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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성도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성도
설교날짜 2019.4.21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마 28 : 1 - 6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성도 

 

 

1. 매순간 죄와 싸우는 삶을 의미합니다.
 

2. 절망 중에도 소망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 28 : 1 - 6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오늘은 예수님 부활하신 부활 주일입니다 부활 그러면 많은 세상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얘기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지요. 어느 목사님 설교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교회 학교 초등학생 예배였습니다. 사순절 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설교를 하니까 한 아이가 울더랍니다. 그래서 왜 우냐고 물었더니  예수님께서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그러면서 울고 있더랍니다. 조금 더 큰 초등학교 5~6학년 되는 아이가 선생님을 이렇게 쳐다보면서 피식 웃더래요. ‘얘는 이게 진짜인 줄 아나봐요.’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자기는 다 커서 이제 안다는 거죠. 산타도 가짜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얘기들도 다 가짜고 그러니까 예수님 죽으셨다는 이야기도 하나의 신화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렇게 울고 있는 아이에게 얘는 이게 진짜인 줄 아나봐요, 그렇게 말했다는 얘기를 제가 들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요즘에 부활이니 이런 얘기하면 사실 사람들이 잘 안 믿으려고 합니다. 죽으면 끝이지 무슨 부활이 있나. 어리석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를 다니는 분들 가운데도 부활은 뭐 그냥 하는 얘기지, 이렇게 그 부활의 확신이 없는 분들도 계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 부활의 증거가 참 많이 있어요. 로마서 1장 19절과 20절에 보면 자연 계시가 나와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 창조하신 이 천지 안에 이런 신앙의 신비, 부활의 신비들을 담아 두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장 19절, 2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 하지 못할 지니라.” 만물 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안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들을 담아 두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밤하늘에 수없이 많은 그 은하수와 별들을 볼 때, 저것이 어떻게 우연히 생겨진 것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 하나님의 솜씨를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부활의 증거 역시 많이 있어요. 제가 늘 말씀드리듯이 배추 애벌레 아시죠. 배추 주위 잎사귀 위를 기어다니면서 그 잎사귀를 뜯어먹는 배추 애벌레가 어느 시간이 되면 줄기에 붙어서 꼬리에서 씨를 뽑아 자기 몸을 칭칭 감지 않습니까. 그게 번데기란 말이에요. 여러분 그 배추 애벌레 번데기를 보신 분은 알겠습니다만 그 줄기에 붙어 있는 그 번데기의 모습이 인간의 관의 모습과 똑같이 생긴 것을 아십니까. 색깔까지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그 죽은 것 같아 보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고 그 관속에 들어있는 그 애벌레, 더 이상 활동을 못 할 것 같아 보이는 그것이 10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갈라지면서 거기서 나비가 돼서 날아갑니다. 애벌레의 모습과 나비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에요. 그런데 나비가 되어서 하늘로 올라가요. 그 사람들에게 애벌레가 나비라고 말하면 그것을 믿겠느냐 이 말이죠. 그런데 그 죽음이라고 하는, 죽음과도 같아 보이는 그 번데기 안에서의 며칠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새로운 존재로 날아가는, 나비가 되어서 날아가는 그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될 때 신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만물 속에 하나님의 신성을 담아 주셨다는 거예요. 부활에 대한 신비도 그렇게 담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부활절이 되면 계란을 나누어 드리지요. 그 계란을 나눠드리는 이유가 뭡니까. 계란을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돌멩이 같아 보이기도 하고 또 동그란 것이 뭐 그 속에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니고 죽은 것 같아 보이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 계란 속에서 시간이 지나면 생명체가 나오더라는 거에요. 꼭 무덤 문을 열고 나오시는 예수님처럼 말이죠. 그 계란이 깨지면서 그 안에서 병아리라고 하는 존재가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볼 때 보이는 것만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니로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엄마 뱃속에서 우리가 열 달을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열 달 동안 숨을 쉬지 않습니다. 코로 숨을 쉴 수도 없고 먹지도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열 달을 이 안에서 버티고 살 수가 있습니까. 열 달이 지나면 우리가 모든 인생이 끝나는 것 같아도 그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존재로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 이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통과하면서 출산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출산을 하고 나면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사는 거예요. 눈으로 뭔가를 보게 되고 먹지 않으면 이제는 죽게 되는 것이고요. 숨을 안 쉬면 이제 죽게 되는 거예요. 엄마 뱃속에서는 열 달 동안 코로 숨을 안 쉬었는데도 살았습니다. 정말 다른 존재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마음속에 영원한 세상을 꿈꾼다는 얘기에요. 그것은 영원한 세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런 꿈을 꿀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세상, 죽음 이후에 영원한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는 얘기는 그 세상이 있다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증거라는 것이죠. 우리는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보면서도 죽음이 끝이 아니다,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예측할 수 있게 하나님은 만드셨다고 하는 것이에요.
  성경에도 보면 그렇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의 사람들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람이지요. 예수님의 부활 신앙을 믿는 사람들을 쫓아가서 핍박을 하고 감옥에 가두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사도 바울이 왜 하루아침에 바뀌었겠느냐, 오늘 우리 주변에도 보면 예수님을 핍박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변화가 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을 향해서 두 손 들고 울면서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 늘 돌을 던지고 핍박하던 사도 바울이 이제는 예수님을 증거 하면서 돌에 맞고 핍박을 당하는 자리에 섰어요. 도대체 무엇이 사도 바울을 그렇게 바꾸었을까요. 돈이나 명예를 주겠다고 누군가가 유혹을 했기 때문에, 세상적인 지위를 주겠다고 유혹을 했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예수 믿는 척을 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 가문 자체가 모든 세상적인 배경을 이미 다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마지막에는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에서 순교 당합니다. 도대체 사도 바울을 그렇게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다메섹 도상으로 가다가 부활 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기가 장님이 되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님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3층 하늘에도 올라가는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보고 나니까 이제는 너무나도 분명해지고 확실해 지는 거예요.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서 살다가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가졌던 모든 부귀 영화, 그것들이 배설물과 같이 여겨졌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자신의 전 생애를 바치면서 고난이 닥쳐올 때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에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입니다. 그 하늘 나라를 생각하면 지금 고난 당하는 것이 오히려 나에게 유익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분명한 경험이 있고 체험이 있으니까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뭐라고 합니까. 만약에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다 속아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사도 바울의 그런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됩니다. 그때 사도 바울뿐이겠습니까. 우리의 역사를 돌아볼 때 그렇게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그의 전 생애가 바뀌고 인생이 변화 됐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수히 많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보면서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고 부활하신 우리 구주가 되신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금 확신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부활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우리가 이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산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유익이 된다는 거에요. 부활 신앙 이라는 것 안에는 엄청난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때로는 이런 문제도 있고 저런 문제도 닥쳐오고 그럴 때 그 문제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겨 나갈 것이냐, 여러분 부활 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 힘든 상황을 이겨 나갑니다. 그런데 부활의 신앙이 없는 사람은 금방 좌절하고 절망하고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내가 부활 신앙을 가지면 이 힘든 세상을 버티고 이해하는 힘이 생기는 줄로 믿습니다. 또 부활 신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보면 부활 신앙이 없는 사람은 방종한 삶을 살게 돼 있어요. 옳은 것을 좇아 사는 게 아니라 그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러면서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살아가요. 그러나 부활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아요. 바른 인생을 살게 되어 있고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게 되어 있고 내가 아무리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니면 그것을 돌아보지 않게 되어있어요. 우리 사는 모습을 보면 진짜 부활 신앙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더 나아가서 부활 신앙이 있는 사람은 사도 바울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또 그 얻는 것이 참으로 귀한 것임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이 놀라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단순히 머리 속에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부활의 능력이 오늘 우리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이기는 힘과 원동력이 되려면 이것을 아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되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그런 우리 성도님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부활의 능력이 삶과 연결이 될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자로 그렇게 승리하는 자로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아서 우리 성도님들이 부활의 능력으로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인지, 두 가지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매순간 죄와 싸우는 삶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죄와 싸우지 않는 사람은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죄와 싸우는 삶을 사는 것이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부활 그러면 먼저 생각나는 게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죽지 않고 부활이 어떻게 있을 수가 있습니까? 부활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은 죽음이에요. 왜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셔야 했는가? 우리는 온 인류의 죄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왜 죽으셨느냐, 나 때문에 죽으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 70억명의 죄를 위해서 죽었다고 하니 별로 감사함을 못 느낍니다. 예수님 죽으신 것은 온 인류의 죄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죽으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이 바른 신앙인의 삶의 모습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가 나만을 위해 죽으신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이니까 그저 뭐 그렇지 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나 때문이다. 그래서 늘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가 두 가지로 얘기를 해요. 공의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으로 말을 합니다. 그런데 공의의 하나님은 당신 자신에 대해서도 철저 하신 분이라는 것을 오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공의의 하나님 앞에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인간은 마음속에 죄성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런 죄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으로 그렇게 서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심판인지 아십니까. 그 심판대 앞에 우리가 서서 떨게 되고 두려워해야 되는 그 순간이 온다는 겁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공의의 하나님은 법대로 처리하시는 거예요.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의 또 다른 성품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죄로 인해서 죽게 된 우리를 바라볼 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고 불쌍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너희를 죽게 내버려둘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는 그 길을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이니 누군가는 죄의 대가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너희를 죽게 할 수 없으니 내가 너희를 대신해서 죽는다, 그 길을 선택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신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것은, 내가 짓는 죄, 내가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짓는 그 범죄함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죽게 만드는 행위입니다. 이 것을 오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진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사람, 그 은혜에 감격하는 사람이라고 한다고 하면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이 죄와 싸우는 자가 되는 것이 옳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싸워야 되겠습니까. 한 번, 두 번 시도하다가 안되면 이거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말아야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서는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겁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됩니다. 여러분 정말 처절하게 죄와 싸우는, 몸부림치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 하나님의 은혜에 진짜 감격하는 자, 감사하는 자가 취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그래 이제는 죄와 싸워야겠다고 이렇게 결단을 할지 모르겠어요. 하루에 한번은 죄의 유혹을 이길 수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죄의 유혹 이라는 게 얼마나 쉴 틈없이 우리에게 공격해 오고 덤벼드는지 모른다는 거죠. 그 공격이 자꾸 쏟아지는데 한번 죄와 싸워서 이기지만 하루 종일 다른 죄와 싸워서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 버리고 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겁니다. 아니 도대체 우리는 이 죄와 싸워 이기지 못하고 늘 이렇게 넘어지는 것일까. 여러분 왜 그런지 아십니까. 죄의 유혹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에 그래요. 너무나도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이 매일 우리를 유혹하는 거예요. 이겨낸다는 것이 너무나도 힘이 드는 거죠. 여러분 창세기에 보면 하와가 이 선악과를 바라보고 뱀이 유혹하는 소리를 하게 될 때 그 유혹의 소리를 들으면서 하와가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어요. 먹으면 안된다. 먹으면 죽는다.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창세기 3장 6절에 보면 뭐라고 기록 되는지 아십니까. 그 선악과를 보니까 보는 즉시로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럽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다는 거예요. 이게 뭔지 아세요. 이것을 유혹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유혹은 때때로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양심을 마비시켜 버려요. 그래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일단 먹고 보자 이렇게 됩니다. 이렇게 하와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그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럽고 먹으면 좋을 것 같고 나에게 이익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빈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한번 조금 먹어 봤으면 좋겠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 선악과를 먹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도 동일한 거예요. 그렇게 좋아 보이고, 하고 싶고, 먹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입니다. 한번 이런 편법을 사용하면 그 모든 것을 내가 다 가질 수 있다 그러니 뭐 보는 사람도 없고 나를 정죄할 사람도 없고 세상 법도 뭐 그런 것들을 괜찮다고 말하니, 눈 딱 감고 한번 저질러 보게됩니다. 저지르고 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너무 기쁜 거예요, 쾌감을 누리는 거죠. 그 것에 대해서 또 생각이 나고 또 생각이 나고 죄를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나의 이성이 죽어버리고 내 양심이 마비가 돼 버리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한 순간은 괴로우니까 자꾸 합리화 시키는 거예요. 세상사람 다 그러는데 뭐 어째서 그렇습니까, 요즘 안 그러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라며 자꾸 합리화시킵니다. 여러분 죄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후회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아담도 하와도 후회를 하고, 죄 지은 사람들이 다 나중에는 후회를 합니다. 그 순간은 좋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다 후회 하게 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을 참아 내는 사람 이겨나가는 사람은, 지금 내가 그걸 이겨 나가고 버티는 것이 힘들지 모르지만 결국에 마지막에 가서는 그러기를 잘했다 그것이 승리의 길이라고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좋아 보이고 또 내 삶이 풍요로워질 것 같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것 같고 그래서 자꾸 유혹이 오면 그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넘어져 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오늘 우리 성도님들이 세상적인 것에 현혹되어서 넘어지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나를 위해서 죽으신 우리 예수님을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간혹 가다 이런 얘기하면 목사님 저는 그런 게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을 보면 아 저분은 벌써 양심이 마비가 되신 분이로구나, 죄를 죄라고 깨닫지를 못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꾸 내 생각에는 그것이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의지하면 우리는 죄를 짓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짓는 죄가 오늘 예수님을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만들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가까이 하다 보면 지혜가 생기는 거예요. 말씀을 읽다가 보면 양심이 되살아나는 거예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지를 알게 되는 거예요. 선을 ㅤㅉㅗㅈ아 갔을 때의 결과와 악을 ㅤㅉㅗㅈ아 갔을 때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게 되는 거예요.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죄와 싸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기도하면서 내 욕망 따라 살지 말고, 내 욕심 따라 살지 말고 세상의 이익을 ㅤㅉㅗㅈ아 살지 말고 오직 진리를 따라서 옳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 사는 우리 성도님들이 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싸우는 자를 붙들 게 돼 있어요. 하나님은 죄와 싸우는 자에게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그를 붙드시고 그를 도우신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가 알아야 될 줄 믿습니다. 죄와 싸우게 될 때 그 순간은 힘이 들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고 나를 붙드시고 승리케 만드는 비결이라고 하는 것을 아셔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죄와 싸워 이기신 분이시고 우리의 죄까지도 친히 다 감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의롭게 사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부활 시키신 거죠. 오늘 우리가 의롭게 살아갈 때 우리가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둘 째, 절망 중에도 소망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소망을 잃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 사는 것이 힘들 때가 있죠.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세상 사람이 사는 것보다 더 힘든 길일 수도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다 느끼면서 다 경험을 하면서 그런 고난과 환난을 겪어 내면서 그러면서 또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죄와도 싸워야 하니까 사는 것이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힘들지만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면 우리는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이든 이겨 나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간에 “교회 오빠” 라는 영화 시사회를 봤어요. 이 영화는 100%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우리교회 교역자 분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한 교회를 다니는 30대 젊은 집사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한 달쯤 후에 남편이 복통이 심해 병원에 갔더니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어요. 온 몸에 다 암이 퍼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술을 해서 암을 다 떼어내고 항암치료를 했습니다.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너무 너무 힘들고, 죽음과 같은 그런 고통을 겪어 내는 거예요. 그 남자 집사님이 대장암 1기, 2기도 아니고 4기라고 하니 벌써 얼마나 많이 퍼졌습니까. 온 몸에 다 퍼졌다는 거예요. 그의 어머니가 그 얘기를 듣고 너무 속이 상하고 괴로우니까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어요. 항암치료가 안 그래도 힘든데 어머니까지 그렇게 돌아가시고 나니까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리고 6개월쯤 지나고 나서 젊은 남편 집사님이 항암 치료가 거의 끝날 쯤 되니까 이제는 아내가 아픈 거예요. 아내가 아파서 병원을 갔더니 아내는 혈액암 4기인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파도가 밀려 오듯이, 하나도 견뎌 내기 힘든데 연속으로 계속해서 끊임없이 고난이 밀려오는 거죠. 그러니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이제 갓 태어난, 돌도 안 된 아기를 보면서 두 부부가 죽고 나면 이 아이는 도대체 누가 키웁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할 때 두려운 생각이 얼마나 들어요.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두려워하니까 남편이 아내한테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 신앙이 있고 우리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왜 두려워하느냐고 하면서 아내한테 “쫄지마!” 그러더라구요, 이 부부가 말이죠. 서로 격려를 하면서 울기도 하고 같이 웃기도 하고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대부분이 울지요. 웃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젊은 부부는 깔깔대고 웃는 거예요. 웃으면서 그 어려운 상황을 두 부부가 견뎌내고 이겨 나가는 그런 과정입니다. 그 것을 보면서 참 부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거예요. 부부라고 하는 게 대체 뭘까. 서로가 힘들 때 서로에게 격려가 되면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면서 그 위기를 헤쳐 나갑니다. 웃으면서요.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가 있을까. 그러면서 이 두 부부의 신앙이 점점 깊어져 가는 거예요. 건강할 때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신앙의 신비를 깨달아 가는 거예요. 이 두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데 그 대화들이 얼마나 주옥같은 대화 들인지, 뭐 그런 멋있는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을 던져낼 뿐인데 감동적입니다. 참 목회자로 부끄럽게 하는 신앙을 가졌어요. 얼마나 참 대단한 신앙 인지 이런 얘기를 해요. 고백을 하는데 잃은 것도 많지만 사실 얻은 것이 더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게 아니라 감사해요.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이 더 많다는 거예요. 건강하고 아무 일 없을 때는 신앙인답게 살지 못했는데 이렇게 아프고 나니까 내가 진짜 신앙인답게 살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가 있죠. 도대체 저 사람들로 하여금 저렇게 감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수많은 선물 가운데 가장 귀한 선물로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예수님이 그렇게 소중한 분이라고 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거예요.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지내고 있는 이 젊은 부부에게 예수님은 유일한 소망이고 힘이고 위로가 되고 능력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상황을 버티게 하는 거예요. 그 상황 속에서도 웃을 수 있게 만드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 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 세상의 어떤 돈이나 힘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이런 게 그들을 그 고난 속에서 웃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을 그 고난의 역경 속에서도 웃을 수 있게 만드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 이야말로 진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으로 인해서 그런 고난과 역경 속에서 웃는 그 젊은 부부를 보니까 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왜 저 고난을 주셨는지가 이해가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위로를 주셨던 그 하나님이 저 젊은 부부에 그 고난을 통해서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절망 속에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절망하고 아파하고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볼 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두 부부의 이야기가 하나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부부야 말로 이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또 하나의 선물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참 감사했던 시간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의 고난이 끝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죽음도 끝이 아닙니다. 이 부활의 소망, 부활의 능력은 오늘날 고통당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예수님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줄 믿습니다. 이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고, 이 부활의 능력을 가지시고 내가 지금 어떤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감사하면서 인생을 이겨 나가시는, 그래서 진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로구나, 저 사람은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로구나 이것을 세상 앞에 내 삶으로 증거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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