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 (살후 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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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설교날짜 2018.10.7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골로새서 1 : 18 - 20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1. 지친 모든 사람들에게 안식과 쉼을 제공하는 교회
 2.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
 3. 복음의 능력이 넘치는 교회
    
■ 말씀 골 1:18-20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오늘은 우리 교회가 세워진지 2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창립 23주년을 맞기까지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수없이 많은 사역을 하고 돕는 선교단체도 많았습니다. 너무나도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은 것이 참 감사해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앞으로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크게 부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나? 사역을 많이 하는 교회를 꿈꾸어야 하나?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나?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하나?’ 이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어떤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용히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역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역을 많이 하다 보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역에 지쳐서 나 자신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잊어버립니다. 내가 사역을 잘 했다는 생각에 빠져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이 시대에 우리 교회뿐 아니라 ‘한국 교회가 추구해야 할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추구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일까요?

 첫째, 지친 모든 사람에게 안식과 쉼을 제공하는 교회

 교회는 지친 모든 사람에게 쉼을 제공해야 합니다.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가 어떤 곳인가?’에 대한 많은 신학적인 정의가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교회는 성도가 곧 교회이다.’, ‘교회는 어느 지역에 건물로서 세워진 곳이다.’라는 등 여러 정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교회론을 이야기할 때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이미지는 바로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집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자녀들이 있습니다. 교회에도 보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자녀 된 우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집 안에서 함께 생활하며 한 아버지를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아버지 아래 우리는 형제자매입니다.”라는 것이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볼 때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도 바로 교회는 안식하는 곳이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무거운 짐을 다 벗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하게 해 주셨습니다.
 집은 일하는 곳이기 이전에 쉬는 곳입니다. 교회에 가면 이 일도 시키고 저 일도 시킵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에서 일하기 이전에 먼저 쉬라고 하는 것입니다. 쉬고 안식을 얻고 힘을 얻어서 힘이 생기면 그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봉사하고 섬길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일을 하다 지쳐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서도 지치고 교회에 와서도 지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오면 일단 주님 안에서 안식해야 합니다. 쉼을 통해 힘을 얻어야 합니다. 집에 들어가서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들어가면 입었던 옷도 벗고 편하게 눕습니다. 내 집이기 때문에 편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성도님들에게 편한 집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 때 떠오르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올 때마다 쉼을 얻고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다 보면 힘들고 지칠 때가 많습니다. 낙심이 될 때도 있고 절망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머릿속에 무엇이 떠오릅니까? 저는 교회가 떠올랐으면 합니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또는 가정에 있다가도 마음이 답답하고 심령이 괴로우면 교회가 떠올라야 합니다. ‘교회에 가서 기도 좀 하고 와야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꼭 예배가 있는 날이 아니더라도 오면 교회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1층에 벧엘 성전이 열려 있고 3층에 본당이 열려 있습니다. 들어와 보면 아무도 없습니다. 조용한 곳에 혼자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고요한 가운데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 저 왔어요. 지쳤어요. 힘이 듭니다.” 그때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이 보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말씀하시고 “내가 너의 상황을 안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음성을 들을 때 우리의 심령이 얼마나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지 모릅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성전에서 문을 닫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신비한 빛을 바라보며 “예수님.”이라고 부를 때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릅니다. 30분도 좋고 1시간도 좋고 그저 앉아서 십자가를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는 나가면서 ‘그래.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했으니 힘을 얻고 다시 한 번 도전해 보자.’라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고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버티고 지탱하는데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 때 교회가 떠올라야 합니다. 교회는 내 아버지인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내 집입니다. 내 영혼이 쉴 수 있는 집입니다.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그런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세상에 많은 동물이 있지만 오직 인간을 가리켜 안스로포스라고 하는데, 그 뜻이 바로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존재, 하나님을 기억하는 존재, 하나님께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크리스천에게 주어진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기도를 잘 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와서 “아버지 나 왔어요.”라고 하면 됩니다. 육신의 아버지를 대하듯 “아버지, 나 왔어요.”, “아버지 나 힘들어요.”라고 하며 십자가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힘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고가의 작품입니다. 자그마한 그림이지만 들녘에서 일을 하던 두 부부가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잠깐 멈추어 서서 기도하는 모습의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 그림이 그렇게 대단하게 각광을 받고 고가에 팔리는 이유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인 기도의 가치, 종교의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정기적으로든 일시적으로든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제단에서 가만히 묵상하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힘을 얻고 위로를 받고 돌아가는 안식처가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꼭 그렇게 주님과 늘 나와서 교제하고 무슨 일이 생기든지 교회를 떠올리고 내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에 나와 기도하고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교회

 부모님에게 가장 큰 기쁨은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말씀을 멸시하지 않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셨던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청종하고 따라갈 때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살아갈 때 가장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도 보면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또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귀한 이유는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교회를 유기체로 설명합니다. 회사나 군대 등 세상의 모든 조직은 유기체가 아니라 조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인 유기체입니다. 머리되신 예수님과 몸인 교회이기 때문에 죽은 조직이 아닌 것입니다.
 살아있는 유기체의 특징은 머리의 지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걸어라.”라고 하면 발이 걷습니다. “밥을 떠서 먹어라.”라고 하면 손으로 밥을 떠서 먹습니다. 머리의 지시를 제대로 받을 때 온전하고 건강한 몸이 됩니다. “뛰어라.”라고 해서 뛰다 보면 숨이 차면 머리는 “쉬어라.”라고 합니다. 그럴 때 몸이 서서 쉽니다. 그러면서 체력을 보충합니다. 이것이 유기체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를 주님의 몸 된 교회로 생각할 때 예수님이 우리의 머리시니 교회가 건강하려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거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거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해서 건강한 것이 아닙니다.
 뇌성 마비 환자들은 누구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뇌성 마비 환자들은 몸이 잘 안 따를 뿐이지 생각은 굉장히 영리하고 똑똑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뇌성마비가 아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을 생각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단지 몸이 불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몸이 뒤틀리기도 하고 꼬이기도 하며 사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그 이유는 머리의 명령을 몸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연결체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색해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고 욕을 먹습니다. 이상하고 어색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교회가 머리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해야 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비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야 합니다. 교회는 머리되신 주님의 명령을 따르기 보다는 우리의 인간적인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교회의 방향을 정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일산광림교회가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이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인가?”, “주님의 말씀인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이고 사명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맞다면 어떤 상황과 형편에 있다 할지라도 그 일을 향해 나아가고 도전해야 합니다. 때로 순종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귀찮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라도 순종하겠습니다.”라는 할 것 같이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그 일을 행하는가?’ 하는 행위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 내가 바빠요.”, “지금 내가 지쳤어요.”, “지금 내가 힘들어요.”, “나중에 할게요.”라고 하며 미루다가 결국 그 일을 못하고 불순종하고 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을 시키셔서 광야생활을 할 때 광야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기의 편의대로 살았습니다. 조금 불편하고 조금 마음에 안 들면 입에서 나오는 것이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탄식만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 삶이 바쁘고 힘듭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바쁜 중에도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지혜와 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큰일이 될 수도 있고 작은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내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로 결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만해도 사역을 할 때 교회가 규모가 있으니 많은 곳에서 도와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받는 것보다 돕는 것이 복되다 생각하고 돕습니다. 그러다 보면 재정이 다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도와 달라고 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우리가 재정 형편이 안 좋습니다.”라고 하면 안 믿습니다. ‘도와주기 싫으니 저러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계속 저를 설득하려고 합니다. “진짜 없습니다.”라고 해도 안 믿습니다. 끝까지 붙잡습니다. 그러면 제가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니가 있을 때만 돕는 것이 아니라 없을 때도 도울 수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어떨 때는 ‘나에게 분별의 은사가 필요하다.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담임 목사인, 불쌍한 박 목사에게 지혜의 분별의 은사가 있게 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대로 된 곳을 잘 도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우왕좌왕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일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편이 좋을 때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자세가 필요하고 그 마음으로 행하게 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더 큰 은혜와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참 감사한 것은 저희 교회가 지난 23년을 돌아볼 때 수도 없이 많은 일을 했습니다. 적어도 일산광림교회로 인해 기뻐하는 곳이 세계 도처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도울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섬길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하고 선교단체를 지워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성경에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이루겠다고 매주 화요일에 나가서 전도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 명씩 전도를 해 오면 교회에서 얼마씩 돈을 주는 줄 압니다. “그러니 저들이 저렇게 열심히 하지.”라고 합니다. 아니지 않습니까? 보상도 없지만 열심히 나가서 섬기고 봉사하고 전도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성도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소문이 나서 너도나도 도와 달라고 오는 분이 많습니다.
 가만히 보면 저희 교회에 은혜가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엎드려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많이 나타나고 기적도 많이 일어나고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성도님들이 우리 일산광림교회에서 복을 많이 받으시는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한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것이 아니었기에 아깝지만 나눌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의 응답이 넘칠 뿐 아니라 교회가 안정되었습니다. 또 세상에서 칭찬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입니다. “없는데 빚까지 내서 도우려고 합니까?”라고 합니다. 손익계산도 못하는 사람들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분명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성경에 보면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떡을 한 조각 얻어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배가 고팠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떡을 한 조각 얻어먹으러 갔습니다. 그러자 사르밧 과부가 자기 집에는 통에 가루가 한 주먹 밖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름이 기름병에 아주 조금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름으로 가루를 반죽해 떡을 한 조각 만들어 아들과 둘이 먹고 ‘이제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으니 죽어야 되겠다, 어쩔 수가 없다. 여기까지가 우리 인생인가 보다.’라는 생각으로 죽기만을 기다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엘리야라는 사람이 오더니 자기에게 떡을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할까요? ‘야, 참 염치도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지 않을까요? 사르밧 과부는 그 떡을 자기랑 아들이 먹는 대신엘리야에게 주었습니다. 내 아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나는 안 먹어도 아들은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반을 갈라 엘리야와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는 그것을 다 온전히 주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보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계셨기 때문에 결국 엘리야가 먹어서 사르밧 과부와 그 아들이 굶어죽을 것 같았지만, 비가 오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붓고 반죽을 해서 떡을 만들어 먹어도 통의 가루가 마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적이 오늘날 성도님들의 가정에도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손익계산을 하면 분명히 우리가 손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명을 감당합니다.”라고 하며 나아가게 될 때 그 은혜가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이어져 갑니다.
 그래서 영적인 세계는 세상의 논리나 가치나 세상적인 시각이나 경험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그 일에 앞장서고 그 일에 충성하며 나아가게 될 대 하나님은 이 교회를 기뻐하시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에 부족함이 업도록 채우시고 이 성전을 섬기는 이들에게 하늘의 은혜와 축복을 더해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셋째, 복음의 능력이 넘치는 교회

 우리 교회가 복음의 능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빵집은 빵이 있어서 빵집입니다. 은행에는 돈이 있어야 합니다. 은행에 갔는데 돈이 없으면 은행이 아닙니다. 군대에 가면 군인이 있고 전쟁을 치를 무기가 있습니다. 학교에는 좋은 선생님이 계시고 학생들이 있고 가르치는 교재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목사님과 성도님과 교회건물 등 많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있어야 할 핵심적인 것이 있는데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없는 교회는 빵이 없는 빵집과 같습니다. 빵이 없는데 빵을 사러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교회에 복음의 능력이 사라지면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면 복음의 능력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의 주제는 복음으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한 단어로 복음입니다. 그 중에 복음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

이것이 성경의 주제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한 단어로 축약을 하면 예수님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능력의 역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굶주린 자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먹여 주셨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이 된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시기도 하고 상담자가 되어주시기도 하고 위로자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천국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가만히 교회를 바라볼 때 교회와 성도님들 그리고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당시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몰려갔습니다. 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예수님께 있었기 때문에 몰려갔습니다.
 요즈음에 유명한 빵집에 가보면 사람들이 몰려있습니다. 맛있는 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너무나도 평범하게 배가 고프면 빵을 먹으러 빵집으로 갑니다. 영혼이 굶주리면 교회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왔더니 먹을 양식이 없는 것입니다. 영의 양식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교회에 다니나 안 다니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쓸데없이 왜 교회에 가느냐?”라고 하며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오늘 우리 일산광림교회에 복음의 능력, 예수님의 능력이 넘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지치고 힘든 일이 많습니다. 삶의 문제, 가정의 문제, 영적인 문제, 질병의 문제. 그런데 교회에는 영적인 문제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복음의 능력이 없다고 하면 빵이 없는 빵집과 무엇이 다를까요?
 창립 23주년을 맞아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은 우리 교회에 복음의 능력이 넘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이기를 힘썼던 초대교회처럼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임하면 역사가 나타납니다. 오늘 날에도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 성정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추호도 잊지 않고 분명하게 믿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은 성경에나 있는 거지 오늘날 교회에서 뭐 그런 걸 바랍니까? 요즈음과 같은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맞지 않는 것 아닙니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 생각을 겸손히 하나님의 능력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마가복음 16장 17절과 18절에서 다음과 이야기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으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을지도 모른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낫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약속을 하셨다면 예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분명히 그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먼저 있게 될 때 복음의 능력이 회복됩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없을 때에는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린다 해도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기도할 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 진리만큼은 절대로 잊지 않고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원수를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헤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라고 합니다. 담대하게 이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원수의 능력까지 제어할 권능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주셨는데 자꾸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주셨음을 믿습니다. 원수가 나와 내 자녀들을 공격하지 못하고 내 가정을 공격하지 못하고 이 교회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분명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는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진실로를 반복하는 이유는 너무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자꾸 강조를 하시는 이유는 못 믿기 때문입니다. “이거 진짜야. 믿어야 돼.”라고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집니까? 어떻게 예수님이 하신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 다음 말씀은 더 기가 막힙니다.

 “그보다 더 큰 일도 너희들이 할 것이다.”

이것이 요한복음 14절 12절 말씀입니다. “목사님, 해 봤는데 안 돼요.”라고 하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해본 김에 끝까지 해야 합니다.
 제가 기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많은 예화를 듭니다. 그 중의 하나가 도끼로 나무를 찍는 이야기입니다. 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찍을 때 한번 찍어서 나무가 넘어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안 넘어집니다. 그것을 보고 와 “목사님이 도끼로 나무를 찍으면 넘어진다는 말은 거짓말이야. 성경에 잇는 말씀도 거짓말이야. 내가 찍어 봤어. 안 넘어져.”라고 합니다. 왜 안 넘어갔습니까? 한번만 찍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분명히 넘어진다는 것을 믿고 계속해서 도끼질을 하면 어린 아이가 해도 언젠가는 그 나무가 쓰러집니다. 중간에 포기하니 안 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는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언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 말씀을 믿고 기도하며 도전할 것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라는 분명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분명한 믿음이 있을 때 복음의 능력이 어느 순간엔가 부터 우리를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교회 가운데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들의 해답은 결국 예수님 아니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들 속에서 새로운 믿음의 역사가 끊이지 않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또 그 능력으로 사는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믿음의 경주를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창립 23주년을 맞이해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님들에게 쉼이 있고 안식이 있는 교회. 복음의 능력이 넘치는 교회.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더 기도하며 그런 교회를 만들어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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