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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침묵은 침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침묵이 아닙니다
설교날짜 2020.2.16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단 6 : 1 - 10
 
20200216 박동찬목사님

하나님의 침묵은 침묵이 아닙니다
(다니엘 6:1-10)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문제가 끊임없이 파도처럼 계속해서 몰아치지요.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실감이 될 정도로 이런저런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간절히 기도해요.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옵소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그러는데 참 야속하게도 어떨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전혀 듣지 아니하시는 것 같고 내가 아무리 불러도 침묵하시는 그 하나님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는 것을 우리가 경험을 하게 되지요. 그럴 때마다 우리의 마음에 드는 생각은 ‘진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이 맞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왜 이렇게 내가 기도를 하는데도 응답이 없으시고 변화 되는 것도 없고 도대체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옳은가’ 이런 생각을 갖는 분들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가만히 묵상을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어떠한가’ 라고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주는 그런 귀한 말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에 관한 이야기지요. 다니엘이 이 다리오 왕이라고 하는 페르시아의 위대한 왕입니다. 페르시아가 전 세계를 지배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바벨론을 다 무너뜨리고 그리고 엄청나게 강성한 그런 나라를, 전 세계를 호령할 만큼 강력한 이집트까지도 이렇게 공격을 해서 이길 만큼 강력한 그런 나라였죠. 거기에 다리오라고 하는 왕이 있는데 오늘 성경 1절에 보니까 [120도를 120명의 고관을 세워서 전국을 통치하게 했다], 그게 페르시아가 120도로 구성 되어있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 뭐 경기도 강원도 이렇듯이 도지사를 120명을 세웠다 이렇게 생각하면 맞는 거죠. 엄청나게 큰 나라가 아닐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그 120명의 도지사들을 왕이 혼자서 관리하려고 하면 관리가 안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그 위에 총리를 셋을 선택을 하는거예요. 총리를. 그래서 삼등분을 해가지고 총리가 한 총리가 한 지역씩 이렇게 담당을 하도록 했으니 120도를 공평하게 나누면 한 총리가 한 40도정도씩을 이렇게 관리를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중에서 오늘 성경을 보니까 다니엘이 3절에도 보면 다니엘이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났다. 그래서 왕이 그를 세워서 전국을 다스리게 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거예요. 총리가 셋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또 다니엘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리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당시의 고위 관직에 있던 그 모든 사람들이 이 다니엘을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저 다니엘을 우리가 끌어내리지 않으면 안되겠다’ 이래서 모략을 세우는 거에요. 그러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모함을 하던지 그의 허물을 찾아내 그를 끌어내려고 했지만 오늘 4절 말씀에 보면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다]는 거예요. 공격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바르게 사는 사람을 공격할 방법이 없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해서 이 다니엘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으니까 모략을 짜기를 시작을 하는겁니다. “어떻게 하면 다니엘을 끌어내릴 수 있을까?” 그러고 다니엘을 관찰을 하다 보니까 다니엘이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 하루에 세 번씩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거를 보고 아 이거를 가지고 우리가 공격할 수가 있겠다 생각을 해가지고 이 사람들이 모여서 작당을 하면서 다리오 왕한테 가가지고 하나 뜬금없는 계획을 만드는 거예요. “이걸 법으로 만들어서 발표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회의했는데 이런게 필요합니다.” 그게 보면 뭐 민생과 관련된 것도 아니에요. 국민들을 위한 것도 아니에요. 그 법령이라고 하는게 뭐냐하면 “앞으로 한달동안, 30일동안 왕 외의 다른 신이나 사람들에게 무엇을 구하거든 그 사람을 사자밥이 되도록 합시다.” 이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왜 이런 뜬금없는 이런 법령을 만들어 냈는지 모르겠어요. 이유는 하나지요. 그저 그냥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서 이런 말도 안되는 법령을 만들어서 다리오 왕한테 이 조서를 꾸며가지고 절대 못 바꾸는 조서로 해가지고 도장을 찍으십시오. 왕도 속은 거죠. 이게 도대체 뭔가 싶지만 또 고위관직들이 그렇게 모여서 그런 것을 계획을 했다 그러니까 거기에 도장을 찍어버렸단 말이죠.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보니까 다니엘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이 사람들이 이 대적자들이 이제 고발을 하게 되니까 영락없이 다니엘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죠. 다니엘은 이런 조서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도 오늘 10절에 보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세 번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죽는 줄 알면서도 조서가 그렇게 만들어 진 줄을 알면서도 그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내가 기도하기로 작정한 이 시간에 기도하고 있는 그런 다니엘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근데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다니엘이 이런 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시면서 “그래 다니엘아 걱정하지마. 내가 함께하니까 내가 너를 건져낼거야. 내가 너를 존귀하게 만들거야.” 이런 약속의 말씀을 주셨냐고 하면 주시지 않았어요. 다니엘은 지금 죽음을 눈 앞에 두고 하나님 내가 죽으면 죽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올라가서 기도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응답은 없었다는 거예요. 이럴 때 우리는 갈등이 되는 거죠 한달동안 기도하기를 쉴까 이런 생각도 하는 거죠. 한달 뒤에 하면 되니까 한달 이렇게 위험할 때는 좀 쉬는 것이 좋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하게되는 거죠.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그러지 않았다는 거예요. 단 하루라도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시간을 거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조서가 꾸며진 줄 알고 당연히 자신의 대적자들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 만든 법’이라는 것도 알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요, 이런 사자밥이 된다, 이런 얘기가 떨어지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평온할 수가 없어요. 두렵고 떨리고 염려가 되고,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라 그러면, 세가지 반응이 나타날 수 있을 거예요. 하나는 “에이, 그냥 뭐 예배 드리다가 죽지 뭐. 이제나도 살만큼 살았고 이제 뭐 이건 명명백백 한 거야. 나를 죽이려고 그러는 거고 이거는 피할 길이 없어. 그러면 뭐 그냥 죽지 뭐.”라고 하며 포기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순간까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방법이 있을거야.”라고 하며 하나님을 의지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오늘 다니엘의 경우는 죽든 살든 상관없다는 거예요. 다니엘은 평온한 상태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다니엘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23절에 보니까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을 믿으니 사는 것도 나에게 유익하고 죽는 것도 나에게 유익하다. 사나 죽으나 내가 하나님의 것이다 이 평온한 가운데 그저 나는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세 번 그대로 예배하는 다니엘의 모습을 보게 되더라는 거지요. 오늘 우리 성도님들 우리는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도 자녀와 질병의 문제로 기도해도 듣지 않는 것 같고 때로 하나님 침묵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의 결론을 보면 결국 다니엘은 살고 다니엘을 대적하던 다니엘을 죽이고자 모의했던 그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꾀에 속아 넘어가서 그대로 자신들이 다니엘을 죽이고자 했던 그 방식대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침묵은 침묵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기도하는 그 순간에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말로 때로 응답을 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에 놀라운 계획을 세우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는 이 다니엘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게 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에게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시는가 오늘 세가지 말씀을 잠시 전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기도하는 자를 사자의 입속에서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의 기도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미 계획을 세웠어요. 어떤 계획이냐, 사자 굴에 이미 천사를 보내놓은 거예요. 그래서 다리오 왕이 사자 굴에 다니엘을 던져 놓고 밤 잠을 자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새벽이 되니까 그냥 달려 나가가지고 사자 굴에 가서 “다니엘아 다니엘아, 네가 무사하냐?” 그러고 얘기를 할 때 다니엘이 거기에 응답을 하는 거예요. 22절에 보면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아마 그 사자 굴에 떨어지는 순간 다니엘은 ‘아 이제 내가 죽는구나’ 생각하고 떨어졌을 수도 있어요. 근데 내려가보니까 사자들이 나를 안 물어. 무슨 일이 있나 봤더니 천사들이 거기서 사자들의 입을 다 봉해 놓고 안전한 곳이 되게 했어요. 우리는 볼 때 거기가 죽음의 자리라고 여겨지겠지만 하나님이 함께하고 하나님의 천군천사를 통해서 그 사자들의 입을 다 봉해 놓으니까 그 자리가 안전한 곳이 되더라는 거예요. 그곳에서 하루를 지내고 나서 다리오 왕이 “괜찮냐?” 물어볼 때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다리오 왕이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 다니엘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다니엘을 더욱더 존귀한 자로 세우시는 것을 오늘 성경은 기록하고 있어요. 28절 마지막 절에 보면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더 존귀한 자가 되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가 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지금 당장 어떠한 변화가 없다 할 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얼마전에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님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오랜 시간동안 목회를 하는데 교회가 잘 성장이 안되고 여러 가지로 상황이 어려워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기도하시면서 기도 많이 하시는 목사님이신데 저를 찾아오셨어요. “목사님 좀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세요.” 그 일산에서 목회하시는 분이신데. 이분이 하는 얘기는 이제 아들이 대학을 갔는데 나라에서 장학금을 받기는 하지만 그게 모자라서, 그게 모자라는 부분을 이제 감당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목사님.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요청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아 그러시냐고?” 그러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드렸어요. 그러고 아드님에게 열심히 공부하라 그러시라고 이제 그랬더니 이분이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안 나가고 쭈뼛거리고 계세요. 그래서 내가 “왜 그러세요?” 그랬더니 “목사님 정말 죄송한데 내가 목사님 위해서 기도해 드려도 될까요?”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뭐 그렇게 죄송하다고, 해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러고 기도 하시라고, 그러고 앉으시라고 하고 제가 기도를 받았어요. 근데 이분이 기도를 하는데 한참을 기도하다가 갑자기 기도 중간에 예언기도를 하기 시작하시는 거예요. 예언기도를 하면서 그러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목사님을 에녹으로 부르셨습니다. 에녹과 같이 하나님이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 기도를 들으면서 제가 설교 때 몇 번 제 이름이 에녹이고, 하나님이 저를 부르셨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이분이 혹시 그걸 들었나?’ ‘이분이 이제 내가 방송 나가는 걸 들었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근데 이 얘기를 한 다음에 이분이 하나님께서 세가지 환상을 보여주시는데 그래서 세가지 환상을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첫 번째 환상이 뭐냐하면, “목사님이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모르겠는데 교복을 입고 어느 비 오는 날 비를 쫄딱 맞으면서 울면서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님이 목사님의 아버지가 되셔서 목사님을 인도 하시는데, 목사님의 좌편과 우편에 은혜가 있고 만남의 축복을 하셔서 만나는 사람마다 목사님을 도우면서 이렇게 여기까지 오는 그 모습이 보입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그 얘기를 듣는데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는 거예요. 제가 고3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요, 고3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비 오는 날, 저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건 내가 우리 성도님들께도 얘기한적이 없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날 제가 비를 맞으면서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그거에 대해서 울면서 기도했던 그거를 나는 잊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잊지 않고 계시는 거예요.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셨다는 것에 대한 확증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 이후로 그저 어려움 없이 좋은 분들 만나서 또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저의 삶이 그저 형통한 삶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그 순간에 나는 내가 기도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이 들으시는지 안들으시는지 뭐 어떤 응답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 목사님을 통해서 저의 귀에 들려지는 얘기는 그때부터 그 기도를 들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게 벌써 몇 년 전입니까 벌써 40년 전이거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나를 인도하셨다는 말씀을 들을 때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 같아도,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에요.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기도를 해야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 환상을 봤다고 그러면서 두 번째 환상을 얘기를 하는데 “두 번째 환상은 기드온을 부르실 때 하나님이 기드온을 [큰 용사여 네가 위대한 군사들과 싸워야 되겠다] 그럴 때 [나는 못합니다. 작습니다. 안됩니다.] 그러는데 하나님은 [작다고 얘기하지 마라 너는 큰 용사다]. 그러면서 [미리암 군사를 칠 때 한사람을 치듯 할 것이다 쉽게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래서 이거를 보여주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첫 번째 환상은 과거의 얘기고 두 번째 환상은 현재의 얘기구나. 근데 그 두 번째 환상이 뭐냐하면 제가 요즘에 아시겠지만 이 통일선교대회를 준비를 하고 또 빌리그레이엄 전도협회에서 하는 코리아 페스티벌 이게 엄청나게 큰 행사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인데 이게 참 힘들어요. 잘 안돼. 누가 도와 달라고 하면 안 도와줘. 바쁘다 그러고 안 한다 그러고. 근데 저는 그냥 쫓아다니면서 그분 만나면 그저 도와 달라 그러고 도와주면 감사하다 그러고 어떻게 보면 이게 내 일이 아니거든요 하루에도 열두번도 ‘이걸 내가 왜 하고 있나. 나도 저 사람들처럼 안한다 그러면 될 것을 왜 이걸 내가, 나한테 주어지는 혜택도 없는데 하자 그러고, 찾아다니면서 해달라 그러고, 도와주면 감사하다 그러고, 내가 왜 허리를 굽히고 이래야 하나...” 정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거든요. ‘내가 이거를 왜 맡아가지고 내가 목회하기도 바쁜 사람이 이래야되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분의 두 번째 예언이 바로 거기에 대한 응답인 거예요. 해야 된다는 거지요. 하라는 거예요. 이게 지금 미리암 군사와의 전쟁같이 여겨질지 모르지만 한 사람을 치듯이 할 것이다.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라시면 하겠습니다. 제가 감당해야 되는 부분이면 감당해야 하는거죠. 제가 그분의 그 환상얘기를 듣고 나니까 ‘아 저분이 나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온게 아니라 하나님이 저를 위로하려고 저분을 보냈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나가는 말로 기도를 해도 하나님을 그 기도를 들으시고 계획하시고 응답하시고 이끄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우리의 좋은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해서 내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신가 또 나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신가 그런 생각 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기도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하시고 계획하시기 시작하시고, 오늘 우리 성도님들 내가 죽을 위기가운데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셔서 머리털 끝 하나 상하지 않게 하시고 사자의 입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건져내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이 되십니까? 하나님은 이미 계획하시고 우리가 가야할 길로 우리의 손잡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두 번째는 두 번째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은 대적들을 멸하실 계획을 세우신 거예요.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랑하셨어요. 형통의 축복을 더해 주셨어요. 그래서 오히려 대적들이 죽이려고 하면 할수록 이 다니엘을 더 잘되는 거예요. 이런 것을 형통의 축복이라고 얘기하는 거죠.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축복을 받는겁니다. 시편 1편에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그러면서 뭐라고해요?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고 가뭄 중에도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거예요. 가뭄 중에는 모든 잎사귀가 말라야 정상이지만 하나님의 은혜 중에 있는 사람은 가뭄 중에도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대적들이 그렇게 다니엘을 죽이려고 하는 그 순간에도, 다니엘은 죽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귀한 자가 되고 오히려 더 형통의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게 하셨다는 거예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형통은 그렇다는 거예요. 세상에서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나만의 성공과 나의 형통은 어느 한 순간에, 환경을 따라서 가뭄이 오면, 다 말라버릴 수밖에 없지만 하늘로부터 오는 형통은 가뭄 중에서도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이 그런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이런 말씀을 들으면 부러워요. ‘다니엘에게 허락하셨던 이 형통을 나에게도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형통케 하시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은 형통케 하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런데 아 목사님 나도 하나님 사랑하는데 나는 별로 형통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얼마만큼 사랑하느냐가 중요해요. 하나님을 사랑하되,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해요.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오늘 성경에 보면 다니엘은 자기가 죽는 줄을 알면서도 기도했어요. 그 얘기는 뭐냐하면 “내 목숨보다 나는 하나님이 더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 다니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거예요. 때로는 교회 안다니는 사람 중에도 형통한 사람이 있어요. 뭔가 잘되는 사람이 있고. “목사님 그런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거는요 그냥 자기 노력으로 성공하는 거예요. 근데 자기 노력으로 성공하는 것을 성경은 뭐라고 하느냐 악인의 형통함이라고 얘기해요. 악인의 형통함은 아침 안개와 같이 자욱하게 뭔가 될 것 같지만 해가 뜨면 사라져버리는 안개와 같다는 거예요. 푸른 채소가 싱싱해 보이지만 잠시 지나고 나면 축 쳐져 시들어버리는 그런 채소와 같이 말라버리는 거예요. 영원하지 못해요. ‘잠시 내가 수고해서 이 세상의 낙을 누릴지는 모르지만 이내 후회하고 망하는 인생이 되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형통의 은혜는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그래서 늘 감사와 찬양의 고백이 끊이지 않는 그런 형통의 축복이 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는 이 다니엘을 볼 때 사랑스럽고, 그러고 더 존귀하게 만들어 주고 싶고 그런데 이 다니엘을 죽이겠다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단 말이에요. 하나님이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겠느냐 이 말이죠. 근데 이 대적자들 보니까 그 마음 씀씀이가 악하기까지 한거예요. 얼마나 교활한지 몰라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신들이 계획한대로, ‘자신들이 죽도록 만드시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귀한 교훈을 주는거예요. 자기 꾀에 넘어졌다 뭐 이런 얘기들을 우리 많이 하잖아요. 맞는 말씀이라는 거예요. 누군가를 해치려고 하면,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계획한대로 내가 당하게 되어 있다는 얘깁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돕고 또 협력하고 누군가를 세우려고 섬겨주고 도와주면 내가 언젠가 그 도움을 받게 되어있단 거예요. 내가 못 받으면 내 자녀의 때라도, 그 어떤 도움을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내 자녀의 때가 아니면 내 자녀의 자녀의 때가 됐든 언제가 됐든 우리가 심은 것은 거두게 되어 있다는 얘기에요. 그래서 우리가 사람들을 해치는 것은 해하려고 계획하는 것은 아주 나쁜 일이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특히나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거예요. 근데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지 우리는 잘 모르잖아요, 그죠? ‘저사람이, 우리 저 김집사님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또 저 이집사님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일까?’ 우리가 그거 모르거든요. 모를 때는 어떻게 하는게 지혜로운 거예요? 아무도 공격하지 않는게 지혜로운 거예요. 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닐 것이다 믿음으로 그냥 확 믿어버리고 공격을 하면 안돼요. 그죠? 그러다가 정말 하나님이 존귀히 여기는 사람이면 어떡하겠냐는 거예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살면서 모든 사람을 향해서 존귀하게 여기고 그저 섬기고 도와주고 때로는 원수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분을 마음으로 품어 안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그런 복된 우리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악한 생각을 버리고 선을 베푸는 성도님. 그 삶이 얼마나 복 되는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게 인생을 제일 잘 사는 비결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셨느냐, ‘이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어떤 공격이 온다고 할지라도 어떤 위기속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이 무모하게 공격을 당하는 것 같았지만 그 공격을 통해가지고 그 대적자들을 다 제하여 버리시고 그리고 나중에는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게 만들고 이 다리오 왕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칭송하고 하나님 앞에 송축하는 그런 고백을 하도록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페르시아의 제국에 이 다리오 왕은 위대한 왕이에요. 뭐하나 아쉬울 것이 없어요. 모든 세상 왕 위에 뛰어난 왕이 바로 이 페르시아의 왕이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런 왕이 다니엘을 인정했어요. 다니엘이 너무 좋아. 다니엘을 사랑했던 왕이라는 이야깁니다. 근데 다니엘이 그렇게 다리오 왕에게 크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니엘이 노력했기 때문이냐?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다리오로 하여금 다니엘을 인정하게 만드셨기 때문에 인정을 받게 되는 거죠. 근데 그런 다니엘이 이제 대적들의 음모에 휘말려가지고 이제 죽게 됐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이 대적들은 이제 다니엘은 꼼짝 없이 죽게 됐다. 사자 굴에 떨어지니 어떻게 살아날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하고 의기양양하지만 그러나 오늘 성경은 [그 일은 성공하는 일이 되지 못했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 오히려 자기들이 성공한 게 아니라,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덫에 자기들이 넘어지게 되지 않습니까? 오늘 24절에 보면 다니엘을 참수하던 사람들 왕이 화가 난 거예요. 그들을 끌어다가 너희들이 정말 교활하게 이렇게 다니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조서를 엉터리로 만들어서 나에게 도장을 찍게 만들고 다리오 왕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그들만 던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그냥 그 대적들을 그렇게 인제 멸하시는 모습을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다는 거죠. 하나님이 개입한 일에 인간의 계획은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늘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안에 사는 존재로 그렇게 서있을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참 복된 일인줄로 믿습니다. 이 다니엘을 사랑하던 다리오 왕의 마음이 다니엘이 사자 굴에 떨어진다고 하니까 얼마나 조급했는지요. 성경을 보니까 금식을 했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18절에 보면 [금식을 하고요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했다.] 밤잠도 안 잤어요. 그리고 새벽이 되니까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갔단 말이에요. 이만큼 이 다리오 왕이 뭐하나 아쉬울 것 없는 왕이었지만 다니엘의 일로 말미암아서 마음이 조급해졌다는 거예요. 그러고 가가지고서는 “다니엘아 다니엘아 그러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간절한 거예요.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의 굴에서 능히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 사자 굴에서 음성이 들리는 거예요.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이미 그 천사를 보내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내가 살았습니다.” 이 얘기를 하게 되니까 이것이 얼마나 기쁨이 되겠어요. 다리오 왕, 무신론자인 다리오 왕이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을 알게되는 거지요. 그래가지고 그가 26절 27절에 보면 하나님을 송축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믿지 않는 왕. 그 다리오왕이 26절에 보세요.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고 건져내시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조서를 꾸며가지고요 모든 페르시아의 백성들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라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이런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세상이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해도요 무너지지 않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을 넘어뜨리려고 공격을 하고 또 공격을 해도 하나님이 개입되어져 있는 일에 있어서는 사람의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 질 수가 없는 거예요. 그저 그래서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필요한 건 뭐겠습니까? “하나님 세상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무서운 거예요. 기도가. 기도하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백성은 절대로 넘어지지 않아요. 넘어졌다 할지라도 다시 일어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가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 가정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때로 기도하다가 낙심이 될 때도 있지요. 저도 있어요. 저도 때론 기도하다가 낙심이 될 때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그 하나님,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거예요. 일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뭔가를 계획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를 의의 길로 승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이 시편 121편 말씀인데 제가 이 말씀을 읽고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너의 오른편에서 너의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하게 하시며 또 내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아멘. 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오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에 늘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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