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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끊임없는 사탄의 공격  
 
끊임없는 사탄의 공격
설교날짜 2019.3.17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눅 4 : 1 - 13
 

끊임없는 사탄의 공격 

 


1. 사탄은 육신의 욕망을 자극합니다.


2. 사탄은 우리에게 쉬운 길로 가라고 속삭입니다.


3. 사탄은 자기를 과시하라고 유혹합니다. 



눅 4:1-13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신앙생활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악한 영과의 영적 전쟁이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24시간, 365일, 악한 영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게 하기 위해 공격하고, 때로는 우리 가정과 자녀를 공격합니다. 이렇게 늘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다. 정사와 권세와 세상 어둠의 주관자들과 악한 영을 대항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으로 사탄의 공격을 이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 금식 기도하는 예수님 앞에 사탄이 나타나는 내용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고 유혹하고 공격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사탄이 어떤 식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지, 어떤 식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사용한 이 방법을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용할 때 그대로 쉽게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이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겠구나. 사탄이 이렇게 공격해 오는 구나.’ 알게 되면, 우리가 대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서 특이한 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셨는데 사탄이 공격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로 나가셨는데 성령과 교제하는 중에 사탄이 공격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중에도 사탄은 우리를 공격할 수 있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보면, 어떤 경우에는 특별한 기도를 한다든지, 부흥회를 한다든지 하면, 성령의 은혜를 덧입고 결단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회개도 하고, ‘이제는 이 말씀대로 살아야지.’하며 얼마나 굳은 의지를 다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어느 날 보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은혜 받고 집에 돌아가는 순간부터 분이 치밀어 오르고, 그냥 화가 납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성령이 충만하여 눈물을 흘렸는데, 왜 이렇게 신앙이 흔들리는지 모릅니다. 이런 경험 해보시지 않았습니까? 이게 무엇입니까?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서도 사탄이 공격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아, 사탄이 이렇게 공격을 해오는구나. 내 마음을 넘어뜨리려고 자녀들을 이렇게 들쑤셔서 내 마음을 격동시키는구나.’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될수록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이겨나가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럼 목사님, 성령 충만할 필요 없겠네요? 성령 충만해도 사탄의 공격을 받으면, 굳이 성령 충만하나 안하나 뭐가 다릅니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성령 충만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해야 그나마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습니다. 혈과 육으로, 세상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절대 이기지 못합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님이 가르쳐주십니다. 지혜를 주시고, 이기는 법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한 믿음 가운데 있을 때 승리하 수 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공격한 사탄의 공격 방법 세 가지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으로 무장해서 사탄의 공격에서 매순간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첫째, 사탄은 육신의 욕망을 자극합니다.

 

  사탄의 공격은 합리적입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다 맞습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속아 넘어갑니다.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게 할 때도 어떻게 했습니까? “이 동산 나무들의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그러느냐?” 라고 사탄이 질문을 합니다. 하와가, “아니, 다 먹어도 되는데 선악을 구분하는 이 실과만 먹지 말라고 하셨어.”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 하와의 마음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왜 다 먹어도 되는데 이것만 먹지 말라고 하셨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얼마나 교묘한지 모릅니다. ‘왜 다 먹어도 되는데 이것만 못 먹게 하지?’ 라는 의문이 들 때, 바로 그 때 사탄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걸 먹으면 죽는다고 했지만, 그 것은 거짓말이야. 경험을 통해서 알잖아. 다른 것은 다 먹어도 괜찮았잖아.” 에덴 동산에 독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까? 독이 있는 과일이라서 먹으면 죽는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모든 과일을 다 먹어도 안 죽었는데, 선악과 이것만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되고, 사탄의 말에 순종하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틀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신의 욕망을 늘 자극해서 사탄의 말을 듣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을 공격할 때도 그랬습니다. 40일을 금식하셨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셨을까요? 배가 고픈 상태에서 사탄이 나타났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광야에 먹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배는 고프지요. 사탄이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잖아. 그러니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으면 배부를 수 있잖아.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잖아. 일단은 먹고 살아야지. 이것이 죄 짓는 것도 아니니,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드는 능력을 사용해서 먹고 배를 불려라. 결국 인생의 주인은 자신이다. 네가 무너지면 안 된다. 너는 능력이 있다. 너 자신을 위해 그 능력을 활용해라.” 그런데, 사탄의 이러한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금식 해보셨습니까? 금식을 해본 사람은 압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 눈 앞에 빵이 둥둥 떠다닙니다. 먹고 싶단 말이지요. 사흘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면, ‘나에게 능력이 있다면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40일을 금식하셨으니, 얼마나 주리셨겠습니까? 그런 예수님께 사탄이 나타나서, “배고프지? 왜 그렇게 금식하고 있느냐? 인간이 먹고 살려고 사는데, 그것 좀 만들어 먹으면 되지. 그게 죄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살면 좋지 않으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먹고 싶고, 다른 것은 다 귀찮습니다. 오직 먹는 것에만 신경이 쓰이게 되는 것입니다. 졸리면 어떻습니까? 만사가 다 귀찮습니다. 잠을 자야 합니다. 고문을 할 때 제일 심한 고문이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입니다. 잠을 못 자게 하면, 잠을 자고 싶어서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됩니다. 인간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욕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고 지낼 만하면, 그 다음에는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이 스물스물 올라오게 됩니다. 그래서 속이 비어있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면, 쾌락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게 되고,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도 짓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것이 맞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는 안 되는 일도 먹고 살기 위해서 다 해도 된다는 것으로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탄이 “네 인생의 주인공은 너야. 네가 잘 돼야지. 네가 배고프면 어떡해.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어라.” 한 이야기는, 정말 설득력 있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탄의 유혹 앞에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 있는 일을 행하며 사는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것이 목표가 되고 이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생애는 어리석은 생애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본받았던 수많은 사도들과 사도 바울의 생애는 어리석은 생애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세상의 누구보다도 잘 먹고 잘 사는 인생을 살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사도 바울은 이 문제 앞에서 당당했습니다. 먹고 사는 원초적인 본능에 휩쓸려서 그렇게 이끌리는 인생을 살지 않고 가치 있는 삶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가장 영광스러운 삶, 가치 있는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TV에 김홍신이라는 작가가 나왔습니다. 그 분이 어떤 종교를 가지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분이 글을 참 잘 쓰십니다. 이 분이 국회의원을 그만 둔 후, 다시 작가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정부에서 장관직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장관직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나?’ 고민을 하다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고구려, 고려, 조선의 역사 다 잘 되어있는데 발해의 역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발해가 지금 어떻게 사라졌는지, 발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국내에는 어떤 기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발해의 역사를 기록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는 자료가 없으니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중국에 가 보니, 발해와 관련된 역사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료집을 500권을 모아왔습니다. 500권을 살펴 보는데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을 한 권 쓰기 위해서, 그 500권이 넘는 자료를 다 보고 연구하며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상관없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이 분이 그렇게 자료를 모아 연구하며 글을 썼습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라면 장관직 제의가 왔을 때 수락했겠지요. 그러나 김홍신 작가는 장관직은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지만 발해의 역사를 찾아 만드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하기 힘든, 도전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장관직을 거절하고 책을 썼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분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 ‘이 분의 종교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참 바른 생각을 가지고 사시는 분이심이 느껴졌습니다. 적어도 세상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사시는 분이시구나. 세상 사람들이 쫓아가는 것을 내팽개치고 자신이 준비한 일을 위해 사는 분이시구나. 이 분은 삶의 자세가 참 바르다. 본받을 만한 분이시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은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장관, 정치인, 경제인이 되는 것입니다.” 라고 하지만, 사실 본인들이 꿈꾸는 이면에는 ‘남들보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인생의 꿈과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 도전할 만한 일, 사명을 가지고 사는 일이 진정 중요하다고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배가 고프니까 “먹고 배 불러라.” 하지만, 예수님은 “아니,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이 있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을 때 그저 떡 먹고 배부르게 남부러울 것 없이 살라고 이 땅에 보내신 존재가 아니다.” 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어제 교회에서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시는 사회봉사부 부원들과 함께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모이셨습니다. 한 분 한 분 간증을 하셨습니다. 남을 돕고 섬기고, 병이 들어서 아픈 분들을 돕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 자리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가서 보여주었더니, 또 그 아이가 남을 돕고 섬기는 것을 배우며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 마음에 기쁨이 왔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늘 헌신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하는 구나. 신앙이 알차게 성장하고 계시구나. 정말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 도전하며 살고 계시는구나.’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에 큰 기쁨이 생겼습니다. 제 마음 속에 이러한 기쁨이 있으니,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큰 기쁨이 있을까요?..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존재입니까? 교회에 와서 기도해서 내가 잘되고, 내 가족이 잘되고, 내 자녀들이 잘되면 그만인 것인가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세상을 살 때, 가치 있고 의미 있고 내가 희생하고 헌신함으로써 누군가가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인생, 또 내가 섬기고 내 것을 나눠줌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지만, 섬기고 나누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지요. 사탄의 이야기에 속지 마시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위해 도전하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둘째, 사탄은 우리에게 쉬운 길로 가라고 속삭입니다.

 

  “어려운 길로 가지 말고 쉬운 길로 가라.”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길을 싫어합니다. 쉬운 길을 좋아합니다. 사탄은 틈만 나면 우리에게 쉬운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두 번째 유혹을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모든 것을 아담에게 넘기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 관리하라.”며 모든 권한을 아담에게 넘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이야기에 순종함으로 그 모든 권리를 사탄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순종한다는 것은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탄에게 순종했다는 이야기는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 사탄에게 속한 자이고, 사탄이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종은 주인의 말을 듣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결국은 아담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들고 다 누구에게 주었느냐하면 사탄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노예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그 원죄로 인해 그 이후의 모든 인류는 사탄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노예는 자신의 것이 없습니다. 모두 주인에게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사탄에게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5절과 6절에 나와 있는 이야기입니다. 마귀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5절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라고 합니다. 내게 넘겨준 것, 누구로부터 넘겨받았습니까? 아담으로부터 넘겨받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담을 유혹해서 내 종이 되게 만들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부여하신 권세를 다 나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7절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님, 당신이 이 모든 빼앗긴 이 세상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는 것을 내가 압니다. 내가 이것을 모두 돌려줄게. 그 대신 나에게 절하시오.”라는 것입니다. 나한테 절하면 이것을 다 돌려주겠다, 여러분 이것이 진실이겠습니까? 거짓이라는 것이지요. 사탄은 아담을 속였습니다. 아담의 모든 것을 빼앗았던 사탄이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쉬운 길을 안내합니다. “어려운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가지 말고, 그저 눈 한 번 질끈 감고, 침 한번 꿀꺽 삼키고 못이기는 척 절 한번해라. 그럼 이것 다시 다 줄게.” 이것이 속임수이지요. 아담과 하와를 속인 똑같은 방법으로 예수님을 속여서 예수님의 사역을 끊어버리려고 하는 사탄의 속셈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예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무엇입니까? ‘쉬운 길이 있지만 나는 그 길을 안 가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가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신명기서를 가지고 대적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탄은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방법으로 유혹합니다. 쉬운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쉬운 길이 좋은 것이 아니고 옳은 길을 가야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세상에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쉬운 길이 있는데 뭘 그리 어려운 길을 가느냐.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너희를 자꾸 어리석다고 하지 않느냐.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살아라. 쉬운 길이 얼마든지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경은 결코 우리에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쉬운 길을 가라’ 이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옳은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라는 것입니다. 변칙적인 것은 아무리 좋아보여도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이 어떤 길입니까? 힘든 길입니다. 피하고 싶은 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하나님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셨습니다. 그만큼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지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져야할 길이라면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 원합니다. 그리고 묵묵히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모습, 그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웁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구나. 힘들어도 의로운 길을 가야하는 것이구나.’ 그래서 우리는 ‘나도 힘들어도 끝까지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쉬운 길을 찾고자 하면, 우리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내가 재정적인 문제가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재정적인 문제가 있는데 이 문제를 제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문제 제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복권을 사는 것입니다. 한 10장을 사서 하나님께 “한 1등부터 10등까지 다 내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러고 금식 기도를 합니다.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하고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응답한다니까 의심을 안 하고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되겠습니까? 기도하다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으니까 거짓말로 기도하는 것이지요. “하나님, 이것만 되면 제가 십일조 내고, 교회 재정 문제 다 해결하겠습니다. 하나님 좋자고 제가 이것을 하는 것이지, 저 좋자고 하는 것 아닙니다.”며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래, 기특하다.”며 이루어주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재정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없으면 없는 대로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교회의 재정 문제를 못 풀어서 전전긍긍하시는 분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것이 내 기도라고 생각하고, 내 신앙이라고 생각하면서 결국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40일을 기도했는데 정말 1등부터 10등까지는커녕, 10장 중에 된 것이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기도해도 안 되는 구나. 하나님은 안 계셔. 나는 이 교회를 떠날 거야.’ 하며 자신의 신앙까지 버리는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도박장에 가서 동전을 넣고 레버를 당기면서 “동전이 주르륵 나올 줄로 믿습니다.” 기도해도 되나, 안 됩니다. 안 되면 하나님이 그 분을 사랑하시는 줄로 믿으세요. 되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요행수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저 없으면 없는 대로, 내가 의와 진리의 길을 가겠습니다. 편법을 사용하거나 쉬운 길을 가지 않겠습니다. 남들을 이용하거나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오히려 ‘바른 길을 가겠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사탄의 유혹을 받지 않고 세상을 사는 방법입니다.  

 

  성도님들이 전도하시며 “교회에 오세요. 교회에 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간혹 듣게 됩니다. 그러시면 저는 걱정이 됩니다. 교회에 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시면 걱정이 됩니다. 그 말 듣고 교회에 왔는데 해결이 안 되면, 그 분은 기독교인들이 다 거짓말쟁이로 알 것이고…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내 문제를 해결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해결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는 것을 깨달았으면 ‘이제는 나도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세상의 편법을 따라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제는 내가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르겠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겠습니다. 소금이 되겠습니다.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 되어져야 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사탄은 우리들에게 “다 거짓말이야. 들을 것 없어. 쉬운 길, 좋은 길, 편안한 길로 가. 내가 열어줄게, 하나님이 안 열어주면 나라도 열어줄게.” 라고 속삭입니다. 그 말에 속지 마세요. 우리가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평생 주님이 가르쳐주신 길을 가겠습니다. 그 길을 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지혜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셋 째, 사탄은 자기를 과시하도록 유혹합니다.   

 

  세 번째로, 사탄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뛰어내려 보아라. 천사가 너의 발을 붙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잖아. 하나님의 아들이니 뛰어내려. 아무리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아. 그러니 한 번 보여주면 될 것이다.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와서 발을 붙들고 사뿐히 땅에 내려주겠지. 그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정말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고 박수갈채를 보낼 것 아니냐? 그런 좋은 방법을 내버리고 왜 그렇게 고생하고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느냐? 하나님의 아들 됨을 보여주어라. 과시해라. 그러면 누구도 너를 업신여기고 무시하지 못할 것이 아니냐?” 하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볼 때마다 제가 어렸을 때 놀던 것이 생각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요즘처럼 재미있는 장난감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딱지치기, 구슬치기 아니면 달리기 놀이가 전부였지요. 경찰 도둑 놀이하고 다방구하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다가 재미가 없으면 하다못해 무엇을 합니까? 계단에서 뛰기를 한단 말이지요, 그렇죠? 여섯 번째 계단에서 누가 뜁니다. 그리고 잘난 척을 합니다. 그럼 누군가가 일곱 번째 계단에 올라가서 뛴단 말입니다. 생각나십니까? 그러면 누가 또 여덟 번째 계단에서 심호흡을 하고 뜁니다. 보는 동네 아이들이 모두 흥미진진해서 긴장을 하면서 ‘뛰나, 못 뛰나’ 합니다. 펄쩍 뛰면 다 놀랍니다. 그 아이는 얼마나 우쭐하며 자신을 과시하는지 모릅니다. 그럼 또 한 아이가 아홉 번째 계단에 도전하러 올라갑니다. 그것을 왜 뛰나 모릅니다. 그렇죠? 아무 의미도 없는데 말이지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 친한 친구가 아홉 번째 계단에서 뛰다가 발목을 다쳤습니다. 자신을 과시하려고 뛰었다가, 한 동안 절뚝거리며 다녔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은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저 조금만 있으면 자신을 과시하려고 한단 말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신을 계속 과시하려고 하다보면, 거짓말을 하게 되고 때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해라’, 성경은 늘 겸손하라고 이야기하는데, 우리의 본능은 계속 자신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부추기느냐? 사실은 사탄이 부추긴다는 것입니다. “너 정말 잘났잖아. 한 번 보여줘.” 무엇을 보여줍니까? 그저 겸손해야합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제가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에 새로 한 분님이 오셨습니다. 이 분이 신앙이 없는 분이고, 교회를 다닌 적도 없던 분인데 오신 지 얼마 안 돼서 자신의 집에서 연합 속회를 드리자고 교인들을 초청을 하셨습니다. 본인 교구 식구만 초청한 것이 아니라 온 교인들을 초청해서 꽤 많은 성도님들이 갔습니다. 이민 교회가 크지는 않지만, 전 교인이 다 갔습니다. 가서 보니, 예배를 드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자수성가한 것을 자랑하려고 초청을 했던 것입니다. 백만 불짜리 집을 샀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엄청나게 큰 집이었습니다. 가보니까 모든 것이 참 좋은 것이었습니다. 지하부터 다니며 다 설명하고, 자신이 처음 이민 와서 어떻게 살았는지 설명하고… 그렇게 하고 결국 예배는 안 드렸습니다. 바비큐 구워 먹고 왔습니다. 사람들이 설명을 들을 때에는 잘 대답을 하며 치켜세웠지만 정작 교회에 와서는 다 욕을 했습니다. “자신의 집을 자랑하려고 불렀다.” 며 수군수군 댔습니다. 오히려 초대를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사람들은 다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누군가가 봐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쓸쓸하고 외로운 것입니다. ‘누가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마음이 있지요.  

 

  사도바울은 과시할 것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로마 시민권이 있었고,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집안 배경으로 보나 학벌로 보나 모든 것이 다 좋았던 사람입니다. 얼마든지 과시하고 자랑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나서 그 모든 것들이 배설물과 같이 보였습니다. 과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왜 과시하려고 하십니까? 왜 내가 무엇을 조금만 알면 많이 아는 척을 하고, 조금만 가졌으면 많이 가진 척을 합니까? 과시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지요. 인정받고 싶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속이 비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좀 알아줬으면 좋겠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그런데 우리가 성숙한 성인이 되고 보면, 그것이 참 어려보이는 것입니다. 성인이 되고 보니까, 성숙한 신앙인이 되고 보니까 사람의 인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슈퍼스타처럼 과시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그러실 수 있었던 분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내가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볼까? 죽은 사람을 살려볼까? 나 대단한 사람이야. 너희들, 나 함부로 대하지마.” 하며 자신을 과시하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없이 오셨습니다.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을 섬기고, 외로운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결국 우리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분 아니십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나면, “예수님, 나도 이제 그렇게 살겠습니다. 어디를 가나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섬기고,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며, 의롭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렇게 결단을 합니다. 사탄은 그런 우리에게 늘 충동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시할 수 있을 때 과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폼 나게 인생을 살아야지,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고 잘 되어야지, 그것이 무엇이냐?” 하며 우리로 하여금 자꾸 세상 경쟁을 부추깁니다. 이런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제 교회 후배 가운데, 4~5년 후배가 있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을 하는 등, 공부를 참 많이 했습니다. 어린이 심장전문의가 되었습니다. 여기 저기 오라는 곳이 많았습니다. 포항에 있는 한동대학교 안에 자그마한 클리닉이 생겼습니다. 중학교 양호실만한 클리닉에서 의사를 필요로 한다는 소식을 그 후배가 접했습니다. 그 곳에 가서 아이들에게 꿈을 나누고 신앙적으로 사는 것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곳에서 오라고 하는 것을 다 거절하고 한동대 클리닉으로 갔습니다. 보통 월급의 반 밖에 못 받는 곳인데, 그 곳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연락이 오기를, 그 만큼도 못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내가 세상에 나가면, 이곳 저곳에서 특급 대우를 받으며 잘 살 수 있는데, 이것이 무엇인가...’ 하여 저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목사님, 이런 상황입니다. 원래 처음에 준다고 한 것보다도 못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네가 그곳에 가려고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돈을 벌려고 가려고 했느냐,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냐?” 그랬더니 금방 알아듣더군요. “예, 목사님,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고, 한동대 클리닉으로 갔습니다. 조건이 나쁘더라도, 처음 마음먹은 대로 실천한 것입니다. 그 곳에서 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치고 함께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처음부터 돈이 목적이 아니었으니 초심대로 한동대 클리닉으로 갔습니다. 몇 년 동안 잘 하고 있더군요. 얼마 전에, 한동대학교 채플에 설교하러 갔다가 만났습니다. 얼마나 잘하고 있던지 얼굴이 해같이 빛났습니다. 정말 기뻐하는 것입니다. 한동대가 워낙 외진 곳이어서 주변에 병원이 없습니다. 총장님부터 학생들, 교수들까지,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클리닉에 올 때마다 그 사람들을 돌보며, 신앙을 격려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ktx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연락을 했습니다. “참 자네 같은 후배가 있어서 참 좋다. 감사하다. 자랑스럽다.” 라고 격려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자랑스러운데,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많이 갖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살아갈 때,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는 자가 되는 것을 믿습니다. 만약 많이 가진 자가 행복할 수 있다고 하면, 하나님은 불공평한 분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소유가 많은지 적은지, 지위가 높은지 낮은지에 상관없이 가치 있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결단하고 실천할 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과 기쁨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아십니까? 그것을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사탄의 속임수에 속지 마세요. “너를 위해 살아라.” 거짓말입니다. “쉬운 길이 있다.” 거짓말입니다. “과시하고 싶은 욕망 분출시키며 살아라. 그것이 세상을 멋지게 사는 길이다.” 거짓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오늘도 내가 가야할 길이 있다고 하면, 그 길이 어떤 길이든 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시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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