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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험이 닥쳐올 때 하나님을 바라보자  
 
시험이 닥쳐올 때 하나님을 바라보자
설교날짜 2020.3.22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롬 8 : 28 - 39
 

20200322 박동찬목사님

로마서 8:28-39

할렐루야 귀한 찬양에 감사드립니다. 큰 은혜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우리 코로나 19로 인해서 가정에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시고 오늘 성전에서는 교역자들과 함께 실시간 영상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예배하는 자리에 '너희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하겠다' 하신 우리 주님께서 오늘 우리 예배의 자리에 함께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정가정에서 예배하실 때 그 가정가정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가 함께하시는줄로 믿습니다. 우리 옆에 계신 가족들과 함께 인사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렇게 함께 인사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님들을 사랑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WHO 세계 보건기구에서 펜데믹이라고 하는 것을 선언을 했습니다. 그것이 이제 10여일이 지났는데, 펜데믹이라고 하는 것은 전염병의 단계에 있어서 가장 높은 단계를 의미합니다. 전염병이 1단계에서 6단계까지 있는데 이제 6단계, 최고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최고의 단계는 한 나라 나라에 창궐하는 것이 아니라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을 얘기합니다. 근데 지금까지 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진자가 결정된 것이 189개국에 이른다 지금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펜데믹이라고 하는것이 선언됐던 때가, 펜데믹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우리가 잘 아는대로 14세기 유럽의 페스트 흑사병이죠. 흑사병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또 1918년에 스페인 독감이라고 하는 것으로 인해서 5000만명이 사망을 하게 됐구요. 1968년도에 홍콩 독감으로 인해서 100만명이 사망을 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펜데믹 선언 이후 한 10여일이 지났는데,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확진자가 28만명,  사망자가 1200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3255명이 사망했고, 지금 유럽이 다시 더 많이 확산이 되면서 이탈리아에서는 4000명이 사망을 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1100명, 이란 중동지역도 이제 퍼져나가기 시작해서 이란에서 1500명이 사망을 했습니다. 미국에서도 275명, 프랑스 450명, 영국도 200명. 그런 중에 한국은 8800명 확진자 중에 104명이 사망을 한 것으로 이렇게 통계가 잡히고 있습니다.

한국은 열심히 방역을 하고 노력을 해서 이제 좀 잦아드는가 싶었는데 전세계적으로는 이 속도가 점점 더 기승을 부리면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을 보게 돼서 우리도 '이제는 잡혔다.' 이렇게 방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최대 관심사는 '목사님 그래서 우리가 언제부터 다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는것인가요?' 이런 의문을 가지고 계시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도 기도하는 가운데에 그래도 제일 안전한것은 이제 아이들이 개학을 하고 어느정도 정상적으로 활동이 시작이 될 때 우리 교회도 이렇게 정상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4차산업, 인공지는 AI를 이야기 하면서 최첨단 과학시대를 우리가 걷고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세운 이런 문명을 자랑했던 것이 엊그제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는 그런 인간의 교만을 마치 비웃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그런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죠. 요즘 새벽마다 로마서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계획하심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것을 다시 한번 이렇게 묵상하게 되는 그런 시간들입니다. 그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는 가운데 지금 이렇게 코로나19로 인해서 전 세계가 난리가 나고 어려움 가운데, 두려움 가운데 휩싸이고 있지만, 우리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오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우리 성도님들을 붙드시고 인도해주시고 승리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오늘 이 로마서 8장의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다가 이런 위기 상황이 오게 되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나 마치 해답을 주는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가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할 세가지 말씀을 전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이런 것으로 인해서 우리를 진멸시키거나 어려움을 가중시키거나 우리로 하여금 죽게 만드는 그런 하나님, 멸망하게 만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거예요. 이 세상에 착한 사람들도 많지만 그 착한 사람들의 착함이 하나님의 선함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선하신 분이시고 그래서 그분이 계획하시는 것도 선하시다 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 28절을 보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2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씀이 마태복음 10장 29절 말씀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어요. 우리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우연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 말씀에 비춰 보았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합력하여 모든 것이 선이 되게 하신다. 그러니 하나님 계회하심은 항상 선하시고 우리에게 또다른 축복이 되고 은혜가 되고 선함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사람들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살다가 누구나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판단력은 온전하지 못해요. 그래서 뭔가 중요한 것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잘못 판단을 해서 실수를 저지르게 될 때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결정하는 그 순간에는 자기의 생각을 의지하고 자기의 판단이 옳다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결정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그런 때가 많이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낭패를 보게 되는 그런 때도 있다는 것이지요. 근데 오늘 말씀에 비춰 보면 그런 중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신다. 우리의 실수와 잘못된 그런 부분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돌이키셔서 뭔가 선함이 되도록 만드시는 우리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참 이 말씀이 얼마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다 저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 다닐 때 미술 시간에는 찰흙으로 뭔가를 만드는 그런 시간이 있었죠. 이 찰흙을 가지고 조물락 조물락 만지며 강아지를 만들기도 하고 집을 만들기도 하고 뭐 이런 저런것들을 만들어요. 그런데 내 생각만큼 잘 되냐 하면 그렇지 않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다 보면은 엉망진창이 되고 잘못돼서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나'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도 있었더라는 거죠. 근데 그때 선생님이 오셔서 그것을 당신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그 찰흙을 다시 손으로 붙드시고 이렇게 만드셔서 뭔가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들을 잘 만들어주시는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기억을 하게 됩니다. 참 선생님의 손은 어떤 마술이 있는 것처럼 찰흙을 주물럭하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 주었을 때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성경에 보면 이사야서와 예레미아서에 말씀이 있어요. 이 말씀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사야 선지자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범죄하고 실수하고 넘어지는 그런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선지자가 바로 이사야고, 또 예래미아도 마찬가지로 그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한 사람들이 바로 예레미아 선지자입니다. 이사야서 64장8절에 보면 이제 범죄하여 망하게 된 그런 이스라엘의 상황속에서 이사야의 기도가 올려지는데. 이런 기도를 이사야가 올리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우리는 진흙이고 주님은 토기장이라는 거예요. 우리 인생이 망가지는 그 순간에 토기장이는 그것을 다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드는 분이 토기장이인데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빚으시는 토기장이가 되십니다. 이렇게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아서도 18장 4절에 보면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이렇게 만들다가 때로는 흙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거예요. 그런데 이 토기장이는 그것을 가지고 자기 의견에 좋은대로 당신의 생각 따라서 다른 그릇을 만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아서 18장 6절의 예레미아가 이야기 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우리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흙같이 또 때로는 실수하고 터질 수도 있고 잘못되고 망가질 수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진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우리를 새롭게 빚음을 통해서 우리가 때로 실수하고 넘어지고 망가진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새롭게 빚으심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나 예래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토기장이의 손에 비유하고 있는데 오늘 본물 28절 말씀도 그런 맥락에서 보게 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 그들에게는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이 된다. 하나님께서 다시 새롭게 빚으시고 만드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다 그래요. 때로는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지고 망가질 때 우리는 무슨 얘기를 하느냐? 절망입니다. 이젠 답이 없습니다. 무엇을 어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가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절망으로 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것이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그것을 새롭게 빚으시는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의 인물 가운데 야곱이라고 하는 인물이 등장을 합니다. 이 야곱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힘쓰고 애쓰고 노력을 했던 사람이예요. 그에게 열두아들이 생기게 되는거죠. 이제 마지막에 베냐민이 탄생이 되지만 그 요셉이 있을 때 요셉이 11번째 아들인데, 11번째 막내아들인 요셉을 야곱이 너무 사랑했어요. 그래서 형제간의 우애가 다 깨져버리게 되고 형들이 이 막내동생인 요셉을 어떻게 해서든지 좀 혼을 내주고 싶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예요. 근데 아버지인 야곱의 입장에서 볼 때 형제간의 사이가 좋지 못한 이런 것들이 걱정거리가 아닐 수가 없다라는 것이지요. 요즘에 우리 성도님들도 가정에 자녀들이 화목하지 못히고 싸우고 다투고 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부모의 마음에 얼마나 큰 아픔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근데 자녀들 사이에 사이가 안좋은 그런 부분들이 뭐 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처방이 있는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이렇게 노력해도 안되고 저렇게 노력해도 안되고, 그래서 부모의 마음은 늘 아플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근데 자녀들은 또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느냐 하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이 결국 생각해낸 것은 동생 요셉을 어떻게 해서든지 죽였으면 좋겠다. 우리 눈에서 사라지게 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끔찍한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까?

그리고 결국은 이 막내 동생 요셉, 아직 나이도 어린 이 요셉을 노예상에게 팔아버린단 말이죠. 그러고 나서 그 가정에 기쁨이 없는 거죠. 그 아버지의 마음은 아버지는 물론 형들의 거짓말로 인해서 그 막내 요셉이 동물들에게 물려서 죽게 된 줄로 그렇게 알고 있는 상황이죠. 그러니 아버지의 마음도 아프고 또 형들의 마음인들 편하겠습니까? 동생을 그렇게 노예상에 팔고 나서 형들이 기뻐할 수는 없는거죠. 그들은 후회하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돌이킬 수만 있다고 하면 이 일들을 다 돌이켰으면 좋겠다. 가정에 기쁨이 없어지는 거예요. 또 요셉은 어떻습니까. 요셉은 또 노예상에 팔려가가지고 이런 모욕 저런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참아내고 노예로서의 삶을 살아가는거죠. 그 와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애썼지만, 그러나 또 이 오해를 받게 되고 그래서 감옥에 갇히는 그런 신세가 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보면 야곱의 집안이 한순간에 그저 뭐 풍비박산이 난 것처럼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그 누구도 기뻐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 가정에는 답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회복되기는 틀렸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근데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가정을 바라보면서 "절망적인 가정이다." 이렇게 얘기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게 만드는 거예요. 꿈을 해석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으로 인해서 한순간에 요셉은 감옥의 죄인의 모습에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지 않습니까? 또 가뭄으로 인해서 그의 형제들이 이 애굽에게 곡식을 사러 오게 만드는거죠. 그래서 이 요셉과 대면하게 만듭니다. 요셉은 형들을 만나게 되고 형들은 이 요셉이 자기들이 그렇게 미워하고 팔았던 동생 요셉임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두려워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에게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고 하나님이 인도하신 일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함을 통해서, 요셉으로 하여금 고백을 하는데 이 모든것 형들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거죠. 그걸 통해서 형제간의 우애가 다시금 회복이 되는거예요. 그러고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다 이제 애굽의 땅에 요셉이 총리대신이니 이 가뭄을 피하여 살 수 있는 곳은 애굽땅 밖에는 없는 거예요. 그 곳에 와가지고 생명이 보전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 그 야곱의 가정을 회복시킨 것 만으로 끝나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결국 그 야곱의 가정이 가뭄 중에서 살아남게 하시고 그것으로 인해서 그 후손들 가운데에 다윗이 탄생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고 그 다윗의 혈통으로 인하여서 우리 예수님을 메시아,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이렇게 나타나도록 그렇게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에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철저하고 그 어느 하나 작은 실수도 없이 완벽하고 우리 인간은 때로 실수할 때도 있고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다시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모세가 열두 정탐꾼들을 가데스바냐에서 보내죠. 그래서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와라 그랬어요, 근데 우리가 잘 아는대로 10명의 정탐꾼은 "그곳에 가보니까 좋은 땅이기는 하지만 그 땅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어서 우리가 들어가서 그 땅을 점령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닙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이니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거예요. 근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10명의 정탐꾼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수긍을 하는거예요. 왜? 그 10명의 정탐꾼들의 이야기가 굉장히 합리적으로 들린다는 거예요. 이성적으로 들리고 현실적으로 들리고, 정확한 보고처럼 들리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의 그저 막연하게 "잘 될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들어가면 이길 것입니다.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하는 얘기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놓는 그런 해답처럼 들려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10명의 정탐꾼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제는 우리가 다 죽게되었다.' 이렇게 낙심하고 절망하게 되는거죠. 그래서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을 그 광야에서 떠돌다가 다 죽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이 여호수아와 갈렙 역시 '아, 이제는 끝났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우리가 포기함으로 인해서 이제는 기회는 없어. 이제는 우리는 다 광야에서 살다가 이렇게 언젠가는 다 저 사람들 처럼 우리도 다 죽고 말거야.'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40년이 지났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이 여호수아로 하여금 모세의 뒤를 잇는 그런 지도자가 되게 하는거죠. 그러고 갈렙으로 하여금 이 여호수아를 도와서 그의 평생의 소원이었던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선두주자가 되게 만드는 거예요. 선봉장이 되도록 만들어 이 둘이 힘을 합쳐서 가나안땅을 점령하고 나라를 세우게 되는거죠. 그러고 그의 후손들에게 자유가 있는 그런 아름다운 나라를 이렇게 물려줬던 것을 볼 수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거의 모세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이 정도 쯤 되면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모두를 다 진멸시켜버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없애버리는 것이 맞았을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토기장이가 되셔서 합력하여 선이 되게 만드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셨던 것을 볼 수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28절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게 되면 우린 살다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을 만난다 할지라도 희망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다시 말씀 드리면 이 말씀 때문에 우리는 아예 절망할 수가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역시 원인이 무엇이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믿습니다. 토기장이되신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도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만드시는 우리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저와 우리 일산광림교회 모든 성도님들 이런 상황 속에서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주님이 행하실 일을 기대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런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지금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 하나님께서 또 이 모든것들 합력하여서 이렇게 우리에게 선이 되게 만드시고, 이렇게 우리를 축복하셨구나.' 그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이런 위기 속에서 기억해야 될 것, 잊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셔요. 사람이 살면서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누군가 날 믿어주고 날 사랑해주는 사람 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예요. 그 사람은 어떤 어려운 상황도 이겨 나갈 수가 있는 힘을 갖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어요. 31절과 32절에 보면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오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아들은 내어줄수가 있겟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가정에 가장 귀한 것이 있다라고 하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금 덩어리입니까? 명예입니까? 성공입니까? 우리는 세상 살면서 그런 것들을 다 귀한 것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사실 내 자녀보다 귀한 것은 없어요. 누군가 나에게 "100억을 줄테니 자녀를 팔아라." 그러면 팔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100억이라고 하는 돈이 얼마나 큰 돈입니까. 우리가 평생 살면서 만져볼 수 없는 그런 큰 돈이죠. 그 돈을 줄테니 너의 자녀를 나에게 달라 그러면 우리가 그 자녀를 팔 수는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돈이 아무리 귀해도 우리 자녀보다 귀할 수는 없다는거죠. 우리는 사실 어떤 면에 있어서 세상적인 것을 많이 가지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자녀들이 있다라고 하면, 내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라고 하면, 우리는 부유한 자라 이렇게 이야기해도 이 얘기는 틀린 얘기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녀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빗대어서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귀한 당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누구도 제 3자, 타인을 위해서 내 자녀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반문하기를 '아들까지도 주셨는데 뭔들 아끼시겠느냐. 뭔들 너희를 위해서 주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성경은 이렇게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강변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는데, 그런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이 있다라고 하면 그것은 아까워서 안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거죠. 아까워서 못 주는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이 있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는 이야깁니다. 오늘 우리도 자녀들을 양육하다보면 자녀들이 달라는 것을 다 주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다는거예요. 자녀교육을 잘하는 분들 일수록 자녀들이 달라고 하는 것을 다 주지 않는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자녀를 바르고 건강하게 교육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해서 오늘 본문은 또 증거를 합니다. 35절에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공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시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있는것은 없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38절 39절에도 다시 한번 고백을 하는 것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랑이라는 거예요. 이런 사랑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시고 이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오늘 저와 우리 일산광림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가 어떻게 두려워할수가 있겠느냐 라고 하는거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 그런데 아들을 주시리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붙드신다라고 하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에서 자주 인용하는 말씀을 오늘도 인용을 해야할 것 같아요. 이사야서 49장 15절의 말씀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 할 것이라.] 이런 하나님이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 보호하시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혹시 짝사랑 해보신 분 계십니까? 예전에 제가 청년들을 가르칠때 이 짝사랑을 하던 청년들 몇 명이 와서 저에게 상담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누구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 아이는 나에게 관심도 없어요. 목사님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러면서 울어요. 그러면 참 불쌍해. 제가 말하기를 "세상에 널린게 남자다. 널린 게 여자다. 세상의 반이 여자고 세상의 반이 남자다. 뭘 그렇게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속상해 하느냐. 너는 자존심도 없냐. 그냥 잊어버려." 제가 그렇게 상담 아닌 상담을 해요. 제가 상담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너는 자존심도 없냐. 그냥 잊어버리고 다른사람. 왜 그렇게 너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 때문에 넌 울고있니. 너 울고 있는 거, 그 사람이 널 모를텐데. 그러지 말아라." 그랬더니 이 짝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 그게 잘 안돼요. 그래서 자신한테 화도 나고 그래서 자기 마음도 너무 아프다는 얘기를 하는거예요. 이 짝사랑이라고 하는 건 참 힘들어요. 물론 누구는 뭐 돈이 안 들어서 좋다고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짝사랑을 한다는 것은 마음이 참 힘든 일이에요. 누군가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데 누군가 나에 대해서 그만한 사랑으로 관심을 가져주지 못할 때 상처를 받는다는 이야기죠. 근데 제가 그런 상담을 하고 나서 얼마가 되지 않아서 기도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 것이 뭐냐하면 때로 하나님이 우리를 짝사랑하시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요. 당신의 아들을 주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셔요.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다는 거에요. 그저 내 할 일에 바빠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도 관심주지 않지요.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든 어쩌든 그것에 관심하지 않고, 그저 내 관심, 세상적으로 어떡하면 내가 더 즐거울 수 있을까, 세상적으로 어떡하면 내가 더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떡하면 내가 더 잘나갈 수 있을까, 거기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이런 모습을 하나님이 바라보실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 참 한순간에  그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근데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사랑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는 거예요. 과분한 사랑이라는 거예요. 한 왕이 정말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고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고 멸시를 받고 그런 사랑을 사랑한다라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 사람은 이 왕의 사랑을 받으면서 얼마나 정말 이 과분해서 몸 둘바를 몰라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왕이 한 인간을 보잘 것 없는 한 작은 사람을 사랑하는 세상에서 멸시 천대를 받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과분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어때야 하느냐? 사실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 사랑을 우리는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핍박이 있던 시절에는 많은 사람,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핍박이 온다고 하나님을 배신해 버린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을 끝까지 지켜나갔던 것을 오늘 우리는 보게 된다는 얘깁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이 사랑을 우리가 감사하며 지켜나가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신명기 6장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을 전하고 있어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래서 한 사람이 와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질문할때 다른 것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신명기6장 5절의 말씀을 전하는 거예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해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신앙 생활은 종교 생활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사랑인지 우리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해요. 그러나 우리의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사 아들까지 주신 그 하나님을 향해서 이 사랑의 관계를 주고 받고 그 사랑에 감격하고 그래서 그 사랑을 노래하고 그 주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만한 그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셔야돼요. 그래서 그 사랑을 기억할 때 오늘 우리는 지금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주님을 찬양할 수가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어려움을 주십니까?'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을 더욱더 이런 상황 속에서,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사랑으로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세번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오늘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돼요. 하나님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고백하는 순간에도 "아니야 너는 살거야. 살 뿐만 아니라 이 상황을 이길거야" 그리고 이기게 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37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말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죽을 것 같아도 죽는 게 아니라 이긴다는 거예요. 이기는 데 겨우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깁니까? 넉넉히 이긴다는 이야깁니다. 근데 우리가 어떻게 승리한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인간이 지금 이런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이긴다는 이야깁니까? 착각하시면 안되는 것이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다는 이야깁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거예요.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코로나19 사태도 큰 위협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은 이런 사태도 물러가게 하시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승리라는 단어는 들을 때 참 기분이 좋아요. '아 이기는구나. 너무 좋다. 잘 될 것이구나.' 근데 우리가 착각하면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좀 나누기를 원하는데, 우리 성도님들 승리와 관련해서 이 승리에는 단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승리하게 하신다.] 이 말씀이 모든것이 다 잘 되어서 세상에서도 잘나가는 인생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런 얘기냐, 그런 얘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케 하실 때에는 세 단계로 나눠서 승리케 하시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신앙 안에서 바로 서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하는 거예요. 세상에서 잘 나가는 것이 승리가 아니라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는자가 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세상 것은요, 내가 세상에서 이뤄놓은 것, 사람이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 다 없어요. 명예를 가지고 가지도 않아요. 죽은 다음에 그 명예를 가지고 있는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내 지위, 세상적인 지위, 그거 내가 죽은 다음에 그것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그저 죽으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인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는거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보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성공하고, 얼마나 많이 가졌고, 얼마나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느냐,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가 삶면서 너의 죄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니가 믿었느냐,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았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부분에 있어서 통과를 하지 못한다라고 하면 그 인생은 승리하는 인생이 아니라 패배하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첫번째 진정한 승리, 그 승리는 내가 예수 믿고 구원 받는자가 되는 것이 첫번째 승리라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때로 이것이 안되어있을 때는 하나님께서는 이 승리를 이루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건강을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건강을 뺏어가실 때도 있다는거예요. 물질을 자랑하는 자에게는 물질을 뺏어 갈 때도 있어요. 명예를 자랑하는 자에게는 명예를 뺏어 가기도 하고요. 어던 세상적인 성공을 자랑하는 자에게는 그 세상적인 성공을 빼앗아가 버릴 때도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왜그러세요. 넉넉히 승리하게 하신다고 해놓고, 왜 이런 것들을 뺏어가십니까?' 그것은 첫번째 단계의 승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을 뺏어서라도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만들,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고백하게 만들고, 무엇이 진정 중요한 것인지를 보게 만드시는거죠. 그래서 이 진정한 승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고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됐을 때는 '하나님, 날 구원해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크고 놀랍습니다. 감사합니다.'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도 세상적으로 잘 되게 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구원 받는 영혼이 되고, 마지막에 칭찬받는 영혼이 되도록 만드신다는 의미의 말씀이 아닐 수가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단계의 승리가 있습니다. 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됐을 때 두번째 단계의 승리는 무엇이냐. 위기 중에 있는 우리를 건져내시는 승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위기 가운데 빠질 때가 있어요,. 질명이 찾아올 때도 있고, 때로는 경제적인 공황으로 인해서 내 사업이 망해지고 어려워지고 부도의 위기 가운데 처할수도 있고, 이런 위기 저런 위기,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서는 애굽의 군사들이 나를 죽이겠다고 수 많은 경쟁자들이 몰려오는 그런 위기 상황 속에 우리가 몰릴 수도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 우리가 몰리게 됐을 때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그리고 홍해를 갈라서라도 길을 만들어주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허락해주실 뿐만 아니라, 또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는 인생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경제적인 것이나 건강의 문제도 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셔야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근데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때로 이 두번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첫번째 궁극적인 승리를 소홀히 여기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것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것이 더 중요하고 내 건강을 지키는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이것을 신앙 생활보다 더 열심히 하는 그런 경우들도 있어요. 거기에 내 시간과 정성을 다 쏟아넣는 그런 경우들도 있는데 이런 것들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지 않으면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다 허사가 되는거예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아니 하시면 파수꾼이 깨어 경성함이 허사하고 집을 짓는 자의 수고가 다 헛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수고를 해서 집을 지어 놓은들 그 집에서 내가 사느냐. 그렇지 않다는거예요.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 돈을 가지고 내가 풍요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살 수 있느냐. 하나님이 우리의 건강을 치시면 그것을 보기만 할 뿐 먹지 못하는 인생이 되어진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길줄 아는 우리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세번째 단계의 승리가 있습니다. 그 세번째 단계가 뭐냐하면 바로 이 세상을 살면서 형통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주변에 경쟁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도 없고, 요즘에 뭐 흙수저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나는 흙수저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경쟁에서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면 우리는 그런 경쟁자들 가운데 승리하는 자가 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감옥에 있던 요셉이 한순간에 흙수저 중에 흙수저라고 얘기할 수 있는 노예 요셉이 한순간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지 않습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도 포로 생활을 하는 중에 정말 저에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서 그 바벨론에, 또 페르시아에 총리대신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다니엘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면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도 승리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말씀 드리지만 그러나 이 세번째를 우리는 진정한 승리라고 얘기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첫번째가 진정한 승리이고, 그 다음이 두번째, 그 다음이 세번째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선 순위는 우리의 신앙 영원의 문제, 여기에 하나님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때로는 이 세상 속의 위기에서 건져주시기도 하고 세상에서도 형통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지만, 첫번째가 잘못 돼 있을 때에는 두번째와 세번째를 하나님은 가차없이 빼앗아 버려서라도 첫번째 내 영혼이 잘 되도록 하는 그 일 가운데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신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근데 우리 인간은 늘 거꾸로예요. '세번째부터 해주시고 그 다음 두번째 해주시고 그 다음 첫번째, 그것은 그때가서 좀 한번 내가 지켜보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근데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첫번째 두번째를 빼고 세번째를 잘 되게 하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없어도 나는 잘 먹고 잘 살고 이렇게 잘 되는데, 내가 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되느냐.' 더욱 세상으로 떠나버리는 그런 실수를 범할 수 밖에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세상에서 넉넉히 승리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라고 하면 우리의 신앙을 먼저 돌아볼 줄 아는 지혜로운 우리 성도님들이 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건물을 지을 때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건물을 멋있게 세울 수가 없는거죠. 우리 신앙의 기초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우리 신앙생활,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것도 기초가 튼튼해야되는데 우리 인생의 기초는 나 자신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의 믿음의 기초, 우리의 인생의 기초가 돼야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반석 위에 세워져야 지진이 나도 흔들리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라고 하면 우리가 이 세상적인 것 위에 내 인생을 쌓아 놓기 시작한다라고 하면, 한순간에 그것은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이 정말 견고하고 무너지지 않고,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지는 진정한 승리하는 삶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이런 위기의 상황을 살아가게 될 때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세요. 이 로마서 8장의 말씀은 참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이 너무나도 많이 있는 말씀입니다. 힘들 때 로마서 8장을 묵상하다 보면 참 놀라운 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고 놀라운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을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 드린 세가지,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합력하여 그 모든것이 선이 되게 하신다.] 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시고 또 그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아들을 주실만큼 나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되신다. 이것을 잊지 마시고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며 오늘도 힘을 내시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일산광림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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