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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도가 세상을 사는 방법  
 
성도가 세상을 사는 방법
설교날짜 2019.1.27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딤후 2 : 3 - 6
 


 


성도가 세상을 사는 법 

 

1. 사명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2. 법과 규칙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3. 절제하고 인내하며 사는 것입니다. 




딤후 2 : 3 – 6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인생을 살면서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때로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노하우(know how),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이 방법입니다. 노하우를 아는 사람은 어려운 일이 있어도 쉽게 풀어갈 수 있고, 그것을 삶에 유용하게 활용하여 도움을 얻습니다. 방법을 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어떤 식당에 가 보면 똑같은 메뉴인데 참 맛이 있고, 어떤 식당은 맛이 없습니다. 똑같은 재료를 사용하는데, 차이가 무엇일까요? 요리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지요.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는 식당은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훨씬 맛있게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일을 할 때 방법을 안다는 것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줍니다. 요즘에는 작은 발명품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과를 깎을 때, 칼로 위험을 무릅쓰고 깎았습니다. 때로는 얼마나 예쁘게 깎는지 자신을 과시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요즘은 석판 같은 것으로 위에서 아래로 누르니까 사과가 동일하게 6조각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런 방법을 잘 활용하면, 훨씬 더 쉽게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그 방법을 배우려고 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운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방법을 배우고 나면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운전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차를 끌고 나가면,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방법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방법들보다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을 사는 방법입니다. 

 

‘내가 인생을 어떤 방법으로 살 것인가?’ 이것은 이런 저런 크고 작은 노하우를 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을 사는 방법이 잘못된다면 결국 그 인생이 망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방법들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질문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가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여러분, 성도가 이 세상을 사는 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사는 방법과 같을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사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과는 또 다른 방법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진짜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기독교인답게 살아야합니다. 탤런트들이 연기를 합니다. 어떤 때는 왕을 연기하고, 어떤 때는 불량배를 연기합니다. 때로는 귀족의 역할을 할 때가 있고, 조선시대 사람의 역할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진짜 그 역할의 사람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연기일 뿐입니다. 요즘 젊은 아이들이 많이 쓰는 단어 중 ‘코스프레’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런 척 하지만 결국 본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때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코스프레 해서는 안 됩니다. 연기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합니다. 자신이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아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우리가 사는 방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자세로 살고 있는가?’ 그 자세를 보면 ‘내가 진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는가?’ 아니면 ‘몸은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지만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본문 말씀에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세 가지 말씀을 전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사는 방법으로서 첫 번째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명이라는 것이 있어야합니다.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목표를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고, 어떤 역경이 오더라도 그것을 뚫어내 자신이 생각한 목표를 이루게 되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박수를 쳐 줍니다. “네게 그런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극복하였구나. 밤잠을 자지 아니하고 노력하여 그것을 이루어냈구나. 너는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하고 박수를 쳐 줍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의 목표를 향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개인의 목표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어주신 사명을 지키며 사는 것’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이 삶을 사는 방식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타인을 위해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사는 방법입니다. 그럼 혹시라도 성도님들 가운데 이런 질문을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그저 제 삶 하나 견디는 것도 힘이 들어요. 사는 것도 힘든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할 여력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역설적으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더욱 더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 성도님들이 깨닫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늘 보면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일들을 하다 보면 기도할 시간도 없고, 누구를 돌아볼 시간도 없고, 하나님의 영광이니, 나에게 부여하신 사명이니… 이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늘 바쁘게는 살았는데, 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남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을 한 것이 없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삶이 힘들고 어려운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아요. 분명히 여력이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고자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바쁘면 바쁠수록, 내 삶이 쪼들리면 쪼들릴수록,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의 영광과 사명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제 말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목사님, 그럼 직장도 버려야 합니까?” 아닙니다. 이 직장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직장 속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직장 속에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 길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을 버려야 합니까?” 아닙니다. 가정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 가정 안에서 내가 하나님의 영광,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리켜 ‘크리스천이다.’, ‘기독교인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다 같은 말입니다. ‘나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예수님께 속한 자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그 말을 해석하면, ‘나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 추구하지 않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 비록 나는 가지지 못했지만 상관없습니다.’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우리는 이미 그것보다 더 영원하고 가치 있는 하늘나라를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많은 재산을 소유한 것이 부러우십니까? 아직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고 했을 때 이미 소유한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소유한 자들입니다. 천국의 가치를 소유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어떤 사람은 군사로, 어떤 사람은 경기장에서 운동하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은 농부로 부르셨습니다. 이들에게는 ‘사명’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도 역시 사명을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군사, 병사는 내 한 몸을 희생해서라도 승리를 거둬야합니다. 무슨 사명이 있기에 그렇습니까?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지켜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날도 힘든 날도 그것을 다 견뎌내며 훈련을 받고 훌륭한 군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기장에서 운동하는 선수는 금메달을 목에 걸어서 국위를 선양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영화롭게 만들겠다는 것이지요. 그 사명이 있기 때문에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들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더운 여름에도 땀을 흘리면서 운동에 매진을 합니다. 농부는 풍성한 결실을 맺어서 이 나라 이 백성들이 먹고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사명이 있으니 농사를 짓는 것이지요. 이 사명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들은 되는 대로 살지 않습니다. “나는 자유인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됩니다.” 라는 생각은 틀린 생각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늘 생각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사명을 갖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보세요. 사명이 있는 사람은 노력하게 되어있습니다.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냥 되는 대로 살겠다는 사람은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명이 있는 사람은 노력합니다. 그런데 노력하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노력하는 사람들은 소망이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니 무언가 잘 되겠구나.’, ‘이렇게 열심히 하니 무엇인가 이루어지겠구나.’ 노력하는 사람은 반드시 소망을 가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망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행복한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많이 가졌어도 인생에 소망이 없는 사람은 인생에 낙이 없습니다. 돈을 벌었는데도 별 볼일이 없고, 높아졌는데도 별 볼일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그 소망이 있다는 것 자체로 행복합니다. 그래서 사명을 가진 사람은 노력하게 되고, 노력하는 사람은 소망을 갖게 되고, 소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축약해서 말하자면, 사명이 있는 사람이 곧 행복한 사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화려한 박수갈채를 받지 못해도 우리는 사명이 있는 자이기 때문에, 소망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어도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귀한 것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선교 일정 때문에 해외를 나갈 일이 많습니다. 자주 나가다 보니 공항에서 연예인, 탤런트, 가수, 국가대표 선수 등 이런 분들을 우연히 만날 때가 있습니다. 공항에 나가면 벌써 카메라 부대들이 얼마나 모여 있는지.. ‘오늘은 스타가 어디 나가나 보다.’, ‘국가대표 선수가 시합을 가나?’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그 상황이 맞습니다. 제가 힘들게 오지에서 3박 4일 말씀을 전하고 오면 지쳐서 탈진이 되곤 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터벅터벅 공항에 나오면, 수많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들이댑니다. 그런데 그것이 저를 찍는 것이 아니더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환호하러 나왔나.’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저보고 비키랍니다. 그 앞에서 화면 가리지 말고 빨리 비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쓸쓸히 옆으로 비켜 나오면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저분들은 왜 저렇게 환호하며 반길까?’ 그저 나를 반기는 사람은 저 쪽에 서서 기다리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며 반겨주는 우리교회 김정태 목사님 한 분이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하는데 왜 나는 안 반겨 줄까요? 이것은 저 뿐만 아닙니다. 지금도 주의 종으로서 오지에서 선교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 선교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 분들은 때로 추방의 위험 속에 있고, 살해의 위험을 받으면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후원교회를 찾지 못해서 생계가 어려운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그렇게 삽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분들은 이미 세상적인 것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세상의 길을 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붙들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우리의 삶이 그렇게 끝난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많은 주의 종들이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그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이 끝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우리의 본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천국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그 날, 수많은 천군, 천사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것이다.’ 이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기 때문에 바울은 이 세상의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수많은 주의 일꾼들이 그 길을 따라가며 사명을 감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는 것은 내 욕심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목표를 이루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부여해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진정한 제자로서의 삶이 성도의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성도로서 세상을 사는 방식은 법과 규칙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사들도 군사 작전 매뉴얼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처신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대처해야한다.’는 매뉴얼이 있습니다. 그 매뉴얼을 따라야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면 군법 회의에 불려갑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매뉴얼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은 룰을 따라야 합니다. 마라톤을 하다가 힘들다고 자전거를 타고 가면 됩니까? ‘자전거를 타면 훨씬 쉬운데 왜 뛰고 있어? 나만의 방법으로 나는 빨리 갈 거야.’ 하며 자전거를 타고 1등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것을 누가 1등으로 인정해주느냐’ 이 말입니다. 결국 실격 처리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룰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룰을 어기면 실격 처리가 되고 맙니다.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때 아무렇게나 짓습니까? 아무렇게나 씨를 뿌리고, 아무 곳에나 물을 줍니까? 농사짓는 법이 있지요. 그 법을 따를 때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나는 자유인이니 내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세요.” 이것이 아닙니다. 룰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하는 룰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목사님, 그저 세상 법대로만 살면 부족합니까? 세상 사람들보다 조금 더 착하게 살고, 세상의 법 지키며 살기도 버거운데 그것만으로 부족한가요?” 이렇게 물으시면 저의 대답은 “부족합니다.” 입니다. 많이 부족하지요. 성경은 세상 법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법과 윤리를 이야기합니다. 세상에서 범법하지 않는 수준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의 법과 윤리를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우리 자녀들이 세상을 살면서 방종하고, 자기 마음대로 여러 곳에 방탕하게 다니는 것을 원하시겠습니까? 죄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을 원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법보다 더 고차원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힘듦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그것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도록 만들어주신 법이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렵게 살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그렇게 몸부림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다보니, 이것이 억울한 것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때로 하나님은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에게 그렇게 사는 것이 손해인 것 같지만 더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렇게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생명과 천국의 축복을 허락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신년 들어서 계속 천국에 대해 말씀을 드리니까, “목사님, 왜 계속 천국 이야기를 하세요? 이 세상 이야기를 하시지.”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일 천국 타령하고 사는 것이 옳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세상 삶이 힘들다보니 이제는 천국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않느냐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 하는데, 그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천국이 없다고 하면 이 세상에서 부유하고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다 할지라도 그것은 불쌍한 인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성도님들께서 깨닫게 되시기를 믿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 비유를 하고 계십니다. ‘천국은 마치 무엇 무엇과 같다.’ 와 같은 비유의 말씀을 주십니다. 첫 번째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별 볼일 없는 밭이었습니다. 잡초도 무성하고 쓸모없는 땅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지나가다 보니 그 밭 한가운데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남의 밭에 들어가서 그 보물을 캐올 수 있습니까? 안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을 보고 와서 이 사람이 어떻게 합니까? 자신의 집에 와서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았다는 것입니다. 반만 판 것이 아니라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는 것입니다. 그 재산이면 이런 밭을 10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이 밭을 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그 밭 안에 보물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손가락질 합니다. “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합니까?” 그러나 그 밭 안에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너희들이 몰라서 그래. 그저 내가 할 바를 내버려 둬.” 하고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누가 어리석은 자고 누가 지혜로운 자입니까? 또, 천국은 마치 값비싼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합니다. 우리는 진주를 보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보면 그 진주의 가치를 압니다. 정말 값비싼 진주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온 것처럼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삽니다.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 진주를 사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이렇게 이야기할지 몰라도 그 진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그것이 손해가 아니라 유익인 줄 알기에 재산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삽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과 같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천국은 그런 것이라고 말입니다. 천국의 가치를 볼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소유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다가 참 감사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너희가 천국을 소유하고 싶다면 너희들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교회에 가지고 와라.” 하면 구원받는 사람이 있을까요? 여러분들 중에 그렇게 하고 구원받겠다며 올 사람이 있습니까? 물질이라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하며 뛰어넘기가 참 힘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천국 비유처럼, ‘그 보화를 얻기 위해서는 너희의 재산을 다 팔아야 한다.’고 한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재산을 정리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힘들어 보이지만 “재산 다 정리할래?” 그러면 그것보다 말씀 순종하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까?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내 마음대로 살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힘들지만, 그렇게 살다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어디를 가나 존중히 여김을 받습니다. 신뢰받는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말씀 따라 살면 더 나아가 천국을 얻고, 누구를 실족하게 할 이유도 없고, 상처를 줄 이유도 없고, 아프게 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로부터 존귀하게 여김 받게 하고 모든 것에 감사한 일이 생깁니다. 여러분, 말씀 따라 사는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힘들게 생각하지 마시고, 오늘부터 내 삶의 방향은 “내가 내 목표를 향해 계획을 세워 가겠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방향이 되게 하겠습니다. 내 발의 등이 되게 하겠습니다. 내 길의 등불이 되어서 그것을 따라가는 인생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절제하고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요즘 세상은 얼마나 화려한지, 눈에 보이는 것들이 번쩍번쩍 즐거워 보이고, 행복해 보입니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들을 다 하고 살면 안 됩니다.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그것이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왜 위험하다는 것입니까?” 그 곳에 맛이 들리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모르게 되어있습니다. 점점 세상을 탐닉하게 되고, 세상에 빠져들게 되고, 계속해서 죄 가운데 들어가면서 죄가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며 죄를 짓게 됩니다. 결국 망합니다. 여러분, 한 번 맛을 본다는 것은 그렇게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닌 것은 아닌 줄로 알고 절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죄의 유혹이 얼마나 강렬한지요.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는데, ‘죽을 때 죽더라도 맛이나 보고 죽자.’며 목숨을 걸고 따 먹는 것이 사탄의 유혹이고 죄의 강렬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제를 못하면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명의 이기가 얼마나 발전했습니까? 좋은 것들이 많은데 그 중에 우리가 제일 혜택을 누리는 것이 자동차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차가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200km를 달려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있게 잘 가는 차들이 있습니다. 디자인도 얼마나 멋진지 모릅니다. 문도 위로 뚜껑이 열리고… 왜 그렇습니까, 그냥 옆으로 열면 되는데 뭔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이 더 타기 힘듭니다. 지금처럼 문 열고 타는 것이 제일 편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물어봅니다. “자동차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 아느냐?” 여러분, 무엇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엔진, 어떤 사람은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탱크처럼 튼튼해야 사고가 나도 살 수 있다.”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자동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브레이크입니다. 브레이크가 없으면 이것은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살인 병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100km, 200km로 달리는 것을 즐거워할 것이 아닙니다. 브레이크가 없으면 200km로 달리고 즉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겠습니까? 살인 병기이지요. 그것을 탈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차, 비싼 차라 할지라도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탈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스펙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외모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건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저것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브레이크 시스템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브레이크 시스템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절제라는 것입니다.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하고 싶어도 참아야하고, 가지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말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먹고 싶어도 참아야 합니다.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지 못하게 되면 범죄 하게 되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게 되고, 인간관계가 틀어지게 됩니다. 절제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운동선수가 먹고 싶은데 참고 훈련에 열중합니다. 세상에서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냥 먹고 싶은 것 먹고 대충하지, 뭘 저렇게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해.’ 도대체 누가 어리석은 것이고 누가 지혜로운 것입니까? 그렇게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도전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입니까? ‘왜 저러고 사는지 몰라.’ 이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누가 어리석은 사람이고 누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군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유격훈련을 하려고 매일 아침 일어나면 총을 들고 뛰는 것입니다. “아니, 왜 그래요. 한 번에 한 번씩만 뛰지. 좀 쉬엄쉬엄 하지. 왜 저렇게 힘들게 유격훈련을 받아요?” 농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가 오는데도 들녘에 나가 돌을 줍고, 씨를 뿌리고, 물을 줍니다. 바람이 불거나 날씨가 추워도 매일 들에 나가 곡식을 가꾸면, “아니, 왜 그러고 살아요. 그냥 편하게 쉬면서 살지.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있다고 그렇게 사십니까?” 이렇게 얘기한다고 하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입니까? 우리 성도님들이 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는 대로 살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빛의 군대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경기 하는 자로 부르셨고, 농부로 부르셨습니다. 영적 수확을 하는 농부로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 훈련을 받아야 하고, 말씀도 읽고, 연구도 하고, 기도도 하고,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죄를 물리쳐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옳은 일이 아니면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참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우리를 세상에서는 어리석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한 청년이 “저는 혼전 순결주의자입니다.” 하는데, 주변에 사람들이 둘러서서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사세요?” 도대체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두워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정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따라 살겠다고 그 길을 선택하면, 어떻게 우리가 빛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때로는 절제해야 하고, 때로는 인내해야 합니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 참아야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아야 하고, 악행을 행하는 사람을 용서해야 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우리가 왜 해야 합니까? 세상에서 우리를 조롱하고 있는데, 왜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고, 세 번째는 그것이 영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한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대적입니까? 아닙니다. 세상의 문화를 통해서 우리를 공격하고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괴기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세상 문화를 보세요. 밝은 문화로 가고 있습니까, 점점 어두운 문화로 가고 있습니까? 세상 문화를 통해서 점점 빛의 자녀들을 어둠으로 오염시키고 있는 사탄의 전략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조차도 그런 사탄의 세계가 좋다고 그곳에 물들어 가면, 즉,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에 물들어 가면 어떻게 빛이 어둠을 이긴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님들, 살면서 나의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곧 우리가 빛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 하는 사명을 가진 빛의 군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본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명을 가진 자, 규칙을 지키는 자로, 절제하고 인내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갈 때, 악과 어둠과 싸우며 살아갈 때, 그 인생이야말로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임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또 가치 있는 삶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머릿속에 그리스도인에 대한 지식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빛의 자녀답게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며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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