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또 다시 일어나는 교회 (빌 3:12~14)
> 인터넷방송 > 예배 > 주일예배
 
 
제목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이유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이유
설교날짜 2019.5.12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엡 6 : 1 - 3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이유 

 

 

1. 부모님은 나를 위해 목숨을 거시는 분이기 때문.  



2. 하나님의 대리자로 부모님을 보내주셨기 때문.  

 


엡 6 : 1 – 3
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제일 힘든 주일이 어버이 주일 입니다. 저 자신도 늘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이 어버이 주일 설교를 하는 것이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부모에게 효도해야 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데 잘 해야지 하면서도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어버이 주일에 1년에 한 번씩이라도 부모에게 효도해야 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마음속에 떠올려 보고 좀 상기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부모에 대한 그 사랑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경우에 부모님께 잘 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나중에 부모님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후회 하는 경우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비단 우리 성도님들 뿐 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부모님이 아직 생존해 계실 때 더욱 더 잘 하시고 효도 하시고 또 순종 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오늘은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해야 되는 이유 두 가지 말씀을 잠시 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부모님은 나를 위해 목숨을 거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 주는 사람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부모님밖에 없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우리 부모님 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증거는 바로 나를 대신해서 죽어 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시비비를 따질 상황에도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내 편이 되어 주시는 분이 부모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님에 대해서 생각할 때 내가 어렸을 때 먹여주고 입혀주고 키워주시고 하신 일은 모든 세상의 부모가 다 하는 일 아닙니까.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자신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키워주고 양육 해주고 이것이 사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부모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그래서 부모는 강하죠. 특별히 우리가 하는 얘기 가운데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누구보다 강한 존재가 어머니입니다. 제가 어버이 주일이 될 때마다 읽어 드리는 심순덕 씨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라고 하는 시가 있습니다. 오늘도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의 모습.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알았던 나.

한밤 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로는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 시인의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라는 시입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참 가슴이 저며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부모님의 사랑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다가 이제 부모님이 떠나시고 난 다음에 가슴을 치면서 후회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목회를 하기 때문에 인생살이에 대한 시각이 누구보다도 민감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 늘 예의주시하게 되고 관찰하게 되는 것이 목회자로서의 하나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제가 주례를 백 번을 넘게 했어요. 예식장에서 신부가 드레스를 입고 다가올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멀리에서 부터 조명을 받으면서 오면 여신이 걸어오는 것 같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아이가 저렇게 예뻤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신이라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드레스를 입고 오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출산한 아이를 안고 저에게로 와요. 우리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이 되었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얼굴에 함박 미소를 지으면서 저에게 기도를 받으러 옵니다. 그 때의 모습을 보면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어요. 공주 되기를 포기하고 그냥 막 살기로 작정한 것 같아 보이는 그런 자매가 아기를 안고 옵니다. 그 얼굴에 기쁨은 세상의 그 어떤 기쁨보다도 더 환하고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기도를 받아요. 자기를 가꾸던 여인이 이제는 자신을 가꾸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아기에게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그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모자를 씌워주고 양말을 신겨 주고 하면서 그 모든 기쁨이 아이에게 전가가 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교회에서 아이가 뛰어 다닙니다. 그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거예요.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교회 반대편 저쪽에서 다 들립니다. 여 장군이 되어 있는 그런 자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민방위 훈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학원 다닐 때 즈음이죠. 베테랑 교통경찰이 하는 강의였어요. 교통사고가 났을 때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되느냐. 우리는 사진을 찍어야 된다, 번호판을 적어야 된다 이런 말들을 보통 합니다. 베테랑 교통경찰이 하는 말은 상대방 운전사가 아줌마 인지 아닌지 먼저 확인하라고 하더라구요. 무슨 소린가 했더니, 자기가 교통경찰 생활 30년인데 아줌마랑 싸워서 이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아줌마다 그러면 싸울 생각하지 말고 경찰서에 전화하고, 보험회사에 전화하고 기다리라는 겁니다. 절대로 말싸움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중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 이해가 되실 겁니다. 아줌마라고 하는 존재가 어떤 존재 입니까. 결국 자녀를 가진 엄마 라는 겁니다. 자녀를 가진 엄마가 되면 무서울 게 없어지는 거죠. 아이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겠다는 그런 각오를 가지고 살다 보니까 전투력이 얼마나 상승이 되는지 모릅니다. 자녀 하나 잘 기르기 위해서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되던 상관이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녀를 돌보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 회사에서 사회적 실험을 했습니다. 구인 광고를 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취직을 하려고 모여 왔어요. 인터뷰를 합니다. 이 직장에 들어오면 당신은 24시간 일을 해야 되는데 그럴 수 있겠습니까. 24시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의아해서 글쎄요..., 그다음 질문은 밥은 잠깐 잠깐 알아서 먹어야 되는데 할 수 있겠습니까. 24시간 일을 하고 밥은 알아서 잠깐 잠깐 먹으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 또 질문은 누가 아프면 그 일 대신 해줘야 된다는 겁니다. 점점 가관입니다. 힘들어도 결근은 안 됩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 인터뷰 내용 중에 최고는 월급을 안준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당신이 일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때 그 회사에서 대답을 합니다. 그 분은 바로 당신 어머니입니다. 이 실험은 취직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대답을 들었을 때의 반응에 대한 사회적인 실험이었습니다. 당신 어머니라는 대답을 들으면서 울지 않는 사람이 없더라는 겁니다. 생각을 해보면 그렇습니다. 24시간 동안 일하죠, 밥은 알아서 대충 때우면서 지내죠, 자녀가 아프면 그 일 대신 합니다. 어렸을 때는 숙제부터 대신해 주기 시작해서 모든 일들을 대신 해줍니다. 힘들다고 결근하는 법 없습니다. 그런데 월급도 없습니다. 그렇게 일하는 존재가 어머니였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직장을 가지고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는 존재가 세상에 있을까 생각을 했는데 우리의 어머니들은 그런 일을 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입니다.’ 라는 그 대답을 들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참 위대한 사랑입니다. 문제는 이런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서 때로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너무나도 가볍게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이런 헌신적인 사랑이 깨달아 질 때는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가도 내가 힘들어 지면 그 순간 또 부모님에게 짜증을 냅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서 학교에서도 사회적인 실험을 한 적이 있어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깜짝 이벤트를 준비를 한 겁니다. 고등학교 학생 아이들에게 수업 중에 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너희들의 꿈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어떤 아이는 나는 이런 꿈이 있고 나는 저런 꿈이 있다고 꿈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꿈을 향해서 도전할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부풀어 있는 겁니다. 질문하기를, 만약 나에게 주어져 있는 시간이 1년이라면, 1년 밖에 안 남았다고 하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 꿈을 향해서 도전하는 일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5억 원을 받을 것이냐 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고등학생 아이들은 대부분이 1년 밖에 안 남았는데 무슨 돈이 필요해. 난 꿈을 쫒아서 살겠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습니다. 라고 다 대답을 합니다. 꿈을 쫒겠다는 겁니다. 고등학생 아이들 중에 한 명도 5억 원을 받겠다고 대답하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갑자기 정면 모니터에 화면이 켜지면서 깜짝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그 안에서 이 학생들의 아버지들이 한 명씩 등장을 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한 명씩 등장을 하니까 아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거예요. 갑자기 우리 아버지가 저 화면 속에 왜 나오는 겁니까. 인터뷰 하는 내용이 들리는 거예요. 아이는 숨을 죽이고 자신의 아버지의 인터뷰 내용을 듣습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아버지들의 꿈이 뭐냐 하면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게 귀하다고 생각을 안 했는데 시간이 점점 흐르고 나니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을 하는데 그 다음에 똑같은 질문을 하는 거예요. 만약에 당신에게 일 년밖에 인생이 남지 않았다고 하면 그 꿈을 쫒아서 살겠습니까 아니면 5억을 받겠습니까 그랬을 때 모든 아버지들의 대답은 꿈을 쫒겠다고 얘기 하지를 않습니다. 5억 원을 받겠다는 겁니다. 주저하지 않고 5억 원을 받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자녀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없습니다. 물려줄 것이 없습니다. 내 꿈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5억 원을 받아서 자녀들에게 주는 길을 선택하겠습니다. 모든 학생들의 아버지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나와서 얘기를 합니다. 이 아이들이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숙연해 지기를 시작합니다. 코 끝이 찡해지면서 그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든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부모의 마음은 이런 마음입니다. 나보다는 자녀, 자녀를 나무랄 때도 있지만 결국은 나보다는 자녀가 우선인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또 있어요. 부모는 무슨 일을 하다가도 항상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친하게 지내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면 시시비비를 가립니다. 그건 네가 잘못한 일이라고 말하고, 그 친구를 떠나가 버려요. 나에게 좀 불편하다 싶으면 그 사람을 더 이상 만나지 않아요. 전화도 끊어 버립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던 것도 끊어 버려요,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을 사귀다가 우리가 상처를 받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친할 때는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헌신할 것 같이 하던 아이들도 한 순간에 뭔가 작은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만 하면 나를 떠나가 버리는 그런 일들을 우리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그러나 부모님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내가 실수하고 넘어져도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내가 많이 잘못한 경우에는 나를 대신해서 상대방에 가서 무릎을 꿇어서라도 대신 사죄를 합니다. 이것이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우리 성장과정을 가만히 돌아보세요. 우리를 나무라시기도 하셨지만 결국 내가 학교에서 실수라도 하고 무슨 사고라도 치면 갑자기 부모님이 죄인이 되어서 학교 선생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모습들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결국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주시고 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분, 부모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 무조건 효도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사랑해주시는 사랑이에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매일 부모님을 향해서 시시비비를 따지는지 모르겠어요.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 부모님의 마음을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을 하고 이제 이후로는 부모님에 대해서 시시비비 따지지 말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부모님을 존중하고 효도를 해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당신의 대리자로 부모님을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대리자로 부모라고 하는 존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무도 없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태어나고 보니까 공기가 있고 햇빛이 있어요. 우리가 태어나면서 내가 숨 쉬기 위해서 공기를 만들어서 숨을 쉬어 가면서 살아가는 존재는 없습니다. 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햇볕을 만드는데 내가 투자를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공짜로 햇빛을 받아요. 달빛을 바라보고 별빛을 바라봅니다. 자연의 바람을 느끼며 이 자연의 만들어진 그 모든 환경을 우리는 누리면서 살아가요. 그런데 그것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살아가는 건 당연한 게 아니에요. 누군가가 만들어 주신 이 세상을 우리가 누리며 사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귀한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도 절대로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건강도 주셔야 건강합니다. 내 생명도 하나님이 보장해 주신 만큼 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우리는 왜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이 사랑,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의 크기를 알게 하고 싶은 거예요.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알게 하고 싶은데 인간이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알 길이 없다는 거죠. 그러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부모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너의 부모처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알기 때문에 아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로구나, 이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 부모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 젖먹이 어머니들이 그 어린 아기를 얼마나 사랑합니까. 이사야서에 보면 어찌 그 여인이 젖먹이를 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잊지 않겠다.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사랑입니까 그런데 그 어머니의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렇게 부모의 사랑에 비교해서 언급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으셨는지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은 나를 대신해서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 나 대신에 그렇게 죽음의 길을 택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 하십니다. 포기하지 않는 게 아니라 포기를 못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 안 하시는 게 아니라 포기를 못 하시는 분이로구나. 어떻게 부모가 자녀를 포기 하겠습니까. 아무리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어떻게 포기 하겠습니까. 포기 안하는 게 아니라 포기 못하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 못하시는 분이로구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더 깊이 구체적으로 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그 축복은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축복입니다. 그 어떤 부모라도 자녀가 잘못 되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잘 되고 또 잘되고 어떻게 해서든지 더 잘되면 좋겠다는 게 부모의 마음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복 주신다는 그 복이 어떤 복인지를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그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 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 지는 거죠. 하나님은 이 부모라는 존재에게 당신의 사랑을 담아 주셨어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잘 모르니까 눈에 보이는 이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그것을 알게 하시도록 부모라는 존재를 당신의 대리자로 세워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연 세계를 보세요. 모든 동물은 내버려둬도 혼자 살아갑니다. 태어나자마자 두 다리로 일어나고 걷다가 금방 뛰어요. 그리고 풀을 뜯어먹기 시작해요. 알에서 부화한 거북이는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해 갑니다.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살아요. 태어나자마자 부터 스스로 살아요. 그런데 인간은 그렇지 못해요. 인간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태어나서 걷기까지 1년이 걸려요. 그전에는 누워서 아무것도 못해요. 누가 나에게 해를 끼친다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 해를 끼치는 건지 아닌지 조차도 모르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에요. 요즘에 멸종 되는 동물들이 많이 있는데 만약에 동물들 중에 멸종 되는 그 순위를 따진다고 하면 사실은 인간이 가장 먼저 멸종 되어야 될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것은 인간은 멸종 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오히려 세계를 다스리고 지배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총 가운데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이고요. 둘째는 하나님께서 대리자로 세우신 부모님의 돌보심과 사랑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돌보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을 해 보세요. 하나님이 부모라는 존재에게 감당 시키신 일이 있습니다. 자녀를 돌보기 위해서 생명을 바치게 했어요. 손이 다 부르트고 몸이 상하고 관절이 상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포기 못하게 만드신 그 사랑. 절대적으로 그 자녀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그 사랑으로 묶어놓으셨습니다. 이 일이 참 한편으로 보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아십니까. 얼마나 혹독한 일인지 모른다는 거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타인에겐 그렇게 못해요. 그런데 자녀에게는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다해요. 하나님께서 그 일을 기쁨으로 할 수 있도록 기쁨의 마음을 부모의 마음속에 담아 주셨어요. 그리고 그 혹독한 일을 다 하게 만드신 거예요. 이게 하나님이 부모라고 하는 존재에게 허락하신 사명이고 또 특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당신의 사랑을 대신하도록 그런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이고 혹독한 일입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잘하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이 가혹한 일을 내가 너희 부모에게 감당하도록 했는데 너희가 부모를 그렇게 멸시하고 존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겁니다. 반면에 그 하나님의 사랑의 대리자로 나를 위해서 헌신하는 그 부모를 향해서 효도하고 순종하는 자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축복하고 또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옳은 거야, 이 것으로 끝이에요. 옳은 일이니까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 해야 하느냐 물을 이유도 없는 옳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2절, 3절에서 축복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다는 축복의 약속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 많은 축복 약속 가운데 첫 계명이 바로 부모에게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의 첫 계명입니다. 그 축복 내용이 3절에 있습니다.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 우리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 한다고 잘 되는 거 아닙니다. 어떤 하나님의 계명을 몇 가지 잘 지킨다고 잘 되는 거 아닙니다. 장수의 축복도 내가 오래 살아야지 하고 결심 한다고 해서 오래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부모에게 공경하는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내 생명이 길리라. 잠언서 23장 25절,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성경에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20절에도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거예요. 너의 생각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순종하라가 아니라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5장 4절 에도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세상적인 학원가서 가르치지 말고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자녀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야 되는 것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5장 1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너의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여러분 부모에게 잘하면 축복 받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에게 잘하는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잘하는 게 첫 번째 계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그런 부모의 사랑을 모른 척하고 효도 하지 않는 자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진노 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신명기 27장 16절에 보면 네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럽니다. 세상에서는 간혹 기독교가 제사를 지내지 않기 때문에 불효막심한 종교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불효막심한 종교를 믿을 수가 없다고 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것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사실은 기독교만큼 부모에게 효도 하는 것을 가르치는 종교는 없어요. 얼마나 강력한 지 보세요. 레위기 20장 9절에도 만일 누구든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했어요. 죽을 것이다 도 아니고 죽이라는 거예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순종 하는 것입니다. 전 제사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살아계실 때 잘 해드려야지 돌아가신 다음에 지극 정성 제사를 지내는 게 그게 무슨 효도겠습니까. 여러분들 가운데 제사를 지내 하시는 분이 계시면 용서 하세요. 제 생각을 말하는 겁니다. 죽은 다음에 구천을 떠돌아다니다가 일 년에 한번 얻어먹으러 오신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게 오실 것 같으면 아예 떠돌지 말고 그냥 매일 그 집에 계시면서 드시지, 그렇지 않습니까? 왜 떠돌다가 1년에 한번 오세요 그냥 매일 우리 집에 계신다 생각하시고 매일 밥상을 차려 드시지 그게 효도 아니겠습니까. 일 년에 한 번 제사를 지내면서 그것이 마치 지극한 정성 인 것 같고, 효도인 것 같다고 착각하지만 사람은 죽으면 심판이 있고 끝나는 겁니다. 죽은 다음에 구천을 떠돌아다닌다면 지금 구천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떠돌아다닌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3대 4대가 지나고 시간이 지나면 그 다음에 나를 조상으로 섬겨 주고 제사해주는 자녀들도 없다고 하면 그 다음부터 그 원혼들, 그 귀신들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계속 얻어먹지 못하고 계속 떠돌아야 되는 겁니까? 일 년에 한번 제사 지내면서 대단히 효도 인 것처럼 그렇게 하지 말고 진짜 이 효도는 살아 계실 때 하는 겁니다. 살아 계실 때 못 했으면 늘 죄인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겁니다. 살아 계실 때 잘해야 진짜 효도입니다.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니까 이제 밥을 먹다가도  흘리기도 하시고 실수도 자꾸 하세요. 관절이 안 좋으니까 잘 걷지도 못하고 같이 걸을 때 보면 저 뒤에서 천천히 오십니다. 답답해 하면서 왜 그렇게 늦으시냐 그럽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함부로 대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게 다 잘못된 일입니다. 언제부턴가 저렇게 모든 게 다 어눌해 지신 게 왜 그렇겠습니까. 다 우리를 키우시다가 그러신 겁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부모 라는 존재를 가깝기 때문에 너무 가볍게 여기고 소홀히 대할 때가 있어요.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감사해야 될 분이 있다고 하면 부모님 아니겠습니까. 가장 최선을 다해야 될 분이 있다고 하면 부모님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나에게 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 왜 세상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 사람들에게 내가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을 합니까, 아이러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부모님께 효도하면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더 늦기 전에 감사하며 사세요. 순종하며 살고 부모님의 기쁨이 되어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됩시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삶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복을 더하시고 장소에 축복을 더 하시고 자녀들이 복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가정에 큰 기쁨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번호
날짜
설교자
제목
성경본문
영상
644
2019.7.7
박동찬 목사
 막 4 : 35 - 41
 
643
2019.6.30
박동찬 목사
 단 3 : 13 - 18
 
642
2019.6.23
박동찬 목사
 엡 6 : 10 - 13
 
641
2019.6.16
박동찬 목사
 시 37 : 23 ...
 
640
2019.6.9
박동찬 목사
 히 11 : 20 ...
 
639
2019.6.2
박동찬 목사
 히 11 : 8 - 12
 
638
2019.5.26
박동찬 목사
 히 11 : 1 - 6
 
637
2019.5.19
박동찬 목사
 요 9 : 1 - 7
 
>>
2019.5.12
박동찬 목사
 엡 6 : 1 - 3
 
635
2019.5.5
박동찬 목사
 삿 2 : 6 - 10
 
634
2019.4.28
박동찬 목사
 사 40 : 27 ...
 
633
2019.4.21
박동찬 목사
 마 28 : 1 - 6
 
632
2019.4.14
박동찬 목사
 요 12 : 12 ...
 
631
2019.4.7
박동찬 목사
 마 27 : 32 ...
 
630
2019.3.31
박동찬 목사
 욥 23 : 10 ...
 
 1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운영자에게 메일보내기

SSL certific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