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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인생에 광풍이 불어올 때  
 
내 인생에 광풍이 불어올 때
설교날짜 2019.7.7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막 4 : 35 - 41
 

내 인생에 광풍이 불어 올 때



1. 예수님이 타신 배에도 풍랑은 몰아칠 수 있다.  


2.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 말고 믿음을 가지라 



막 4 : 35 - 41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갈 때 꼭 가야 할 곳이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다윗 성도 있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골고다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꼭 가봐야 하지만 또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갈릴리 호수 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라신 곳도 갈릴리 지역이고 또 사역을 하시던 주 무대가 바로 갈릴리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지역을 가보면 그 갈릴리 호수가 얼마나 아름답고, 고요하고, 평화로운지 몰라요. 그 갈릴리 지역을 갔다 오면 많은 분들이 하는 말씀이 이런 곳에서 며칠 쉬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 고요한 갈릴리 바다에서 광풍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도무지 상상이 안됩니다. 이렇게 고요하고 바람 한 점 없는 이 곳에서 광풍이 불고 파도가 쳐서 배가 파도에 휩쓸려서 빠져 죽게 되었다는 말이 상상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 갈릴리 호수에서 이런 광풍을 만나서 죽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론상으로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지형을 보면 북쪽 꼭대기에 헐몬산 이라고 하는 산이 있습니다. 헐몬산이 해발 약 2800m입니다. 우리나라 백두산보다 조금 더 높은 산입니다. 그래서 겨울철이 되면 눈이 가득 쌓입니다. 얼음물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것이 헐몬산에서부터 요단강으로 흐릅니다. 요단강으로 흐르다가 갈릴리 호수에 모입니다. 또 갈릴리 호수의 남쪽 끝에서 또 요단강으로 흘러갑니다. 마지막으로 사해 바다에 모입니다. 사해도 바다는 아닙니다. 호수이지만 갇혀 있어요. 사해는 해발 마이너스 400m, 굉장히 낮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낮은 곳으로 흘러 갈 곳이 없습니다. 이렇게 사해에 물이 고여서 따가운 햇살을 받으면서 증발이 되니까 염분만 남습니다. 바다가 굉장히 짭니다. 그래서 염해라고도 말하고 죽음의 바다라는 뜻의 사해라고도 말합니다. 헐몬산이 해발 2800m 가량이 되고, 거기에서 물이 흘러서 요단강으로 내려오는데 요단강은 해발 마이너스 250m 이에요. 바다보다 해수면보다 250m나 낮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스라엘 지형을 보면 서쪽으로 지중해가 있습니다. 지중해에서부터 이렇게 구릉으로 올라오다가 산악지대가 있고 산악지대를 거치면서 뚝 떨어지게 되는 거예요. 이 산악지대가 해발 500m ~ 800m 정도가 되는데 그 구릉 지대를 거쳐서 산악지대 꼭대기에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꼭대기에 도시를 형성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해발 800m 가 됩니다. 그 해발 800m 에서 내려오면, 예루살렘에서 그 산악지대를 내려와서 만나는 곳이 여리고 성입니다. 여리고 성은 또 마이너스 해발 300m 에요. 갈릴리에서부터 그 여리고 성까지 이렇게 물이 요단강을 타고 흐르다가 마이너스 해발 400m 인 사해 바다로 흘러갑니다. 북쪽에는 2800m 높이이고 서 쪽 이 갈릴리 지역은 한 500m 정도 되고 갑자기 뚝 떨어져서 마이너스 해발 250m 위치에 갈릴리 호수가 있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 닥치면 이상 기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저도 갈릴리를 여러 차례 가봤지만 딱 한 번 그렇게 바람이 부는 날을 경험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부는지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있는 야자 나무들이 거의 90도로 꺾일 정도입니다. 평온하고 잔잔했던 그 갈릴리 호수에 파도가 치는데 이게 호수인지 바다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파도가 치기를 시작하는 겁니다. 여객선이 사람들을 태우고 갈릴리 호수를 운행합니다. 큰 배인데도 얼마나 위 아래로 요동을 치는지 모릅니다. 파도가 치니까 갑판 위로 파도가 넘실대면서 넘쳐 오는 것이 보입니다.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요. 상상을 해보면 예수님 당시에는 그렇게 큰 배도 없었고 한 열 사람 타면 가득 차는 그런 작은 배를 타고 다녔습니다. 거기에 이런 파도를 만난다고 하면 정말 죽게 되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예수님이 배를 타고 천국 복음을 위해서 다니실 때, 그 갈릴리 호수를 건너서 다녔습니다. 주변을 걸어서 다니려면 덥고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로 교통수단으로  갈릴리 호수의 그 작은 쪽배를 이용했습니다. 그 배를 타고 저쪽으로 건너가자, 또 이쪽으로 건너가자 그러면서 거라사 지역으로도 가고 막달라 지역으로도 가고 가버나움 지역으로도 가고 디베랴 바다 쪽으로도 갔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저쪽으로 건너가자고 했습니다. 저쪽으로 건너가도록 명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배를 타고 제자들에게 저 쪽으로 건너가자고 하시고 너무 피곤하시니까 배 뒤편에서 누워서 잠을 주무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류 변화가 생기면서 바람이 불더니 이내 광풍이 되어서 배를 치니까 배가 요동을 치고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 떨게 되었습니다. 그런 위기감 속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우니,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그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평온한 갈릴리 호수에 광풍이 불어 닥쳤다는 말씀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도 평소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는 고요하고 그저 평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난데없이 문제의 광풍이 우리를 집어삼킬 듯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큰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자녀들이 아프기도 하고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사업이 꼬여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송에 휘말리기도 하고, 내 힘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평온할 때는 인생이라는 게 그런 거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이렇게 살다 우리 인생을 가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정신 줄을 놓고 넋 놓고 있다가 갑자기 문제가 닥치면 두려워 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리고 판단 능력도 떨어지게 되는 거죠. 평소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그런 문제 앞에 한 번 두들겨 맞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자신감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항상 사탄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공격하고 또 공격하고 우리를 물고 뜯고 넘어뜨리기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공격해 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뜻하지 않게 인생의 광풍을 만나게 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오늘 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세 가지 교훈의 말씀, 신앙적 교훈의 말씀을 잠시 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째는 예수님이 타신 배에도 풍랑은 몰아칠 수 있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예수님이 타신 배 인데도 풍랑이 몰아쳤어요. 우리들은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풍랑이 안 몰아쳐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 말씀을 읽으면 충격을 받게 되는 겁니다. 제자들만 따로 간 배도 아니고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신 배인데 어떻게 풍랑이 들 수가 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타신 배에는 절대 풍랑이 몰아 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이야기는 이런 우리의 생각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타신 배에도 풍랑은 몰아쳤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신앙인의 삶을 산다고 해도 위기는 온다는 거예요. 또 내가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선한 일도 많이 하고, 그리고 열심히 살아도 위기나 문제가 피해가지 않습니다. 마치 여름에 장마철이 되면 비가 쏟아지는데 그 장맛비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쏟아집니다. 신앙적으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도 그 비를 맞습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들은 끊임없이 터져 나옵니다. 그럼 우리가 왜 신앙생활을 해야 되냐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면 왜 신앙생활 해야 되는지 세 가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신앙생활을 하면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달리 문제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문제가 없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대처하는 자세가 어떠하냐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문제 앞에서 한탄하게 되고 포기하게 되고 이제는 끝났다고 절망하게 되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소망을 잃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문제를 극복하고 승리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이 두 가지 갈래 길 가운데 우리는 선택을 해야 되는 거예요. 문제가 오면 절망하는 길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문제가 와도 소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고 기도하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서서 그 문제를 이겨나갈 것이냐,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냐, 문제 앞에 우리가 섰을 때 자세가 어떠 한지의 문제입니다. 성도님들은 믿음의 길을 선택하시고 나는 하나님을 붙들겠습니다. 신앙인의 자리에 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두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 생활을 해야 되느냐, 충격적인 이야기지만 달리 대안이 없어서 그래요.

 

  신앙 생활을 안하고 하나님을 안 믿는다고 답이 있습니까, 대안이 없다는 거예요. 오히려 더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자기 실존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세요.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존재, 이 세상 역사 앞에서 인생이라고 하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 내 실존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대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린 대단한 존재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세상에 동물들은 다 자기 무기가 있는데 양은 무기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늑대가 와서 물면 죽을 수밖에 없어요. 또 어리석기까지 해서 자기 멋대로 길을 가다 보면 죽게 되는 음침한 골짜기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양이 잘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 목자를 따라 가는 겁니다. 목자의 돌보심이 없으면 양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굉장히 대단한 거 같아도 우리는 양처럼 무기력하고 지혜도 없고 어리석어서 목자 되신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어요.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분간을 못 해요. 목자가 가자는 길로 가야 산다는 거죠. 우리의 존재가 그런 양 같은 존재라고 하는 것을 안다면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되고 내가 풀 수 없는 그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이 문제를 올려드립니다 라고 기도하고 간구할 때 하나님이 풀어주시는 역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위기는 모든 사람에게 다 오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되게 하십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되심을 우리에게 증거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기적 가운데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점점 더 견고해지고 성숙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정금같은 신앙인으로 변화되어져 가는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신앙의 교훈은 위기가 닥칠 때 예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위기가 닥칠 때 예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평소에는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요. 병이 생겨도 돈이 있으니까 병원에도 갈 수가 있고 좋은 치료를 받을 수도 있고 그래서 다른 건 없어도 일단 돈은 있어야 된다, 돈만 있으면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착각입니다. 돈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돈이 있어도 내 병을 고치지 못해요. 내 앞에 닥쳐오는 그런 재난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이 없어요. 오히려 돈이 없으면 하나님만 의지할 텐데 돈이 있으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돈으로 뭘 해 보려고 발버둥을 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지혜가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무슨 일이든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 자가 없고 하나님이 여시면 닫을 자가 없다는 이치예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삽니까. 잘 살려고 노력을 하고, 더 오래 살려고 노력을 하고, 성공하려고 노력을 하고, 발버둥을 치지만 그런다고 해서 다 되지 않아요.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결단하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네 인생은 거기까지다.’ 라고 하면 우린 하던 일을 다 놓고 가야 되는 겁니다. 모래 시계를 상상해 보세요. 우리는 그 모래가 떨어지는 걸 보면서 이제 모래가 조금 남았구나, 이제 다 떨어져 간다, 이제 끝이구나 라고 눈으로 보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모래가 다 떨어지면 또 뒤집어 놓습니다. 모래가 돌아가도록 만들죠. 마찬가지에요. 우리 인생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라고 하는 모래알들이 있는데 그것이 떨어지고 있어요. 차이는 모래시계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내 인생에 남은 시간의 모래는 내가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얼마가 남았는지 몰라요. 마지막 한 알갱이가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나는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래요 나는 많이 남은 것 같은데 하나님이 데려 가시면 거기에서 끝나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되는 겁니다.  

 

   우리가 중병이 생기면 하나님 앞에 나갑니다. 혹은 어떤 문제가 있으면 살려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안 돼 거기까지야 그러시지 않습니다. 네가 조금 더 살기를 원하는구나, 네가 이 문제를 해결받기를 원하는구나. 너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줄께.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기도 하십니다. 큰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실로 정말 좋으신 분 이시로구나, 우리가 하나님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을까 이런 고백이 우리의 입술 가운데, 우리 심령 가운데 흘러넘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히스기야라고 하는 유다의 왕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참 신실한 왕 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질병에 걸렸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왕이시여, 왕은 이제 여기까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얘기를 들을 때 히스기야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히스기야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대로 죽을 수가 없어, 용한 의사를 불러 와라 또는 좋은 약초를 구해 와라, 세상에 유명하다는 그 의사들을 다 불러 와라, 그러지 않았습니다. 죽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기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히스기야는 알았어요. 어리석은 왕이 아니라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보인 행동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다 뒤로 물리고, 모든 신하들을 다 뒤로 물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살려 주세요, 기회를 더 주세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셨어요.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에게 당신 죽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성문을 빠져 나가기도 전에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말씀 하셔서 돌아가서 히스기야에게 다시 말해라 하나님이 너의 기도를 들으셨고 15년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말씀을 전해라. 히스기야가 15년 생명을 더 연장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때로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의 광풍이 몰아 닥쳐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때가 있고 우리의 가정을 뒤흔들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느냐, 사실 없습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가 있다고 하면 그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 앞에,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 앞으로 나가서 그분께 간청하는 길만이 우리의 문제가 풀리고 우리가 살아남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갈릴리 호수 한가운데서 이 엄청난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광풍이란 말 그대로 아주 미친 듯이 보이는 그런 바람을 만났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그 상황 속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럴 때 큰 파도가 치기라도 하면 배는 뒤집어 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파도 속에서 사람이 아무리 수영을 잘 한다 할지라도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배에 벌써 물이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이 때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무엇입니까,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우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런 광풍 앞에서 예수님 인들 어쩔  수가 있겠는가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해요. 뭐 병든 자를 고치는 거 그럴 수 있다 그래요,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 그럴 수 있다 그래요. 그런데 대자연의 분노 앞에서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 자연의 재해 가운데서는 정말 너무나도 보잘 것 없고 너무나도 그저 바람이 불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인간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경험은 그렇다는 거에요. 쓰나미가 몰려오고 태풍이 치고 거기서 우리가 버텨 낼 만큼 힘이 없다는 거죠. 모든 집이 무너지고 차가 날라가는 판국에 어쩔 수가 없다는 거죠. 예수님 인들 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게 인간의 생각 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으니까 예수님께 나가서 그래도 예수님은 우리보다 나으니까 무슨 해법이 있지 않겠나 이런 마음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 어떻게 할 수 있으면 해주세요. 우리도 신앙 생활하다 보면 때로 예수님도 어쩔 수가 없으실 거다 이런 생각을 가질 때가 있어요. 이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이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때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자꾸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해 버릴 때가 있는데 그러지 마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이 것은 된다 이 것은 안 된다 이렇게 자꾸 우리의 생각을 가지고 우리가 세상에서 받은 교육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해 버리려고 하는데 거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문제이던 주님 앞에 달려 나와서 그 문제를 아뢰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하면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이 되시지 않겠습니까. 무슨 일인들 못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사실은 성경을 딱 펼쳐 들면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데 그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을 믿으면 그 뒤에 나오는 얘기는 못 믿을 말씀이 하나도 없는 거에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는 데 무슨 불가능한 일이 있겠습니까. 그 창세기 1장 1절을 믿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에요. 우리 성도님들 그 말씀을 분명히 믿으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이 일을 어쩌시려나 싶은데 이 상황 속에서 잠에서 깨어나신 예수님은 뭐라고 그럽니까. 39절에 보니까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람들아 잠잠하라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게 세상적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거죠. 여러분 파도에 귀가 있습니까, 바람에 귀가 있습니까. 잠잠하라 그러면 바람이 듣고 아 내가 잘못 했구나 돌이켜야지 그렇게 하겠습니까? 인격이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잠하라 하니 잠잠해졌습니다. 이것이 증명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는 천지를 창조하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말씀으로 다스리는 권세가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이것을 믿음으로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를 위협하는 이 문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죽게 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이것은 살 수가 없습니다 이건 정말 우리 가정을 무너뜨리게 충분할 만큼 큰 문제입니다. 그런 문제가 있을 때 우리가 예수님을 깨우세요. 주님 이 문제 앞에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실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 문제 앞에서 내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그 문제가 무엇이 되었든 그 문제를 잠잠케 하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환란을 만나고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되나 주저하지 마세요. 그냥 하나님 앞으로 나오세요. 하나님이 해답이십니다.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 앞에 엎드리고 기도하게 될 때 우리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때가 차매 우리에게 좋은 것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의 역사를 베푸시는 우리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오늘 말씀이 주는 경우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 말고 믿음을 가지라 

 

   어떤 상황에서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가져야 돼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실 것이다 약속하고 계시잖아요.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하겠어요. 이거 고민하겠습니까? 진짜 계신가 아닌가 이거 고민하시지 마시고, 하나님은 신실하심을,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함께 하는 줄로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 하고 내가 넘어지는 순간에도 함께 하고 내가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함께하고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되심을 나는 믿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부를 때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이 뭔지 아십니까.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 모세를 부를 때도 그렇고 여호수아를 부를 때도 그렇고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얘기하세요?, 내가 지금 이 위기 속에 있는데 어떻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얘기는 뭐겠습니까. 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께 이런 뜻이겠습니까,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내가 너를 보호할 것이다.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누군가가 저보고 목사님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러면 왜요 당신이 날 지켜줄 수 있습니까 아니 왜 이런 문제 속에서 나한테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까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래도 그 말은 믿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에요. 그러나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거죠. 하나님은 말씀을 책임지시는 분이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놓치지 아니하시고 붙드시려고 하는, 보호하시려고 하는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늘 우리가 반성하고 회개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반성하고 회개해야 될 것은 뭐냐면 하나님의 약속을 나는 믿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매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과 두려움은 결코 같이 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고 두렵다는 얘기는 믿음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얘기는 두려움이 있을 수가 없는게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말씀으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꾸짖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40절에 이렇게 얘기하죠.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풍랑을 잠잠케 하신 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왜 무서워 하느냐 이 말이에요. 왜 무서워 하느냐. 근데 그 다음 말씀이 뭡니까. 그 다음 말씀에 왜 이렇게 무서워 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무서워 한다는 얘기는 믿음이 없다는 거예요. 이걸 지금 같은 말로 예수님은 보고 계시더라 는 것이죠. 때로 우리는 대개의 경우 믿음은 믿음이고 두려운 건 두려운 것이지 뭘 그러십니까. 이게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다, 하나님이 너를 살리실 거라고 하는 확신이 없는 증거라는 거에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진짜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여러분 우리는 신앙 생활을 처음 할 때는 이런 것들을 잘 모르니까 어려운 환경이 몰려오면 두려워요. 이건 우리가 성장하는 과정 하고 너무 비슷합니다. 우리가 어린 아기 때는 아빠의 품에 안겨 있을 때 강아지가 와서 아주 귀여운 목소리로 깡깡 거리고 짖기만 해도 아이들은 무서워서 울어요. 그런데 아이가 성장하면서 어느 틈엔가 내가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으면 모든 것이 안전하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그 다음부터는 강아지가 와서 짖어도 울지를 않아요. 안전하다는 걸 아는 거죠. 경험을 통해서 아는 거예요.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씩 조금씩, 처음에는 이게 진짠가 아닌가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에 환경이 몰려오면 그러면 우리가 두려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두려워지지가 않는 거에요. 하나님의 품에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 것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고 진짜 하나님, 지금 실존적으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붙들고 계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이시라고 하는 것을 내가 아는 거예요. 그리고 그 하나님과 동행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지 지식적으로 내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일날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그저 그냥 예배라고 하는 종교 의식 안에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지난 한 주간 동안도 나와 함께 하신 그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그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을 나는 찬양합니다. 우리가 모여서 함께 그 하나님께 나의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니 그 은혜가 얼마나 감사 합니까, 그것을 올려 드리는 거예요. 나와 많이 떨어져 계시고 일주일 동안 나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신 하나님, 교회 안에 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요번에 이 문제를 도와주고 살려주세요 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우리와 동행해 주셨다는 것이지요. 그 하나님 앞에 다시금 우리가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우리의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인 줄로 믿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 말씀을 머릿속으로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더라 그것이 아니고 지금도 내 손을 붙들고 계시고 나와 동행하시는 그 하나님, 우리가 그 주님과 같이 인생 걸음을 걸어 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를 위협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것이 두렵다는 것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보다 그 문제가 더 커 보인다는 거예요. 그러나 세상의 어떤 문제도 나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 보다 클 수는 없어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끝까지 나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의지 하시고 믿음으로 기도하시고 세상을 이기시고 문제를 극복하시고 성숙한 믿음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 저와 여러분들과 영원토록 동행하시는 우리 좋으신 하나님 되심을 믿으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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