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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혜로운 성도의 선택  
 
지혜로운 성도의 선택
설교날짜 2020.4.26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단 3 : 13 - 18
 

200426 박동찬목사님

지혜로운 성도의 선택

다니엘서 3장 13-18절


아멘 귀한 찬양에 감사를 드립니다. 큰 은혜 받으신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성도님들 가정가정에 가족들과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우리 성도님들이신 줄로 믿습니다. "너희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 나도 함께하겠다." 말씀하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 성도님들의 예배의 자리에 함께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가족들과 인사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 예수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인사들 하시지요. 오늘 우리 예배의 자리에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람의 신앙은 어려움을 맞닥뜨리게 되어질 때 내 신앙의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 경우를 많이 우리가 보게 됩니다. 평소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는 '뭐 나정도면 뭐 “ㅇㅇㅇ”'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뭐 나 정도면 최고다.' 거기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나 정도면 문제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분들이 의외로 얼마나 많이 계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근데 정작 위기의 상황에 몰리고 나면 내 모든 밑천이 다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의 수제자를 자처했던 베드로의 모습을 우리가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남들은 몰라도 자기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다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위기상황에 몰리고 예수님을 배척하는 그런 상황 가운데 놓여지게 되다 보니까 베드로 역시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모른다 세번 부인 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면서 "자기가 살기 위해서 저주까지 했다." 이렇게 표현이 되어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부인 했던 것이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그런 베드로는 자기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을 때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습니까? 자신이 정말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고자 그렇게 예수님 사랑한다고 고백 했던 그 예수님을 져버렸던 자신에 대해서 원망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때 한심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나가서 베드로가 통곡을 하며 울었다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일본에도 복음이 처음 전파되어질 당시에 일본 정부에서 수많은 관료들이 예 수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자 그 수많은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끝까지 고백하기 보다는 배교자가 됐던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요. 쇄국정책이 있던 당시에 복음이 들어왔지만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평안한 가운데 그들을 생각해보면서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우리도 그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어지면 우리도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근데 이처럼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자가 되느냐 아니면 배교자가 되느냐 하는 것은 뭐 다른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의 선택에 달려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너가 예수님을 믿느냐 아니냐, 그 순간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거기에 달려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위기의 순간이라면 아무리 잘 알고 있어도 내가 내 믿음, 내가 알고있는 것을 따르기보다는 그 두려움을 따라서 잘못된 선택을 해버리게 될 때가 많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순간의 선택이 중요한데, 대체적으로 이 순간에 옮음을 선택하기보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편리함을 선택할 때가 있고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사람들의 본성이요 본능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의 선택이 결국 뭐 순간의 선택으로 끝나고 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나중에 가서는 결국 후회를 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님 그저 다수결을 따르는게 안전한것아닌가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다수결을 따르는것이 안전하지 않아요. 그것이 나중에 큰 올무가 되어질때가 많이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 증거입니다.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이라고 하는 나라가 전 세계를 지배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중에서도 느부가네살이라고 하는 왕이 다스리던 그 시기가 바벨론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 느부가네살 왕은 참 기이한 그런 왕으로 역사 속에서 소개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특이한 기인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바로 이 느부가네살인데 많은 포로들을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나서 이스라엘에 있는 많은 유대인 포로들을 다 끌고 바벨론으로 갔는데, 그 때 끌려갔던 사람들 중에 누가 있었냐하면 다니엘이 있었고 다니엘의 세 친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그 포로들을 다 바벨론으로 끌고가서 바벨론에서 거하게 만들었는데 어느 날인가 본인이 금신상을 만들었어요. 신상을 크게 만드는데 그걸 다 금으로 만들었어요. 그걸 세워놓고 사람들에게 얘기하기를 "너희가 이 금신상에게 절해라. 절 하면 살겠고 절하지 않는 자에게는 다 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속에 넣어서 다 죽게 만들것이다." 이런 명령을 내리는 거예요. 도대체 느부갓네살 왕은 왜 이런 명령을 내렸을까? 왜 그랬겠습니까. 자신의 권위, 자신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것을 시험하는거지요. 내가 명령했는데 사실은 그 금신상을 신으로 여기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만들었고 내가 명령하는 이 명령에 너희들이 순종하느냐 안하느냐 그거를 보겠다는 거지요.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서 금신상을 세워놓고 그러고 "그 금신상에게 절해라." 그랬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명령이 옳으냐 그르냐 이건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금신상에게 절하라고 하니 내가 절 안했다가는 해를 당할수도 있을것 같고, 그랬다가는 출세길이 막힐 것 같기도 하고, 밉보이게 되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러니 '금신상에게 절 하는 것은 내 성공을 위해서라면 내가 저 느부갓네살 왕에게 잘 보여서 내가 출세하는 길이라고 한다고 하면 내가 얼마든지 절하겠다.'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다 그 금신상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습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고 하는 이 다니엘의 세 친구만큼은 절대로 절할 수 없었다는 거에요. 그걸 누가 고소를 하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러가지고 "너희가 정녕 절하지 않겠느냐? 지금이라도 나팔이 불게 되어질 때 절하게 되면 너희의 생명을 살려주겠다." 하며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거죠.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뭐라고 얘기합니까. 그들은 절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풀무불 속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볼 때는 그 믿음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믿음이고 어리석은 믿음처럼 보였겠습니까.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그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는 절할 수 없다는거죠. 그렇게 거절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됩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그래서 무의미하게 그렇게 자기들의 신앙을 고집하다가 풀무불 속에 타는 풀무불 속에 들어가서 죽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생을 마치고 말았다. 성경은 이렇게 얘기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불 속에 타는, 불 속에 있는 이 세 친구,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살려내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만들고 오히려 많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 존귀한 자로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더라는 이야깁니다.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의 테스트에 합격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어떤 상황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보실 때가 있다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테스트 기간인거죠. 우리가 그 테스트에 합격하게 될 때 사실 하늘로부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주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런 상황을 보기 때문에 사실은 세상과 타협을 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는 내가 세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을 따라가서 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이 테스트에 실패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거죠.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살다보면 때로 이런 위기 저런 위기가 와요. 그럴때 우리가 바르게 선택을 해야 해요. 그 바른 선택이 하나님의 테스트에 합격하는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을 잘해야 하는데, 그런데 오늘 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오늘 이 본문에서도 얘기하지만 금신상, 어떻게 보면 출세의 길, 그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내가 죽더라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죽겠습니다" 하며 하나님을 선택하게 되어질 때, 그래서 이 하나님을 선택했더니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했다. 이렇게 성경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선택하게 되니까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선택한 그 사람들을 붙드신다는 이야깁니다. 오늘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크리스천의 삶의 모습이 돼야할 줄로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할 때 하나님은 당신을 선택한 우리를 붙잡게 되어있는 거에요. 그래서 이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에 들어가서 뜨거움을 견뎌내야 했느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 이후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붙드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 쉽게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었다.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 저도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 싶어요." 그랬을 때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첫번째 단계가 뭐냐면 내가 하나님을 선택해야된다는 거예요. 근데 언제 선택해야 하느냐 하면 좋고 아무 문제 없을 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위기가 닥쳐오는 순간에 나는 하나님을 선택하는 그런 지혜와 용기가 우리에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지혜로운 우리 성도들, 어찌보면 이 세상을 살면서 지혜로운 성도로 사느냐 아니냐는 내가 이 세상을 살면서 위기를 맞닥뜨리게 되어졌을 때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 그것이 곧 나를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하느냐 아니면 어리석은 성도가 되게 하느냐 이 둘로 나누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는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지혜로운 성도로서의 삶을 살려고 하면 선택을 잘 해야 하는데 어떻게 선택을 해야하는지 세가지 말씀을 잠시 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꼭 기억하시고 우리 성도님들 인생을 살면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 때 이 세가지를 기억하시고 바른 것을 선택하셔서 하나님 앞에 지혜로운 성도로서의 삶을 누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그런 귀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첫째는 금신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 닥치게 된 거예요. 하나는 금신상에게 절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내가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금신상에게 절하는 것을 포기하는 선택을 할 것이냐.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내가 해야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될 일이 있어요. 해야 될 일은 해야 되는 것이고, 나에게 아무리 유익이 된다 할지라도 하지 말아야 될 일이라면 안해야 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근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냐면 바로 십계명이었다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던 헌법과도 같은 것이 바로십계명입니다. 이 십계명 가운데 첫번째 계명이 무엇이냐. 너는 나 외의 다른 신을 두지 말아라.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거예요. 두번째 계명이 무엇이냐.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아라. 오늘 이 느부갓네살이 만든 금신상에게 절하라고 하는 것은 이 십계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번째, 두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는 말이죠.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있어서 선택은 분명한 거예요. 내가 이 금신상에게 절 해야 되냐, 말아야 되느냐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하지 말라고 십계명에서 명해놓으셨다는 거예요. 그니까 이 상황은 사실 금신상에게 절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이냐, 안따를 것이냐 이 문제라고 하는 것이죠. 금신상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 금신상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였겠습니까. 크고 높은 신상을 볼때 위엄 있어 보이고 겁이 나는 거에요. 그런데 그것을 금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그것은 그 규모나 재질이나 모든 면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고 부러워 할 만한 그런 금신상이더라는 이야깁니다. 혹시 그 금신상에게 절을 하게 되면 부유하게 될 것도 같고, 내가 출세할 것도 같고, 오히려 저 신이 나를 보호해 줄 것도 같고, 그런 마음을 갖게 되더라는 것이지요. 우리 주변에도 그런 일들이 많아요. 제주도에 갔더니 돌하르방이 있는데 어떤 돌 하르방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니까 하도 만져서 그 코가 반질반질해져 있다는 거예요. 제가 미국에 보스턴에 하버드 대학이라고 유명한 대학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 가면 그 대학을 설립한 하버드라고 하는 그 분의 동상이 있어요. 그 목사님이시죠. 하버드라고 하는 분의 동상이 있는데 보니까 까만 동상인데 왼쪽 발인가 오른쪽 발인가 보니까 그 구두가 까매야 하는데 아주 구릿빛으로 반질반질하게 빛이 나는거에요. 그래서 "왜 저기만 저렇게 다 까지고 저렇게 반질반질 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어봤더니 거기에는 속설이 있다는 거예요. 저 하버드 신상의 저 발을 만지면 다 똑똑해져서 하버드를 들어간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이 가가지고 그 발을 만져서 거기가 얼마나 반질반질해졌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속설들, 그것을 그저 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만지는 거에요. 그래도 '아니 혹시나, 혹시나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아?' 하며 만지는거죠. 우리 주변에도 그런 일들이 많아요. 우리는 나에게 잘된다고 하면, 하나님의 계명이나 이런 것들을 무시해버리고 절하라고 하면 절하고, 만지라고 하면 만지고, 그런 일들 가운데 '내가 잘된다고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한건 내가 출세하고 내가 잘되는 길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선택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이에요. 내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을 하나님은 지금도 지켜보고 계시다는 이야깁니다. 그런 일이 있었을 때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일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조금도 타협할 수 없습니다.' 이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주목해서 볼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그 사람의 삶을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 가운데는 오늘 우리 예배를 드리면서 사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려요. 그래서 사실은 고민이 참 많아요. 제가 설교를 할 때 '어른들이 알아 듣는 설교를 하면 아이들이 알아 듣지 못할테고 또 아이들이 알아 듣는 설교를 하면 어른들이 유치하게 생각하면 어떡하나.' 하며 어떤 선을 지키면서 설교를 할 것인지가 참 고민입니다. 근데 오늘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한가지 확신이 드는 것은 오늘 우리 어린 자녀들에게 믿음에 확신을 심어주셔서 설교가 끝난 다음에 요약해서라도 믿음의 확신을 심어주셔서 어렸을 때 부터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세상에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유익이 되는 것, 나에게 편리해 보이는 것, 이것을 선택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선택하게 될 때 하나님의 손길이 너를 붙들고 너의 평생 가운데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이 사실을 분명히 부모님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때 우리 자녀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지도자가 되고 세상 가운데 존귀한 자로 서게 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우리 김선도 목사님, 참 제가 옆에서 수십년 간을 그분을 모시면서 배운 것이 참 많아요.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시고 저랑 둘이 독대하고 있을 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셔서 많은 것을 들었어요. 일제 시대에 김선도 목사님도 어린 십대 시절을 보내고 계실 때 였어요. 근데 그 일제시대때 그렇게 핍박이 많았아요. 동방요배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똑같습니다. 나팔이 불고 생황을 불고 이 소리가 날때는 그 금신상에게 절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드리다가도 사이렌이 불면 동쪽을 향해 동방요배 신사참배를 하는 거에요. 다 머리를 숙이고 그렇게 신사참배를 했어야 하는 거에요. 그 이전에도 교회 다닌다고 하면 핍박을 하고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하고 그래야 했다는 거에요. 근데 어느날 목사님이 늘 주머니 안에 성경을 넣어 다녔는데 그것이 누가 춥다 그래서 외투를 빌려줬는데 외투 속에 성경이 있어가지고 그것이 그만 발각이 되고 만거지요. 그랬을때 온갖 핍박과 그런 위협과, 왕따도 시키고 그런 안좋은 상황이었지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을 져버릴 수가 없다.' 어려서부터 그 분명한 믿음을 가지셨다는 거에요. 참 가만히 보면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은 다르더라는 거에요. 어려서부터 뭔가 분명한 믿음의 확신이 있고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핍박과 고난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주목해보시고 그 사람을 존귀한 자로 세워가신다는 것을 오늘 우리들은 분명히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고보니 지금도 많은 사람의,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며 존경을 받는 그런 인물들 우리가 잘 아는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김익두 목사님, 그 수많은 목사님들, 다 그분들의 삶을 보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분들은 절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는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내가 선택할 때 세상을 선택하는 것, 좋아 보이는 걸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함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쓰임 받는 인물이 됐던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면 여러 위기와 고난이 끊이지를 않아요. 늘 우리를 위협하지요. 그러면서 세상은 "하나님보다 일단은 우리의 삶이 중요하다. 지금은 교회보다는 세상을 선택해야한다." 이런 얘기들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 속에는 일말의 양심이란게 있어서 '아닌데,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교회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고민하게 되는 거에요. 내적 갈등이 벌어지죠. 그랬을 때 오늘 우리 사랑하는 일산광림교회 성도님들 우리가 살면서 한가지 분명한 결단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런 유혹속에서 고민만 하다가 지고 넘어지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거에요. 그래서 지혜로운 선택을 하고 지혜로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을 하려고 할 때 한가지 우리가 분명하게 결단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떤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순위는 하나님과 교회에 두고 살 것입니다. 이것을 결단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이 결단이 있지 않으면 이런 위험이 오면 쓰러져요. 저런 위험이 와도 쓰러지고, 이런 바람, 저런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고 또 쓰러집니다. 늘 마음속으로는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바람만 불면 이리저리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떨어져 버리는 우리 인생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결단을 해야하는데 그 결단은 뭐냐,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나는 하나님과 교회를 선택 할 것입니다. "목사님, 그냥 하나님을 선택하지 교회는 또 왜 따라붙습니까? 하나님만 선택한다고 해야지." 여기에요, 자기를 스스로 속이는 속임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에요. 많은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 위주로 삽니다. 교회를 무시하고 성도를 무시해 그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요한일서 4장 20절에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추상적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형제를 미워하고 교회를 우습게 알고 신앙생활을 우습게 알고 그저 나만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다.' 생각 하는 것은 스스로 거짓말 하는 자라는 거에요.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없느니라.] 교회를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 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하는 거에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는 하나님을 선택하겠습니다."는 말이 매우 추상적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 추상적인 것이 구체화되고 현실화되려고 하면 교회에 헌신하는 모습이나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 내가 양보하는 모습,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모습이 우리 안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맞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선택한다고 하면 성도를 생각하고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맞겠다는 거에요. 그러고 그렇게 살겠노라 결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의 물결에 떠내려 갈 수 밖에 없다는거에요. 자기 자신은 항상 하나님을 선택한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삶의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이 세상의 금욕 가운데 신속히 휩쓸려서 떠내려가는 나 자신을 보게 될 뿐이라는 이야깁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금신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 해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렇게 살겠다라고 이 세상과 내가 타협하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존귀한 일꾼으로 서 갈 수가 없다는 것이죠. 지금은 내가 주의 일이나 교회 일 하는 것보다 세상 일에 열심히 사는 것, 현명한 선택인 것처럼 보일 수가 있어요. 그러나 훗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는 그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못했던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후회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오늘 분명히 깨달아 아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두번째로 선택할 때에는 현실이 아니라 믿음을 선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을 선택하는 것이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이기는 비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성경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이 있죠. 민수기 13장 14장에 나오는 이야깁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가나안을 향해 전진하는거에요. 그리고 가나안 입구, 그곳이 바로 바란 광야의 가데스라고 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각 지파마다 한 사람씩을 선별해 내는 거에요. 열두명을 선발을 해내가지고 그 땅을 정탐하고 와라, 그래서 그 땅을 정탐을 이제 하고 오게 되는거죠. 근데 갔다와서 보고를 하게 되는데 이 열명은 정확하게 현실을 분석해서 얘기를 하는겁니다. "지금 이 상황이 우리가 죽게된 상황입니다. 그 땅이 좋은 땅이기는 하지만 가보니끼 거인들이 살고 있고,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려고 들어가면 맞아죽기 쉽상입니다.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는 광야고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 됩니까." 그러니까 그 절망적인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통곡을 하는 거에요. 다 통곡을 하면서 "우리가 이제 죽게 되었다." 하며 슬퍼하며 절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거죠. 그러나 두 사람, 우리가 잘 아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 슬퍼하며 죽게 되었다라고 절망하고 앉아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외치는 거에요. 민수기 14장 7절과 9절에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며]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며, 하나님의 주도권을 얘기하는 거에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선택해라, 하나님을 슬퍼하게 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해라. 그것은 현실을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그러니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내 믿음을 선택하게 되어질 때 그 땅 백성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그 백성들과 싸워서 지실 분이 아니라는거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 두려워 할 필요 없다. 현실은 열명의 정탐꾼이 이야기한것이 맞다. 그러나 그 열명의 정탐꾼이 아무리 현실을 분명하게 얘기해도 보지 못하는 것, 그 현실을 다스리시는 분은 그 현실 뒤에 계시는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우리와 함꼐 하시면 이 현실은 얼마든지 변화 될 수가 있다는 믿음을 선택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두 사람만이 결국에는 그 땅을 점령하고 그 땅에서 살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되더라는 이야깁니다. 이 이야기를 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온 회중이 말도 안된다고 하면서 엉터리 같은 보고를 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향해서 돌로 치려고 돌을 들었다는 이야깁니다. 왜 그랬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가 봐도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목격했고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주셔서 그 홍해 길 사이로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던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던 사람들이라는 거에요. 그러나 무엇을 결정해야 할 때 또 다시 믿음보다는 눈 앞에 펼쳐진 이 현실을 바라보면서 두려워하고 그러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옳다며 이것을 확신하는 거에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확신 가운데 서게 되면 틀려도 틀린 줄을 모릅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옳은 얘기를 해줘도 그것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천지를 비롯해서 이단들을 보면 다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는데 그것을 믿어요. 하나님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것을 믿어요. 자신의 교주가 하나님이라고 믿는 거예요. 말이 안되는 얘기를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고 따르는 그런 잘못된 믿음을 갖는 경우를 우리가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진짜 믿음을 가져야 해요. 진짜 믿음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지 못할 때가 있어요. 오늘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고 우주 만물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되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이에요.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나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고 내 삶을 인도해 가신다.' 이것을 믿는 것이 진짜 하나님, 진짜 믿음이에요. 그러고 이 성경에 있는 이 말씀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능력의 말씀이 되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라는 거에요. 그렇다면 지금 코로나로 인해서 무섭고 두렵고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하니까 죽을것같고 이런 우리들의 모습 슬퍼하며 탄식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가데스 바네아 앞에서 "이제 죽게되었습니다." 하며 탄식하고 슬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거에요.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런 상황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니 우린 잘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계획하신 것을 이루실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참 멋있어요. 멋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믿음만 있는것이 아니라 용기도 있기 때문에 멋있다는 거예요. 이 다니엘의 세 친구를 가만히 묵상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용기가 없으면 진짜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는 거에요. 우리 성도님들 인생 살면서 하나님을 많이 아는 지식도 있고 내가 하나님을 신뢰도 하지만 용기가 없으면요, 진짜 믿음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거에요. 아무리 많은 성경의 지식이 있다고 해도 용기가 없으면 세상의 위협 앞에 다시금 무릎을 꿇게 되더라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면 우리에게 먼저 용기가 있어야 해요. 근데 그런 용기는 어디서 오는가, 이런 용기는요, 하나님을 믿는 진짜 믿음에서 오는 거예요. 참 역설적이예요. 하나님을 진짜 믿으면 용기가 생기고 그 용기를 가지고 또 나아가면 더 큰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용기가 있으면 우리는 그 용기 있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나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다니엘의 이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맹렬히 타오르는 풀무불 앞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됐어요. 현실과 타협함으로써 살 길을 찾을 것이냐, 아니면 믿음으로 죽음을 선택 할 것인가. 근데 우리 성도님들, 진짜 사는 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서 현실과 타협함으로 사는 길이 내가 사는 길이냐? 아니라는 거예요. 믿음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선택해서 세상에서는 비록 "어리석다, 너 죽게 된다." 이런 얘기를 한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는 길이 사는 길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코로나 19 이후에도 또 어떤 어려움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 우리는 몰라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을 선택하고 내가 믿음을 선택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고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서도 우리를 건지신 그 하나님께서 코로나19 가운데서 우리를 건지시고 또 경제적인 위기 속에서도 우리를 건지시고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시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 이 분명한 믿음을 잃지 않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세번째로 우리가 선택을 할 때 돈이 아니라 가치를 선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하면 돈일거예요. 왜? 돈이 있어야 먹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집을 사기도 하고 내가 잘 곳도 마련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돈이 중요한 건 맞아요.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까 돈에 대한 유혹이 커요. 아마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유혹이 뭐냐 물으면 돈일거예요. 가장 큰 유혹, 바램,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돈일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돈이 아니라 가치를 선택 해야 한다고 하면 어떤 분들은 "에이 목사님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요." 이렇게 얘기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 이유는 현실감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인생을 살다보니까 지혜라고 하는 것이 생겨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다보니까 지혜가 생기는데, 그건 뭐냐면 여러분도 다 경험해 보셨을 거에요. 돈을 따라가면 절대로 돈을 얻지 못해요. 여러분 그걸 인생에서 여태까지 살면서 우리가 경험한 내용이에요. 열심히 돈을 쫓아갔지만 돈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거예요. 마치 어렸을 때 우리가 바닷가에 가게 되면 우리가 수영을 할 때 이 공으로 된 튜브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파도에 이렇게 떠내려 가는데 바로 1미터 앞에 있어요. 헤엄을 쳐서 그걸 잡으려고 하면 공이 잡힙니까? 안잡혀요. 잡힐 듯 하면서 또 멀어지고, 또 헤엄을 쳐서 잡으려고 하면 또 멀어지고 또 멀어지고. 점점 바다 깊은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는 거에요. 그러다가 결국에는 힘이 빠져서 그 공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잡지 못하고 노력을 하면 할수록 잡지 못하고 놓치게 되고 결국엔 힘이 빠져 물에 빠져서 죽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돈을 추구하는 것이 똑같다 는거예요. 눈앞에 보여요. 한 팔만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잡으려고 하면 또 미끄러져 나가고, 또 미끄러져 나가고, 잡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쯤 되면 '아, 저건 눈에 보여도 잡을 수 없는 거구나.' 이걸 알아야 하는데 인간의 욕심이라고 하는 것은 끝까지 그런 우리의 노력을 포기하게 만들지를 않는다는 거에요. '한번만 더 해보자, 한번만 더 해보자.' 그러다가 결국은 그걸 추구하다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반면에 내가 돈을 추구하지 않고 가치를 추구하면요, 이상하게 굶어 죽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거기에 물질이 따라오더라는 거예요. 잡으려고 할 때는 잡히지 않던 것이, 내가 가치를 잡으려고 하고 그것을 돌아보지 않으니 물질이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성공하고 이렇게 크게 부자가 된 사람들이 돈을 추구해서 부자가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가치를 추구했을 때 그 다음에 그 물질이 따라와서 그 사람들이 그렇게 큰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다 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쯤에서 우리 성도님들, 자신을 삶을 돌아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돈을 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가.' "목사님 저는 지금까지 돈을 추구해왔고 또 성공을 추구하며 살았어요. 그래서 그것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 계십니까? 물론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그런 분들이라면 조심하셔야해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들이 나를 한순간에 배신하고 떠나가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너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돈을 추구해라. 이렇게 성공을 추구하며 살아라." 이렇게 말하는 곳은 성경에 단 한 구절도 없어요.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치있는 삶을 살라는거에요. 무엇이 가치있습니까? 생명을 살리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에요.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에요. 용서하며 사는 것이 가치있는 일입니다. 서로 섬기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에요. 뭔가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같이 그를 도와서 일으켜주는것, 선한 사마리아인 같이 강도만난 사람을 만났을 때 일으켜 세우는것, 이거 가치있는 일이에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추구하며 사는것, 이거 가치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다 가치 있는 일이 가치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으로 보인다는 거예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어리석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그런 것이 가치 있는 줄 모르고 세상에서 그저 나만 잘되고 내가 성공해서 살면 그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들이야 말로 어리석은 인생이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거예요. 내가 많이 쌓아두면 뭐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한 순간에 "너의 영혼은 여기까지다. 와라." 그러면 다 놓고 가야 하는 거에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다시 요약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예요. 한번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서 공격을 당하게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 선택해야 하는데 문제는 뭐냐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지금 내 생각에는 좋아보여. 그래서 이걸 선택하면 잘 될 것 같아.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지 않느냐 이 말이지요. 그래서 무엇을 선택하려고 할 때 우리 성도님들 꼭 기억하셔야 하는 것이 있어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선택하고 믿음을 선택하고 가치를 선택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저도 때로 이제 담임목사의 자리에 있다보니까 '어떤 사람에게 이 일을 맡길까. 중요한 일인데 어떤 사람에게 이 일을 맡길까.' 생각을 할 때 그냥 아무나 이렇게 맡기지 않아요. 그분의 삶을 예의 주시해서 보게 돼있다는거죠. 그러고 그 사람이 진짜 가치있는 것을 선택할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지혜로운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는 오해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무나 선택해 가지고 아무나 붙잡고 일하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거에요. 하나님은 평상시의 삶의 태도를 보시는거에요. 사도바울의 삶의 태도를 보시고, 모세의 삶의 태도를 보시고, 여호수아의 삶의 태도를 보시고, 다윗이 양치기 할때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그 삶의 태도를 예의 주시해서 보시는 거예요. 그리고 지혜로운 선택을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을 선택하는 사람을 결국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해서 그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다니엘의 세 친구의 그 선택은요, 세상에서는 조롱 할 수있는 선택을 했어요. 비웃음을 당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선택했어요. 어리석음을 세상 사람들은 한탄해요.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다니엘의 세 친구의 선택은 그 누구보다 지혜로운 선택이었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믿음을 선택하고, 또 가치를 선택하게 될 때 하나님은 그런 선택을 하는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의 길과 걸음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죽을 것 같은 그런 위기 속에 빠져있다 할지라도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두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건져내시는 하나님이 되시고, 놀라운 기적 속에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서게 하시는 그 은혜가 지혜롭게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 성도님들이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말씀을 배운다는것, 설교를 듣는다는 것, 성경 공부를 한다는 것. 이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얻겠다는 거예요. 하늘의 지혜를 얻었으면 얻은대로 살아야 하는거죠. 그것을 머릿 속에만 넣어두고 지키지 않는다고 하면 그 지혜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거죠.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런 위기를 만났어도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겠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을 선택하며 살겠습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믿음을 선택하고 가치있는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게 될 때 우리의 인생은 결코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서게 되는,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님들 위에, 또 자녀들 위에 이제로부터 충만히 임하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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