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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믿음의 사람   
 
참 믿음의 사람
설교날짜 2019.6.30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단 3 : 13 - 18
 

참 믿음의 사람


1. 세상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2. 자신의 소원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3.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단 3 : 13 – 18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15.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16.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많은 신앙의 위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님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분을 연구하면 연구 할수록 참 하나님 앞에 그 열정과 그 철저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를 볼 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어려서부터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신앙 훈련을 잘 받으면서 성장을 했어요. 어머니의 규칙적인 생활을 따라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신앙 훈련을 받았던 사람이 존 웨슬리 였습니다. 이제 20대가 되어서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가 되기도 하고 공부도 잘 했어요. 늘 칭찬 받는 그런 삶을 살고 모범이 되고, 20대 중반이 지나서 선교사의 꿈을 키워 가면서 이제 복음을 북미 대륙에 전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가는 도중에 큰 풍랑을 만나게 되는 거에요. 큰 풍랑을 만나게 되니 얼마나 두렵습니까. 내가 이 복음을 전하러 가다가 미국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잘못하다가는 내가 이 대서양에 빠져서 죽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겁이 났고 두려운 그런 마음이 들었는데 배 한 켠에 가보니까 거기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그들의 모습 속에는 두려움이 없더라는 거예요. 너무나도 표정이 평안하게 찬송을 부르고 예배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 어린 아이들까지도 그렇게 평안한 모습으로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찬송을 부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왜 두렵지 않느냐 물어보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우리가 두려울 일이 없다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존 웨슬리는 누구보다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사람인데 고민이 생긴 거죠. 왜 저들에 마음에는 평안이 있는데, 구원의 확신이 있는데 내 마음속에는 없는 것일까. 이것이 너무나도 고민이 되기 시작한 거예요. 미국에 도착해서 복음을 전한다고 열심히 노력은 했지만 결국은 실패를 하고 영국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거죠. 영국 땅에 와서 내가 목사를 계속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되는 겁니다. 내가 구원의 확신도 없는데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고 얘기하는 것이 모순 이라는 거죠. 그래서 목회를 그만 두려고 까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수요일 저녁에 올더스게잇이라고 하는 거리를 걷다가 한 작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까 그 예배당 뒤에 가 가지고 서서 그 교회에서 말씀이 전해지는 것을 듣기를 시작 했는데 그때 마침 앞에서 이 예배를 인도하시는 분이 마틴 루터가 주석한 로마서의 주석서 서문을 읽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이렇게 뒤에서 듣고 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을 하는 거죠. 그리고 내 죄가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함 받았다는 것이 믿어지지를 시작하고 내가 정말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내가 구원 받았다는 것이 믿어지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달려가 가지고 자기의 일기에 그날의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면서 이상하게 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확신이 있노라고 기록을 하는 거죠.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서 존 웨슬리의 회심 사건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 웨슬리의 회심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많은 지식이 있는데 이 지식이 사실 머리 속에 지식으로 남아 있으면 안되는 거예요. 우리 마음속에 감동으로 와야 되고 우리 마음속에 감동은 우리의 삶으로 표출이 되어 줘야 되는 것이 이것이 믿음의 바른 삶이라고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는 거죠. 여기에서 가슴까지 내려 오기까지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걸리는 분들도 있어요. 평생을 걸려도 평상을 교회에 있으면서도 이 머리 속에 있는 지식이 여기까지 내려오기가 정말 오래 걸리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보면 교회 다닌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게 바로 믿어지는 분들이 있고 바로 은혜를 체험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귀한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존 웨슬리가 그것을 경험 하고 나니까 이제는 구원의 확신이 생긴 거예요. 이제는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그런 마음이 생기니까 이 웨슬리의 회심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그의 전과 후의 삶이 너무나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거에요. 근데 이 회심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깐 이제는 존 웨슬리의 설교도 달라지는 거예요. 무슨 설교를 하겠습니까, 지적인 설교 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 그리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설교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된다 이것을 선포하고 다니기 시작했어요. 당시 영국 국교회를 다니면서 진짜 믿음을 가져야 되고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된다, 근데 그것이 동료 목회자들과 또 많은 성도들에게 마음에 걸림돌이 되는 거예요. 아니 왜 저런 설교를 하나, 자기만 진짜이고 나는 가짜인가 이런 불편한 마음들이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때로는 그 웨슬리를 공격하는 사람들도 대적자들도 생겨나게 되었던 것을 우리가 이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웨슬리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된다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질타하기 위해서, 그것이 아니라는 거죠.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진짜 성령으로 거듭나는 이런 삶을 우리가 살아야 된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니까 그런 말씀을 전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존 웨슬리의 이런 설교는 오늘 우리에게도 주는 교훈이 큽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기만하고 스스로 속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아니 목사님 내가 언제 나를 속였습니까. 스스로 속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를 속이고 있는데 그게 뭡니까, 나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 정도면 구원 받는 데 별 지장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 거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제대로 서 있다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나만큼 봉사하고 나만큼 열정 가지고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도 없다, 나만큼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도 없다, 나 정도면 된다, 이런 자족하는 마음 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는 거죠.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외치는 이야기가 뭡니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깜짝 놀란 거예요. 그래 가지고 질문을 합니다. 주여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수많은 권능도 행했습니다. 이 정도면 구원의 확신이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거죠. 여러분 우리도 신앙생활 하다가 누가 귀신을 내쫓고 권능을 행하고 그러면 저 사람은 대단한 하나님의 사자 인가보다 뭐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나에게서 떠나 가라. 그런 외적인 능력 같은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스스로 속고 있었다는 거에요. 이 정도면 됐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찌 보면 한국 교회에서 이 구원관에 대해서 잘못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있어요. 내가 믿는 순간 이제부터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으니 구원받은 존재다 그리고 이제 죽을 때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도 나는 구원 받는다, 잘못된 생각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그것이 우리가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는 구원파의 구원관과 다르지 않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파들은 몇날 며칠시에 구원 받았다 이것을 꼭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걸 모르면 아주 구원 받은 게 아니라는 거죠. 근데 사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12제자로 뽑혔던 사람이에요.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 그 누구도 설 수 없는 그 자리에 뽑혔던 사람이지만 그러나 그는 자기 갈 길로 잘못 가지고 멸망 당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도 바울도 나중에 뭐라고 그럽니까.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두렵고 떨림으로 내가 이미 이루었다 함도 아니고 얻었다 함도 아니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향하여 달려간다 그래서 우리에게 뭐라 그러니까 너희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그러지 않습니까.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받았어요.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시고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줬으면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이 구원을 내가 지키기 위해서 그 아직 조심조심 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의 여정 이 되어 줘야 된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엔가 과거에 내가 이만큼 했으니 됐고, 내가 이렇게 살고 있으니 괜찮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고 그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가 잘못된 길로, 멸망의 길로 떨어져 버릴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그래서 저는 이 진짜 믿음의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근데 진짜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주님을 정말 깊이 사랑하는 사람 뭐 여러가지를 얘기할 수 있겠지만 제가 말씀을 연구하는 가운데 느끼는 점은 바로 그거예요. 진짜 주님을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사람, 믿음의 사람입니다. 지식적으로 하나님은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를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고 정말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나와 함께 하니 이제부터는 내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면서 사는 그런 존재들. 하나님은 추상적인 어떤 신의 개념이 아니라 진짜 살아 역사하시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너무 감사해서 그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슬퍼하는 일이라고 하면 하나님 내가 하고 싶어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하면 이것이 나에게 손해가 된다 할지라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일을 감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왜 사랑하면 가능한 거에요.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서 하라고 하면 일 하기 싫죠. 그러나 누군가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라고 하면 그 존재를 위해서 내가 희생하고 섬기고 하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기쁨이 되어 진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제는 주님과 나와의 사랑의 교제로 들어가는 것이 진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진짜 내가 그분을 사랑한다고 하면 배신 할 수가 없는 거죠.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는 게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듣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게 되어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주변을 요즘에도 가만히 돌아보면 숨어있는 진짜 믿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을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 성도님들이 믿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생활도 우리가 갓난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못하다가 젖을 먹다가 우유를 먹다가 그 다음에 이유식을 먹다가 딱딱한 음식을 먹으면서 성장을 하듯이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 우리가 처음에 왔을 때는 아무리 내가 나이가 많아도 이제 신앙의 세계의 눈이 열리면 영적인 유아기에 접어드는 거에요. 그 아이가 이제 점점 말씀을 드리면서 성장을 하다가 나중에는 정말 진짜 믿음의 사람, 큰 위기와 환란도 믿음으로 이겨나갈 수 있는 그 자리에까지 성장해 가는 거죠. 근데 우리 가운데는 때로 이제 어린아이 때는 작은 바람만 불어도 넘어지는, 작은 유혹이 와도 넘어져 버리고 마는 그런 단계에 있는 분들도 있는가 하면 정말 깊은 믿음의 자리에까지 이르는 분들도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깊은 자리에 이른 분들을 만나보면 별로 유명세를 타는 분들이 아니에요. 다 잘 드러나지 않고 숨어져 있는 그런 분들 중에서도 정말 정금 같은 믿음을 가진 분들을 보게 될 때 얼마나 제 마음이 감사하고 그 분들과 교제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성경에도 보면 숨어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숨어있는 믿음의 사람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름이 있었지만 자신들의 이름보다는 다니엘의 세 친구 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더 잘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인거죠. 근데 이들은 별로 성경에서 드러나는 게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얼마나 대단한 믿음의 사람인가 오늘 이 본문 말씀을 읽어보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 바로 이 세 친구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는 거죠. 다니엘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사자 굴에 들어가 뜬 사람 이라고 하면 이 다니엘의 세 친구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타는 풀무불 속에라도 들어가겠다고 죽음을 불사 하고 그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지켜 내려고 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 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게 될 때 이렇게 하나님을 철저히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기적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을 오늘 우리는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전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들은 어떻게 사는가, 오늘 본문이 주는 세 가지 교훈의 말씀을 잠시 생각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째는 참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요청이나 요구, 또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을 보면 느부갓네살이라고 하는 왕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느부갓네살은 인류 역사를 통해서 볼 때도 굉장히 강력한 군주 였어요. 바벨론 이라고 하는 대제국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느부갓네살 왕입니다. 근데 이 느부갓네살이 어느 날 난데없이 법을 만드는 거예요. 금 신상을 만들어라, 신상을 크게 멋지게 만드는데 금으로 만들어라. 금 신상을 만들고 보니까 너무 멋진 거에요. 그래서 공표를 하는데 법을 만들었어요. 모든 사람들은 저 금 신상 앞에 절해라.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라 절 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 저 타는 풀무불 속에 다 던져 버리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얘기입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유대인들은 유일신 하나님 만을 섬겨야 합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이 십계명에도 있잖아요. 그 얼마나 고민이 됩니까. 이 권력자가 금 신상에게 절하라고 하는데 내가 이 거절을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모르겠다는 거죠. 오늘 결론을 말씀드리면 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그럴 수 없다는 거에요. 거부했다는 얘기죠. 이것은 우리 요즘 사는 세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는 늘 끊임없이 법을 만들고 조례를 만들고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고, 자고 일어나면 법이 바뀌어 있기도 하고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우리 또 세상 법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근데 그런 법들이 권력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얘기예요. 만들어지고 나면 그것이 좋은 법이 수도 있지만 때로는 우리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을 지켜야 되는데 있어서 걸림이 되는 그런 법 일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어느 순간엔가는 선택을 해야 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을 선택할 것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할 것이냐 그 때때로 세상에서는 기독교가 잘못됐다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반하는 그런 법을 만들어서 너희들도 다 그 기독교 신앙 보다는 세상의 법을 지켜야 된다, 안 그러면 너희에게 불이익이 간다고 했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 것인가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혹시라도 나중에라도 그런 선택이 어떤 그 자리에 우리가 서게 된다고 하면 신앙 생활은 그저 종교 생활이니까 교양적인 거니까 우리가 세상 법을 따라야지, 그러고 세상으로 가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우리는 이 길로 가려 그럴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비난 하고 조롱할 거에요 어리석다고 얘기할 거에요 너희들은 도대체 뭐냐 그러고 얘기할 거예요 지금도 뭐 그런 얘기들이 교회를 향해서 얼마나 많이 비난의 화살들이 던져지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가 진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에 있다고 하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버리겠습니까. 당신들이 아무리 그렇게 얘기하고 나를 핍박하고 나에게 해가 되도록 한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선택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선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느부갓네살은 당시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금 신상을 만들었어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에이 뭐 그런 걸 뭘 질문이라고 하세요, 어떻게 우상에게 절합니까, 안 합니다, 그럴 것 같으시죠. 죽인다 그랬는데도 그렇게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그 금 신상에 절하지 않는 걸로 인해서 사람이 죽으면 한번 죽는 건데 언제 죽어도 죽는데 죽음의 길을 택하겠다 과연 우리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은 그렇게 쉬운 말씀이 아니에요. 여긴 우리가 추구하는,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권력자가 얘기하는 거예요. 여러분 권력자가 얘기라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안 들어도 권력자가 얘기를 하면 그 얘기를 들어요. 정말 힘이 있는 사람이 얘기를 하면 틀린 얘기를 해도 당신이 옳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붙어서 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권력을 향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내가 저 사람 편에 붙으면 저 사람에게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권력이라도 내가 가질 수 있으니까, 저 사람 옆에 가면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어떤 힘이 생기니까 힘에 의한 의지에 의해서 우리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권력자가 얘기하면 따라갑니다. 절해라, 살기 위해서도 절하지만 내가 너무 열심히 절을 하면 저 사람이 나에게 장관 자리를 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 자리로 달려가는 거예요. 말하기 전에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먼저 가서 절을 할 수 있는 것이 사람들의 모습이 되라는 것입니다. 권력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들어야 된다,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아, 지금 저 사람 내가 붙잡으면 내가 출세할 수 있어, 이것이 어떻게 보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또 그 다음에 금 신상입니다. 얼마나 화려하고 멋집니까. 금으로 만들었어요. 지금도 화폐는 금 본의주의로 만들어 지지 않습니까. 돈을 상징하는 거죠. 이 돈이라고 하는 것, 만물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요. 이 만물의 힘이 모든 기본 종교들을 다 무너뜨립니다. 교회 오라고 하면 안 오지만 어디에서 돈을 준다고 하면 다 쫓아갑니다. 만물의 힘입니다. 금 신상 앞에 절해라, 과연 우리가 그것을 사도 바울처럼 배설물과 같이 여길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어요. 저런 거 가져봐야 잠깐이다. 잠깐 기쁨을 누리고 영원한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내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나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붙잡을 것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거기에다가 위협적인 상황까지 만들어졌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 안하면 죽인다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상황 입니까. 어느 한 가지도 쉬운 것이 없습니다. 권력 앞에, 돈 앞에, 상황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사실은 이런 것들을 꼭 찝어서 얘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의 삶이 사실 이런 것 앞에 무릎을 꿇을 때가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권력자가 부르면 찾아가고 돈이 생긴다 그러면 쫓아가고, 심지어는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조차도 하나님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그렇게 매달리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면서 그런 게 전혀 필요 없다, 그런 거 없이도 잘 살수 없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서 필요한 것들을 주시죠. 그러나 욕심으로 너무 많이 추구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일산광림교회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어떠한 세상적인 환경에 휘둘리거나 눈에 좋아 보이는 그것을 잡으려 쫓아가기 보다는 믿음의 본질을 볼 수 있고 믿음의 가치를 붙잡고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두번째로 주시는 교훈은 내 소원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 한다고 하는 겁니다. 


  내 소원대로 되지 않아도 나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 다니엘의 세 친구의 믿음이 진짜 라고 얘기하는 것은 내가 저 풀무불 속에 던져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 라는 말도 대단한 믿음이지만 그 다음 말이 더 이 사람들의 믿음이 진짜 라고 하는 것을 입증해 주는 거에요. 그 다음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리 아니하신다 할지라도 우리는 금상에 절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저들의 믿음이 진짜 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런 얘기 하면 내가 하나님을 나는 믿습니다, 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뭐라 그래도 좋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살겠습니다 이러면 세상에선 우리를 조롱해요. 바보같이 어리석게 그걸 믿느냐고 조롱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처음에는 믿음이 하나님 제가 정말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했는데도 그런 얘기를 자꾸 듣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의 마음이 흔들려 버리는 거예요. 교회에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학교를 다니던 우리 자녀들이 대학부에 가게 되고 청년부에 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친구들이 너 아직도 교회 다니니, 이 한마디에 교회를 떠나가는 거예요. 그런 어리석은 얘기를 네가 지금 공부를 하면서 그런 것을 믿느냐 그러면 우린 그걸 버려버리고 떠나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하는 거죠. 진짜 믿음의 사람은 누가 뭐라하든 그런 이야기에 흔들리지 아니하는 줄로 믿습니다. 당신들은 그렇게 생각하세요. 당신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이럴 수 있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간혹 기도회를 하다 보면 하나님의 응답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라며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흔들리는 경우가 있어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 하면 된다고 했던 말들이 다 거짓말이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아, 세상 말이 맞았다며 흔들리고 또 세상으로 빠져 가는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오늘 이 다니엘의 세 친구의 고백과 그들의 믿음의 행동, 믿음의 결단은 놀라운 것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저 맹렬한 풀무불 속에 던져 넣는다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내실 것입니다. 기본 상식을 넘어서는 어떻게 보면 바보스러운 그런 고백이 아닐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 세 친구의 고백을 비웃으면서 느부갓네살 왕이 그들을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그 소리를 듣고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했다고 나옵니다. 화가 난 거에요. 느부갓네살이 누굽니까.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인데 죽이기 전에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말 안하고 그냥 처단해도 되는데 기회를 주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관용을 베풀어 줄 테니까 지금이라도 돌아서라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럼 또 처음에는 신앙 지키고 한 고비 넘었던 사람이, 세상이 나에게 관용을 베풀어 주는 것 같으면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야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또 넘어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죠.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안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가 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습니다 라고 하니 19절에 화가 나서 평소보다 풀무불을 7배나 더 뜨겁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세 사람을 결박해서 풀무불 속에 집어 던집니다. 얼마나 두려운 순간입니까. 더 놀라운 것은 이 다니엘의 세 친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이들은 풀무불 속에 들어가도 하나님이 나를 건지실 거라고 100% 믿었다는 거에요. 그것만 가지고는 마음이 계속 평안 할 순 없어요. 혹시라도 의심을 하면서 그래도 그러다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며 겁이 나잖아요. 근데 다니엘과 세 친구가 절대적으로 평안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던져지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 내 주실 것이라고 100% 믿었고, 만약 그렇게 안 하시더라도 죽으면 그만이라는 거에요. 그렇게 안해도 나는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지 않을 거라는 각오를 가지고 풀무불속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니 두려울 것이 없는 겁니다. 이 말씀을 읽고 또 읽어도 사실 잘 이해가 안 돼요. 왜냐하면 저는 이런 정도의 믿음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제가 이 말씀을 보면서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나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우리가 추구하고 본 받아야 되는, 따르려고 노력하고 몸부림 쳐야 되는 그런 삶의 모습, 성도의 모습이 되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들의 믿음은 말뿐인 믿음이 아니었어요.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자기의 생명을 걸고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런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이것을 돌아 봐야 됩니다. 이것을 돌아보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 자고 하고 스스로 자기를 기만하고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자리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과거를 돌아볼 거 없어요. 내 자신을 볼 거 없습니다. 또 누군가와 비교를 한다고 했을 때 저를 비교하지 마세요. 저도 연약한 사람이에요. 누구 또 다른 어떤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나 신앙이 좋아 보이는 누구를 비교하면서 나도 저분을 닮아야지 하지 마세요. 성경의 인물들을 닮아 가실 수 있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이 성경의 인물들을 본 받으려고 할 때 오늘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고 위기를 극복하는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세번째로 오늘 말씀이 주는 교훈은 참 믿음의 사람에게는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의 사람에게는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 하셔요. 목사님, 그럼 우리처럼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 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함께하세요. 함께 하시는데 하나님의 기적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정금 같은 믿음을 가졌을 때 하나님은 역사 하세요. 우리와도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격려 하세요. 더 깊은 믿음의 자리에 오도록 우리를 이끌고 계세요. 때가 되매 우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아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으면서도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그런 기적을 바랄 때가 있어요. 그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진짜 기적을 보기를 원하면 내 삶을 던져야 됩니다. 성경의 인물들처럼 나는 누가 뭐라 그래도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 합니다, 이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될 때 홍해가 갈라지는 것이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내가 어정쩡한 세상과 양다리를 걸쳐놓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의 기적이 왜 나에게는 없습니까, 없을 수밖에 없는 거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항상 기적이 따랐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져 넣었을 때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봉해 버리지 않습니까. 죽음을 불사하고 내 믿음을 하나님 앞에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다니엘의 세 친구도 마찬가지죠. 죽음을 불사하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내 생명보다 나는 하나님이 더 존귀한 분이시란걸 나는 고백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게 될 때 풀무불 속에서도 하나님이 건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또 다른 사람들, 여호수아, 갈렙, 또 우리가 잘아는 능력의 종이었던 엘리야와 엘리사도 마찬가지죠. 그 수많은 기적들이 어떻게 일어나느냐, 저들은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는 삶의 모습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뭐라고 그럽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믿으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그래서 이 다니엘의 세 친구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풀무불 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세 친구를 결박하고 가던 그 병사가 너무 뜨거우니까 오히려 이 병사가 이 결박을 했던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뜨거운 불 속에 정작 들어갔던 세 사람은 살았습니다. 여러분 이게 믿어지십니까? 아멘 안 하시잖아요. 에이 목사님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그러세요. 성경이 그렇다라고 그러면 그런 줄로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억지로 하는 것처럼 들려지실지도 모르겠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있지 않았다고 하면 성경은 진리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이 진리의 말씀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필요 없어요. 예수님을 믿을 필요 없어요. 성경이 진리의 말씀이려면 창세기 1장 1절에서 요한계시록 마지막 절까지 진리여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이 그렇다 그러면 그런 줄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언젠가부터 이 세상에서 배운 이성과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재단하기 시작했어요. 달나라에 가는 이 21세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떻게 이런 말씀을 믿느냐, 여러분 과학이 신앙을 대체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과학이 뭔지 아세요? 옛날에 원시시대 때는 벼락이 치면 그게 뭔지 모르고 두려워 했어요. 이제 차츰 왜 벼락이 치는 건가 이것을 누군가 연구하다 보니까 그 원리를 알게 된 것이 과학입니다. 이 자연 현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연구 하다 보니까 그 원인을 밝혀 내는 거예요. 그 얘기는 과학 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이 우주의 원리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지 신앙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안다고 해도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백만분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조금씩 경험을 하면서 알아가는 겁니다. 물체를 놓으면 아래로 떨어집니다. 지구의 중력이 있기 때문에 떨어지는 것이로구나. 그런데 어떤 것들은 떨어지지 않고 날아다니잖아요. 도대체 저 나는 것들은 왜 나는 것인가 보았더니 바람의 영향이지요. 날개의 양력이 생기도록 바람의 흐름을 타고 올라가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비행기도 만들었습니다. 자연 속에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그 놀랍고 기묘한 그 원리와 원칙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는 것이 과학입니다. 그 원리를 발견했다고 해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되는 논리예요. 그 것이야말로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이야기입니다. 과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믿음의 세계를 조금씩 경험해 가는 겁니다. 그리고 믿음의 세계는 우리의 지식으로는 아직도 다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우리는 그런 줄로 믿는 거예요. 여러분들 자녀 교육할 때, 네가 아직 어려서 몰라서 그래. 엄마 말 들으라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인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아이는 부모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 입니다. 성경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더 많아요. 그렇다고 내가 이해한 것만이 진리인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세계는 그런 세계가 아니에요. 그런 세계로 하나님이 우리를 초대해 주셨어요. 거기에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어떻게 반응하든 그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지금도 우리의 생명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제가 초청합니다. 이 믿음의 세계에 더 깊이 들어오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신비를 경험하는 복된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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