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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을 이기는 비결  
 
세상을 이기는 비결
설교날짜 2019.1.13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수 5 : 2 - 5
 

 

 

세상을 이기는 비결
 1. 성결을 지켜야 한다.
 2. 순종해야 한다.
    
■ 말씀 수 5:2-5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사람들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역경이 있으면 그 역경을 좀 잘 헤쳐 나가기를 원합니다. 또 경쟁자가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뒤처지지 않고 따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일반적으로 가지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그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니 실망하고 절망하며 좌절할 때도 있습니다.
 반면에 성경을 펼쳐 놓고 보면 세상 이야기처럼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질 것 같은 싸움에서 승리하고 범사에 안 될 것 같은데 형통하게 된다는 내용이 매우 많습니다. 망할 것 같은데 망하지 않습니다. 죽을 것 같은 데 살아납니다. 상황이 역전되고 회복됩니다. 그 이유는 인간 세상의 모든 삶의 배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질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이기게 되고 죽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여호수아서 5장 2절에서 5절 말씀도 그런 내용입니다.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출애굽 할 수 없던, 당시에 제일 강대국이었던 이집트로부터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광야를 지나 이제 가나안 입구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서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냅니다. 보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냥 들어가도 되는데 정탐꾼을 보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의 믿음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들어가서 보고 와라.”라는 말에 그들은 정탐을 다녀왔고 “이 땅은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12명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10명의 정탐꾼은 “너무 좋은 땅이긴 하지만 그 땅에는 거민들이 있습니다. 이미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얼마나 힘이 세 보이는지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그 땅을 점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돌아서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닙니다. 그 땅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고 현실을 따지는 사람들의 눈에는 가나안 땅을 점령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그 일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데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상황을 판단하고 결국은 “우리가 가진 힘과 전략을 따져 볼 때 우리는 그 땅을 점령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보다 상황에 대한 분석을 더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40년 동안 헤매고 다녀야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40년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처음에 출애굽 했던 세대들이 다 죽고 그 광야길 가운데 태어난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도 모세에서 여호수아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위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입구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입구에서 하나님이 또 다른 명령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셨습니다. 길갈은 평지에서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여리고성에서도 눈앞에 보였습니다. 그런데 적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내용은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할례 받을 시간이 없었으니 너희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면 할례를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 됨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할례라는 것은 남성들이 포경수술을 하는 것입니다. 포경수술은 표피를 자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실 때부터 아브라함에게

“너의 후손들은 나의 언약백성이 되어야 한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 증거로 할례를 행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난지 8일이 되면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태어난 백성들은 하나님이 누군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할례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너희가 가나안 땅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선민 됨을 보여주기 위해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적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여리고성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쳐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요. 전쟁이 끝나고 나서 받겠습니다.”라든지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인 여호수아서 5장 2절부터 5절에서 주어지는 교훈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계획하고 목표를 세우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서게 될 때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가시고 회복시키시고 기적을 보이시고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요즈음에 사람을 만나보면 “힘듭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경색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힘든 일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방법을 써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별로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공약을 할 때는 공약대로 하면 잘 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뚜껑을 열고 보면 잘 되기보다는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이런 문제를 풀어갈 수 없습니다. 성경을 펴 보면 결국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오늘 우리가 2019년을 살아가야 하는 이 순간에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가 무엇을 계획할 것인가?’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여호수아 5장 2절에서 5절 말씀을 통해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2가지 비결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성결을 지켜야 한다

 성결 즉 거룩을 지키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성결, 순결, 거룩이라는 말은 똑같은 말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존재로 살아간다는 본뜻을 가졌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라는 고백이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본받으며 살아서도 안 되고 세상 사람처럼 살아서도 안 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에 있어서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보면 교회에는 다니지만 세상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똑같이 추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과 똑같은 가치관으로 삽니다. 이것은 크리스천이 아니라 교회에 다니는 세상 사람입니다. 내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것이 옳습니다.”라고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틀렸다고 하면 그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기적의 역사가 임합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그들 중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절대로 그 누구도 세상적인 방법으로 역경을 이겨나간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르치는 방법으로 승리하거나 기적을 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비웃고 틀렸다고 할지라도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나아갔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은혜가 임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요셉이 있습니다. 요셉은 한 집안의 귀한 아들이었다가 무슨 연유인지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그 당시 노예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주인이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성적인 유혹을 했습니다. 당시 노예가 주인의 명령을 어떻게 어깁니까? 요셉은 모른 척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유혹에 넘어가야 합니다.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는 “죄를 짓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게 내가 처한 형편 아닙니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변명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을 지켰습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럴 수 없습니다.”

라는 결단으로 그것을 지켜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모습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요즈음에 특히 젊은이들에게 많은 성적인 범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젊은이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부부 사이는 물론이거니와 가정마다 말할 수 없는, 숨겨야만 하는 성적인 범죄가 있습니다. 요즈음 세태가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모릅니다. 남들을 속이고 남들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속이고 마비시킵니다.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게 왜 범죄입니까? 요즈음에 다 그래요. 누구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아니에요.”라고 합니다. 세상이 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산다는 것은 그릇된 생각입니다. 우리 성도는 세상이 그렇게 살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니 깨닫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깨닫게 되니 돌아서게 되고 돌아서고 나서는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한탄을 하며 회개하고 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다 틀린 이야기로 듣습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예요? 요즈음에 다 그러는데요.”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어느 날 임하고 나니 ‘아, 이것이 정말 잘못된 것이로구나! 내가 왜 그랬을까? 어리석었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삶을 거룩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가정이 거룩하게 세워지고 우리의 삶이 거룩해지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가 임합니다.
 내가 세상 속에서 거룩함을 가진 성결한 존재로 서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힘을 덧입어야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나가 살아갈 때 “나는 교인이기 때문에 이렇습니다.”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이래서 나는 예수쟁이들이 싫어. 너희들은 좀 열려야 돼. 왜 그렇게 닫혀있고 꽉 막혀 있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나를 거룩한 존재로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비결이고 세상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다니엘이 왜 축복을 받았을까요?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망하게 되었을 때도 여전히 고위 관직의 자리에 있으면서 오랜 세월 동안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니엘은 항상 높은 관직에 있다 보니 시기하고 질투하고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모략과 모사를 꾸몄습니다. 다리오라는 사람이 왕이 되었을 때 “기간을 정해 놓고 그 기간 안에 왕 외에 다른 신에게 절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자 밥이 되게 합시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왕은 자기를 위하는 줄 알고 “그러자.” 하고는 조서를 꾸미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런 조서를 만든 이유는 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철저한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서가 꾸며진 상황에서 다니엘이 행했던 방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 6:10

 전에 하던 대로 여전히

“나는 하나님 앞에 죽더라도 사자 밥이 되더라도 예배합니다.”

라는 것이 다니엘의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지킬 것을 지키는 것이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는 마음을 다니엘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같았으면 어땠을까요? 정말 우리가 예배하고 박해 받는 시절이 온다면 “지금은 나라에서 박해를 하니 당분간 교회를 쉽시다. 안 그러면 다 죽는답니다.”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수도 없이 고백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진짜 하나님을 내가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양을 우리 교회에서는 잘 안 부릅니다. 거짓말하기 싫어서입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까? 살아가는 것을 보면 주 예수 보다 귀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돈도 귀하고 친구도 귀하고 세상의 쾌락도 귀합니다. 영화 보는 것도 귀합니다.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양을 어떻게 부릅니까?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습니까? 예수님을 세상 부귀와 바꾸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부귀를 예수님과 바꾸지 못합니다. 이것이 솔직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 실상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늘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돈 버는 것이 우선이고 친구를 만나는 것이 우선입니다. 나의 유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더 우선입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괜찮다고 합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괜찮다고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면서 죄 가운데 나아갑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은 전쟁을 앞둔 위기의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상황 앞에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불투명한 미래가 두렵습니다. 2019년을 맞이한 우리의 미래도 불투명합니다. 2019년에 어떤 일이 있을지, 어떤 사고가 있고 위기가 닥쳐올지 불투명하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이런 두려움이 올 때 우리는 돈이라도 많이 가지고 있으면 헤쳐 나갈 것 같습니다. 어떤 권세 있는 사람을 알고 있으면 잘 해결해 나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돈을 벌려고 합니다. 단단하게 기반을 닦아 놓으면 괜찮을 것 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는 우리의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겠습니다.”

라는 신앙의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명백합니다.

“너희는 할례를 받아라. 그리고 너희가 너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라. 너희가 이 위기 속에서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나의 백성으로 설 때 내가 너희들의 삶을 이끌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처럼 보여도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 속한 것이다. 내가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너희들이 내 앞에 거룩한 선민으로 설 수 있겠느냐?”

입니다. 이것을 요구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2019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내 노력으로 내 꿈을 세우고 목표를 세우고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내가 지난 과거를 다 잊겠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나의 잘못된 허물을 다 씻어 주시고 2019년 한 해를 새롭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으로 성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세상 사람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리스도인처럼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결단하고 서는 것이 2019년을 승리로 이끄는 비결이 됩니다.
 이제 돌아오는 금요일에 저희 교회에서 12시간 기도회가 있습니다. 많은 목사님이 옵니다. 며칠 전에 기자 회견을 했습니다. 많은 기독교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나와 기자 회견을 하면서 “여태까지 기도회가 많았는데 그 기도회가 금요일에 기도회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까? 기도만 한다고 무엇이 달라집니까?”라고 좋지 않은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큰 나무를 자를 때 도끼로 한번 찍어 쓰러지지 않습니다. 이런 기도회가 대한민국 여러 곳에서 자꾸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 방면에서 도끼질을 할 때 큰 나무가 쓰러지듯이 기도회를 통해 문제가 사라질 것입니다. 또 하나 이 기도회를 하는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기도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몰려오는 다음 세대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서는 성결을 선포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을 다시 세워 나갈 때 하나님은 그렇게 세워진 사람들을 통해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에 기도회를 하는 목표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를 잘 써 주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사람도 아니고 참 부족합니다. 넘어지고 쓰러지며 실수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성경의 인물들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도 실수하고 다윗도 실수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실수하고 넘어졌습니다. 잘못한 점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기로 결단하고 세상에서 돌아서게 될 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야 어떻든 새로운 2019년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롭게 주신 기회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죄의 유혹을 끊어 버리고 성령님이 우리에게 끊어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 올 한 해에는 깨끗하게 청산하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의 법과 세상의 이야기와 세상 사람들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거룩한 백성으로 서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과 기업과 삶 가운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 순종해야 한다

 흔히 우리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는 한 가지는 진짜 믿음은 순종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진짜 믿습니다.”라고 고백은 하지만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내 뜻대로 합니다.
 전쟁을 앞두고 하례를 받는 사람은 개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은 할례부터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예, 할례 받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할 줄 믿습니다.”라고 하고는 할례를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요단 강물이 범람해서 물이 흘러넘칠 때 “요단강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믿음으로 들어가면 요단 강물이 끊어지고 갈라질 줄 믿습니다.”라고 하고는 안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갈라지지 않습니다. 엘리사는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에 가서 7번 몸을 씻어라.”라고 했습니다. 그때 나아만이 “네. 그러면 내가 나을 줄로 믿습니다.”라고 하고는 들어가서 씻지 않으면 나을 수가 없습니다. 진짜 믿으면 행함이라는 순종하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할례 받아라.”라고 했더니 “죽으면 죽으리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사람이 한번 죽는데 할례를 받고 누워서 꼼짝도 못하다가 여리고성에서 사람들이 나와 우리를 죽이면 뭐 별 수 있나? 하나님이 할례를 받으라 하시니 받겠습니다.”라고 하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여호수아도 대단합니다. 전쟁을 목전에 두고 어디 산 뒤에 가서 숨은 것도 아닙니다. 여리고성에서 바라보면 길갈 땅이 그대로 내려다보입니다.  할례를 받고 누워있는 사람들을 빤히 보면서 “지금 나가서 싸우자.”라고 하면 여리고성 사람이 다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할례를 받고 누워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참 대단하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순종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믿고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갑자기 마음에 평안이 오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믿습니다.”라고 해도 불안한 상황은 그대로 있습니다. 오히려 “믿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할 때 우리 마음속에는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엄습해 올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진짜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는 뜻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믿음으로 할례를 마쳤습니다. 그러자 상황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할례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이 용솟음쳐서 칼을 두 자루씩 들고 뛰었는가?’ 하면 아닙니다. 누워 있었습니다. 힘이 없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을 했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이 아주 더 사기가 충천해서 일어나도록 해서 여리고성을 무너트릴 것 같은데 보니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고 누워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언제 여리고성에서 쳐들어올지 불안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여호수아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우리도 “하나님, 믿습니다.”라고 하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가지고 순종을 했는데 상황이 바뀌지 않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은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잘못 판단한 건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호수아도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누워 있습니다. ‘내가 실수한 건가? 이러다가 우리가 지면 어떻게 하지? 저 사람들이 지금 성문을 열고 나와 우리를 공격하면 자녀들이랑 다 노예로 끌려갈 거고 우리는 죽게 될 거야.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고민이 마음을 참 힘들게 만듭니다. 여호수아도 그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회복을 기다리면서 ‘어떻게 하지? 여리고성 앞에 혹시라도 적이 나올까?’ 하는 심정으로 여리고성 앞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그 앞에 큰 사람이 칼을 빼들고 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5장 13절에 보니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 누구냐? 우리 편이냐? 적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14절에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왜 왔을까요? 말씀에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동원되면 누가 능히 대적하겠습니까? 우리가 때로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상황이 변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변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에 천군과 천사를 보내 주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상황은 안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서 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순종하고 누워있는 그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이 대신 싸우시기 위해 군대 대장을 보내시고 천군과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리고성을 돌 때 눈앞에서 그냥 무너졌습니다. 싸우지 않았습니다. 화살 한번 쏘지 않았습니다. 그 여리고성을 눈앞에서 무너트리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눈앞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보내시고 우리를 편들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능히 대적들을 이기게 하십니다. 난공불락의 성으로 보이는 여리고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무너트리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에, 비웃음에 넘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무어라고 비웃든 그 비웃음은 어리석은 자의 비웃음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비웃을 때 하늘에 계신 이가 그들을 비웃으십니다. 영적인 세계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왜 흔들립니까? 저들은 보지 못하는 장님일 뿐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우왕좌왕 하면서 세상 속으로 넘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이야기를 듣고 세상 속으로 넘어지는 세상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믿음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니 실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그렇게 비웃었던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눈에서 영적인 비늘이 벗겨져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 보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성결한 백성으로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마다 하나님이 돕는 천군과 천사를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2019년. 한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고 염려합니까?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겠습니다. 마음에 할례를 받겠습니다. 내 삶에 할례를 받겠습니다.”

라고 하며 서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우리를 붙드시고 이끄시고 놀랍도록 축복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역경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은혜로 2019년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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