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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녀 신앙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자녀 신앙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설교날짜 2019.5.5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삿 2 : 6 - 10
 

자녀 신앙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1.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쳐라. 

2. 사랑으로 가르쳐라

3. 축복의 말로 가르쳐라



사사기 2:6-10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의 어린이들은 미래의 꿈 이지요. 그래서 어린이 날을 정해놓고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일이 오래 전부터 진행이 되어 왔습니다. 교회에서도 어린이 주일을 기념하면서 다음 세대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이냐에 대해 늘 관심을 쏟고 또 연구를 해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린이’ 라는 말보다는 ‘다음 세대’ 라는 말이 더 마음에 와 닿아요. 왜냐하면 어린이라고 하면 그저 약하고 돌보아야 될 대상 정도로 우리가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보호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린이가 아니라 다음 세대라고 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지요. 아무리 지금은 우리가 이 시대의 주인공이라고 할지라도 조금만 지나면 앞선 사람들은 가고 뒤 세대들이 옵니다. 이제 좋건 싫건 다음 세대들이 우리의 자리를 대신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주인공들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린이’ 라는 말보다는 ‘다음 세대’라고 하면, 그저 약하고 연약한 아이들을 우리가 돌봐야 된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을 다음 세대의 주인공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운명이 이 아이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이 아이들을 훈련을 시켜 바른 진리의 길을 걸어가게 만들어야 이 나라가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그런 나라로 채워져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린이’ 라는 단어보다는 ‘다음 세대’ 라는 말이 우리에게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다음세대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백 년 동안 이집트의 지배를 받고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노예 생활이라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 36년,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그 시절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400년 동안 애굽의 지배를 받았던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죠. 그 400년의 애굽의 지배를 받는 동안 백성들이 괴로워서 울부짖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셔서 모세를 선택을 하셨지요. 출애굽을 시키셨어요. 광야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전쟁을 치루어서 가나안 땅을 얻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로운 이 땅에서 우리가 평안하게 잘 살 수 있는 것이죠. 그런 나라를 물려준 것에 대해서 얼마나 대단한 자부심이 있었겠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고생 안 해도 된다는 마음 때문에 사실은 다음세대 신앙교육을 등한시 한 거예요. 출애굽을 하면서 여호수아와 그 세대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았는데 그 다음 세대에게 신앙 교육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너희는 꽃길만 걸어라 하면서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으니까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랐습니다. 신앙 교육을 하지 않으니까 그 다음 세대부터는 하나님의 인도를 알지 못한 거예요.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가르치지 않으니까 그 다음에 나타나는 현상이 방종입니다. 자유를 자유로 지키고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자유의 권리를 가지고 의로운 삶,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방종하고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그런 일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웃나라에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그 세대는 하나님을 잘 믿었지만 본문 10절 말씀에 보면 그 세대의 사람도 시간이 지나서 하늘나라에 있는 그들의 조상들에게로 갔습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여서 신앙 교육이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을 섬기며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하고 방종한 삶으로 살게 되면서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다시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게 되고 괴로움을 당하게 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어려움을 당하니까 하나님 앞에 살려달라고 다시 기도하게 됩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사사들을 보냅니다. 이것이 성경 구약의 사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오늘 이 성경 말씀을 가만히 보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습이 오늘 이 시대, 이 근현대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역사와 참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 동안 이집트의 지배를 받았고, 우리는 36년 일본의 지배를 받았죠. 기도하고 부르짖는 그 소리를 들으셔서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시켜 주셨고 우리에게도 해방의 은혜를 하나님이 베풀어 주셨죠. 그런데 출애굽 하고 나서 보니까 바로 축복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거쳐야 되는 거예요. 광야라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광야 입니다. 먹을 것도 없고 괴로움만이 있는 곳이죠. 무엇 하나 편한 것이 없어요. 그런데 거기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우리도 6.25 전쟁을 거치고 광야 시대 보릿고개 시대를 지나면서 먹을 게 없었을 때, 한국교회가 늘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산으로 기도를 하러 가서, 산에 가면 주여, 하며 기도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제 머리 속에 남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장 의자가 있는 교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난방이 안되는 찬 바닥에 앉아서 작은 방석 하나 깔아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작은 방석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부모님들은 다 어린 자녀들을 들쳐 엎고 와서 그 차가운 맨 바닥에 방석 쪽에 아이를 눕혀놓고 기도하시고 부르짖으며 광야 시대를 그렇게 건너왔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 나라, 이 민족이 그래도 살 만큼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게 광야에서 먹을 것도 없고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신앙의 유업이 이어져야 되는데 그러지 못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당했습니다. 이 것이 사사기의 주제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마음 한편에 이제는 다 끝났다 이제는 너희들 인생을 살아가라 그러면서 그들에게 신앙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갑니다.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이 어디 있냐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그런 모습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성경 말씀을 근거로 해서 비춰 보면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예측이 됩니다. 특별히 어린이 주일을 맞이 해서 왜 자녀 교육이 중요한가, 또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이것을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반복했던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준비된 미래의 지도자들을 세움으로써 이 나라 이 민족이 더욱더 번성해 나가고 이 민족이 저 세계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나라 선지자의 나라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다음 세대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될 것인가 세 가지 말씀을 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째,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치라. 


  하나님 신뢰하는 것을 가르쳐야 될 모든 것의 출발점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내가 내 생각을 의지해서 살아갈 것이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것이냐. 솔로몬의 시편 고백처럼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라고 했는데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다 헛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남보다 열심히 노력을 해서 성공하고 부유하게 살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성공을 해도 그 인생이 의미가 있는 인생으로 보여지지 않고 속이 공허한 것이죠.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입니다. 기초가 단단해야 그 위에 탑을 쌓을 수가 있는 것이고 높은 건물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초가 약한 곳에 높은 건물을 세우면 오히려 그 높은 건물로 인하여 무너지기가 더 쉬운 것입니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그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 저들이 왜 무너지나 남들보다 좋은 환경과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건 다른 것이 아닌 속이 비어있다는 거죠.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신다는 그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돈을 많이 벌어도 이걸 가지고 뭘 해야 될지 모르는 거예요. 성공을 해도 내가 이 성공을 가지고 뭘 해야 될지 모르는 것이죠. 열심히 그것을 위해서 달려왔는데 달려와서 그것을 얻고 보니까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고 무너지는 거예요. 자유가 아니라 방종으로 흘러가게 되고 결국 넘어지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출발은 내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과 동행할 것이냐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대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냐 이것의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고민은 이렇게 교회 와서 말씀을 들으며 나에게는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되겠다 이런 마음의 확신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사는 게 아니거든요. 그들은 세상의 방법대로 살아 가니까, 그들을 보며 내가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우리도 세상을 자꾸 기웃거리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자 하는데 내 육신의 모습은 세상을 따라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거예요. 갈등을 하다가 우리가 내리는 결론은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인도하실 거야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지 뭐 내가 노력한다고 뭐 되나 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을 다 이루어 가실 거다 그걸 믿음이라고 착각을 하는 거예요.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자녀들도 내버려두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여러분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걸 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면서요, 그러니 나는 별로 노력도 안하고 어떻게 되겠지요, 하나님이 훈련 하시는 과정이겠지요, 이게 좋은 믿음인 거 같고 하나님을 대단히 신뢰하는 믿음 같아 보여도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나는 내 뜻대로 살아가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틀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그렇게 얘기 하지 않으셨어요. 달란트의 비유를 봐도 누구에게는 한 달란트, 누구에게는 두 달란트를, 누구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줬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고 각자 받은 재능을 가지고 어떻게 하는지를 하나님은 평가 하고 계셨어요.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서 네 달란트를 만들고 열 달란트를 만들었어요. 하나님의 도움 없이 열심히 노력을 하고 최선을 다한 것을 하나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하셨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하나님 것이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며 땅속에 묻었다가 주인이 오니까 도로 받으세요, 왜 아무것도 안 하셨어요 그럴 때 주인이 뭐라고 합니까.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오늘 우리는 노력하지 않고 내가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결과로써 아무것도 열매 맺혀지지 않으면 그때 가서 왜 나를 도와주지 않으셨는지 하나님 탓을 하고 하나님 핑계를 대는 것이죠. 이것은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명 이라고 하는 걸 받았으면 그것을 위해서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 하고 노력해야 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후손들에게, 다음 세대에게 신앙교육 시키지 않으니까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만약에 신앙교육을 시키면서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고 준비해서 미래를 만들어 가야 된다는 결단이 있었다면 고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란 말입니다. 인간들은 자기들이 죄를 짓고 나서 왜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죄짓게 만들었냐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겨내라고 힘을 주시는데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하나님 탓을 한다는 말이죠. 이것은 악한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가르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만약, 우리 아이가 큰 중병에 걸리고 아프다고 하면 그런 아이를 향해서 그럼에도 학교 가야 된다, 공부해야 된다, 일류대학 가야 된다고 얘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병원에 가서 치유를 받고 건강해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늘 우리 인생에 있어서 그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영혼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영혼의 문제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분명한 신앙의 반석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건강하고 성공했다 하더라도 어느 한순간에 다 무너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이 나를 붙잡지 않으시면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할 줄 아는 우리의 자녀들이 되도록 신앙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살짝만 건드리셔도 바보가 되는 건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잡으신 손을 놓으면 그 다음에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도 모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이 부분을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이것을 골수에 각인을 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붙잡지 않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를 붙잡으면 지금 어떤 어려움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넌 이겨낼 수 있다’ 이 믿음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세요. 이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이 공부를 할 때는 무서운 공부가 되는 거예요. 그 아이들은 정말 세상을 변화시키는 비범한 일을 행하는 지도자로 서게 되는 거죠. 오늘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저 겉만 번지르르한 그런 세상적인 것만 가르치고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 아이들의 속이 정말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서도록 우리가 기도하고 그 아이들에게 신앙 교육을 반드시 시키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사랑으로 가르치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서 지식적으로는 몰라도 영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영적으로 느끼는 감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영적인 감각을 진동시키는 힘이 뭔지 아십니까. 그건 세상의 지식이나 말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사랑하는지, 나를 진짜 위해 주는지 아닌지를 느끼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학원을 다니고, 유치원 다니면서부터 자기 몸집만한 가방을 매고 다닙니다. 집에 가면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학교를 가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학원에 가도 시킵니다. 교회에 왔더니 교회에 와서도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 아이들이 너무나도 힘들고 지치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여름이 되면 중고등부 아이들을 데리고 비전 트립을 갑니다. 제가 그 3박 4일 동안 항상 따라갑니다. 그러면 다른 분들이 그래요. 담임 목사님이 바쁘신데 애들 가는데 그렇게 따라 가세요? 라고 물어요.  애들 가는데 반드시 따라가야 합니다. 3박 4일 기간이 제가 그 아이들을 앉혀놓고 2년 교육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많은 성도님들은 담임목사님이 가니까 이 중 고등부 아이들을 그냥 아침부터 밤까지 성경 공부시키는 줄 알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침에 기도 한번 딱 한번 합니다. ‘오늘도 안전 사고 나지 않게 하나님 지켜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고 나면 그 다음에 3박 4일 내내 놉니다. 특별한 방법으로 놉니다. 먼저 저는 떠나기 며칠 전부터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웁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에게 사진이랑 이름 명단을 가지고 와달라고 해서 그걸 다 대조를 해 보면서 며칠 동안 외웁니다. 왜 이렇게 안 외워지는지 모르겠어요. 이래서 젊을 때 공부하라는 거예요. 하나를 외우면 뒤에 두 개를 잊어버립니다. 며칠 동안 겨우 아이들 얼굴이랑 이름을 익혀요. 눈을 감고 아이들 이름을 떠오르면서 한 쪽을 가리고 이름을 대조해 보고 복습도 해봅니다. 이제 다 외워서 공항에 딱 나가보면 얼굴이 다 달라요. 이게 참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모릅니다. 분명히 사진에서 봤던 애랑 전혀 다른 애들이 서있는 거예요. 거기서 또다시 이름을 봐가면서 복습을 하는 거죠. 그래서 공항에서 그 이름을 다 외워요. 그 다음에 그 애들의 이름을 제가 불러주면 어떻게 목사님이 내 이름을 아냐며 깜짝 놀랍니다. 그 아이들하고 3박 4일 내내 친구가 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아이들은 저를 너무나도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정말 어울리지 않게 어리광을 부릴 수밖에 없어요. 과자 먹고 있는 애들한테 가서 목사님도 하나 달라고 얻어먹기도 하고, 사탕 사줄까? 하고 말을 걸기도 합니다. 애들이 화장실 간다고 하면 목사님도 좀 데리고 가라고 따라가고 이래요. 그럼 아이들이 하루가 지나면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사탕을 사면 저한테 와서 달라고 하지 않아도 하나씩 주고 갑니다. 제가 그 사탕을 먹으면 아이들이 흐뭇해 합니다. 내가 뭔가 목사님에게 힘이 된다는 생각이 아주 흐뭇한가 봐요. 자기들이 성공한 인생처럼 여겨지는지 모르겠지만 흐뭇한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지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용기를 주기도 하죠. 


  저도 사람을 하도 대하다 보니까 특히 젊은 애들을 딱 보면 공부 잘하는 앤지 못하는지 그냥 봐도 티가 나요. 이름을 불렀을 때 흠칫 놀라면 공부 못하는 아이들 이예요. 그런 애들에게 제가 이렇게 위로를 하는 거예요. 그 아이들을 붙잡고 너 공부 못하지 그러면 깜짝 놀라요. 그러면 제가 걱정하지 마라 공부 못해도 성공할 수 있다 공부 못했는데 성공한 케이스를 수도 없이 얘기를 해줘요. 그러면 이 아이들이 용기가 살아나요. 아 자기는 막 성공할 것 같고 막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 다음부턴 다른 사람 얘기를 듣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을 늘 지적했는데 나는 너희들이 성공한다고 얘기를 해주니까 얼마나 제 얘기를 듣고 싶겠습니까. 저만 찾는 거예요. 더운 여름에 등이 시원해서 돌아보면 손 선풍기를 제 등에다 대고 틀어주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참 기특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안쓰러운 거예요. 이미 세상을 살아봐서 저 아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되는지 아니까, 저걸 다 거쳐 올 수가 있을까 걱정이 듭니다. 아이들이 정말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는데 또 얼마나 수많은 순간 세상 속에서 좌절되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자라겠습니까. 참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죠. 이제 마지막에 아이들이 다 앉으면 한 아이들마다 이번 여행에 소감을 듣고 제가 해주고 싶은 얘기를 해주고, 너희 뒤에는 내가 있다는 얘기를 해줍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안수기도를 하면 그 어린 중 고등학생 아이들이 얼마나 대성통곡을 하고 우는지 모릅니다. 펑펑 울면서 마음속에 뭔가 새로운 희망이 서는 것을 보게 되는 거예요. 아이들의 삶의 달라져요. 


  주일날 설교를 하면 예전에 늘 딴 짓을 하던 아이들이 비전트립을 다녀오고 난 다음에는 제 설교를 집중해서 듣습니다. 목사님 말씀은 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는데 우리 목사님은 나를 인정해 주니까 그런 얘기가 듣고 싶은 거죠. 집중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제가 용기를 많이 얻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펑펑 울고 회개하고 변화된 인생을 사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식으로만 알던 그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마음으로 느끼기 시작할 때는 그 예수님의 사랑 앞에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이죠. 다 무너지고 삶이 변화되고 돌아서는 역사가 나타나죠.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저희 중고등부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을 참 사랑으로 잘 돌봅니다. 얘기를 들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안아 주기도 하고 용기를 내라고 하는 말들을 통해 이 아이들이 힘을 얻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적하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은 지적보다는 꿈을 심어 주고 희망을 심어주고 용기를 심어줍니다. 이것이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교회가 사랑을 나눠 주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아이들이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는, 꿈을 펼치는 곳이 되었으면 해요. 그래서 우리 중고등부는 분반공부를 동아리 모임으로 바꾼 거예요.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너희들에게 이 시간만큼은 교회에서 보장해 주고 싶다. 너희들이 예배드리고 난 다음에 자유롭게 너희들 하고 싶은 거, 한번 꿈을 펼쳐 봐라, 도전해 봐라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아이들은 교회를 안 떠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나중에 혹시라도 무슨 일로 교회를 떠나는 일이 있을지라도 어느 순간엔가 목사님이랑 비전 트립 갔다 왔던 게 떠오를 것이고, 교회 학교에서 내가 친구들과 그렇게 어울려서 즐거웠던 날들을 생각할 때 이 아이들의 마음의 고향은 교회가 되는 겁니다.  교회, 하나님의 집, 거기에 가서 내가 쉬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아이들이 그런 날을 만나게 될 때 오라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열린 곳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지식으로 그 아이들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 아이들을 돌보고 안아줄 때, 우리의 자녀들은 꿈과 용기를 가지고 교회에서 훌륭한 미래의 지도자로 성장해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아이들 보면 안쓰럽지 않으세요? 긍휼히 여기고 지금도 많이 사랑하시겠지만 우리 아이도 우리가 사랑 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사랑 하겠습니까? 사람은 지적해서 변화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잘못을 지적 받아서 변화되는 사람 보셨습니까? 그 앞에서는 변화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멀어질 뿐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주면 변하지 말라고 해도 변화가 되는 거예요. 오늘부터 우리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 더 많이 사랑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세 번째는 축복의 말로 가르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축복의 말을 계속 전해야 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축복의 말을 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말은 의사소통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특별한 권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로 인해서 사람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로 인해서 절망하기도 하고 소망을 갖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인해서 좌절하는 아이가 다시 희망을 가지고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말의 권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 하셨거든요. 이 천지를 창조하는 모습을 보세요. 창세기 1장에 보면 흑암이 깊음 가운데 있었으나 아무것도 없고 공허했어요. 공허한 가운데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였더라. 하나님의 신은 성령이죠. 그런데 중요한 건 성령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데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 하나님의 신이 우리 가정 가운데 운행 하시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교회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 하고 계세요. 그런데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놀라운 건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 하고 있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빛이 있으라” 말씀이 선포 되어질 때 기적이 일어나고 빛이 생기는 거예요. 여러분들 가정에서도 이 축복의 말씀이 선포가 될 때 기적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말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가정임에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교회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생명의 말씀이 선포가 안 되니까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들 지금 이 곳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고 계시는데 여기서 이 재단에서 목회자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선포할 때 여러분들이 아멘으로 화답하는 순간 기적의 역사는 나타나는 거예요. 교회에서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것이 어디 가서 강연 듣는 것과 수준이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곳이 예배의 자리인 것이죠. 설교 말씀 이라고 하는 거예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 하셨어요.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세요. 이제 그 예수님을 우리가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권세 있는 말씀을 활용할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믿음으로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믿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믿는 너희들은 내가 하는 것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진짜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면 이 믿음으로 선포함을 통해서 놀라운 기적의 역사들을 얼마나 많이 이루어 갔는지 모른다는 거죠. 오늘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말씀의 권세라고 하는 거예요.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말하는 대로 된다 그러면 이것이 축복이겠습니까, 저주겠습니까.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러분이 하루를 어떤 말을 하고 사는 지를 생각해 보시면 어떤 사람에게는 저주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축복일 거예요. 안타깝게도 한국인들은 긍정적이고 축복하는 말을 하기 보다는 부정적이고 저주스러운 말을 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는 거죠. 미국 사람들은 비가 와도 굿모닝입니다. 눈이 와도 굿모닝, 바람에 불어도 굿모닝, 좋은 아침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인사하세요? 아침에 일어나면 굿모닝,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죠. 우리는 아침에는 아이고 죽겠다, 아이고 삭신이야, 오늘은 왜 이렇게 쑤시나 그렇게 말합니다. 감사하고 시작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참 많다는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은 How are you, 어떻게 지내냐 How is it going, 요즘 어떻게 지내냐 그렇게 질문을 하면 fine, 좋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해요. 한국 사람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그러면 한숨부터 쉽니다.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사업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요즘 사업 잘되는 데가 어딨어요? 그럽니다. 아주 안 될 줄로 믿어요. 그리고 진짜 안 되면 자기 생각이 맞아서 좋을까요? 만약에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대로 된다 그러면 큰일 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말이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빛은 어둠을 이겨요, 마찬가지로 축복은 저주를 이깁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러니까 자녀들을 향해서도 축복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이렇게 얘기하면 이런 얘기를 해요. 목사님 축복할 만에야 축복을 하지요, 싹수가 노래요. 딱 보면 알아요, 안됩니다. 근데 어떻게 해요. 여러분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가르쳐 드릴께요.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게 아니고 믿음으로 말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믿음으로 선포하는 게 기독교인 것입니다. 요즘 이 나라 어렵습니다 헬조선입니다, 뭐 그렇게 힘들어도 사실은 옛날만큼 힘들지는 않아요. 그런데 자꾸 힘듭니다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땅은 축복받은 나라입니다, 잘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코 기도하는 백성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 아직 교회가 살아 있습니다, 교회에 타락했다고 얘기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타락했지 교회가 타락한 게 아닙니다, 돌아서야 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얘기를 하게 될 때 놀라운 역사는 나타나는 거예요. 너는 잘 될 거야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이다 아픈 아이들이 있으면 너 반드시 치유된다 하나님 고칠 것이고 이 일을 통해서 너는 놀라운 일을 행할 것이다 이렇게 선포를 해주는 거예요 믿음으로. 이게 믿음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눈으로 봐서 될 만한 것만 얘기하는 건 믿음이 아니에요.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믿음인 거죠.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의 말 한마디가 우리의 자녀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우리의 그저 지나가면서 내던지는 한 마디 말이 이 교회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그 한마디가 이 나라 이 민족을 죽게도 만들고 살게도 한다는 걸 아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서 희망을 선포하는 자로 살아야 되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힘들다고 얘기할 때 교회 다니는 성도님들은 아닙니다, 세상은 살 만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 나라의 가운데 있습니다 라고 믿음으로 선포하는 거죠. 우리의 그 믿음의 선포를 하나님은 들으실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살고 자녀들이 살고 이 나라 이 민족이 사는 역사가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이 은혜 가운데 우리가 늘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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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
2019.7.7
박동찬 목사
 막 4 : 35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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