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또 다시 일어나는 교회 (빌 3:12~14)
> 인터넷방송 > 예배 > 주일예배
 
 
제목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첨부파일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설교날짜 2019.3.10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롬 8 : 31 - 39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1.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섬세하신 사랑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로마서 8장 31절~39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본문 말씀은 읽을 때마다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사람들마다 힘든 일이 없는 사람이 없고 고난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그 고난을 이겨나가는 방법들이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고난을 이겨보려고 돈을 의지하는 사람도 있고, 술기운을 의지하는 사람도 있고, 또 친구들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때로 힘든 일을 만나거나, 어려운 때 나를 지탱해주고 이겨나갈 수 있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사랑이라고 하는 겁니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위기 속에서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고 지탱해주는 힘이 됩니다. 인간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약하기 때문에 사람의 사랑은 내가 그 사람을 믿어주고 지지해주지만 때로 넘어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감사한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붙잡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또 새로운 힘을 얻고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위기가 있어도 그 위기를 잘 극복하고 이겨나갑니다.  

 

  오늘 우리는 사순절의 절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순절을 지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당시 33세 젊은 청년이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고 또 가시면류관을 쓰고 죽었다. 그 고난을 묵상하고 또 함께 아파하는 그런 절기로 지나는 것이 사순절이 아니에요. 사순절은 오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가 하는 것을 깊이 성찰하고 묵상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는데 왜 고난을 당하셨는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이것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고 나를 위해서 이렇게 고난당하셨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을 다 넉넉히 이겨나갈 수 있는 승리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때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그 사실이 별로 감흥이 없고 힘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위기를 당했을 때 이겨나갈 수 있는 그런 지탱해주는 힘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제로는 그 사랑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고 아무리 말씀해주셔도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확증하기 위해서 선택하신 방법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죽는다. 죽음을 통해서 내 사랑이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너희들이 알아야 된다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의인이나 공로가 있거나 이럴 때가 아니라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렇게 성경에는 기록되어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말로 아무리해도 이해하지 못하니까 실제로 우리는 흠이 많고, 어리석고, 고집불통이고, 그러나 그런 우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아무런 조건없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오늘 우리가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사순절을 지나면서 많은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겠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크기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 이것을 다시 한번 풍성하게 채워가는 이번 사순절의 절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저는 오늘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신 사랑인가 세 가지 말씀을 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랑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요. 우리의 머리로 측량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말할 때 측량할 수 없는 사랑, 측량할 수 없는 은혜라고 합니다. 인간이 계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측정하는 자가 있으면 그 자를 가지고 측량을 해볼 수가 있는데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잣대를 가지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이 있습니다. 3절에 보면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가 없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바닷물이 다 먹물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 바닷물을 이 붓으로 찍어서 하늘에 쓴다고 하면, 다 쓸 수가 없다는 뜻이지요.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크기와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의미입니다. 그 말 자체가, 그 표현 자체가 측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도대체 얼마나 깊고 큰지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때로 하나님을 배신할 때가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배신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도대체 어떤 사랑입니까? 자기 아들을 내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천지 창조하신 분이 아들을 내주었다는 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 사랑이 얼마나 귀한 사랑인지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깨닫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려면 쉬워요. 그 사람이 나에게 뭘 주는지를 보면 알 수가 있어요.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귀한 것을 내줄 수가 있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내가 가진 어떤 보물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은 내 귀한 것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려고 하면 작은 것을 주면서도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겁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마음이 들지를 않아요. 모든 것을 다 줘도 오히려 주는 것이 더 나에게 기쁨이 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누군가가 나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작은 것 하나라도 주기를 아까워 하면 그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비유를 한번 하나님께 적용해보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데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성경은 아들을 내어줄 만큼 사랑한다고 대답합니다. 한 번 이 말씀을 제가 풀어서 설명해드릴게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그 사람이 그만 죄를 짓고 말았어요.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갔는데 죽을 죄라고 사형언도를 받았단 말이에요.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고 내 생명보다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 위기에 빠지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대요. 그 것은 내 전 재산을 다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말 사랑하고 내 생명보다 귀해요. 그러면 저 같으면 제 전 재산을 팔아서 그 사람을 살려요. 재산은 또 생길 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당신 아들을 주면 내가 그 사람을 살려주겠다 그러면요, 재산은 줄 수 있고 포기할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을 줄 수 있나요? 그건 못해요.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그건 못하는 거에요. 내가 가진 것을 다 줄 수는 있지만 내 아들을 대신해서 죽게 만들고 그 사람을 살려내겠다는 건 할 수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는 거에요.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대신해서 우리를 살리셨어요. 하나님이니까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던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단 사실에 우리는 더 놀라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하나님은 천지 창조를 지으신, 우주의 왕, 왕 중에 왕이신 분, 정말 높고 존귀하신 분이에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티끌같은 존재에요. 하나님은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일반적으로, 평민이 귀족을 섬기게 되어 있었어요. 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기희생을 감수했어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시절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다른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신들 가운데 높으신 진짜 신이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고 모든 신위에 높으신 신이십니다. 세상에 다른 종교들을 보면, 그 신이 인간을 희생시키잖아요. 너희들은 나를 위해서 희생되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해서 희생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세상에 어떤 역사를 봐도 평민을 위해서 더 나아가서 죄인을 위해서 왕자가 대신 죽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왕이 될 사람 세자가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아바마마 내가 대신 죽겠습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2절에 보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게 만드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이가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살리시면서 내가 내 아들을 줘서 너희를 살렸으니까 너희들 이제 죄 짓지 말고 열심히 잘 살아야 되. 이제 다시 한번 그러면 이제 국물도 없어. 이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어떤 계약 관계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붙잡아 두기 위해서 아들을 희생시키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진심으로 참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을 줘서까지라도 우리를 살리신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오해하지 말고 믿음으로 받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하나님 내가 무엇인데,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인데 저희를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할 때마다 우리 입에서 터져나오는 고백은 무엇입니까? 나를 생각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나를 위해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실만큼 나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의 사랑 앞에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못난 존재입니까? 이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났다, 초라하다. 너 왜 인생을 그렇게 사느냐? 이러지 아니하시고 잠잠히 자기 아들을 내주시고 우리를 살리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번 우리 사순절의 기간 동안에 깊이 체험하실 수 있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이 사랑을 체험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세상적인 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높아지면 어떻고 낮은 자리에 있으면 어떻습니까? 그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머리로 재단하려고 그러지 마세요. 어차피 우리의 머리로는 측량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기 위해서 기도하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 앞으로 나아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사랑은 섬세하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크고 위대하신 분이시면서도 참으로 세세한 부분까지도 관찰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섬세하신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시거나 상처를 주거나 굴욕스럽게 만드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처지, 형편을 하나하나 다 헤아리시고 살피셔서 계속 우리를 위로하고 일어나게 만드십니다. 섬세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주간에 독일에서 집회가 있었습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이 독일로  오셨습니다. 유학생들도 모이고 성도님들도 모였습니다. 저도 그 집회에 참여해서 다른 목사님들 설교 들으면서 은혜 받았습니다. 이 집회는 1년 전에 벌써 약속이 되어 있었던 집회였습니다. 몇 개월 전에 말씀 전할 본문하고 내용을 정해 달라고 해서 기도하는 중에 용서에 대한 말씀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맥락이 안 맞아요. 왜냐하면 주제가 선교와 성령이었거든요. 집회 기간동안 주제와 안 맞는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믿고, 집회 마지막 시간에 용서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십자가의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용서입니다. 우리가 용서받을만해서 용서받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도 이제 용서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마땅히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그런데 그럴 때 정죄하면 다시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용서하고 붙잡아주고 같이 일어나자 그러면 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회를 다시 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집회가 다 끝나고 그 다음 주일에 한 여자 집사님이 와서 감사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다음은 그 집사님 말씀입니다. 지난 주간 집회가 있는 동안에 조별로 모여서 대화를 했습니다. 그 중 가정에 불화가 있는 여자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이혼을 해야되겠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번 집회에 참석해보고 이혼을 결정해도 늦지않는다고 설득하여 억지로 데리고 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데 틀림없이 이번 기간 중 에 당신에게 하나님이 해답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얘기를 해서 조별모임 때에도 대화를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는 받는데 지금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주어지지 않는 거예요. 마지막 저녁 시간에 제가 올라와서 용서에 대한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얼마나 역사하시는지 말씀을 전하는데 그 말씀이 이 사람들 심령을 뚫고 지나가는 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강력한 마음을 느끼며 용서에 대한 말씀을 전했어요. 그런데 중간쯤에 앉아계신 분이 제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우시는 겁니다. 끝날 때까지도 울음을 멈추지를 않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분이 무슨 아픈 상처가 있나 보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바로 그 분이었던 거예요. 그 분이 이혼을 하려고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가 일어나기를 시작했습니다. 다시 남편을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회복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주일 날 말씀을 전하는데 한 분이 절 찾아와서 목사님 그 말씀 때문에 한 가정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그대로 다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어쩜 그렇게 원하는 그 얘기를 목사님 입을 통해서 다 듣게 해서 그 가정이 회복되었다는 얘기를 제가 듣게 될 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호텔에 와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참 하나님이 섬세하시다고 깨달았습니다. 그 분은 이혼할 것을 벌써 오래전부터 기도를 해왔던 거에요. 그 분의 기도를, 작은 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국에서 말씀 준비하는 저에게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그 집회에 강제로 오게 만들어서 그 자리에 앉게 만드시고 듣게 만드셨습니다. 회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지구를 머릿 속에 상상하고 한번 그려보세요. 머나먼 유럽 대륙에서 기도하고 있는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셔서 한국 땅에서 말씀 준비하고 있는 한 목사에게 집중하시고 그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유럽이라고 하는 땅이 얼마나 넓습니까? 그런데 거기서 만나게 하시고 말씀을 듣게 하시고 회복이 일어나도록 만드시는 그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을 할 때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거에요.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정말 놀라운 사랑인지 그 작은 한 여인의 기도를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그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고 가장 정확한 때에 그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도록 하시는 그 하나님의 섬세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그 작은 자의 기도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가만히 생각하니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우연이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아요. 그러면서 예수님은 뭐라고 합니까? 너희는 그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참새 한 마리가 공중을 날다가 떨어지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거에요. 우리는 참새보다 귀하니 오늘 우리의 삶이 우연히 이루어지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으시고 또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 놓은 좋은 일들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만드시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섬세하심은 크고 위대하신 사랑입니다.  

 

  어떤 창조 과학자들이 현미경으로 동식물들을 들여다보는데, 파리의 날개, 그 파리의 털 하나가 참으로 아름답다고 고백을 합니다. 파리라는 것이 얼마나 징그럽습니까? 그런데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니까 그런 미물, 우리들이 싫어하는 곤충, 벌레 발과 척수와 그 하나하나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세상의 어떤 사람이 그림을 그려도 그렇게 못 그릴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섬세하게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그런 사랑으로 우리를 붙으신다고 하시는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섬세하신 그 사랑을 체험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어느 순간엔가는 포기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나를 배신하기 때문에 이제 나는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인 여건이 지금 안 좋기 때문에 내가 더 이상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살다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이제 실망해서 그 사람을 더 이상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포기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요즘에는 점점 더 그 포기가 빨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사랑하면, 포기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는데 대표적인 부분이 호세야서입니다. 호세야 선지자에게 아내가 있었는데 고멜이라는 여인이었습니다. 바람기가 많은 여자였어요. 나가서 바람을 피울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 해서 들어오는 거에요. 첫째 아이를 낳았는데 이스르엘 이라는 아들을 낳고, 또 나가서 또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하고 들어와서 아이를 낳는데 로로하마라고하는 딸을 낳았습니다. 또 나가서 또 임신을 해서 얘를 낳는데 로합이라는 아들을 낳은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그 여인까지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다시 호세야 선지자를 통해서 데려오라는 겁니다.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참 잘 알았어요. 그래서 고백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 35절부터 있는 말씀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적신이나 칼이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어요. 38절, 39절을 보세요.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끊을 수 없는 거에요. 할렐루야. 우리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배신하고 나아갈 때가 많이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어떤 자매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됐느냐? 가정에 별 문제가 없었어요. 가족들 다 아무도 예수를 안 믿는 그런 가정이었는데,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교회를 안 나가면 자기가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답니다. 자기가 죽을 것 같아서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그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서 가족들을 다 구원시켜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언니를 구원시키고 동생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지금은 다 예수를 믿습니다. 마지막에는 부모님에게도 기도를 하면서 부모님을 다 전도를 한 거에요. 그래서 한 자매로 말미암아 가족이 다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온 가족이 그렇게 다 예수님을 잘 믿고 구원받는 가족이 됐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부모님이 청년 때 교회를 다녔던 것입니다. 교회 청년부 수련회도 가고 은혜도 받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고 나니깐 사는 게 바빠서 교회를 등한시했습니다. 그러고 자녀를 넷을 낳았는데 자녀들에게 예수님 얘기도 하지 않고 그냥 안 믿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왔던 거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그 둘째 딸이 에수님을 잘 믿고 그리고 구원 받았어요. 그러고는 가족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서 결국은 부모님까지 다 이렇게 구원받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부모님이 예전에는 교회를 다니셨는데 어쩜 그렇게 자기들이 성장하는 동안, 한 30년동안 단 한번도 예수님 얘기도 안하고 그랬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고 교회에서 만나서 결혼까지 해 놓고 사는 게 바빠서 그렇게 교회를 떠났다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포기하시는 게 아니고요, 결국은 그 둘째 딸의 그 마음속에 예수님을 믿는 마음을 강하게 심어줘서 온 가족이 구원받게 만드셨습니다. 그 사랑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아요. 집을 나가는 탕자를 잊어버리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교회에서 전도가 그래서 중요한 거에요. 하나님은 그 잃어버린 영혼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아는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한 영혼이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그저 전도 한 명 했습니다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녀가 돌아오는 겁니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하시는 것이 전도라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 이런 것이로구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인간은 때로 실수할 수 있습니다. 때로 신앙생활 하다가 상처받아서 옮기기도 하고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안 떠나면 좋지만 혹시라도 그렇다고 할지라도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시거나 놓는 분이 아니에요. 우리는 계속해서 그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 하나님의 붙으심의 손길을 놓지 말아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포기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을 믿으시길 축원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 손들고 나아가면 됩니다. 하나님, 저는 부족합니다. 또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의지 없어서 손들고 갑니다. 또 나아가는 겁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달려와서 우리를 또 안아주시고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너를 위해서 이런 위대한 계획들이 있어, 이런 섭리하심이 있어. 이것들을 내가 이룰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두려워하지 마시고 이번 사순절 절기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시는 가운데 그 사랑으로 인해서 힘을 얻고 승리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번호
날짜
설교자
제목
성경본문
영상
637
2019.5.19
박동찬 목사
 요 9 : 1 - 7
 
636
2019.5.12
박동찬 목사
 엡 6 : 1 - 3
 
635
2019.5.5
박동찬 목사
 삿 2 : 6 - 10
 
634
2019.4.28
박동찬 목사
 사 40 : 27 ...
 
633
2019.4.21
박동찬 목사
 마 28 : 1 - 6
 
632
2019.4.14
박동찬 목사
 요 12 : 12 ...
 
631
2019.4.7
박동찬 목사
 마 27 : 32 ...
 
630
2019.3.31
박동찬 목사
 욥 23 : 10 ...
 
629
2019.3.24
박동찬 목사
 창 3 : 13 - 15
 
628
2019.3.17
박동찬 목사
 눅 4 : 1 - 13
 
>>
2019.3.10
박동찬 목사
 롬 8 : 31 - 39
 
626
2019.3.3
유경동 목사
 창 45 : 1 - 8
 
625
2019.2.24
박동찬 목사
 수 6 : 1 - 7
 
624
2019.2.17
유경동 목사
 왕상 17:18-24
 
623
2019.2.10
박종순 목사
 창 1:27-31,...
 
 1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운영자에게 메일보내기

SSL certific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