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 (살후 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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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설교날짜 2018.11.25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롬 5 : 5 - 8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1. 조건 없는 사랑
2. 이타적인 사랑
3. 영원한 사랑
 
    
■ 말씀 롬 5:5-8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참 필요합니다.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어려운 문제도 극복하고 환란이 닥쳐도 이겨나가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녀들과 운동선수들을 응원할 때도 질책을 하고 책망을 하는 것으로는 별로 힘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 주고 지원해 준다는 마음이 있을 때에는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와도 이겨나갑니다. 그래서 ‘사랑에는 힘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참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을 영원히 지켜 줄게.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지켜 줄 거야.”라고 했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상대방에 실망과 좌절감을 주게도 되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이런 관계 속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비교해 볼 때 순간적이고 감정적인 사랑입니다. 영원할 줄 알았는데 인간의 약함으로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금방 깨어집니다. 얇은 유리컵이 떨어지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은 위험하고 약합니다. 깨어지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식 주례를 할 때 “사랑은 결코 감정이 아니라 의지입니다.”라는 말을 꼭 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의지적으로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결혼 생활을 잘 이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왜 결혼을 하려고 합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행복하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한다면 거의 매년 결혼을 해야 합니다. 결혼을 해서 누리는 행복은 끝까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혼의 목적을 행복에 두면 안 됩니다. 거룩에 두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두어야 하고 온전한 사명을 가진 거룩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사람은 때로 이런 사랑 때문에 사랑 타령을 합니다. 요즈음에 가요 중에도 사랑이 주제가 된 노래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사랑 때문에 울기도 하고 속기도 하고 상처를 받게도 되고 실망을 하게도 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더 심한 경우에는 삶의 의욕마저도 잃어버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 없이 나 혼자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더욱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의 발전을 위해 사랑이라는 것이 필요한데 그 사랑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세상 속에서는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은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다행히도 성경에서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했을 때 대체적으로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정답은 아닙니다.

정답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일대 일 관계로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에도 보니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100명, 1000명, 10000명 중 한 사람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가운데 나 혼자만 존재한다고 해도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만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가 분명히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상상이 잘 안 됩니다. 막연하게 교회에서 이야기되어지는 그런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생각과 지혜와 경험으로 가늠할 수 없습니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이지만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 믿음이 있게 될 때 우리는 세상의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이기고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일까요? 오늘 본문인 로마서 5장 5절에서 8절 말씀을 통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조건 없는 사랑

 진정한 사랑은 외적인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 삶 자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의 사랑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소유한 것을 사랑합니다. 그 사람의 외적인 것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학벌도 있어야 하고 인물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 내놓을 만한 자랑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좋아 ‘이 정도면 내가 사랑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어느 순간엔가 내가 가진 외적인 조건들이 하나하나 없어지게 될 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람 그 자체보다 조건을 따지는 사랑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면에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인 로마서 5장 6절에도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하였을 때”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8절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신 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군가가 잘 되고 성공하면, 유명해지면 “그 사람 알아요. 아주 가까운 사이입니다.”라고 자랑을 합니다. 그리고 별로 가깝지도 않은데 가까운 체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그렇게 가깝다고 이야기를 해 놓고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합니다.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 나는 상관이 없다.”고 하며 거리를 둡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말 연약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연약한 순간에. 내 옆에 남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하나님은 오셔서 “나는 너와 함께 한다. 세상 사람이 너를 다 버린다 할지라도.”라고 하시며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진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라고 하면 그 말을 좋게 받아들이면서 때로 오해를 합니다. 그것은 내가 그렇게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을 받을 만해서 사랑을 받는구나!’, ‘내가 세상적으로 착하게 살려고 하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건 당연한 거지.’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완벽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부족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보실 때 너무나도 불쌍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셔서 우리를 품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가끔 전도를 하다 보면 “저는 하나님이 필요 없어요. 성공했고 물질도 풍족합니다. 이 정도면 됩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거짓말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모두 마음이 공허합니다. 부자도 세상적인 지위를 얻은 사람도 행복이 가득한 척 하지만, 속은 공허합니다. 혼돈이 있습니다. 이 혼돈을 감추기 위해 나타나는 증상이 허세입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오토바이를 탑니다. 그러면 조용히 지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질주합니다. 자신을 봐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 제일 기쁩니까? 누군가가 부러워할 때입니다. 그럴 때 만족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좋은 차와 오토바이를 무인도에서 타라고 하면 즐거울까요? 짐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봐주고 부러워 하니 그렇게 타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허세구나!’라는 것입니다. 그 허세 뒤에는 공허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만족이 없고 공허가 있습니다.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 이렇게 하면 성공하고 저렇게 하면 행복하다는 것을 다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채워지지가 않습니다. 그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그 사랑이 나의 마음속에 와 닿게 될 때 공허함은 사라집니다. 초가산간에 살아도, 무엇을 해도 기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답입니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비어 있는 이곳을 수도 없이 많은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인간의 사랑, 물질, 세사의 지위, 쾌락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잠을 자고 일어나면 더욱 공허할 뿐입니다. 그것을 채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세상에 나아가서 “하나님이 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답입니다.”라고 합니다. 암흑 같은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빛으로 와 주셨습니다. 절망 속에 헤매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이 되어 주셨고 답이 없는 문제 속에서 갈팡질팡 할 때 하나님이 정답인 것을 보게 되고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갈 때 하나님이 생명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이고 은혜인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모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 또 달려 나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5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이니 누구든지 오라는 것입니다. 돈 없는 사람도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다시금 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 사랑을 확인하게 될 때 이 사랑이 흔들리는 나를 다시 붙잡아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다시 한 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실수하고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돼.”라고 하십니다.
 어린 아이가 일어나 걷기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 넘어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또 넘어지고 넘어지면서 다리에 힘을 얻고 일어나 걷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시며 지금도 그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둘째, 이타적인 사랑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기까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타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기적인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도 이기적인 사랑에서 이타적인 사랑으로 바뀌어 가야 합니다.
 저는 여행을 가면 수족관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쿠아리움이라고 하는데, 나라마다 참 잘해 놓았습니다. 친구 목사님들과도 태국을 갔을 때 “아쿠아리움을 꼭 보러 가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얘들처럼 뭐 그런 걸 보려고 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 그런 것은 얘들이나 보는 거로구나!’ 하고는 포기했을까요? “어른도 봐야 된다.”라고 하며 갔습니다. 외국 아쿠아리움에서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작은 물고기부터 큰 물고기까지 다 있습니다.  헤엄을 치고 노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천국이 저런 곳일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자꾸 가서 보니 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작은 물고기들도 무섭게 싸운다는 것입니다. 1cm도 안 되는 조그마한 물고기들이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처음에는 평화로워 보였는데 일촉즉발 대치 상황이었습니다. 가만히 있다 한 놈이 박치기를 하니 한 녀석이 놀라 도망을 쳤습니다. 끝까지 쫓아가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돌아와 자기 영역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도전하는 녀석이 또 있나 없나를 돌아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며 참 우스웠습니다. 그것도 힘이라고 그 곳에서 텃세를 부리며 자기의 영역을 확보하는 모습이. 동물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사랑도 똑 같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어떤 권세가 있고 힘이 있다고 생각되면, 하나님이 보실 때 참 보잘 것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힘을 과시하고 자랑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내 옆에 못 오게 만듭니다. 싸웁니다.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앞지르거나 나에게 도전이 된다고 생각되면 싸웁니다. 이타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싸울 일이 무엇일까요?
 남녀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애 하던 시절에는 실수를 해도 “괜찮아. 괜찮아.”라고 합니다. 그때는 이타적인 사랑으로 상대방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면 이타적인 사랑이 이기적인 사랑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실수를 하면 옛날에는 괜찮다고 하던 것이 괜찮지가 않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실수하려고 해?”라고 하며 공격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도 가만히 보면 처음에는 다 이타적인 사랑을 하다 이기적인 사랑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실증이 나는 것입니다. 헤어지고 떠나갑니다. 그러고 나면 후회가 됩니다. ‘내가 저런 사람을 믿고.’라고 하며 가슴을 치며 아파합니다. 그런 상처를 주고 다툼을 하는 원인이 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

고 했습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오면 천재지변이 일어날 것 같지만 사람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 다음이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지적을 하는지 모릅니다.

환경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사랑을 갖는 한 우리는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기적인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 집착입니다.

이것은 참 좋지 않습니다. 집착은 강한 소유욕입니다. 길을 가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아름답다!”라고 하고 지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그냥 나 혼자 가지고 싶으니 그 꽃을 꺾습니다. 집에 와 그것을 화병에 넣고 보며 즐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꽃은 시들어 죽습니다. 그러면 아까워합니까? 바로 버립니다. 식물이지만 한 생명을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집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 사람을 꺾어 내 소유로 삼고 싶습니다. 그래서 감언이설을 통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그 사람을 내 소유로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연구를 해도 안 됩니다. 그래서 폭력이 발휘되는 것입니다. 집착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타적인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만히 지켜봅니다. 들에 핀 꽃을 볼 때 무엇이 필요한지를 봅니다.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면 바람막이를 해줍니다. 물이 부족해 시들어 죽을 것 같으면 물을 뿌립니다. 잘 자라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토양 안에서 잘 버텨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타적인 사람입니다. 이 사랑을 통해 꽃의 생명력은 길어집니다.
 이런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며 ‘사랑이라는 것이 유효기간이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기적인 사랑을 하면 유효기간이 짧습니다. 그러나 이타적인 사랑을 하면 유효기간이 깁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죽을 때까지 이타적인 사랑으로 끊임없이 돌보아 주며 서로 사랑할 때 아름다운 천국이 됩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하나님의 사랑이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타적인 사랑이라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랑이 이기적이라면 살아남을 사람이 있을까요? 한 사람도 살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처럼 이기적인 사랑을 하신다면 “나는 너희에게 모든 걸 주었는데 너희가 그럴 수 있어?”라고 하실 것입니다. 벼락을 내리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타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넘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꺾어 버리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 말씀 중 하나가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

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꺾어진 것은 보기 싫으니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내버려 두십니다. 그리고 보호해 주시며 잘 자라도록 토양을 바꾸어 주십니다. 물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물을 제공하고 벌레가 낀 사람은 벌레를 제거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런 것에 대한 감사를 모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인도하신다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를 지키시고 이타적인 사랑으로 끊임없이 돌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깨닫고 보면 이 사랑이 바로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부족함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나는 죄인의 괴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지도 않고 왕따처럼 밀어내지만 이런 나를 하나님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대충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생명을 주시면서 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보니 말로만 이야기하고 귀로만 듣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의 부족함을 통해 보고 나면 나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웃을 수 있게 됩니다. 내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팔을 걷어 부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습니다. 나도 어렵지만 돕는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 조건 없고 이타적인 사랑으로 당신의 생명을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고 우리 삶의 능력을 삼아야 합니다.

 셋째, 영원한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처럼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합니다. 사람들마다 사랑이 한 번 두 번씩 실패를 합니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결국 상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픕니다. 사랑이 유효기간이 지나고 나니 변질이 됩니다. 변질이 된 우유를 마시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사람도 변질된 사랑을 경험하고 나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을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엔가 변질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 또 상했습니다. 다시 같은 고통을 겪고 나니 나중에는 사랑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누구를 만난다는 것도 두려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느 날 보니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말 그대로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상처를 받았던 우리의 심령이 다시 회복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은 날 버려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으니 우리는 어디에 가든지 두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세상적인 조건으로부터 자신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면 구원을 못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지만 그러나 때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세상으로 나가 고통을 당합니다.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자녀가 나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사랑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주시면서 까지 우리를 살리셨지만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합니다. 그들까지도 하나님은 사랑하시지만 돌아오지 않고 끝까지 자기들의 길을 가게 될 때 결국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요? 구원받은 우리 때문에 기쁜 마음도 있지만 구원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에 대해 아프십니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아, 이래서 우리가 전도를 해야 되는 것이로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야 하는 것이로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도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자로 서야 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조건 없는 사랑으로 이타적인 사랑으로 사랑하시되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게 될 때 세상을 넉넉하게 이기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볼 때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이 사랑을 알리고 싶어집니다.
 가정에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이 사랑을 알려야 합니다. 성공하고 공부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니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북한의 꽃제비들을 돕겠다고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갑니다. 아프리카 오지로 의료선교를 하겠다고,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그것을 다 내팽개치고 그 곳으로 들어갑니다. 세상에서 볼 때는 얼마나 어리석어 보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이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귀영화와 세상적인 좋음을 다 뒤로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러 나아갑니다.
 우리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진리를 따라 사는 우리가 되었으니 이제 그 사랑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주님 오실 계절이 다음 주부터 시작됩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살리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겨울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할 수 있는 멋진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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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2
박동찬 목사
 요한복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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