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 (살후 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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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인도와 성도의 믿음  
 
하나님의 인도와 성도의 믿음
설교날짜 2018.9.9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삼상 17 : 17 - 23
 

 

 

하나님의 인도와 성도의 믿음
 1.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계획하시고 항상 인도하신다.
 2. 우리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훈련장이다.
 3.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도 담대하게 도전해야 한다.

말씀 삼상 17:17-23
이새가 그의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 그 때에 사울과 그들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는 중이더라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양을 양 지키는 자에게 맡기고 이새가 명령한 대로 가지고 가서 진영에 이른즉 마침 군대가 전장에 나와서 싸우려고 고함치며,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이 전열을 벌이고 양군이 서로 대치하였더라 다윗이 자기의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형들에게 문안하고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오늘 본문 말씀인 삼상 17장 17절부터 23절에서는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쟁 중에 있을 때 세 명의, 다윗의 형제들이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8명의 형제 중에서 막내였던 다윗에게 볶은 곡식과 떡을 주면서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그때 다윗은 베들레헴이라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에서 양을 치고 있었고 블레셋과 이스라엘은 엘라 골짜기라는 곳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이라는 곳에서 엘라 골짜기까지 거리는 25km에서 30km 정도 됩니다. 열심히 걸어도 6시간에서 7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0절에서도 다윗이 일찍 일어나서 갔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좋은 일도 아니고 전쟁을 하고 있는 이 먼 곳을 향해 가는 다윗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전쟁을 치르는 형들이 잘못된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으로서 아버지가 주신 음식을 가지고 가는 것이 형들을 격려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기뻤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렇게 먼 곳에 가기 위해 아침부터 일찍 일어난 것도 힘든데 도시락까지 갖다 주려니 더 힘드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형들을 찾아가는 다윗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윗의 마음을 짐작해 보는 것은 적어도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가는 길에 ‘여차하면 전쟁에 참여해야 되겠다. 적장이 골리앗이라는 장수인데 내가 한번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세워서 골리앗을 넘어트려서 국가에 공헌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하고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전쟁터라고 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전쟁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아버지의 심부름이기 때문에 형을 찾아가는 걸음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거기에는 특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향해 가는 다윗의 발걸음은 다윗에게 있어서는 이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시작되는 중요한 첫발걸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골리앗과 싸우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골리앗과 싸우게 되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한순간에 영웅이 되어 명성이 드러났고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일상을 살아가며 무슨 일을 할 때 아무 생각 없이 그 일을 행할 때가 있습니다.  큰 계획을 세우거나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실패하게 될 때도 있고 좌절하거나 절망할 때도 있고 아플 때나 고통스러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열고 보면 어떤 일이 되었든 이면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안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객관적인 사실이고 객관적인 진리입니다. 성경 말씀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신 객관적인 약속의 말씀인 객관적인 진리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 공부를 통해 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객관적인 사실이 나에게 믿음과 확신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이것이 주관적인 믿음입니다. 객관적인 진실이 주관적으로 나에게 들어와 다윗처럼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제목은 하나님의 인도와 성도의 믿음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객관적인 진리를 주관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권면해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계획하시고 항상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며 매 순간마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순간일지라도 우리를 붙드십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알든 모르든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무런 계획 없이 형들을 찾아가는 것 같았지만, 그 걸음은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예비하신 걸음이고 다윗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위한 첫 발걸음이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늘 말씀 드리듯이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들에 핀 백합화를 봐라. 공중을 나는 새들을 봐라. 저것들은 우연히 피고 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신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라고 하셨습니다. 이 음성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보게 되는 길가의 들꽃도 우연히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의 생명조차도 이어가도록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우연히 도시락을 배달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상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매 순간순간. 어느 순간이 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내 삶에 주관적으로 개입하시는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때라고 합니다. 내 삶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때를 카이로스의 타임이라고 합니다. 그 카이로스의 때가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 주관적으로 개입하시는 때입니다. 우리는 그 순간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각자의 삶에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때가 있습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가는 때가 다윗에게는 카이로스의 때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던 모세가 있습니다. 이 모세의 시종이었던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모세의 시종이 되었던 것이 우연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은 모세 이후를 계획하시고 모세 이후에 여호수아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시종으로 들어갔던 여호수아는 “나는 모세를 존경하기 때문에 모세를 섬기러 갔습니다.”라고 하며 자신이 모세의 시종으로 들어가게 된 것을 우연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 아니고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 같고 일산광림교회를 선택한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무엇을 준비시키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가? 모르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붙드시고 필요한 것들을 채우시며 훈련시키시기 위해 오늘 우리를 붙드셨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되는 소명감이고 사명감입니다. 진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믿음의 확신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확신과 기쁨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합력해서 선이 되게 하실 것이다. 그러니 나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끝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것이다.”

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을 선택하실 때마다 하신 말씀이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음성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음성으로 받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내가 서 있는 그 길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군대 가는 자녀들이 군대에 가기 전에 저에게 와서 꼭 안수 기도를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귀에 대고 반드시 해 주는 말이

“어디를 가도 힘든 들이 있어도 네 옆에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리고 예수님께 기도해라. 하나님이 들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 네가 군대라는 어려운 고통의 시간을 거치지만 그 고통의 시간을 거치고 났을 때에 하나님은 너를 정금 같은 존재로 만드실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마라.”

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이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죽음의 위기 가운데에 있더라도 나와 함께 하시고 죽은 이후에도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 돌려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훈련장이다

 군대에 가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훈련소입니다. 저도 논산 훈련소에 갔습니다. 그 곳에 가서 걸음걸이부터 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훈련을 다 받습니다. 제식훈련입니다. 처음에는 군화를 신고 총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비롯해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서투릅니다. 군장을 메는 것도 군복을 입는 것도 어설픕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훈련이 계속되어지면서 진짜 멋진 군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전쟁터에 나가더라도 내 마음대로 해서 망치는 것이 아니라 명령에 순종하고 복종함으로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멋진 군인으로 서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일꾼으로 우리를 부르실 때 어느 날 갑자기 준비도 안 된 사람을 부르셔서 쓰시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훈련이 안 된 것 같아도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자리까지 수도 없이 많은 훈련을 시키시고 연단시키셨습니다. 그렇게 이끌어 오시다가 때가 되면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부르셔서 당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 그 역할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궁궐에서 성장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멋진 교육, 엘리트로서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학벌로 쳐도 최고의 학벌입니다. 충분히 지도자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어떻게 되었습니까? 살인을 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미디안 광야는 개발 계획도 없는 그냥 허허벌판입니다. 그 곳에서 양떼를 돌보는 일을 40년을 했습니다. ‘이렇게 지도자로서 중요한 교육과정을 다 거친 갖춘 내가 미디안,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다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모세를 다듬고 연단시키고 훈련시키는 마지막 과정이었습니다. 80세가 되어 “나는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이제부터 내가 행할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하시며 모세를 부르시고 모세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만드셨습니다. 호렙산에 우연히 간 것 같은데 하나님이 부르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가보고 나니 ‘아, 하나님이 우연히 오게 하신 것이 아니로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이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학을 할 때 공부가 하고 싶어서 했지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감신대에서 청년들에게 강의를 할 때도 이런 이야기 했습니다.

“마치 여기 목회자의 사명을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지?”

라고 하니 뜨끔뜨끔해 했습니다. 저는

“걱정하지 마라. 나도 그랬다. 그것이 내 선택인 것 같고 우연인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예비하심이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소명감이다.”

 살다 보면 우연히 무언가를 하는 것 같고 잘못된 길을 가는 것 같은 순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고 삶의 현장, 그 자리에서 우리를 훈련시키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게 됩니다.
 요셉도 우연히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아갔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 요셉도 그렇고 다윗도 그렇고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갔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반겨줄 줄 알았습니다. 사람 마음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해 주니 형들에게 찾아가면 깜짝 쇼가 되어 기뻐해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자기를 보고 웃어주기는커녕 요셉을 잡아 구렁텅이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죽일까? 살릴까?’에 대해 논의를 했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놀라고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이게 도대체 뭐지?’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죽지는 않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들어가 그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합니다. 이것을 세상적으로 보면 ‘참 비참하고 저주 받은 생활이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정답을 압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생활하는 것이 저주 받고 비난 받을 만한 안타까운 인생이었는가?’ 하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섭리 가운데 요셉을 훈련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도 들어갔습니다. 감옥 생활을 하며 ‘나는 왜 이렇게 안 될까?’라는 생각을 하며 좌절하고 비관하는 이야기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축복하시고 요셉이 애굽의 중요한 관직을 만나게 하는 접촉점으로 요셉을 감옥에 넣으셨습니다. 요셉은 이런 고난의 연속선상에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물으며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연단하시고 훈련하시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신 이유가 세상의 영광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가뭄 중에 죽을 수 없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이게 “너희를 통해 나라를 세울 것이다.”라고까지 하셨는데 가뭄 중에 죽으면 안 되었습니다. 살 길을 마련하시기 위해, 요셉을 통해 생명의 길과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을 보호하시기 위해 세상의 높은 자리까지 주어서라도 당신의 선민들이 생활을 이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죽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대부분이 목동입니다. 그것이 일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윗에게 목동의 일을 맡기신 데는 특별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양떼를 돌보는데 때로는 이리가 나타나기도 하고 곰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 다윗의 고백을 보면 “내가 사자까지도 이겼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어린 다윗이 양을 돌볼 때 이리가 나타나고 곰이 나타나면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두려워서 도망을 치며 나무 위에도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양떼를 지키기 위해 돌과 막대기를 집어 던졌습니다. 이런 것이 다 하나님의 훈련과정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목자의 심정이 무엇인지 배우게 하셨습니다. 이리 떼가 나타나서 내 양떼를 해치려고 할 때 ‘내가 지도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알게 하셨습니다. 돌을 던지는 연습과 막대기 던지는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이제는 백발백중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다 겪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만나게 되니 그를 넘어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났습니다. ‘내가 사자와 곰도 이기고 이리와 승냥이가 와도 물리쳤는데 인간 골리앗쯤 이기지 못하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믿음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러자 골리앗이 쓰러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의 지도 아래 있으면서 좋으나 싫으나 “전쟁이다.”라고 하면 항상 선봉에 서야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왜 전쟁만 일어나면 선봉에 나를 세웁니까? 위험한 자리이니 뒤로 물러나고 싶습니다.”라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묵묵히 제일 선봉에 세우면 그 곳에 서서 싸움을 했습니다. ‘내가 이번 전쟁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죽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다음 세대를 살려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죽도록 하실 수 없었습니다. 살아나 모세의 뒤를 이어 놀라운 역사를 만드는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이 있는 자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그 사명을 다 이루기까지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승리의 길로 걷게 하십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가?’, ‘얼마나 피하고 싶은 자리인가?’라고 보지 마시고 내 삶의 현장의 자리를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는 자리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통스러울 때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고 계시는군요. 이 과정을 통해 무슨 일을 시키시기 위해 나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십니까? 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을 기대합니다.”

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세상 앞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도 담대하게 도전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위기 상황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위기가 닥쳐온다고 할 때 어떻게 반응 하겠습니까? 많은 사람은 두려워합니다. ‘내가 이 상황 속에서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큰일인데.’ 이런 두려운 마음이 들면 몸이 경직되고 사고가 마비되고 무기력해집니다.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정신을 바싹 차려도 이길 수 있을까 말까한 싸움인데, 패배하게 되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른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이런 순간에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답입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이 하나님에게 “이것도 해 주시고 저것도 해 주세요.”라고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늘을 보았더니 오늘 박동찬 목사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훈련시키시고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실 것이다.’ 라는 것이 믿어지게 되면 ‘내가 이런 상황 속에서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라는 각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강하고 담대하게 세상 앞에 설 것입니다. 내가 실수한다 할지라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으니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것입니다.”

라는 것이 믿는 사람들의 자세입니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어요. 안 돼요.”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는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세상 앞에 서야 합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담대한 것이 아니라 두렵고 떨린다면 ‘도대체 왜 그럴까?’라고 질문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자신을 돌아보니 거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해서 두려워한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골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들어가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오며 다시 회복이 됩니다. 그런 믿음이 생기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담대하게 사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도 된다는 이야기입니까?”라는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무조건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내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것은 아닌가?’ 또 ‘이것이 죄 짓는 일은 아닌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은 일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할 때 그때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도전해야 합니다. 죄짓고 내 욕심을 채우는 자리라고 하면 강하고 담대해서는 안 됩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도전하라. 하나님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다.”

라는 말은 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사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의 원동력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금식 기도를 많이 하고 예배를 많이 드린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는 염려와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골리앗과 싸워 이길 수는 없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믿었던 사람입니다. 한 번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허상으로 믿었던 적이 없습니다. 실체로 믿었습니다. 다윗은 담대하게 골리앗 앞에 섰고 골리앗은 그저 덩치 큰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골리앗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의지할 줄 모르는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라고 했습니다.

“너는 세상적인 무기를 가지고 나에게 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간다.”

고 한 것입니다. 결국 누가 이겼습니까? 불을 보듯 뻔 한 싸움입니다. 골리앗을 향해 믿음의 물맷돌을 던질 때 골리앗은 쓰러졌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닥쳐오는 위협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것은 골리앗과 똑같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나를 죽이려고 덤비는 문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의 힘으로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을 믿는 존재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가 올지라도 골리앗 앞에 서 있는 다윗과 같은 심정으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문제를 향해서 물맷돌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런 세상의 문제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세상 앞에 당당하고 세상 앞에 승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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