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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기속에 있는 크리스천의 행동강령  
 
위기속에 있는 크리스천의 행동강령
설교날짜 2020.3.1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고전 8 : 7 - 13
 

20200301 박동찬목사님

위기 속에 있는 크리스천의 행동강령

고린도전서 8:7~13



할렐루야 귀한 찬양에 감사드립니다. 큰 은혜 받으신줄로 믿습니다. 


평소같으면 우리 전후좌우에 계신 분들하고 “주님 이 자리에 함께하십니다.” 라고 하며 우리가 인사를 드리겠지만, 오늘은 각자 처소에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소 부재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 가정에 지금도 함께하시고 우리 성도님들을 붙드시는줄로 믿습니다. 믿음 안에서 승리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오늘은 3.1절 기념 주일입니다. 예년같으면 3.1절 기념 예배를 드리겠지만 때가 때이니 만큼 이렇게 실시간 동영상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순간에도 우리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그런 하나님이신줄로 믿습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 새로운 길, 그리고 은혜와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평생동안 이렇게 교회에서 예배하고 주일 성수하는 것을 꿈으로 삼고 즐거움으로 삼던 분들, 교회 나오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도 있으시겠지만 우리가 어느 곳에서든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그런 모습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리라고 생각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교회의 결정에 대해서 “왜 그렇게 하십니까?” 이러지 아니하시며 다 이해해주시고 따라주시는 우리 성도님들 얼마나 참 귀하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마다 우리 교회에서 공지하고  알려드리는 부분에 대해서 성도님들이 잘 들으시고 끝까지 지시를 잘 따라주셔서 이번 위기가 금방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협조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상황을 맞이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앞으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위기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좋은 대처방안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구요. 또 이런 위기속에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기를 원하실까 하는 부분을 다시한번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일이 한국교회에 일어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속에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으실까 하는 부분도 우리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라 이렇게 말씀드릴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우리가 의지하게 될 때 또 이 모든 것들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하시고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역사가 분명히 우리에게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전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위기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될것인가 기도하면서 받은 말씀 세가지를 잠시 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국가적인 혼란사태를 만들어내는 이와 같은 때 우리 성도님들이 우왕좌왕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크리스천의 행동강령, 행동지침으로 삼아야 할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존재로 서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핍박하거나 신앙 생활을 반대하는 경우가 아니라고 한다면, 교회는 그리고 우리 성도님들은 늘 사회적 책임을 신경 쓰는 그런 존재가 되야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 초대 교회에 보면 엄청난 부흥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에 초대 교회가 놀랍도록 부흥하고 성장이 됐는데 그 말씀을 가만히 보면 거기에는 두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임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회가 선을 행해서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게 되었다라고 하는 그 두가지가 교회 부흥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게됩니다. 왜 초대교회 사람들이 그렇게 때로는 핍박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게 되었나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성경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선한 일들은 교회가 행했기 때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서로 다 부자가 되고싶고 남들보다 많은 것을 가지기를 원하고 그렇지요? 근데 반대로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더라하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선을 베풀고, 이기적인 그런 삶보다는 이타적인 삶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그렇게 보살펴주는 그런 모습들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었지만 그것이 좋아보이더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 예수님을 믿지 않던 수 많은 사람들도 그런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면서 칭찬을 하면서 교회는 날로 부흥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즘에 매스컴을 보면 신천지 사람들을 많이 비난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잡히는가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비밀 집단인 신천지를 통해서 확진자가 갑자기 증가되는거예요. 그래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다보니까 또 바른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거짓된 정보를 줘서 국가적인 공분을 사고 있는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많은 성도님들도 신천지가 이런 행동을 하는것에 대해서 잘못을 지적하고 안좋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요즘 정부의 방침은 “당분간 교회 역시도 밀집해서 한 공간에 모이다보니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당분간은 예배를 잠정적으로 중단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요구해오고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부분에 대해서도 어떤 분들은 어떻게 그럴수가 있느냐 우리는 목숨을 걸고 이 주일 성수를 우리는 고수해야된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정부의 이런 요구가 말이 안되는거냐 하면 말이 안되지 않는다는거예요. 오히려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런 정부가 이런 것을 요청해올 때 교계의 반응을 보면 둘로 나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떻게 예배를 쉴수가 있나? 우리는 아무런,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일 성수를 하고야 말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이라 칭찬받을 만 한 그런 내용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거기서 멈춰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한가지를 더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이 이 세상 속에서 덕을 세워야 한다는 거죠. 본이 되어야 된다는 것 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그걸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 우리는 목숨을 걸고라도 주일을 성수하겠지만, 그러나 한가지 더 고려해야 될 것은 세상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이 부분 역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이에 대해서 “아니 목사님, 그게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 보다 더 중요합니까?” 이렇게 반문을 한다라고 하면 “어떤면에 있어서는 그렇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라고 얘기할수도 있겠다 라고 하는것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러하다라고 하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절에서 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는 자에게 화로다.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데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5장 23절 24절에도 보면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내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려라.] 이렇게 말씀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또 예수님의 가르침은 항상 이웃에게 초점이 맞춰져있고 한 영혼이 실족하느냐 안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이거 먹어도 됩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것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배교하는것처럼 그렇게 비추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근데 오늘 사도바울의 고백, 9절과 13절에보면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라. 우리는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덕이 되지 않고 이것이 시험에 빠지는 일이 된다]라고 하면 조심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13절에 하는 말씀이 이런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 그러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할 것이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즘 많은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성도님의 자녀들 중에서는 교회에 안다니는 자녀분들도 있습니다. 이분들이 교회에 전화를 걸어서 항의를 하기도 한다는 거예요. 제가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몸이 약하신 어머니가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를 드리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교회에서 책임을 지겠느냐.” 이런 얘기를 하면서 반문을 하고 또 항의 전화를 하기도 한다고 해요. 또 어떤 경우에는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이제 며느리가 일을 가면 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줘야 하는데 어머니가 교회를 가신다고 그러니, 이럴 때 정부에서는 예배를 잠정적으로 중단해달라 요청하고 있는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그러니 신앙의 갈등 때문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그러다가 잘못되면 그것이 또 아이들에게 까지 전염이 될 수 있는데 이렇게 비상식적인 행동을 교회가 해야하겠느냐,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 중에는 교회를 다녀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을 하고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예상해 볼 수가 있는 것이죠. 이럴때에 교회가 이들의 생각에 비상식적인 집단으로 여겨진다고 하면 이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떨어지게 된다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때로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을 결정하고 행동할 때에는 “자기의 소신대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없지 않아 많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로 자기의 소신대로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을 하고 그것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때로는 더 큰 위기에 내 고집을 부리다가 빠져버리는 그런 경우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라고 이야기 할 때 우리는 “내 생각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을 결단하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무엇을 결정할 때 내 생각대로, 내 소신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럴때 우리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것인가’, ‘성경은 이런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거기에 더욱 귀 기울이는 것이 맞다라고 하는것입니다. 저도 오늘 이렇게 실시간 예배를 드리게 된 이유는 지난주간 내내 기도하며 어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또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덕을 세우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서 세상사람들의 본이 되어야한다는 이런 마음이 강하게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순교적 과거를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것도 소중한 행동이겠지만 또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 역시 거룩하고 소중한 행동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가 가만히 묵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 왜 고난당하시고 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가, 바로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라는거예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한 영혼이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당신의 생명을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행동입니다. ‘내가 잘 되는 것보다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 이것보다 더 거룩한 행동은 없다’라고 하는거죠. 오히려 나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남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다라고 생각을 한다면 이기적인 신앙일 것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상식을 벗어나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구약에도 보면 이웃 나라들 중에서는 여러 가지 우상숭배를 하면서 이상한 행동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자녀를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그런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절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을 요구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코로나 19바이러스로 인해서 세상이 혼돈 가운데 빠져있습니다. 이럴때 우리에게는 지혜가 필요로합니다. 무엇보다 ‘어떻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것을 우리는 생각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세상의 본이 되는 것이고 또 사람들의 덕을 세우는 것이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 이것이 어찌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기는 행동임을 오늘 우리는 잊지 말야아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우기가 이런 위기를 맞았을 때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행동 강령은 잊고 있었던 감사를 다시 하나님께 드리자라고 하는것입니다. 


평소에 아무런 일도 없을 때 우리는 그럴 때를 무료한 때라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을 그때가 감사한 때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무슨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 아무일도 없었던 그 때가 감사한 때라고 하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이 연천지역에서 홍수가 났던 적이 있습니다. 제방이 무너지고 홍수가 다 인가로 그렇게 밀려 들어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군목으로 있던 후배 목사님이 저에게 편지를 한통을 보내면서 기도를 부탁하신적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인 즉슨, 홍수가 나기 전에 저에게 연락이 와서 “우리 군부대에 작은 교회가 있는 데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너무 여름에 덥기 때문에 에어컨 하나를 좀 구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에어컨을 신형으로 마련을 해서 그렇게 설치를 해드렸지요. 아 그랬더니 한주간 예배를 아주 시원한 곳에서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딱 한번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그 다음주간에 홍수가 나면서 연천에 제방둑이 무너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물이 그 군부대 막사로 밀려오기 시작했는데 그 초입에 교회가 있었어요. 근데 그 교회가 홍수로 인해서 떠내려가면서 막사에 걸렸습니다. 막사에 걸리게 되니까 그 앞에 그 교회가 걸려있는 그것으로 인해서 물줄기가 둘로 두방향으로 나눠지게 되면서 막사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군사들이 다 살아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밤에 초소에서 초소를 지키던 병사들이 많이 실종이 됐다는 거예요. 또 무기 창고도 떠내려가는 바람에 많은 무기들도 다 실종이 됐습니다. 그래서 두주간동안 실종된 그런 군사들을 찾기 위해서 시냇물가로 떠내려간 그런 무기들을 찾으려고 두주간동안 밤낮없이 그렇게 뒤지면서 수색을 하다보니까 다 지칠대로 지쳤다는 거예요. 이제는 더 이상 찾을 수가 없게 돼서 사건을 종료하게 되면서 그러면서 허탈한 마음에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지요. 그런데 그 편지의 제일 마지막 부분의 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그렇게 기록이 되어있었습니다. “목사님 왜 우리는 아무런 일도 없을 그때가 가장 감사해야 할 때라는 것을 잊고 있을까요?” 라고 하는 글이 적혀있었어요. 평소에 아무일도 없을때 그때는 무료한 때가 아니고 심심한 때가 아니고 어떻게 보면 가장 감사를 드려야 될 때라 라고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나면 그 이전을 우리가 떠올리면서 ‘그때가 좋았는데’ 하고 후회하는 그럼 모습들을 보게 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이지요. 


오늘 이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교회를 두고 가정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혹 내가 사랑하는 교회에서 내가 사랑하는 성도님들과 함께 기도하고 교제하고 예배드리고 함께 식사하고 했던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혹 그런 생각을 우리 성도님들은 안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런 어려움이 훗날 우리에게는 더욱 감사한 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적어도 교회에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어 감사하고 위기 시에 대처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니 또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어떤 분명한 계획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하니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우리가 잊고 있던 감사를 다시금 곰곰이 되새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세 번째로 이런 위기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행동 강령은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해답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홍해 앞에선 이스라엘 백성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홍해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있어요. 그 홍해 물 안으로 들어가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군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기 위해서 쫓아오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거예요. 이 때 할 수 있었던 일은 저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뭐 좌로나 우로나 앞이나 뒤를 봐도 방법이 없어요 길이 없습니다. 그럴때는 어떻게 해야됩니까? 위를 쳐다봐야 하는거죠. 인간이라는 존재는 위를 쳐다보는 존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영어)라고 하는 말의 뜻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위를 바라보는 것이지요. 위기 중에 있을 때 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위를 바라보니 하나님의 도움이 거기에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앞에서 위를 바라보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이 위기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갈라주신 그 길로 행하여 나아가게 됨을 통해서 저들이 구원받았던 것을 성경은 기록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에게는 항상 기도가 해답임을 기억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기도를 드릴 것인가 기도에는 여러 종류의 기도가 있다는 거예요. 때로는 회개 기도도 있고 때로는 내가 필요한 것을 달라고 간구하는 그런 기도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웃을 위한 중보 기도도 있을수가 있지요. 더 나아가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중보 기도도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어떤 기도를 드려야하는지 생각해볼 때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하나하나 좀 곰곰이 묵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정죄하거나 원망하기 보다는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살고 있었는지, 교회는 하나님이 명하신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는지, 기도의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교회도 세속화되어서 세속의 물결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우리가 하나하나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역대하 7장 13절 14절에 말씀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그런 말씀입니다. 역대하 7장 13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이 13절이 그런 말씀을 주십니다.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않거나,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지난 두주간의 뉴스를 보면 아주 큰 기사가 몇 건이 있는데 지금 아프리카와 파키스탄 인도 이런 쪽으로 해서 메뚜기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거예요. 메뚜기 떼가 무려 몇 마리냐 하면은 4000억 마리라고 얘기를 합니다. 코로나보다 어찌 보면 이 ‘메뚜기떼가 앞으로 더 코로나 이후에 더 큰 위험을 가져올수도 있다.’ 이런 걱정스러운 기사가 실려있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메뚜기 떼가 4000억 마리인데 한 마리가 얼마나 큰지 6센치에서 7센치, 우리 손가락 크기만한 그렇게 큰 메뚜기 떼가 4000억 마리가 한번 지나가게 되면 초토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것이 증식률이 얼마나 빠른지 점점 더 많이 증가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중국같은 곳에서는 이미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있어요. 그 해결책이 무엇인가 했더니 해결책이 재미납니다. 오리 10만마리를 보낸다는 거예요. 10만 대군의 오리가 메뚜기의 천적이기 때문에 그 메뚜기를 잡아먹을 것이다. 근데 사실 오리 10만 마리도 참 대단한 수치지요. 근데 메뚜기 4000억 마리를 오리 10만 마리가 다니면서 그걸 잡아먹어서 해결을 한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이야기겠느냐 이런 생각을 우리가 해보게 된다는 거예요. 역대하 7장 13절의 말씀을 보면 메뚜기들의 이야기를 하고 또 전염병의 이야기를 하는데 딱 이것이 딱 오늘 시대에 부합되는 그런 말씀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근데 성경은 항상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해답을 주신다는 거죠. 이럴 때 해답을 성경은 14절에서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답을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은 누굽니까? 오늘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얘기하는 거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내 백성들,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난다. 그들의 악한 길, 세상의 길을 얘기합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길은 달라요. 근데 오늘 우리가 어쩌다보니까 세상 사람들의 그 삶의 길에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경은 이야기하기를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가야 한다, 우리가 본질로 돌아가서 우리가 추구해야 될 그 사명과 가치관을 우리가 회복하고 다시금 그 길로 나아가야 된다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세속화의 문제를 지적하는 그 많은 분들이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가 이제 더 이상 세속화되기 보다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오늘 성경도 ‘그들의 악한길을 떠나라’ 그러면서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회개를 얘기하는 거죠. 겸손을 얘기합니다.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 것이다 약속하고 있는 부분을 오늘 이 말씀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일각에서는 이제 “이 질병을 치료하는 약이 개발되었다.” 뭐 그런 얘기도 있고 정부에서는 또 이것이 “이제 곧 잡힐 것이다.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이것을 잡기 어렵다.’ 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정에서 나오지 않는 거에요. 아무도 안나오다가 가정에서 누군가가 열병이 나고 문제가 있을 때 의사들이 그 가정을 방문을 해서 진단을 하고 잘못됐으면 그들을 전염되지 않는 선에서 입원을 시켜서 치료를 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도 지금 집을 나서서는 안되는 거예요. 해결을 하려면 그런 방법 밖에는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 한 어떻게 이것이 잡힐 수가 있겠습니까. 집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집에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거예요. 음식을 사러 나오기도 해야 되고요. 집에 가만히 있다가는 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거죠. 내가 확진자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니다 보면 또 전염이 되고 전염이 되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뭐 몇 명 한명 두명밖에 없을 때는 굉장히 천천히 이것이 진행이 되는 것 같고 그러니 곧 잡힐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니 지금은 급속도로 하루에도 몇백 명씩 이렇게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어요. 4000억 마리의 메뚜기 떼와 오리 10만 마리를 동원하면 해결이 될 것 같아도 그런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결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는 사실 어느 순간에 우연히 사라져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하는것입니다. 세상은 우연을 바라고요. 어느 순간에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르게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때에,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이 해답인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지금도 하나님 역사하시면 이 메뚜기 떼의 문제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전염병의 문제 하나님께서 그치게 하시면 그쳐지는 것이 전염병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들은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을 믿으십니까?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이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라고 하는 것 우리가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거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 기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평강을 더해주실 것이고, 이번 이 사태를 통해서도 또 우리 한국교회 기도로 말미암아 이 문제가 해결됨을 통해서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고 한국교회를 통해서 또 하나님 큰 일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그런 기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나보다 선하신 하나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기도를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오늘 우리의 크리스천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고 또 잃어버렸던 우리의 감사를 회복해야 될 것이고, 또 지금 이런 절망적인 위기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가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 하늘에서 들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이 땅을 고쳐 주실줄로 믿습니다. 이러할 때 우리 기독교인들이 다시 한번 스스로 겸비해서, 세상의 본이 되고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고 또 희망을 이야기하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기도를 쉬지 않아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하게 하는 우리 일산광림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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