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 (살후 1:11-12)
> 인터넷방송 > 예배 > 주일예배
 
 
제목   기도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  
 
기도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
설교날짜 2018.9.30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시편 40 : 1 - 3
 

 

기도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
1. 내 기도를 들으시는 은혜.
 2. 내 삶을 견고하게 하시는 은혜
 3. 탄식이 변하여 새 노래가 되게 하시는 은혜


말씀 빌 시 40:1-3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기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참 큰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기도한다는 자체가 내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한다는 자체가 “나는 끝이 아닙니다. 마지막 기댈 곳이 있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기도한다는 것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자체가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제가 설교 서두에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성도님들이 저를 찾아오시기도 하고 상담을 받기도 하시고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들을 이야기 할 때 가만히 들어 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분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심한 중병을 가지고 있어서 병원에 입원을 하시는 분도 계시고, 수술을 앞두고 염려하시는 분도 계시고, 사업이 부도가 나 어려워하는 분도 계시고, 자녀들이 뜻대로 안 되는 분도 계십니다. 이런 저런 가정의 문제가 있고 인간관계의 문제를 비롯해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서 무엇을 해야 되는지 알 수 없어 고민하다 찾는 것이 목사님입니다. ‘목사님의 조언을 얻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성경은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목사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라는 의미로 저를 찾아오시는 것 같습니다. 오셔서 가정의 문제며 이런 저런 문제들을 다 내어 놓을 때 가만히 듣다 보면 참 안타까운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그런 위기가 닥치고 어려움이 닥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분이 신앙생활을 게을리 해서도 아니고 말씀대로 살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기도 하고, 기도의 자리로 달려 나오기도 하고, 교회에 헌신봉사도 잘 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려운 고난이 끊이지 않습니다.
 살면서 고난을 당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사탄의 공격입니다. 내가 죄가 많고 세상적으로 산다고 사탄이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이 오히려 공격을 잘 하지 않습니다. 내버려 두어도 멸망의 길로 가는데 쓸데없이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탄이 공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큰일을 할 사람들입니다. 자녀들을 공격할 때도 있고 우리를 공격할 때도 있고 그래서 고난을 당합니다. 욥이 무엇을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했던 욥이 더 고난을 당했습니다. 우리를 시기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품에서 어떻게든 떨어트리려고 공격을 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그 위기 중에 있는 나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결국에는 승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사탄의 시험과 다릅니다. 사탄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품에서 떨어트리기 위해 총 공세를 퍼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셔서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때로 그런 어려움으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보냅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갔고 감옥에도 갔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겪어야 했던 모든 어려움은 하나님이 요셉을 이끌어 승리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삶의 여정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그냥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탄이나 하나님의 개입없이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름철에 장맛비가 쏟아지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나 안 다니는 사람이나 그 비를 맞습니다. 시대가 어려워지면 모두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것이 나만을 특별히 공격해서 일어나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장맛비가 쏟아지면 비를 맞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난은 대체적으로 이 셋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낙심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탄이 공격하는 것도 그 자체가 내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고난을 당하는 것이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면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우연히 시절이 어려워서 오는 것이면 얼마든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산을 넘어갈 수 있으니 감사한 것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그 어려움 가운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도대체 내가 고난을 당하는 원인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어려움과 고난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도우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왜 이래야 됩니까?”, “내가 팔자가 사나워서.”, “내가 사람을 잘못 만나서”  아닙니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기도하는 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인 시편 40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시편에는 다윗의 시가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다윗의 찬송시들은 다윗이 태어나면서부터 매우 좋은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 다윗을 볼 때 골리앗도 이겼고 왕도 되었고 지금까지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위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다윗에게는 늘 좋은 일이 있어서 이런 찬송시를 많이 썼다고 생각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다윗은 정말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어려서는 형들 틈바귀에 끼인, 8명의 형제들 중 막내였습니다. 아무도 주목해 보지 않았습니다. 자기 같은 존재는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형들이 전쟁터에 나갔을 때 우연히 도시락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골리앗에게 돌을 던져 이겼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인기가 생겼고 그 이름이 이스라엘 전역에 퍼졌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다윗은 좋겠다. 어려서부터 인기를 얻어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오히려 그 얻었던 인기로 말미암아 사울왕이 시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저 다윗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산이며 들이며 어느 곳에든지 쫓아가서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군사를 동원해 다윗을 찾으니 다윗이 도망다니느라 얼마나 바쁩니까? 때로는 산과 들에서 노숙을 할 때도 있었고 동굴 속에 들어가 비를 피할 때도 있었습니다. 잠을 자도 편하게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잠에 깊이 빠진 사이에 사울 왕의 군사가 와서 자기를 칼로 찔러 죽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늘 도망쳐 다니는 피곤한 인생을 살았던 것이 다윗입니다. 사무엘상 21장에 보면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영원한 앙숙입니다. 늘 아웅다웅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땅에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으니 다윗은 블레셋 진영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면 사울이 못 쫓아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진영으로 가서 가드왕 아기스라는 왕에게로 다가갔고 나중에는 아기스 왕의 용병으로도 활동을 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망명입니다. 망명을 오면 보호를 해주어야 하는데 아기스의 신하들이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 유명한 이스라엘의 다윗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후한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전쟁을 하게 될 때 다윗 때문에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수 있으니 후한은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말을 옆에서 들은 다윗은 얼마나 조마조마 했을까요? 몇 초 뒷면 자기 목숨이 자기 목숨이 아닌 것이 될 수 있는, 죽을 위기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 다윗은 사무엘상 21장에서 미친 척을 했습니다. 대문에 낙서를 하고 눈동자를 흐리게 하고 침을 줄줄 흘리면서 미친 척을 합니다. 아기스 왕이 그것을 보고 “이 미치광이를 어째서 내게로 데리고 왔느냐?”라고 하며 호통을 칩니다. 그래서 다윗은 살았습니다. 이만큼 험한 인생을 살았던 존재가 다윗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런 모든 역경을 이기고 위대한 왕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시편에 나오는 수많은 글들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고통과 역경의 세월을 지나며, 역경과 고난이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간절하게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셔서 죽지 않고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살리신 하나님을 생각하니 너무 감사해서 감사의 찬송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다. 그래서 나를 살리셨다 그래서   내가 새 노래를 부른다.”

는 것입니다.
 여전히 어려움 가운데 있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역경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가운데 있습니까? 오늘 우리도 다윗 같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일까요?

 첫째, 내 기도를 들으시는 은혜

 내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그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우리가 흔히 젊은이들을 격려할 때 “작은 일로 너무 아파하거나 실망하지 마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합니다. 정말 세상은 넓습니다. 지구라는 땅이 얼마나 넓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을 날아가도 거기가 거기고 지구를 한 바퀴 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또 우리가 비행기를 타면 10km 위로 날아갑니다. 이 땅에서부터 10km면 10000m 상공을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은 티끌처럼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아예 안 보입니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비행기가 높이 떠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우주에서 보면 비행기는 지구에 거의 붙어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비행기입니다. 그 정도로 지구는 큽니다. 그런데 이 큰 지구에서 보니 너무나도 보잘 것 없고 작디작은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런데 이 큰 지구가 우주에서는 어떻습니까? 우주의 개념으로 보면 지구는 티끌입니다. 보이지도 않습니다. 광활한 우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큽니다. 우리 인간의 상상력이 무한하다 할지라도 이 우주를 다 품을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큰 것이 우주입니다. 그런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보이지도 않는 별입니다. 티끌의 티끌의 티끌 같은 것인데, 그 지구에 사는 우리 인간은 티끌의 티끌의 티끌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주를 창조하신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이 티끌의 티끌의 티끌도 안 되는, 보이지도 않는 존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것도 귀를 기울여서 들으십니다. 아주 적극적으로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국가의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나 대통령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와서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까? 그렇게만 하더라도 우리는 감사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말 우리 기도를 안 들으셔도 되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며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하기를 고대하십니다. 또 우리가 기도할 때는 그 기도를 무척이나 기대하시면서 들으십니다. 이것이 은혜가 아니면 무엇이 운혜입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이 종교의 신비, 믿음의 신비, 기적과 같은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신비 중의 신비는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이 티끌의 티끌의 티끌 만도 못한 우리 인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소리는 참 보잘 것 없습니다. 내용도 크기도 보잘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목소리가 큰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여.”라고 지르는 소리가 하늘을 뚫고 대기권을 뚫어 지구 위로 올라갈 만큼 크지는 못합니다. “주여.”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성전 문 밖도 나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목소리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를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는 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때로는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해도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안 들으시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낙심이 되고 실망이 되고 절망하게 되고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분명히, 반드시, 절대적으로 내 기도를 들으십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내 기도를 안 들으시는 것처럼 생각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인 시편 40편 1절에도 보면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라고 했습니다. 두 번 기다렸다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도하고. 기다리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왜 하나님 내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하나님이 안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듣고 계셨다는 것을 다윗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여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편을 읽다 보면 초반에는 “왜 하나님 내 부르짖음을 안 들으십니까?”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책이 시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크고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우리 하나님. 과연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겠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십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첫 번째 은혜입니다.

 둘째, 내 삶을 견고하게 하시는 은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삶을 견고하게 만드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삶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공부도 많이 하고 돈도 많이 법니다. 그리고 성공해야 내 삶이 견고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 중에 견고해 보이는 사람. 딱딱해 보이는 사람.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연약하고 비었고 썩었으며 공허로 가득 찼습니다. 견고해 보이는 그것이 결코 견고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견고하게 만드시면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 유약해 보여도 그 인생은 견고한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때 들으시는 것으로 끝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감사한 것은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리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40편 2절에서

“그래서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 끌어 올리셨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표현이 참 기가 막힙니다. 기도했더니 안 들으시는 것 같던 하나님이 나를 깊은 수렁과 웅덩이에서 끌어 올리셨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수렁이나 웅덩이, 늪이라는 것에 한번 빠지면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져 듭니다. 그것이 수렁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진짜 우리의 인생이 수렁 같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 문제가 해결이 되는가 하면 아닙니다. 오히려 깊은 수렁으로 점점 더 빠져 들어가고 더 돌이킬 수 없게 문제가 악화되는 일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질병의 문제도 그렇고 가난의 문제도 그렇고 자녀의 문제도 그렇고 인간관계의 문제도 내가 어떻게 풀어 보려고 해보지만, 더 깊은 수렁에 빠져 듭니다. 이것을 다윗은 3천 년 전 사람이지만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이 웅덩이에 빠진 것처럼 다급해서”

라고 했습니다. 다급합니다. 조금 더 빠지면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살려 달라고 외쳐야 되지 않을까요? 다윗은 다급해서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안 들으시는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그 수렁에서 끌어 올리셨습니다.
 수렁에 빠지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싶고 도망쳐 버리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내 인생이 정말 수렁에 빠진 것처럼 힘이 들고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까? 이런 마음이 들 때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들으시고 수렁이나 늪에 빠진 것 같은 자기를 들어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발을 반석위에 세우셨습니다.

“내 발을 견고한 반석 위에 세우셨다.”

 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등산을 가면 정상에 간 사람들이 꼭 하는 일이 있습니다. 위험해 보이는 벼랑 끝으로 가서,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벼랑 끝에 갔을 때 벼랑의 디딤돌이 물에 젖어 있거나 흙으로 되어 있거나 약한 모래로 되어 있다면 그 곳에 서 있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곳에 서 있다 디딤돌이 무너져 내려가면 자기도 낭떠러지 밖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벼랑 끝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사람은 바위 위에 서 있습니다. 반석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석 위에 서 있으면 두렵지 않습니다.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수렁과 같은 곳에서 끄집어 내셔서 끌어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수렁인, 불안한 자리 무너질 자리에 놓으시는 것이 아니라 반석위세 세우십니다. 반석 위세서 뛰어 보니 무너질 것 같지 않습니다. 든든해집니다.
 오늘 우리를 흔들리지 않는 자리에 놓으시고 내 삶을 견고하게 하시는 것이 기도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또 하나의 은혜입니다. 그런 점에서 내가 기도하는 것 자체가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제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부터는 10월 달이 시작됩니다. 이 가을에 기도를 통해 주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들어가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기도는 내가 할 줄을 몰라서 못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못합니다.”, “바빠서 못합니다.”, “어려워서 못합니다.”라고 합니다. 이래서 못하겠고 저래서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하나님은 다 알아서 해 주시지 기도라는 것을 하게 만들어서 힘들게 만드십니까?”라고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능력 있는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해서 골탕 먹이시려고 “너희들이 기도해야만 응답한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나 자신과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개선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나고 성숙해지는 과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능력 있는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 방법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만약 “저는 기도에 대해 너무 잘 알아요. 기도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썼어요.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잘 압니다. 저에게 기도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한다면 맞습니다. 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에 대해 아는 모든 지식이 허사입니다. 기도에 대해 그만큼 몰라도 “하나님, 내가 답답하고 힘이 듭니다. 어렵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 기도에 대해 논문을 쓰고 박사 학위를 받은 그 기도 전문가보다 훨씬 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제가 신앙생활을 10년을 하고 20년을 해도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잘 모르겠어요. 진짜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가시는 지도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이 나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시는 방법이 없겠습니까?”라고 합니다. 제일 좋은 처방전은 “기도해 보세요.”라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분명한 처방전은 없습니다. 아무리 들어서 알아 봐야 믿을 수 없습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내가 진짜 엎드려서 기도해 보고 내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해 보면 하나님이 도우시는지 안 도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 신앙이 믿음의 반석 위에 서 있지 않고 흔들린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 가을에 기도해야 합니다. 내 믿음이 견고해 지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내가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벌써 30년이 지난 일이지만 제가 전도사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아무 것도 모르는 전도사 시절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목사님 자리에 올라오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전도사였던 시절에 남자 집사님이 계셨는데 항상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입이 늘 나와 있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다른 성도들은 은혜를 받는데도 혼자 입이 나와 있었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내가 입이 제일 크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 분은 사업도 안 되고 하니 늘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려우니까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그렇게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렸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그 입이 쑥 들어갔습니다. 저를 찾아와서 “전도사님, 기도한다는 것은 정말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진짜 응답하십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어 기도했더니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일은 처음 경함해 봅니다.”라고 하더니 “전도사님도 꼭 기도해 보세요. 놀랍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 그게 정답이지. 기도해 보면 알 것을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를 따질 필요가 뭐가 있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가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증명하라고 하면 “직접 기도해 보면 압니다.”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기도해 보면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해 보면 수렁에 빠진 것 같은 문제 속에 있던 나를 건져내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던 마음이 변해 이제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런 문제가 한순간에 회복될 수 있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가을에 기도를 통해 이런 기적을 경험하게 되어야 합니다.


 셋째, 탄식이 변하여 새 노래가 되게 하시는 은혜

 노래라고 하는 것은 내가 기쁠 때 나옵니다. 두려운데 노래가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하면서 계단을 내려갑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뭔가 좋은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합니다. 기분이 좋으면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부릅니다. 내 머리 속에서 “너 지금 기분이 좋으니 노래를 불러라.”라고 해서 노래를 부릅니까? 아닙니다. 내 생각과 전혀 상관없이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이것을 새 노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40편 속의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더라”

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언제까지 입니까? 내가 죽게 되었습니다. 왜 날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왜 내가 매일 기도하는데 응답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크라이(cry) 즉  울부짖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끝나고 희망은 없어지고 절망만 남은 것처럼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나를 깊은 웅덩이에서 건져내셨고, 새 노래 곧 하나님께 올려드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탄식 중에 있던 내가 기도하니 하나님의 응답과 기도를 체험하게 되고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목회사역을 하며 수도 없이 이런 경우를 보았습니다. 많은 분이 저에게 상담을 오실 때는 울면서 들어옵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나 젊은 청년이나, 무슨 문제가 다급하면 저를 찾아옵니다. 목사라는 존재는 희한합니다. 목사 앞에 서면 저보다도 연세가 많은 분도 울고 병원에 찾아가 손을 한번 잡아주면 그냥 우십니다. 뭐가 그렇게 설움이 복받치는지 다 눈물을 흘립니다. 얘나 어른이나 연세가 많은 분이나, 문제 앞에서 어려움을 당하다 목사 앞에 가면 웁니다. 그분들 사연을 들어보면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연이 많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은 대부분 건강이나 자녀의 문제입니다. 자녀가 사업을 하다 어려워지면 부모가 마음이 아픕니다. 도와주고 싶은데 능력이 없습니다. 너무 괴로우니 자녀를 생각하면서 웁니다. 또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암수술을 받아야 됩니다. 요즈음에는 암환자가 많습니다. 암이라면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기도를 하면 기도를 받으면서 창피한 것도 없이 눈물 콧물을 쏟으면서 하나님을 붙잡으면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은 혈루증 여인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받습니다. 놀라운 것은 며칠이 지나고 나서 제 방에 찾아올 때는 다 웃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잘 되었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렇게 잘 될 줄 알았으면 수술 받기 전에 그렇게 울었을까요? 모든 인생이 끝난 것처럼 울던 분들이 시간이 자니고 나면 “목사님, 모든 것이 잘 되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배드릴 때 자세가 달라집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고난이 살짝 있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찬송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찬송가에 쓰여 있는 문자대로 찬송을 불렀지만 이런 일을 경험하면 똑같은 찬송이지만 다른 찬송을 부릅니다. 노래가 달라집니다. 그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다가오고 그 찬송을 부르며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이 새 노래입니다. 매일 부르던 노래가 아니라 다른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젊은 청년들 중에서는, 결혼을 못해서 찾아옵니다. 30대 중반 후반을 바라보는데 기도를 받습니다. 노처녀로 죽을까봐 걱정이 태산입니다. 기도하는 저도 ‘젊었을 때 어떻게 해보지? 나이 들어 오면 어떡하냐?’라는 생각도 들지만 기도를 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몇 날이 못 되어 배우자를 데리고 옵니다. 게다가 어디다 숨겨 놓았었는지 그렇게 멋진 배우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찾았니?”라고 묻습니다. 그렇게 배우자를 데리고 와서 주례를 해달라고 합니다. 이런 청년이 한둘이 아닙니다. 며칠 전만 해도 울면서 짝을 달라고 결혼시켜 달라고 하더니 이제는 웃으면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합니다. 몇 년이 지나면 그 청년이 또 옵니다. 아기가 안 생긴다는 것입니다. 한나의 슬픔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는 것입니다. 나팔관이 잘못 되었거나 자궁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임신이 안 된다 하면서 울면서 옵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도 기도 열심히 해라. 하나님이 하시면. 사라는 90세에도 아이를 낳았다. 하나님이 태의 문을 열어 주시실 것이다.”라고 하고 보내면 놀랍게도 아이가 생기고 출산을 합니다. 이런 경우가 우리 교회에 수두룩하게 많습니다. 2부 때도 이 설교를 했더니 여기저기서 소리를 내고 웃었습니다. 다 이런 과정을 겪은 자녀들입니다. 지금까지 100% 성공입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제가 제주도에서 집회를 하는데 한 분 여자 분이 결혼한 지 8년이 되었는데 아이를 못가졌다고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처음 보는 분이었지만 그분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하면 100% 임신이 됩니다. 제가 임신 전문 목사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열어 주시면 8년이 아니라 10년이 넘은 사람도 임신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태의 문을 열어 주시면 임신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덧붙이며 기도를 했습니다.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탄식하는지 모르지만 지금 문제가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수렁에 빠진 우리를 끌어 올리십니다. 우리의 슬픔과 탄식과 한숨과 이 모든 것이 변해 새 노래가 되게 하시는, 기쁨이 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 가을에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영적 교제 가운데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 놀라운 기적과 승리를 경험하길 기도합니다.

       



번호
날짜
설교자
제목
성경본문
영상
615
2018.12.9
박동찬 목사
 누가복음 1 ...
 
614
2018.12.2
박동찬 목사
 이사야 9 : ...
 
613
2018.11.25
박동찬 목사
 롬 5 : 5 - 8
 
612
2018.11.18
유경동 목사
 벧전 1 : 1 ...
 
611
2018.11.11
박동찬 목사
 창 3 : 8 - 12
 
610
2018.11.4
박동찬 목사
 시편 118 : ...
 
609
2018.10.28
박동찬 목사
 창세기 1:1-5
 
608
2018.10.21
박동찬 목사
 에베소서 5 ...
 
607
2018.10.14
박동찬 목사
 민수기 14 :...
 
606
2018.10.7
박동찬 목사
 골로새서 1 ...
 
>>
2018.9.30
박동찬 목사
 시편 40 : 1...
 
604
2018.9.23
박동찬 목사
 출애굽기 3 ...
 
603
2018.9.16
이승우 목사
 삼상 1 : 9 ...
 
602
2018.9.9
박동찬 목사
 삼상 17 : 1...
 
601
2018.9.2
박동찬 목사
 요한복음 21...
 
 1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운영자에게 메일보내기

SSL certific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