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 (살후 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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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둠 속에 비추인 빛  
 
어둠 속에 비추인 빛
설교날짜 2018.12.2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이사야 9 : 1 - 4
 

 

어둠속에 비추인 빛
-2018년 대강절 첫째 주-
1. 세상의 모든 사람은 어둠과 혼돈 가운데 살고 있다
 2. 예수님을 믿음으로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다
    
■ 말씀 사9:1-4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1)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지경을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대강절은 메시아의 오심을 갈망하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대강절이 시작되면 한 주가 지날 때마다 5개의 초에 하나씩 불이 켜집니다. 첫째 주에 하나의 초에 불이 켜지고 둘째 주에 두 개의 초, 셋째 주에 세 개, 넷째 주에 네 개의 초에 불이 켜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 째 주인 12월 25일 성탄 당일에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하얀 초에 불이 켜집니다.
 대강절의 기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의해 586년에 망했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해방을 갈망했습니다. 고통과 억압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실 메시아의 도래에 대해 갈망하는 것이 기원이 됩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 하신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 2천 년 전 아기 예수의 탄생과 더불어 성취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대강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때만 되면 마음이 설렙니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지고 흥분이 됩니다. 두주 전에 중국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다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귀에 어디선가 낯익은 곡조가 흘러나왔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어 보니 크리스마스 캐롤이었습니다. 중국 공항에 아는 이 하나 없이 앉아 있는데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듣고 있자니 저를 축복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수고하고 돌아가는구나! 이번에도 수고했다.”라고 하시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메시지가 되어 제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을 때는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에도 그런 기쁨이 있습니다. 캐롤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기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성탄의 신비와 축복 때문입니다.
 신기한 것은 성탄절 시즌이 되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캐롤을 많이 알고 또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으니 축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면서 교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기분이 들떠 마음이 설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만히 고민을 해 보니 성탄의 의미 속에는 하나님의 신비와 은혜와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이 머릿속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음으로는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탄의 신비 가운데 담겨 있는 것입니다. 봄철이 되어 추위를 깨치고 따뜻하게 비추이는 햇살을 받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성탄이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온 누리 모든 사람들에게 비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성탄의 신비와 축복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 계절이 참 좋습니다.
 그러면 성탄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세상의 모든 사람은 어둠과 혼돈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어둠과 혼돈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아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저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우리는 어둠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내면은 여전히 늘 공허와 혼돈함이 뒤섞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내면을 스스로가 느낍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내면으로부터 자유하기위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애를 씁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인간의 존재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인간의 내면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공허한가? 이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철학과 심리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사회구조를 연구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책을 읽고 연구를 해도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벌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내가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지는 것이야말로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며 돈을 악착같이 벌어 마구 씁니다. 물 쓰듯이 돈을 쓰며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마구 물질을 사용한다 해서 내 마음에 기쁨이 오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마음 속에는 더 큰 공허함이 자리 잡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니야. 누가 뭐라고 해도 권력이 최고야. 권력을 잡아야 돼. 지도자가 되고 높아져야 해.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리에 올라야 돼.”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오른다고 행복할까요? 권력무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권력의 끝자락에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적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붙잡고 사는 것은 그 기간이 극히 짧습니다. 그 이후에는 말할 수 없는 공허함과 쓸쓸함이 자리 잡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여전히 갈증이 있습니다. 여전히 갈등하고 시기하고 미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어둠으로부터 나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떤 철학자들은 “생각을 그쳐라. 고통 속에 있다는 생각을 그치면 고통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다. 내가 어둠 속에 있다는 생각을 그쳐라.”라고 했습니다. 맞는 이야기 같지만 틀렸습니다. 스스로 아니라고 위로할 뿐입니다. 실질적으로 내가 어둠 속에 있는데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어둠 밖으로 나올 수는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생각해도 여전히 속마음은 비어있습니다. 공허합니다. 혼돈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가만히 읽어 보니, 구약성경(우리는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이 있습니다). 의 주제는 어둠입니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신약에 와서 해답을 주는데 어둠 속에 있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빛인데 바로 그 빛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구약은 우리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인간이 얼마나 어둠 속에 사는 존재인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참 아니러니한 것은 세상이 어둠 속에 있을 때. 아무 것도 없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하시며 빛을 만드시고 세상 질서를 만드시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습니다. 밝은 세상 속에 살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함으로 어둠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 가운데서 빛을 만드시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서 주셨는데 인간은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고 호기심 때문에 죄를 범해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아름다운 빛을 버리고 흑암 가운데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타락한 것입니다. 그 이후 모든 사람들은 어둠의 고통 가운데 사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구약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너무 추한 인간들의 모습이 구약성경에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들어났습니다. 아담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그랬더니 그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질투해 죽입니다. 피를 흘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끝없는 인간의 욕망과 욕심으로 점철된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이라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는데 왕이 되고 나니 남의 아내를 빼앗고 자기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 남편을 전쟁터 제일선에 보내 죽게 만듭니다. 어떻게 이렇게 악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열왕기서를 보면 형제고 부모자식 간이고 없습니다.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서는 모두 죽여 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경. 추악한 인간의 단면을 모두 보여주는 성경을 거룩한 책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이처럼 인간의 속에 검은 마음들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시가 되는 것이 구약성경이지만 우리가 그런 인간들의 이야기를 성경 즉 거룩한 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어둠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그런 어둠 가운데 사는 인간에게 거룩하신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삶으로, 생명의 길로 인도되어 간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긴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구약 성경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추악한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읽고 또 읽다 보면 이 이 추악한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 내가 어둠 속에 살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오는 것입니다. 여전히 내 마음도 미움과 시기와 음란과 세상 자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공허함을 메꾸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미움, 시기, 음란, 이기심, 자기자랑이 밝은 모습입니까? 누가 보아도 어두운 모습입니다. 세상은 전구를 개발하기도 했고 과학을 더 발전시켜서 밤을 낮처럼 밝힐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겉을 밝히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어둠과 혼돈함과 공허함 속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며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마다 자신들이 부족한 것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어두움 속에 산다고 해도 아니라고 합니다. 자기들 자신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어둠인지 모르고 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이 내린 처방은 BC 586년에 이스라엘을 망하게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에 망했습니다. 이제는 나라도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억압과 고통 비웃음을 당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어둠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고 나니 필요한 것은 자유이며 어둠이 아니라 빛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를 생각하며 “빛과 자유를 주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외쳤습니다. 그 외침은

“메시야가 올 것이다. 너희를 진정 자유하게 할 메시야가 올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야를 대망하고 기다리게 됩니다. 이것이 대강절입니다. 그리고 결국 약속하신 메시야는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탄은 예언의 성취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이 12월 25일이 아니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맞습니다. 사실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그때가 언제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12월 25일이 로마에서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로 지키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정도로 들으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진짜 성탄이 언제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신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본질이 아닌 비본질적인 것으로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 가운데 유명했던 교부 중 한 사람이 요한 크리소스톰입니다. 이 분은 설교를 얼마나 잘 하는지 별명이 황금의 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AD 386년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6장 26절을 보면 세례 요한을 임신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때는 그의 아버지가 되는 사가랴가 속죄일의 임무를 수행한 직후였습니다. 지금 한국의 달력으로 따지면 9월 25일 쯤 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세례 요한이 임신되고 6개월 뒤에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출생하기까지 9달이 걸립니다. 그러면 사가랴가 속죄일 임무를 수행하고 난 다음에 15개월 뒤에 예수님이 탄생하신다는 것입니다. 9월 25일부터 15개월 뒤는 12월 25일입니다. 그래서 12월 25일에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때가 로마 달력에 의하면 동지입니다. 24절기 가운데 동지는 어둠이 제일 깁니다. 그리고 동짓날 다음부터는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참 절묘하게도 그 동짓날에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지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12월 22일이 동짓날입니다. 그런데 22일에서 25일 사이에 예수님이 탄생하셨다고 할 때 “왜 그때 오셨습니까?”라고 탄생의 의미를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는데, 우리 인생에서 어둠이 가장 깊은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어둠이 빛으로 바뀌는 과정으로 축복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서 9장 1절에 있는 말씀은

전에 고통 받는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시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는니라

입니다. 그리고 뒤에 메시아 탄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전에 멸시를 당했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은 지금의 갈릴리 해변 쪽입니다. 예수님이 자랐고 성장했고 사역을 했던 갈릴리 지역 땅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멸시를 당하던 요단 저쪽 이방의 땅인 갈릴리를 예수님이 오심으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 삶이 어둠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같은 우리의 인생이 영화로운 인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어둠이 가장 깊을 때 우리를 어둠의 깊음 가운데 내버려 두시지 않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영화롭게 하시고 우리의 길을 어둠이 아니라 생명과 밝음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성탄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우리가 어둠 가운데 살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밝히 드러내 줍니다.
 전도를 해 보면 사람들이 교회에 나올 때는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입니다. ‘내가 어둠 속에 사는 존재로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여전히 흑암 가운데 존재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 사람은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해도 교회에 나옵니다. 그래서 ‘내 인생이 이렇게 방탕하고 잘못된 길로 가는구나! 늘 하는 것이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흘러가는 세월을 보니 너무나도 가치 없는 인생을 살고 있구나! 나는 이래서 죄인일 수밖에 없구나!’ 하며 죄인 됨을 깨닫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으니 내 몸을 씻고 정결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돌아서야겠다.’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죄를 깨끗하게 해줄 세상 종교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말씀을 들으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내 죄를 대속하셨다는 말을 듣게 되니 ‘여기야 말로 내 인생의 쉼이 될 수 있는 곳이고 나의 공허함을 메울 수 있는 곳이로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 앞에 하나님 앞에 나오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탄의 의미는 우리가 빛이 필요한 어둠이기에 빛 되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음으로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성탄에는 담겨 있다

 구약은 어둠을 의미하는 것이고 신약은 빛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우리 인간이 어둠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싫어합니다. 기독교는 너무 편협하다는 것입니다. “왜 너희 예수님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이야기를 하느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인 것을 어떻게 합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러 하나님들이 만들었습니까? 한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 우리의 생명을 지으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오신 분은 한분 하나님 밖에는 안 계십니다. 우리는 그 분을 믿는 것이고 그 분이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된 인생의 길 되신 그 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무 길로 가도 서울에 갑니까?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요즈음에 많은 이에게 회자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지옥은 없다.”는 것입니다. 논쟁이 뜨거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그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불타는 그 곳에 잔인하게 보내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히틀러보다 더 잔인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시지 않고 지옥에 가라고 하신다면 잔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고 우리에게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선택하면 됩니다. 이런 점에서 무엇보다 쉬운 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그러나 선택하지 않고 어둠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내가 선택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그럴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지옥이 없다.”는 거짓말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또 하나의 현대판 선악과입니다.
 아담은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것을 먹을 때 ‘이것을 먹으면 죄다.’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안 했습니다. 죄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담 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저 호기심에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사탄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보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되었습니다. 불순종하는 것이 죄이고 죄를 선택했기 때문에 다시 어둠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 것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거짓을 통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멸망으로 끌고 갑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또한 멸망의 길로 끌고 갑니다. 그러면서 만들어낸 수많은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지옥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말이 됩니다. 그럴 듯합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짓말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지만 결국 멸망의 길로 떨어져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을 끝까지 지켜가야 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착하게 사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오히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더 착하게 사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런데 착하게 살면 구원을 받습니까?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돈이 없어서 남을 돕지 못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착하게 살고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그것을 가지고 선행에 활용을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런 말을 사람들에게 속삭입니다. “네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착하게 사니 훨씬 나아. 교회에 갈 필요도, 하나님을 믿을 필요도 없어.”라는 거짓말로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속아서는 안 됩니다.
 지옥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고 착하게 살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왜 달려 죽으셨어야 했습니까? 우리의 죄의 문제는 선행으로 될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죽어야 끝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하나님이 이 땅에 죽으시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오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고 고난당하시며, 두려웠지만 십자가의 책임을 끝까지 지심으로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면 왜 그러셨겠습니까?
 세상의 이상한 이야기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어둠에서 생명의 길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마음껏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너에게 준 자유의지를 가지고 나와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자.”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등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내 욕심을 사랑하고, 내가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그렇게 가면 멸망의 길로 간다. 가지 마라.”라고 하시니 귀찮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더 이상 나를 붙잡지 마세요, 나는 내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요즈음에는 성경의 이야기 잘못되었으니 고치자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마음에 안 든다는 것입니다. 죄였던 것을 죄가 아닌 것으로 법을 고치고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 “시대에 맞지 않으니 이제 성경을 고칩시다.”라고까지 합니다. 사탄의 장난질이 어디까지 확산되고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내 생각이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의 생각도 옳을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어둠 가운데 있을 때 빛을 통해 아름다운 빛의 세계인 에덴동산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세상을 인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죄를 범해 다시 어두움의 세상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어둠 속에 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은 이 땅 가운데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둠의 세상에서 빛의 세상으로 건너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수많은 사람에게도 선택의 여지를 가지고 이야기 하십니다.

“너희가 어둠 가운데 머물러 있을 것이냐? 빛의 세상으로 나아올 것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탄절이 세계적인 축제이기 때문에 기뻐하고 환락의 세계 속으로 빠져 드는 것이 아니라 ‘성탄의 시즌 속에서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주님을 알지 못하고 어둠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이 잘난 줄 알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에게 빛의 기쁨, 생명의 기쁨을 체험한 우리들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둠 속에 있지 마세요. 성탄은 그저 우리가 선물을 받아서 기쁜 날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축제이기 때문에 기쁜 날이어서 기쁜 날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신 날이기 때문에 기쁜 날입니다. 생명을 주시기로 작정한 날이기 때문에 기쁜 날입니다. 성탄을 진정 즐기기 원하신다면 어둠 가운데 있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생명의 길로 건너오세요.”

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 이웃과 가족들에게 전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절은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기쁨 가운데 동참하는, 더욱 더 의미 있고 값지고 즐겁고 감사하는 축복의 계절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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