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 (살후 1:11-12)
> 인터넷방송 > 예배 > 주일예배
 
 
제목   인생의 광야 길을 걸을 때  
 
인생의 광야 길을 걸을 때
설교날짜 2018.10.14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민수기 14 : 20 - 24
 

 

인생의 광야 길을 걸을 때
     1. 광야가 인생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2. 나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3. 광야야 말로 행복한 곳일 수 있다

    
■ 말씀 민 14:20-2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글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상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성경을 읽다 보면 광야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옵니다.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광야를 지나왔고 그 광야에서 많은 경험이 있었던 사람이 신앙의 위인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야곱입니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뜻하지 않게 아버지와 형을 속였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것이 다 들통 나서 도망을 쳤습니다. 그는 적막하고 아무도 없는 고요하고 쓸쓸한 곳인 광야 길을 혼자 지나면서 ‘내 인생이 왜 이런가?’라고 한탄했습니다. 그러던 중 꿈에서 하나님의 사닥다리가 내려와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면서 ‘아,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베게로 삼았던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이 곳은 하나님의 집이다. 쓸쓸하고 도망치는 자리, 패배의 자리, 절망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다”라는 의미로 벧엘이라는 지명을 붙였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아직도 벧엘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야곱의 경험으로 생겨난 지명입니다.
 오늘 본문인 민수기 14장 20절에서 24절에는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40년 동안 가나안이 아닌 광야에서 살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곳에서 그들은 숱한 어려움과 난관을 겪으며 정금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로 변했습니다. 모세도 40년 동안 궁궐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지만 그 이후로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떼나 치는 목자로서 40년을 보내다가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출애굽을 시켜라. 내 백성을 가게 해라.”라는 사명을 가지고 이집트에 와 바로 왕 앞에서 노예로 삼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게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세상 어떤 나라가 노예들을 해방시켜줍니까? 그들을 해방시켜 주면 일은 누가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노예들을 다 해방시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여곡절 끝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모세의 120년 인생 중에 40년은 궁궐에서 생활을 했지만 80년은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모세를 따라 나왔던 여호수아도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전쟁을 치르게 될 때 제 일선에 섰던 사람입니다. 그도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대단한 선지자였던 요한도 광야에서 석청과 메뚜기를 먹으며 지냈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40일을 광야에서 금식하셨습니다.
 광야라는 곳은 그리 달가운 곳은 아닙니다. 사람도 없고 쓸쓸하고 적막한 곳입니다. 고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또 광야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워 기온 차이가 많이 나 견디기가 힘듭니다. 버텨내기 힘든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야를 가기를 즐겨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인생을 살다가 광야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 광야는 유대 광야라든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사막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느끼는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삶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라 견딜 수고 없고 피하고만 싶은 그런 때가옵니다. 그래서 절망이 우리를 엄습해 옵니다. 마치 적막한 가운데 광야 길을 혼자 걷고 있는 것처럼 인생을 사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저주해서 이런 광야로 몰아내 벌을 주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때로 광야는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을 사람들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성경에 보면 광야에 나가서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에게 이끌려서 광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이 예수님이 금식을 하게 하시고 시험을 받게 하시고 이 모든 과정을 이기게 하신 후에 공생애를 시작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광야 길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있어도 혼자인 것처럼 느껴지고 심한 절망과 실패감 속에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고 먹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 꼭 기억해야 될 말씀 3가지가 있습니다. 인생의 광야 길을 걷고 있습니까? 이 3가지를 꼭 기억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첫째, 광야가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우리 삶의 결론지가 광야라고 하면 절망입니다. 그러나 광야는 가나안으로 가는 하나의 여정입니다.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자리입니다.
 인생을 살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정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릅니다. 다급한 일을 당하게 되면 뇌가 멈춰 버린 것처럼 아무 생각도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염려와 근심 걱정이 우리를 엄습하고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주변 사람이 원망스러워지고 하나님까지 원망하게 됩니다.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느끼게 되는 보통의 감정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가만히 보면 출애굽을 할 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 때 처음에는 희망을 갖습니다. ‘이렇게 하면 잘 되겠지’, ‘저렇게 하면 잘 되겠지.’ 그런데 희망을 가지고 도전을 했는데 잘 안 되니 희망이 변해서 절망이 됩니다. 천국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서 있는 곳을 보면 광야입니다. 출애굽을 할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이제 우리는 이렇게 고역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우리의, 자유 한 나라를 만들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좋은 땅. 비옥한 땅을 예비해 두셨으니 그 곳에 나라를 세우고 우리 후손들에게는 자유 한 사람으로서 자유 한 국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하며 꿈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소망이 생기고 꿈이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모세가 출애굽을 할 때 다 따라 나왔습니다. 환호하면서 “드디어 이제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는구나!”라고 하면서 빠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빠져 나오고 보니 당면한 현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물과 길도 없는 척박한 땅. 오직 바람만 부는 황량한 사막인 광야가 기다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실망을 했을까요? 허탈했을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원했던 것이 이것인가?’ 오히려 이집트에 살 때에는 일을 하느라 고되기는 했지만 먹을 양시고 풍족했고 먹을 물도 있었습니다. 200만 명에 가까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왔는데 도대체 200만 명이 먹을 물이 광야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양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 광야에 농사를 지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광야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힘이 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려 보자. 목이 마르지만 오늘 하루만 더 참아 보자.’라고 다짐하며 견뎠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갈증을 느끼고 화가 났겠습니까? 이들은 짜증을 내며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꾸 생각나는 것은 이집트에서의 풍족한 식생활이었습니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이집트로 돌아가자. 이집트에는 그래도 먹을 것은 있었다. 우리 건강을 책임지는 양식이 있었다. 그런데 모세 당신은 우리에게 헛된 희망만 주고 우리를 이렇게 이끌어 낸 다음에 마실 물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는 곳에서 다 죽게 하려는 거냐?”라고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성경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이렇게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는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나 같으면 정말 짜증이 났을 것 같습니다. 지도자라고 출애굽을 시켰으면 대책을 세웠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 대책 없이, 언제까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계획도 없이 나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가는데 먹을 물도 먹을 양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 자신을 비춰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불평하고 원망할 ‘만 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더 불평하고 원망했을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을 따른 결과냐? 이게 당신 말에 순종하고 따른 결과냐?”라고 따지고 들지는 않았을까요? 출애굽 과정을 통해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 하며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나 같았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갈렙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면 갈 수 있었겠는가?’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더 간절했을까요? 아니면 먹을 물이 더 간절했을까요?
 오늘 우리는 먹을 양식이 풍족하면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먹을 물이 없고 양식이 없어서 배가 고플 때 그때도 “하나님, 나는 당신을 섬깁니다.”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 순간에는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따르면 좋은 것 주신다고 하시더니 이게 뭡니까?”라고 하며 불평하고 원망하며 “그런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인생의 광야 길을 걷고 있습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업에 문제가 생긴 사람이 많습니다. 부도의 위기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나?’라는 생각을 하며 이렇게 저렇게 시도를 해보지만 풀리지 않습니다. 또 자녀들의 문제로 아파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자녀의 문제로 기도하며 아파하고 괴로워한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습니다. “도대체 하나님. 내가 이 인생의 광야 길을 언제까지 걸어야 되겠습니까?”라고 한탄하며 마음의 아픔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어찌 되었든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거쳐야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오늘 본문 민수기 14장 24절에 이런 상황속에서도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다.”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한 사람이 갈렙이었습니다. 그런 갈렙을 하나님은 칭찬하셨습니다. 똑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불평하고 원망하며 “나에게 물을 달라. 먹을 양식을 달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온전히 쫓았던 사람 갈렙이었습니다. 어떻게 갈렙은 그럴 수 있었을까요? 불평하는 것이 마땅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갈렙은 불평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갈렙의 마음에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광야가 곧 끝난다는 확신이었습니다. ‘곧 끝난다.’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40년 세월이었습니다. 40년 세월을 하루하루 ‘이제는 곧 끝난다.’라는 생각으로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지나왔던 사람. 보통 사람이라면 10년 쯤 지나면 “에이 그런 일은 없어. 내가 그 동안 헛된 꿈을 꾸고 헛된 희망을 품었어.”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40년 동안 하루 같이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최종 목적지는 광야가 아니라 가나안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광야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지나쳐 가는 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을 가기 위해서는 여러 도시를 거쳐야 합니다. 천안을 거치고 대전을 거쳐서 가든지 아니면 다른 길로 돌아서 가든지 거쳐야 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 도시가 싫다고 해서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 곳을 지나쳐 가야지만 부산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성장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에서 사춘기도 지나고 반항기도 지나며 흔들리기도 하고 비를 맞기도 하지만 그러다 보면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에서 갑자기 성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축복의 땅을 약속해 주시고 인도해 가십니다. 그러나 출애굽을 하자마자 축복의 땅을 주시면 감사한 것을 모릅니다. 자기들이 잘나서, 자기들의 노력으로 얻은 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광야라는 곳으로 내몰면 내가 노력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니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 내가 하나님을 앞서서는 안 되는 것이로구나!’, ‘인생을 살 때 잘되거나 못 되거나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자가 없고 하나님이 열어 주시면 닫을 자가 없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되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좋은 민족으로 세워져 갑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선물을 주시기 이전에 광야라는 과정을 거치게 하십니다.
 인생의 광야 길을 걷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목사님, 이미 저는 오래 걸었습니다. 남들은 짧게 지나가는데 저는 왜 이렇게 오래 걸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오래 걸었다는 것은 이제 끝날 때가 다 되엇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광야 길을 통해 광야에서 오래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광야 길을 통해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주저앉지 말고 믿음으로 도전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나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감사한 것은 성경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내가 출애굽을 시켜주었으니 이제는 너희들끼리 해 봐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출애굽을 하는 그 날부터 가나안에 들어가는 날까지 그들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합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가 않습니다. 어떤 문제에 빠져 있어 사람도 안 보이고 권면의 이야기도 들리지 않습니다. 인생의 광야 길을 갈 때 그런 상황 속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옆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들리지가 않고 마음에 와 닿지가 않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눈을 감고 믿음의 눈을 열어야 합니다.
 참 감사한 것은 우리가 어려운 날이 닥칠 때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보면 문제가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가 아닌 구름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보입니다. 성령님이 비둘기와 같이 임재하시면서 나에게 말씀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것이 보입니다. 눈을 감고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눈을 감고 기도하고 눈을 감고 찬송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에게 임하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용기가 임하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평안이 우리의 마음속에 임하게 됩니다. 어려운 문제 속에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1부 예배가 끝나고 어떤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목사님, 많은 사람이 나를 죽이려고 덤벼드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 마음을 지켜주시는 거예요.”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은혜가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상할 만큼 마음이 평안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는 사인입니다. 세상이 두렵고 나를 흔들고 죽이려고 할 때 눈을 감고 믿음의 눈을 열어야 합니다. 육신의 눈을 닫고 믿음의 눈을 열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그 하나님이 보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게 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경황이 없어집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 합니다. 이럴 때 생각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 말아야 되는데 성경 말씀 가운데 좋은 말씀이 많습니다. 이사야서 41장 10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ㅁ라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성경 말씀 하나하나가 얼마나 절묘한지 모릅니다. 오른 팔과 왼팔 중 어느 팔이 더 셉니까? 왼손잡이는 왼 팔이 더 세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오른 팔이 더 셉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을 때 그 팔이 얼마나 강하고 강력한 팔입니까? 왼팔은 약하십니까? 강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팔이 아니라 오른 팔로 붙드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적극성을 표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사야서 43장 1절에서 3절 말씀은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야곱과 이스라엘은 우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범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너의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너의 구원자임이라”

물 가운데 지날 때 물이 우리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실 것입니다. 불 가운데를 지날 때에도 불에 타지 않도록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9장 15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너를 잊을지라도 나는 너희를 잊지 않을 것이라”

이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광야 같은 인생길을 살아갈 때 무엇을 붙잡습니까? 세상에서 잘 나가는 회장님이 나를 붙들어준다는 이야기를 믿겠습니까? 아니면 권력을 가진 어떤 분이 지켜주겠다는 말을 믿겠습니까? 우리를 지켜줄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온전히 지켜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지킵니까?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는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부활 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같이 버려두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아예 하나님의 이름을

“아들을 낳으리니 그 아이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 위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어떤 상황 어떤 처지 형편 속에서도 우리를 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광야 길을 걷고 있어서 우울하고 힘들고 막막합니까? 광야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광야가 광야로 보이지 않고 광야에 핀 무지개와 희망이 보입니다. 그래서 광야 길을 멋지게 건너가게 됩니다. 
 매순간 하나님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노트에 기록을 해 보았습니다. 세상에서는 월요일이라고 하면 월요병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세상에서 다시 일해야 하니 지겨워. 어떻게 다시 견디지?’라는 마음이 담긴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새 희망이 넘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함께 하시는 날입니다. 세상 속에 나갈 때 혼자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손을 붙잡고 나가시니까 “하나님, 이번 한주간도 내가 기대합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월요일은 새 희망의 날입니다. 화요일은 기쁘고 행복한 날입니다. 트리니티 성경 공부가 있고 전도하러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요일 아침에 말씀을 듣고 김밥 한 줄을 먹으며 함께 교제하고 전도를 나가는 것은 참 복된 일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천국에 가면 이런 것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이렇게 화요일에는 전도를 하러 나갔구나!”라고 하실 것입니다. 화요일에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를 얻고 힘을 받습니다. 그래서 화요일은 기쁘고 행복한 날입니다. 수요일은 기적이 일어나는 날입니다. 수요일마다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어떤 기적을 주시겠습니까?”라고 하며 기적이 일어나는 날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목요일은 어떤 날입니까? 세상을 축복하는 날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정하고 살면 힘이 납니다. 집을 나오면서 옆집을 축복합니다. “하나님, 이 집을 축복해 주세요. 이 집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것 같은 데 이 집도 축복해 주세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운전을 하고 가다가도 내 차를 앞질러 가면 “하나님, 저 차도 축복해 주세요.”라고 하며 마음껏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루를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목요일 하루는 무조건 축복하는 것입니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축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 권한을 마음껏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사장님도 축복하고 나를 못살게 구는 누구라 할지라도 마음껏 축복하는 것입니다. 금요일은 무슨 날입니까? 속회 모임을 하는 날입니다. 속회식구들이 서로 사랑하는 날입니다. 주일에 만나고 금요일에 만나니 얼마나 반갑습니까? 손을 잡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격려해야 합니다. 같이 위로하며 성도의 교제가 일어나야 합니다. 서로 가족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날이 금요일입니다. 토요일은 무슨 날로 할까요? 정하면 됩니다. 저는 가족 사랑의 날로 정했습니다. 가족들이 다 모이니 할 수 있으면 외식을 하고 아니면 집에서라도 조촐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날. 행복한 날 아니겠습니까? 주일은 무슨 날입니까? 가족 모두가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고 힘을 얻는 날입니다. ‘아, 오늘도 우리 박동찬 목사님이 한 주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을 주셨으니 정말 좋다. 이 말씀 붙잡고 살아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희망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광야에 있든 광야가 아닌 곳에 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있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어려운 역경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반드시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이니까 그것을 믿는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있는 곳이 어디이든 지옥이 아니라 천국으로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광야야 말로 행복한 곳일 수 있다

 어느 목사님이 오래 전에 하신 설교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가나안은 어디인가?’라는 설교였습니다. ‘진정한 가나안은 먹을 것이 풍족하고 땅이 비옥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곳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곳이 진정한 가나안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들으면서 반문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려움이 없으면 교회를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간절해집니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이 누리는 것을 나도 가지고 싶고 세상적인 욕망과 같은 것들이 간절해집니다. 그런데 어려워지면 하나님이 간절해집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나를 살려 주세요. 나를 붙들어 주세요.”라고 하게 됩니다.
 세상이 간절합니까? 하나님이 간절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 놓았더니 그 땅에서 바로 타락하고 자기네들 마음대로 세상적인 정욕을 따라 살다가 하나님 앞에 반복해서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사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양식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매일매일 의지하며 살았던 광야야 말로 영적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라는 그 이야기에 제가 반문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야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저주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곳은 우리가 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훈련을 받고 있는 자리입니다. 세상에 행복한 곳이 있을까요? 가장 행복한 곳. 내가 서 있으면 행복할 것 같은 곳이 있습니까? 동남아시아의 유명한 휴양지에 가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어떤 직장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백화점에 가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어디에 있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이 가장 행복한 곳입니다. 가장 안전한 곳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입니다.
 제가 부르는 찬송 가운데 제일 많이 부르는 것은 438장입니다. 주일 예배에서도 수도 없이 불렀습니다. “우리 목사님 이 찬송 또 부르셔.”라고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심방을 가서도 부를 찬송이 생각나지 않으면 무조건 438장을 부릅니다. 개업 예배에 가서도 ‘뭘 부르지?’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것이 없으면 무조건 438장을 부릅니다. 438장 3절은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라는 가사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높은 산이나 거친 들이나 그 어느 곳이 되었든지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가장 안전한 곳도 주님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타이타닉이라고 하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배라는 별명을 가진 배도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풍랑이 불어도 예수님이 타신 작은 쪽배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가장 안전한 곳은 인간이 바벨탑을 쌓아놓고 튼튼하게 반석 위에 집을 지은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광야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3가지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광야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가나안이 다가옵니다. 두 번째는 광야길 가운데 있을 때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광야를 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곳이 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때 매일매일. 월, 화, 수, 목, 금, 토, 일 하루하루가 의미 있는 날이고 승리하는 날이 됩니다. 감사한 날이고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를 체험하는 날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보다 감사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의 동반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더불어 멋지게 인생을 살아가고 감사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번호
날짜
설교자
제목
성경본문
영상
615
2018.12.9
박동찬 목사
 누가복음 1 ...
 
614
2018.12.2
박동찬 목사
 이사야 9 : ...
 
613
2018.11.25
박동찬 목사
 롬 5 : 5 - 8
 
612
2018.11.18
유경동 목사
 벧전 1 : 1 ...
 
611
2018.11.11
박동찬 목사
 창 3 : 8 - 12
 
610
2018.11.4
박동찬 목사
 시편 118 : ...
 
609
2018.10.28
박동찬 목사
 창세기 1:1-5
 
608
2018.10.21
박동찬 목사
 에베소서 5 ...
 
>>
2018.10.14
박동찬 목사
 민수기 14 :...
 
606
2018.10.7
박동찬 목사
 골로새서 1 ...
 
605
2018.9.30
박동찬 목사
 시편 40 : 1...
 
604
2018.9.23
박동찬 목사
 출애굽기 3 ...
 
603
2018.9.16
이승우 목사
 삼상 1 : 9 ...
 
602
2018.9.9
박동찬 목사
 삼상 17 : 1...
 
601
2018.9.2
박동찬 목사
 요한복음 21...
 
 1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운영자에게 메일보내기

SSL certific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