야 삽니다. 이것은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중요하게 알아야 할 사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금 더 연구하고 조금 더 알아야할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그 공기, 땅, 물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누가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공기를 호흡하며 살 수 있는 것이고, 물을 마시며 살 수 있는 것이고,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입니다. 선물이라는 말은 은혜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매우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이 필요한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서 얼마나 필요한 분인지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요한복음 1장 4절과 5절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어둠이라고 하는 것은 상처와 무지와 위기와 같은 것들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인간은 그런 어둠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어둠 속에서 얼마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를 음해하고 아파하고 가슴을 부여잡고 끙끙 앓으면서 살아갑니까? 어둠 속에 살아가는 세상. 그 어둠속에 필요한 것은 빛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빛을 주시고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5절에서는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고 했습니다. 어두움이 빛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빛을 배척했다는 것입니다. 빛이 필요함에도 빛을 배척하는 어리석음을 가진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내 마음 대로 내 계획대로 내 뜻대로 살며, 그 길의 끝이 멸망이라는 것을 모른 채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모든 동물을 보면 다 무기가 있습니다. 호랑이와 사자는 이빨이 있고 코뿔소는 뿔이 있습니다. 황소도 뿔이 있습니다. 무언가 잘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만큼 잘 하는 것이 없는 존재도 없습니다. 힘이 있습니까? 힘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인간이 자신보다 훨씬 힘이 센 사자를 데리고 논다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 만물을 다스립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를 주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연구를 해서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을 내고 배척하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 지혜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부인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그런 모습 때문에 오늘도 하나님이 마음 아파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을 보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오래 전에 캄보디아에 단기선교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 땅을 위해 중보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이 잠깐 제 영의 눈을 열어 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버스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매우 멋있게 서 있던 길가 야자수들이 잎사귀들을 하늘로 뻗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게도 하늘을 바라보며 찬양하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길가에 핀 꽃들도 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날아가는 새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을 지나가는 두 사람은 인상을 쓰며 땅을 쳐다보며 걸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람들만 하나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우실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담아주시는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제 방에 가면 어항이 하나 있습니다. 청년 중에 물고기를 좋아하는 청년이 있어서 그것을 키워 팔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제게 와서 “목사님 방에 어항을 놓아 드리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밖에 없어서 꼭 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럼, 해 봐라.”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제 방에 어항을 가져다 놓고 열대어를 넣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근심이 많아졌습니다. 어디에 나가면 ‘이것들이 죽지는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님들을 염려해야 하는데, 물고기들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해외에 나가면 물은 제대로 주었는지, 밥은 주었는지, 한 마리가 죽어서 둥둥 떠 있는 건 아닌지 염려가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 정이 들었습니다. 물고기가 다섯 마리가 있는데, 교회 꼬맹이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어떤 꼬맹이들은 제 방문을 노크하고 문을 열어 주면 고기를 보고 갑니다. 제 방을 수족관 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참 예쁩니다. 물고기들을 키우다 보니 참 신기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고기가 성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성격이 있고 개성이 있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배가 고프면 성질을 부리고 밥을 주는 구멍이 어항 구석에 따로 있는데, 그 곳에 다 모여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누가 물고기 머리가 나쁘다고 했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배가 부르면 몰려오지 않지만 배가 고프면 제가 지나갈 때 밥 주는 줄 알고 거기에 모여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는 ‘니들이 배가 고프구나! 밥 줘야지.’하고는 밥을 줍니다. 그러면 얼마나 신이 나서 먹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제가 지나가면 흩어집니다. 그렇게 물고기 밥을 주다가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물고기들도 자기들 먹을 양식을 누가 주고 어디에서 떨어지는지 아는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만 모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기 힘으로 열심히 벌어서 먹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내가 벌어서 먹는 것 같아도 내가 벌어먹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닫으면 비가 떨어집니까? 며칠 하늘 문을 닫아 놓으면 가뭄이라고 난리가 납니다. 또 며칠 하늘 문을 열어 놓으셔서 비가 내리면 홍수라고 난리가 납니다. 열고 닫는 은혜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이는 우리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과 모든 것이 어디에서 옵니까?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121편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온다.”우리의 도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장님으로부터, 정치인으로부터, 경제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됩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됩니다.
 2011년도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가정이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 가정의 꿈은 요트를 하나 사는 것이었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요트를 사서 남태평양으로 가 즐기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결국 요트를 샀습니다. 그리고 남태평양으로 나갔습니다. 남태평양 넓은 바다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그 바다를 다 소유한 것 같은 기쁨을 가지고 즐기다 산호초에 걸려 구멍이 났습니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아무도 없는 바다가 내 바다 같았고 사람이 없어서 좋았지만, 지금은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두려워졌습니다. 누가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1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는 좌초되었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가 쏟아지고 아버지가 돌에 머리를 부딪쳐 중상을 입었습니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배가 점점 침몰해 가니 구명조끼를 입고 작은 구명정에 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엎치락뒤치락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가정이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살려주세요.”열 시간이 지나니 날이 밝았습니다. 비행기 한 대가 머리 위를 돌다가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한두 시간이 지나니 수평선 근처에서 배가 나타나 가족을 구조했습니다. 그리고 조난당한지 15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출되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위기가 없을 때는 내 마음 대로, 내 뜻대로 잘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쳐올 때 결국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도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삶의 소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소망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어떤 사람은 권력이 최고라고 하며 권력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가 최고라고 하며 인간관계를 선택하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것을 가지고 있으면 좋지만 인생에 위기가 닥치면 이런 것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자살을 하고, 권력이 있는 사람도 자살을 하고, 인간관계가 좋았던 사람도 모든 것을 내팽개쳐 버리고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인생의 위기 가운데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소망입니다. 하나를 선택하라면 소망을 선택해야 합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위기가 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결국은 버텨내고 승리합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적인 많은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인생을 내팽개쳐 버리고 도망쳐 생을 마감하는 일을 많이 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소망으로 삼을 만한 것이 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는 소망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갑니다.”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나를 그렇게 지켜 주겠다던 남편이 어떻게 됩니까? 아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갑니다. 나를 지켜주겠다고 그렇게 약속을 해 놓고 나를 버리고 세상을 떠나갔으니 어떻게 합니까? 허전해집니다. 자식을 소망 삼을까요? 자녀들을 애지중지 하면서 얼마나 잘 키웁니까? 그러던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부모의 곁을 떠나 또 다른 가정을 이룹니다. 그러기에 돈이 최고라고 돈을 소망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편이고 자식이고 다 소용없어. 돈을 소망 삼아야 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 때문에 생이 망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소망이 있어야 삶의 의미도 찾고 보람 있고 재미있게 살 수 있습니다. 환란이 다가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소망을 삼을 만한 것이 있는가 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참 소망이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내 인생의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입니다. 승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됩니다.

 세상을 돌아보면 헛된 소망을 가지고 잘난 척 하다가 망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리비아의 독재자가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부하들은 돈과 군사력과 지하 벙커를 소망 삼았습니다. “핵폭탄이 떨어져도 우리는 지하 벙커에 들어가면 살 수 있다. 그러니 덤빌 테면 덤벼 봐라.”고 하며 세상적인 힘을 소망삼고 큰 소리 쳤습니다. 그 사람들의 결말이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살았는가?’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결국은 비참하게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적인 것들이 그들은 지켜줄 것 같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크고 힘 있는 것.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 것들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는 헛된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1912년에 큰 배를 만들었습니다. 1912년이면 한일합방이 된 것이 1910년이니 그 무렵입니다. 그 시절에 영국에서는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타이타닉호입니다. 그 배는 크기가 엄청납니다. 어렸을 때 100m 달리기 해 보았을 것입니다. 100m를 달리고 나면 숨이 턱에 차서 헉헉 거립니다. 그 거리가 왜 그렇게 길어 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다 뛴다는 것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타이타닉호는 269m입니다. 100m의 두 배 반입니다. 그 큰 배가 물 위에 뜬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높이는 아파트 20층 높이입니다. 그래서 2200명의 승객을 태우고 첫 항해를 하는데 붙여진 별명이 불침선이었습니다. 절대로 침몰하지 않는 배라는 의미입니다. 타이타닉호는 의기양야하게 첫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크고 힘센 것은 절대로 가라앉지 않고 아무리 큰 파도가 와고 무너지지 않는다는 데에 소망을 두고 그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하던 배가 첫 항해에서 빙하에 부딪혀 가라앉았습니다. 그래서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물속에 수장되어 죽어 버리고 맙니다. 성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타이타닉호는 아니지만 작은 고깃배에 12명의 제자가 예수님과 함께 타고 가는데 풍랑을 만납니다. 저는 갈릴릴 호수에 가서 풍랑이 치는 갈릴리 호수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 풍랑이 치면 얼마나 대단하겠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단합니다. 큰 배를 탔는데도 그 배위로 파도가 넘칩니다. 작은 고깃배를 타면 위기 속에서 죽겠다는 고백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배가 결국 가라앉았는가 하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 풍랑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안전할 것 같던 타이타닉호는 가라앉고 우리를 지켜주지 못할 것 같은 작은 고깃배는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다 무너집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 무너집니다. 그래서 잠언서에서는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것도 한순간입니다. 세월이 지나면 주름이 생기고 아무리 건강하게 운동을 한다 해도 조금 더 버틸 수는 있겠지만,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는 인생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위기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가 와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성도님에게도 위기는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세상 사람은 그런 위기 가운데서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해 버리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소망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위기 가운데서도 버티는 자가 되고 결국은 기도 가운데 승리하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으로 살고 하나님을 소망으로 붙잡고 사는 인생이 얼마나 위대한 인생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타신 배에 풍랑이 몰아칠 때 예수님은 그 풍랑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해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위기들이 있습니까? 이 위기 가운데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제자들에게 “죽든지 말든지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라고 하시며 그냥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찾아오시는 우리 주님이 되십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말씀을 읽을 때마다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대강절이 무엇입니까?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제 곧 하나님이 오실 것이다. 그래서 어둠 가운데 있는 너희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실 것이고 어둠이 떠나갈 것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절기입니다. 빛과 어둠이 싸우면 빛이 항상 이깁니다. 대강절은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강절의 절기에 예수님이 안 오셨을까요? 오셨습니다. 오늘이 대강절 둘째 주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어둠이 있습니다. 힘든 일, 위기가 있습니다. 대강절의 절기에 가정과 기업 가운데 주님이 찾아오시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우리의 문제가 떠나가고 해결이 되며, 주님으로 인해 웃고 찬양하는 복된 절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승리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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