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또 다시 일어나는 교회 (빌 3:12~14)
> 인터넷방송 > 예배 > 주일예배
 
 
제목   함께 또 다시 일어나는 교회  
 
함께 또 다시 일어나는 교회
설교날짜 2019.1.6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빌 3 : 10 - 14
 

 

 

함께 또 다시 일어나는 교회
 1. 함께 할 때 역경도 극복한다
 2. 또 다시 도전하는 자가 승리한다
 3. 당당하게 일어서라

■ 말씀 빌 3:10-14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2)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지난 연말에 ‘올 한해 우리 교회를 무엇으로 정할까?’ 고심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단어가 있었습니다. 공동체라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라는 단어를 가만히 묵상해 보니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공동체는 굉장히 중요하고, 우리 문제의 모든 답이 공동체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체라는 것은 혼자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존재하는 모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군중이나 무리라고 합니다. 공동체에는 공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공감하는 가치가 있고 서로 귀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위해 같이 일하는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는 항상 어떤 비전과 목표와 열정과 사랑과 같은 팀 의식이 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생각이 다른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은 공동체라고 하지 않습니다. 공동체에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함께 하는 팀 의식이 있기 때문에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의할 때 사회적인 존재라고 했습니다.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어떤 공동체 속에 소속이 되어 힘을 얻고 위로 받고 인정도 받고 칭찬도 받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라고 정의합니다.
 일반적으로 공동체의 종류를 이야기하라면 학교, 기업, 군대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두 가지를 이야기하라면 첫째가 가정이고 둘째가 교회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없어서는 안 되는 공동체입니다. 가정이 육신적인 가족을 의미한다면 교회는 영적인 가족을 의미합니다. 가족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가족을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또 세상 사람들이 우리 가족 중 누구를 소외시키고 잘못했다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순간에도 가족들은 비판하지 않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도와서 다시 세워줍니다. 그래서 가족이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귀한 힘이 됩니다. 위로가 되고 그 자체로 기쁨이 되고 만족이 됩니다.
 교회가 그런 가족과 연관해서 생각할 때 영적인 가족이라면 바른 교회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요? 교회는 서로 비판하고 비난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세워주고 문제가 있으면 함께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고 기적을 만들어가는 곳이 교회공동체의 본질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역을 많이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영적인 가족.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자녀들로 이루어진 영적인 가족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잘 격려하고 함께하며 기도를 통해 2019년 한 해에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이루고 문제가 해결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산광림교회 모든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새해 첫 주간에 우리 교회의 표어인 “함께, 또 다시 일어나는 교회”와 연관해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삶의 교훈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3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함께 할 때 역경도 극복한다

 우리가 함께 할 때 역경도 극복하고 어려움도 이기고 기적도 만들어갑니다. 함께라는 단어가 참 귀한 단어입니다. 영어로는 투게더입니다. 혼자는 약합니다. 그러나 함께 하면 쉬워집니다. 한국에는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은 아무나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쉬운 일이라 할지라도 두 사람이 들면 더 가볍습니다. 그 이야기는 종이를 꼭 두 사람이 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함께 나누고 함께 하면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 줄은 약해서 힘을 주면 쉽게 끊어집니다. 두 줄은 조금 더 강하고 세 줄은 그보다 더 강합니다. 열 줄이 되면 그 사람의 힘으로 끊기가 힘들어집니다. 점점 모이면 모일수록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혼자 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혼과 신앙생활입니다. 결혼은 반드시 짝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반드시 함께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사람들이 싫어요. 그러니 혼자서 신앙생활을 해야겠어요. 조용히 집에서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일서 4장 20절에도 보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는 자다”

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다”

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이웃을 사랑할 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비로소 성립됩니다. “나 혼자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라는 것은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신앙생활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삶입니다. 누구와 함께 합니까? 첫째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 둘째는 성도님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가 있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속회 식구들을 만나면 어려움을 당한 속회 식구를 위해 같이 기도하고 격려하고 선교회 식구들도 같이 모여 격려하며 힘을 다합니다. 또 어려운 일이 있으면 교역자가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며 심방도 갑니다. 그래서 함께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세상적에는 잘못된 공동체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공동체에서는 진리와 바른 길을 이야기합니다. 거룩함과 가치 있게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우리가 소속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고 축복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제가 섬기는 하늘 꿈 학교에서 송년 행사를 합니다. 이 학교는 탈북 청소년 중고등부 아이들이 모이는 대안학교입니다. 중고등 학생들 70여 명이 모여 같이 생활을 하며 공부를 합니다. 이들은 어려서 사선을 넘어왔습니다. 탈북하다 보면 죽기도 하고 총을 맞는 등 여러 사고의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거쳐 정착을 하고 나면 학교 선생님들이 헌신적으로 희생을 하면서 아이들을 돌봅니다. 송년 발표회 때마다 아이들이 꿈을 이야기하는데 참 많은 이야기에 매우 놀랍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꿈이 뭐니?”라고 하면 반문을 합니다. “꿈이라는 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이에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꿈이라는 단어자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나중에 되고 싶은 것이 뭐니?”라고 바꾸어 물으면 “되고 싶다고 다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꿈을 꾸어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북한 땅의 현실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무엇이 되어야지.’라는 마음을 품지 못합니다. 그렇게 꿈이 없는 나라에서 살다 이 땅에 와서 “꿈이 뭐니?”라고 물으면 “노력하면 된다는 말입니까?”라고 물으며 놀랍니다.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하늘 꿈 학교에서 하늘의 꿈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성경공부를 하고 훈련을 시키며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봅니다. 잠을 잘 때도 믿음의 선생님들이 함께 하면서 가정에서와 같이 아이들의 생활부터 모든 것을 가르치니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 아이들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송년 발표회가 되면 자기의 꿈들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아이는 “저는 간호사가 꿈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왜 간호사가 꿈이니?”라고 물으면 “그 땅에 병들어서 아파하는 아이들이 많으니 내가 그 사람들을 치유하기를 원합니다.”라고 합니다. 통일이 되면 가서 치료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는 영양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가 너무 많으니 영양 보충을 해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식단을 제대로 만들어 건강하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는 “그 땅의 선교사가 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교회라는 것을 이 땅에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 그 곳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뭐 그렇게 꿈이 시시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시한 꿈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인생을 가치 있게 사는 귀중한 꿈입니다. 그 아이들이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 그런 꿈을 꾸는 것을 보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것은 이렇게 귀한 일이로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속에서 기적이 만들어지고 변화를 체험하며 슬픔과 절망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가 가진 힘입니다.
 얼마 전에 동물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았는데 아프리카에는 사자가 많습니다. 사자는 사냥을 할 때 늘 무리를 짓습니다. 함께 사냥을 해서 들소와 사슴을 비롯해 모든 짐승을 다 잡습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목을 물어서 숨통을 끊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것을 확인하고 나면 가족이 모여 앉아서 식사를 합니다. 그 영상에서는 아프리카의 버팔로라고 하는 야생 소 떼들 중에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힘이 얼마나 센지 그 큰 소를 넘어트렸습니다. 넘어진 소의 목을 사자가 물었습니다. 죽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머지 소 떼들은 뿔뿔이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소들 중 몇 마리가 일렬로 서서 뿔을 땅에 대고 사자를 향해 전진했습니다. 그러자 사자가 좀 당황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움찔 하니 소들이 놀라서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다 또 소 떼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사자가 또 움찔 하니 다 놀라서 도망갔습니다. 그것을 몇 번 반복하니 반복을 할 때마다 점점 더 사자에게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사자 있는 곳까지 뿔을 맞대고 왔습니다. 그러자 사자가 도망을 쳤습니다. 죽어가던 동료가 살아났습니다. 친구가 살아났습니다. 사지에서 들소가 살아났습니다. 만약에 어떤 용감한 대장 소가 “너네 가만히 있어. 위험하니 내가 해결하고 사자랑 한 번 싸워 동료들을 구해낼게.”라고 하고 왔다면 대장소도 죽었을 것입니다. 대장 소가 아무리 힘이 세도 혼자 오면 사자가 무서워서 도망을 갔겠습니까? 밥이 자기에게로 걸어오는데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약한 존재지만 힘을 합치니 사자가 도망을 갔습니다. 강한 동물들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서 힘을 합치는 것은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약한 동물들이 강한 동물들로부터 자기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연합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사람도 위기가 닥치면 ‘난 몰라.’라는 마음으로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소 떼들이 그렇게 모여 자기의 동료를 구해내는 것을 보면서 ‘아, 연합의 힘이라는 것은 바로 저런 것이로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약합니다. 그러나 모이게 되면 강해집니다. 세상 앞에 우리의 문제가 얼마나 많이 산적해 있습니까?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 혼자는 못해도 우리 뒤에 교회가 있고 교회 뒤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할 때에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존재감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우리 일산광림교회에는 여러 부서가 있습니다. 좋은 동료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이 있고 지도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 있든지 힘을 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함께 2019년을 극복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둘째, 또 다시 도전하는 자가 승리한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3장의 말씀이 바로 도전하는 자의 승리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내가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라고 했습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내가 아무리 많은 성공을 이루었어도 다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실수와 실패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당연히 넘어지고 흔들리면서 성장합니다. 실패를 경험하면서 더 성숙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라는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하고 실패하고 넘어졌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일어나서 도전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두 번 실패나 실수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실패나 실수는 아닙니다.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실패입니다. 오늘 2019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과거야 어땠든 그것을 교훈 삼아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갓 난 아기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누워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일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아무 것도 못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손가락을 움직이고 발버둥을 치고 계속 엎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태어나는 날부터 계속 누워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는 끊임없이 투쟁을 합니다. 엎드리게 되면 기다가 손을 잡고 일어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앉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벽을 잡고 일어나 흔들흔들 하면서 있다 한 걸음 한걸음 걷습니다. 나중에는 밑의 집에서 시끄럽다 할 정도로 하루 종일 뛰어 다닙니다. 
 옛날에 어린 아이가 하도 땀을 흘리고 해서 병원에 갔습니다. “얘가 이렇게 식은땀을 흘리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증세가 나타나죠?”라고 물었더니 진찰을 한 의사가 과로라고 하는 것입니다. 1살이었습니다. 얼마나 뛰어다니는지 과로로 병이 난 것입니다. 걷지도 못하고 일어나지도 못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뛰게 된 것이 아닙니다. 수도 없이 넘어지지만 다시 또 일어나고 다시 또 일어나다 보니 걷게 되고 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역사는 만들어집니다. 내가 오늘 한 번 더 도전하고 한 번 더 도전하고 또 다시 일어나고 또 다시 일어날 때 놀라운 역사가 만들어집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던 사람이지만 그래서 ‘이 정도 했으면 됐다.’라고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만.”이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나는 달려가겠다.”라고 결단했습니다. 오늘 말씀인 빌립보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

고 했습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가 중간까지 1등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만하면 되었다.’ 하고 포기합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1등이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실격 처리가 됩니다. 남은 거리가 얼마가 되었든지 끝까지 달려가서 최선을 다할 때 완주를 합니다. 중간에 만족을 하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아직도 살아갈 날이 남았다면 더 달려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셔서 맞는 날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들소인 버팔로가 사자 앞으로 달려 갈 때 안 무서웠을까요? 무서웠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 다가간 것입니다. 그것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줄 알지만 동료를 살리기 위해, 친구를 살리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가니 사자가 도망을 갔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무섭고 피하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고 피하면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나를 위해 성도님들이 기도하고 응원하고 있다.”

는 믿음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서 도전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저는 한 해 한 해를 보낼 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목회자들이 모이는 모임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참 좋은 목사님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선한 일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제가 10년이 넘도록 회장을 하고 있습니다. 연말만 되면 바꿔달라고 해도 바꿔 주지 않습니다. 한 해는 “자꾸 나에게 일 맡기지 말고 다른 사람이 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목사님이 잘 하실 때까지 하시라는 거예요. 기회를 드리는 거니까 입 다물고 열심히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그 말도 맞았습니다. 잘 할 때까지 기회를 준다는 것은 오히려 감사한 일입니다.
 만약에 “2018년까지 살고 그만 살래요.”라고 할 때 하나님이 “넌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그렇게 살면 안 돼. 다시 한 번 한해 기회를 줄 테니 열심히 살아봐.”라고 하시며 기회를 주신다고 하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한 해 한해를 살아갈 때 그런 자들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지겨운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시간이 있으면 ‘하나님이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구나! 이번에는 내가 최선을 다해 보리라.’라는 생각으로 다시 도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2019년 살아갈 때에 머릿속에 두 번째로 각인하고 생각하고 살아야 될 것이 또 다시라는 단어입니다. “또 다시 일어나 보자.”, “또 다시 도전해 보자. 함께 또 다시.”

셋째, 당당하게 일어서라

 사람의 생각과 자세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자명종 소리가 울릴 때 벌떡 일어나면 일어나집니다. 그러나 ‘일어나기 싫다. 조금만 더 자면 좋겠다. 몸이 아픈데 콧물 안 나오나? 감기 기운은 없나?’라는 생각을 하다 조금 있으면 핑계 김에 일어나고 싶지 않고 그러면 못 일어납니다. ‘닭이 우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야 일어납니다. 고민하면 못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냥 도전하고 일어나면 일어나 집니다. 그런데 일어나기 싫고 좀 더 편하고 싶고 도전하기 싫은 것입니다. “이대로 여기 침대 안이 좋사오니 못 일어납니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당황합니다. 문제 앞에서 처신하는 것을 보면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한 부류는 문제 앞에 위축이 됩니다. 그러면 사고력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마비가 되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문제 앞에 당당히 맞서는 사람은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합니다.
 골리앗이라고 하는 거인 블레셋 장수가 이스라엘과 싸우자고 서 있습니다. 문제 앞에 선 우리와 똑같은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백성은 두려워 그 앞에 감히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린 다윗이 당당히 나섰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당당히 나아가서 물맷돌을 던질 때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서는, 성경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지만, 수군수군 말이 많았을 것입니다. ‘에이 저렇게 싸우는 거면 나도 싸워서 이길 수 있었는데.’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두려워서 그 문제 앞에 서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그러나 어린 다윗은 담대하게 문제 앞에서 도전을 했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한 다음에 ‘인생이 편해졌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광야를 지나야 했고 전쟁을 치러야 했고 그밖에도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볼 때마다 우리의 인생이 똑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이 될까요? 안 됩니다. 산 넘어 산입니다. ‘죄에서부터 출애굽을 했지만 우리의 인생이 그렇다고 해서 바로 축복받고 하는 일이 잘 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2018년도에 있던 문제가 2019년도에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늘 두려워하고 불평불만을 말하며 원망스럽게 생각합니다. “왜 애굽에 잘 있는 우리를 출애굽 시켜서 이런 고생을 시키는가?”라고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도전하는 인생 자체를 즐기고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섭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차이점입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광야 생활을 했지만 항상 당당했고 모든 일에 감사했습니다. 그에 반해 불평과 불만이 많았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 몇몇 사람은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갈렙을 대적했습니다. 대적하던 이들은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기나 우리나 뭐가 다르다고 저 사람이 지도자가 된 거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내가 보기에는 나나 저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는데 왜 저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우리가 따라야 되는 거야? 어떻게 보면 우리가 나은 것 같은데 가문적으로 보나 세상 조건으로 보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대적하던 사람들이 나아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모세, 여호수아, 갈렙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다름 이상으로 다르다는 것을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내가 진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는 문제 앞에서의 당당함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진짜 믿기 때문에 문제 앞에서 당당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와도 당당하게 섭니다. 내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당당함이 세상을 이기는 경쟁력이고 무기입니다. 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것은 세상적인 편법을 사용하거나 세상적인 사람들의 권모술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붙들고 당당하게 서는 것입니다. 그럴 때 홍해를 갈라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골리앗을 쓰러트리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당당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당당함을 갖는 하나님 나라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군인들 중에서 아주 용맹한 사람을 용사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의 특징은 용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많은 종족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강하고 담대한 종족은 마사이족입니다. 이들은 얼마나 당당한지 사자가 겁을 내는 종족입니다. 아프리카의 동물의 왕이라고 하면 사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사이족 앞에서는 안 됩니다. 아프리카에 다녀 보면 먹을 것이 없어 사냥을 해야 하는데 사냥할 것도 없습니다. 마사이족들은 어떻게 생명을 연장해 갈까요? 사람이라는 존재는 약하디 존재이지만 이 마사이족들은 두 명, 세 명씩 몰려다닙니다. 그리고 자기 키 만 한 막대기를 하나씩 들고 다니면서 사자 가족이 모여 큰 사슴이나 들소를 뜯어 먹는 것을 보면 주저하지 않고 사자를 향해 돌진합니다. 사자가 평생에 그런 모습을 처음 보고는 놀랍니다. 자기들을 보면 다 도망을 가는데 사람이라는 존재가 이상하게 얼굴에다 붉은 것을바르고 주저하지 않고 달려오니 겁을 냅니다. 긴장을 하다가 한 걸음 한 걸음 더 가까이 와 대여섯 걸음을 남겨 놓게 되면 뿔뿔이 다 흩어져 도망을 갑니다. 그러면 마사이족들이 가지고 간 칼을 가지고 사자가 잡은 짐승의 다리며 염통이며 몸이며 먹고 싶은 것 다 잘라 들고 갈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양을 짊어지고 유유히 돌아갑니다. 그러면 황당한 눈초리로 사자 가족이 마사이 족 뒷모습을 쳐다봅니다. 무엇인지 모를 힘에 꼼짝을 못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사자들로 하여금 위축되게 만들까요? 당당함입니다. 얼마나 용감한지 막대기로 때리면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앞에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로 하여금 위축되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세상 앞에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히 서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2019년도에도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고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라고 하면 “아멘.”이라고 해야 하는데 “목사님, 그래도 잘 안 될 거예요.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잘 모르셔서 그럽니다.”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왜 모를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올해 표어 속 세 단어입니다. “함께” 하나님과 함께, 성도님들과 함께. “또 다시” 안 되면 또 다시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되면 또 다시 도전하는 것입니다.  손을 잡고 당당하게 일어나면 일어나집니다. 그리고 도전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나무가 한 번의 도끼질에 넘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또 다시, 또 다시 하다 보면 나무는 언젠가 쓰러집니다.
 올 한 해 살아갈 때 올해 교회의 표어처럼 함께, 또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실패해서 넘어지면 또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혼자 일어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되면 함께 성전에 엎드려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함께 나와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역사해 달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 기적의 역사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2019년도 한 해에는 믿음으로 세상 앞에 당당히 서야 합니다.
 
 

       



번호
날짜
설교자
제목
성경본문
영상
628
2019.3.17
박동찬 목사
 누가복음 4 ...
 
627
2019.3.10
박동찬 목사
 로마서 8:31-39
 
626
2019.3.3
유경동 목사
 창세기 45 :...
 
625
2019.2.24
박동찬 목사
 여호수아 6:1-7
 
624
2019.2.17
유경동 목사
 열왕기상 17...
 
623
2019.2.10
박종순 목사
 창 1:27-31,...
 
622
2019.2.3
박동찬 목사
 열왕기상 1 ...
 
621
2019.1.27
박동찬 목사
 디모데후서 ...
 
620
2019.1.20
박동찬 목사
 빌립보서 2 ...
 
619
2019.1.13
박동찬 목사
 여호수아 5:2-5
 
>>
2019.1.6
박동찬 목사
 빌 3 : 10 - 14
 
617
2018.12.30
박동찬 목사
 시편 90 : 6...
 
616
2018.12.23
박동찬 목사
 누가복음 2 ...
 
615
2018.12.16
박조준 목사
 시편 23 : 1...
 
614
2018.12.9
박동찬 목사
 누가복음 1 ...
 
 1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운영자에게 메일보내기

SSL certific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