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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인 골리앗을 이긴 다윗 같은 자녀  
 
거인 골리앗을 이긴 다윗 같은 자녀
설교날짜 2020.5.3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삼상 17 : 31 - 40
 

200503 박동찬목사님

거인 골리앗을 이긴 다윗 같은 자녀

사무엘상 17장 31-40절


아멘 귀한 찬양에 감사드립니다 큰 은혜받으신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오늘 가정에서 우리 자녀들과 함께 예배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은 우리 자녀들을 한번 축복하면 좋겠습니다.이름을 부르시고 아무개야 너는 세상에서 가장 보배롭고 존귀한 나의 아들이다, 딸이다. 이렇게 한번 인사하면 좋겠습니다. 자녀들을 축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더 하시겠습니다. 이번에는 너의 평생의 하나님이 너와 늘 함께하신다. 이렇게 한번 아이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믿습니다. 오늘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를 이렇게 축복하는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말의 권세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녀들을 축복하는 대로 자녀들에게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 일산광림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가정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사람들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게 되는데, 결혼식을 할 때는 다 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 누구보다 아름다운 가정, 누구보다 기쁨이 넘치는 그런 본이 되는 가정을 만들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갖게 돼요. 그런데 살다보면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는것을 보게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가정이 붕괴되기도 하고 해체되기도 하고 또 젊은 청년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또 이 사회 이 세대의 가치관을 따라가다 보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서 결혼도 안하려고 자꾸 미루고 해서 결혼을 하지 않는 청년들이 많아지는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왜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는가? 세상적인 가르침으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가르침은 다 자기 편의, 쾌락, 이기주의로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쪽으로 따라가다 보니까 굳이 가정을 만들고 책임지는 것이 불편하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선호하지 않는, 혼자 사는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을 청년 세대에서 볼수가 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막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가정이 자꾸 붕괴되면 나중에는 자녀를 낳지 않기 때문에 나라도 어려워지는 그런 일이 벌어질수밖에 없는것이죠. 그래서 이 가정이 건강하면 나라가 건강해질수밖에 없는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을 우리가 좀 예방하고 건강한 가정을 만들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답은 하나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가르침,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수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 어렸을때부터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심어주는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거죠. 근데 이런 얘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는 얘기는 고리타분하고 재미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어린 아이들도 그렇고 이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 어렸을때에는 교회를 잘 다니다가 교회를 자꾸 떠나가는 그런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리타분하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요,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올바른 일, 진리를 추구하는 일은 다 고리타분한 일이에요. 말에 어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나쁜짓은 다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고리타분하고 나쁜짓을 하면 가슴이 뛰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술마시고 클럽가서 춤 추고 아이들과 어울려서 일탈을 꿈꾸면서 살면 신이 나는거죠. 좀 사는것같고,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이 그렇게 느껴지고 말이죠. 근데 보세요. 착하게 사는것, 일찍 귀가하고, 밀린 일 하고, 책 보고. 지루해요. 고리타분하다는 말입니다. 근데 거짓말 하고 모여서 남을 험담하면 뭔가 신이 나요. 드라마틱하고 가슴이 뛰죠. 근데 진실을 말하고 착한 일 하려고 하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면 그런 일들은 힘이 들고 피하고 싶고, 이런 일들은 나 아니어도 도와줄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바르게 살아라 착하게 살아라 듣는것,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거죠. 진부하게 느껴집니다. 여러분 설교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생명을 살리는 일이거든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근데 세상에서는 이 설교만큼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일이 없다는거예요. 그래서 긴 얘기를 하면 설교 그만 하세요. 이런 얘기를 해요. 설교는 곧 지루한 얘기. 고리타분한 얘기. 이렇게 여겨진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신나는 일을 할때는 항상 위험한 열매를 맺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고리타분한 일, 진리를 추구하는 일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게되는 것이고 그것이 가정을 건강하게 지키고 나라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비결이라는 것을 오늘 우리가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자꾸 신나는 것을 추구하고 살아갈 때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고리타분한 것은 절대로 잘못된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지나게 되면 그 안에서 진짜 기쁨이 뭔지를 보게  되는 것이고, 또 시간이 더 지나게 되면 후회하지 않는 열매를 맺을수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속에 숨겨져있는 보화를 캐내고 기쁨을 캐내고 감사를 캐내고 그 안에 있는, 넘쳐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다윗이 어느날 전쟁터에 나가있는 형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기위해 전쟁터에 갔는데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골리앗이라고 하는 블레셋의 장수가 얼마나 기골이 장대한지 큰 칼을 들고 큰 창을 들고 "너희 이스라엘 겁쟁이들아!"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대항하지 못한다는 거죠. 그것을 보고 다윗의 마음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아니 어떻게 골리앗을 대적할 사람이 한사람도 없을까, 그래서 다윗이 어린 소년이지만 담대하게 골리앗 앞에 서게되는거죠. 남들은 다 두려워하는데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아요. 물맷돌을 골리앗을 향해 던졌을 때 그것이 골리앗의 정수리에 맞게 되고 골리앗이 쓰러져서 죽게되는 일이 오늘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 형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러 갔던 소년 다윗은 순식간에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어져 버리게 되는거죠. 어떻게 어린 다윗이 어른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가 있었을까? 그것은 다른데서 원인을 찾을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신앙의 유업을 물려준 결과라는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아서 우리 자녀들이 골리앗을 이긴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스라엘의 앞길을 가로막은 골리앗처럼 인생에 골리앗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도 지금은 잘 자라지만 저 아이들이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될 때 여러가지 문제들이 앞길을 가로막아요. 위기가 올수도 있다는거예요. 이럴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도하는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이 위기를 우리 자녀들이 피해갈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것은 어려서부터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다윗의 삶을 지배하도록 우리가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다윗의 가슴에 새겨질 때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게되는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윗처럼 신앙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도와야 할것인가에 대한 세가지 말씀을 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어려서부터 말씀 교육을 철저히 받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린시절의 교육이 중요하다라고 하는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정할수밖에 없는것이 있어요. 그건 어려서 공부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인정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이가 들고 보니까 공부를 하려고 해도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가 나가고, 어쩔때는 하나가 들어오면 두개가 나가기도 합니다. 머릿속의 기억력이라고 하는것은 20세 이전에 다 결정이 된다고 합니다. 20세 이후가 되면 그 다음에는 IQ가 늘지 않아요. 공부하는것, 성격같은 것들도 20살이 넘으면 바뀌지 않는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어린 시절에 성경 말씀을 배워두면 성인이 되어서도 뼈에 각인이 되는거에요. 그리고 위기상황에 이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더 중요한것은 이 어린 시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신앙적인 체험을 하게 되면 그것이 내 삶에 큰 확신이 되고 그 확신이 나중에 내 앞에 크고 어려운 문제가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뛰어넘는 힘이 된다는 이야깁니다. 다윗의 경우를 보세요. 골리앗과 싸우고자 할 때 사울이 뭐라고 합니까, 어린 소년이 나와서 거인과 싸우겠다고 하니까 사울 왕이 어이가 없어요. 그래서 뭐라고 하냐면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다. 왜? 너는 소년이고 저 거인은 어려서부터 용사다. 너는 지금 칼을 잡아본 적도 없는 소년에 불과하다." 그러니 어떻게 이길수가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답합니까? 오늘 34절 36절을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고 그러는 와중에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참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거죠.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라.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어요. 내가 분명히 저 골리앗을 이긴다. 왜? 사자와 곰도 이겼으니까. 어려서부터 맹수와 싸워 이긴 그 경험이 확신이 되니까 지금 내 눈 앞에 서있는 골리앗이 무서운 존재로 비춰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기한것은 어떻게 이 어린 소년이 맹수와 싸워 이길수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즐겁게 받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즐겁게 받으니 그 말씀이 삶에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적용하다 보니 그 말씀이 맞다는 것이 확신이 되는것이고 그 확신이 앞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또 다른 어려운 문제를 극복해내는 힘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근데 그 다윗의 집에서는 다윗만 신앙 교육을 받은것이 아니라 8형제중 막내였던 다윗은 7명의 형과 함께 똑같은 신앙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하기 위해 앞에 나간 첫째, 둘째, 셋째는 골리앗 앞에 서지 못하고 막내인 다윗만 앞에 나설수 있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제가 미국에서 교회학교 전도사를 하던 시절에 어린 초등학생들을 앞에 놓고 설교를 해야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에게 하는 설교를 하려고 하면 아무도 듣지 않으니까 구연동화를 하듯이 성경에 있는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 아이들에게 말씀을 집중적으로 가르쳤었습니다. 보면 선생님들을 넋을 놓고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제일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아이들은 보면 집중을 못하는 거예요.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시작하면 뒤 돌아 앉아 장난을 치려고 하는 아이들도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몇몇 아이들은 말씀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아주 흥미진진하게 손에 땀을 쥐며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은혜를 체험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벌써 30년 전이에요. 30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지금 아이들이 뭘 하나 봤더니 말씀에 집중했던 그 아이들이 역시나 지도자가 되고 선한 일에 앞장서며 하는 일들이 다 잘된것을 보게 되더라는 이야깁니다. 아이들의 장점은 무엇인가 하면요, 들은대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분석을 하지 않아요. 어렸을때 말씀을 전하면 그 말씀을 들은대로 믿는것입니다. 다윗도 어려서부터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믿어졌던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호수아의 이야기도 읽었겠지요. 많은 구약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용기가 생기는 거에요. 돌도 던져 보고 막대기도 던져 보고 그러다보니 정말 쫓겨가고 덤비는 것이 아니라 도망을 치더라는 것이죠. 거기서 자신감을 얻고 확신을 얻게 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실생활에 적용해보니 그대로 되는것이 확신이 되면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의 말씀이 답입니다 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 말씀을 유추해보면 다윗의 형님들은 매일 모여서 뭘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막내에게 "네가 나가서 양을 쳐라"하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신앙 토론을 했는지, 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앙토론은 별로 좋은것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분석하는것이 아니에요.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믿어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의 이 작은 소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분석하고 이것이 이래서 저렇고 저래서 이렇다하며 토론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물을 때 그걸 설명해주는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에 대한 나의 견해를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도 믿을 수 없다 하며 세상으로 튕겨져나가버리는 존재가 된다는 이야깁니다. 형들은 신앙토론을 했는지 군인이 되기 위해 운동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항상 홀로 다윗만 양을 치기 위해서 들판으로 버려져 나가있는 것입니다. 혼자 양을 치며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양들을 보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이런것이겠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돌보시겠구나. 그 말씀을 읽으면서 스스로 들녘에서 은혜를 받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거에요. 그 때 사자와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둘 중에 하나지요. 도망을 치던지 싸우던지 둘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힘과 지혜와 용기를 더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다윗은 도망치기 보다는 담대하게 돌을 던지고 싸워서 사자와 곰을 쫓아냈습니다. 이것이 자기의 삶에 경험이 되는거죠. 이것이 경험이 되니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것이 확신이 되고, 확신이 되니 더 큰 지혜와 용기가 다윗에게 부어지는 거죠.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골리앗을 봤을 때 골리앗이 조금도 두렵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로만 하는것이 아니라 실제로 두렵지 않은 존재로 느껴졌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적인것을 더 충실히 이행해야한다? 그리고 그 다음이 하나님의 말씀 공부다?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틀린 이야기라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 성도님들 이 어린이 주일에 진짜 우리 자녀들이 잘되기를 원한다면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성경은 세상적인 것 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세상적인것을 먼저 이행하는것을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33절 말씀을 보세요. 사울의 말은 무엇입니까?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남들보다 훈련을 많이 받은 강한 존재, 용사다. 그러나 다윗은 어려서부터 군사훈련을 받아본적이 없다. 그냥 목동일 뿐이다. 어려서부터 용사였던 골리앗,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다윗. 둘이 붙을 때 누가 이기겠습니까? 세상사람이면 100이면 100 다 골리앗이 이긴다고 하지만 오늘 성경의 본문에 따르면 골리앗은 그저 힘없이 맥없이 쓰러져버리고 다윗이 승리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을 이길수는 없다는거예요. 근데 하나님이 누구를 도우시는가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고 그 말씀에 붙잡힌 사람을 하나님은 돕는다고 하는것을 오늘 우리 성도님들이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목사님, 그건 아닌것같아요. 설교시간에는 그렇게 얘기하시지만 실제로 세상을 살아보면 세상을 이기는것은 그저 세상적으로 잘나가는 사람이 이깁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우리 성도님들 계십니까? 그건 절대적으로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마음을 돌이키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결국 내 생명을 보존하고 나로 하여금 세상을 이기게 하는 지혜와 힘과 용기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이 다윗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데 우리 자녀에게 있어서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모른다는 거에요. 오히려 세상 돌아가는것은 잘 알아요. 드라마나 만화영화같은걸 통해 세상의 이런저런것에 모르는 것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아는것이 없어요. 이것이 문제라는 이야깁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자녀들이 살다 보면 크고작은 문제 앞에 직면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럴때 우리 부모님들 마음이 아파 기도하시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기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것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존재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면 위기중에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자녀들을 이끌어가는 것을 보게 될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일산광림 성도님들, 우리 자녀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돕는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자녀를 맡기신 이유입니다. 내 자녀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양육하도록 우리에게 위탁하신 자녀가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부모에게 첫번째 사명은 무엇이냐면 내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훈련시키고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고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녀들로 양육해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두번째로는 현실속에서도 믿음을 적용하도록 도와야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속에서도 믿음을 적용하며 살 수 있도록 돕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니 목사님 당연한 말씀 아닙니까? 현실 속에서 우리가 살면서 믿음을 적용하며 사는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맞아요 당연합니다. 그러나 당연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의외로 많은 성도님들이, 성경의 지식도 해박한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 안에서만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해야한다, 믿음으로 살아야한다, 이것을 알기는 잘 알아요. 그런데 위기가 닥치면 정신이 없어지는데, 정신만 없어지는게 아니라 믿음도 없어져버려요. 그래서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세상사람들처럼 사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실 위기가 닥치면 세상적으로 살다가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달려나와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부분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믿음생활을 잘 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서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오히려 위기가 닥치면 하나님의 말씀도 져버리고 세상으로 나가 세상적으로 해결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다윗을 보세요. 평소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내가 두렵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면서 골리앗이 앞에 나타났을때 '이건 내 문제가 아냐, 이건 저 군인들의 문제야.'라고 하면서 피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앞에 잘못된 행동이라는 거에요. 다윗은 양을 칠 때 사자와 곰이 나타났을때도 그렇고, 오늘 본문처럼 골리앗이 앞에 나타나는 순간에도 그의 신앙의 확신은 달라지지 않았다는거에요. 이런 부분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부분이라는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위기 앞에 섰을 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꼭 해낼것입니다." 이렇게 마음먹었다가도 실제로 문제 앞에 직면하게 되면 '아이고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문제네, 이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네. 내가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돌아서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거죠. 하지만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은 큰 갑옷에 투구를 쓰고 큰 창과 칼을 가지고 서있는 태산같은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오늘 본문 뒤 45-47절을 보면 어떻게 어린 소년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놀랍습니다. 45-47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어린 소년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는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신다. 지금 죽을 위기속에 있는 다윗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금 내 손에 넘긴다는 거에요. 예언과도 같은 이야기를 어린 소년 다윗이 고백하고 있는 거에요. 보통 확신이 있지 않고는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없다는거죠. 그 다음에 뭐라고 합니까?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하겠다. 너를 쓰러뜨려서 온 세상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이 이스라엘 편에 있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로구나 하는것을 알도록 하겠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구원하심이 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정말 멋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무리에게 알게 하겠다는 거에요. 이스라엘 군대나 블레셋 군대나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겠다는 것. 어린 소년이 어른들의 신앙을 꾸짖고 있는 것이에요. 이스라엘 편은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 정신을 차려라,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너희도 정신 차려라! 그리고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칼과 창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 있다. 이것을 온 무리에게 알게 하겠다는 이야깁니다. 우리는 늘 "승리는 칼과 창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동시에 "칼과 창이 있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성도님들의 모습이더라는 것입니다. 이율배반적인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도 그러지 않았고 제자들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멋지게 하나님의 뜻을 쫓아서 세상을 이긴 수 많은 크리스천들의 삶이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세상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하나님의지해서 나아가게 될 때 저들은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승리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 현실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능력있는 말씀임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칼과 창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학벌과 학력이 중요한것이 아닙니다. 세상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세상적인 것들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어려서부터 자녀들의 마음속에 심어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세번째로 우리 자녀들에게 필요한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야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두려워 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두가지 모습이 나타나는데 첫째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과, 두번째는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 입니다. 하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두가지 특징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바르게 산다는 것은 성경 말씀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농담으로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컬어서는 안되는 거에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고 교회에 예배드리는것을 우습게 여기지 말고. 십계명을 우습게 여기면 안돼요. 선한 일을 하는 것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서도 안돼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이웃을 돕는 선한 일들을 행해야해요.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가 손해를 보는것은 참 마음아픈 일이어서 "그러지 마, 네가 우선이지 왜 남을 돕느라 그래." 할 수도 있지만 주님은 남을 돕는 그 모습을 칭찬하세요. 지금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그 선한 행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놀랍도록 부어주시는 그 은혜와 은총을 경험하는 자녀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또 더 나아가서 교회에서 부서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의 설교 말씀을 존중하도록 가르쳐야해요. 그것을 비판하고 "에이 그건 목사님들이 몰라서 그래요." 이런 말씀 하시면 안돼요. 절대로 교회를 욕하거나 목회자 비방하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이것을 자녀들에게도 가르치고 우리 성도님들 가슴에도 새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니 목사님, 그게 무슨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입니까?" 하실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이런것입니다. 목사가 잘나서, 무서워서, 두려워서 비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일을 하는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욕할수도 있지요. 그러면 우리는 평범한 수준에 머무를수밖에 없어요. 다윗처럼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받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는 거예요. 오늘 성경에서도 다윗이 하나님앞에 사랑받았고 존중받았던 이유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성경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세가지만 말씀 드리자면, 첫째로는 사울왕이 다윗을 질투했어요. 죽이려고 산이며 들이며 쫓아다니며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 3000명을 이끌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다윗이 숨어있는 동굴에 쉬려고 들어가 잠이 든거예요. 그러니까 다윗의 군사중에 신실했던 그 충신이 이것은 지금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죽입시다. 하는데 다윗이 못하게 했어요.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 왕을 죽이고 왕이 될 수 있었지만 다윗은 그러지 않았아요. 그리고 사울의 옷자락만 살짝 베어냈습니다. 사무엘상 24장에 나오는 이야깁니다. 나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원수같은 사울왕이었지만 그를 죽임으로써 복수를 하는것이 아닌 옷자락만 베어냈어요. 그러고 나서도 사무엘상 24장 5절에는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을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렸다]라고 나와있어요. 왜 다윗의 마음이 찔렸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울왕인데 그의 옷자락을 조금 베어낸 것으로도 마음이 두려웠다는 이야깁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그만큼 경외했다는거에요. 사울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행동했다는 이야깁니다. 근데 이런 다윗의 모습을 하나님이 보실때 감동하는거에요. 그런 다윗을 하나님이 더 존귀하게 만드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이야깁니다. 

또 있지요, 우리아의 충직했던 아내. 우리아가 전쟁터에 있을때 우리아의 아내에게 반해 아내를 빼았았어요. 이것으로 인해서 나단선지자의 책망을 받게 되지요. "왕이시여, 왕이 그러면 안됩니다."하고 책망하게 될 때 다윗은 "내가 왕인데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하며 나단선지자를 감옥에 넣거나 죽일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옛날 왕들 사이에서는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나단선지자의 경고를 들은 후에 통곡을 하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죄를 범했을 때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아파야 하는거에요. 그리고 그것을 진심으로 눈물로 통회하며 회개하는 모습. 

마지막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어요. 다윗의 아들중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있죠. 헤브론에 가서 본인이 왕이 된 후에 아버지를 죽이러 예루살렘을 향해 진격해오는 거에요. 아버지인 다윗은 그 아들과 싸울 수 없어서 그저 신하들과 더불어서 다윗 성을 빠져나와 감람산쪽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때 시무이라고 하는 이름도 없는 사람이 나타나 다윗 앞에 서서 다윗을 저주하며 돌을 던지는거에요. 예언을 하는데 거짓 예언입니다. 사무엘하 16장 8절에 보면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너에게로 돌리셨다]사실은 다윗이 사울을 죽인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너에게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임으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가만히 들어보면 마치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것처럼 보여요. 그러나 이것은 자기 생각일 뿐이라는 이야깁니다. 예언이 아니에요. 이때 다윗의 충직한 부하 아비세는 이 말이 말이 안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무엘하 16장 9절에 보면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죽은 개로 표현하는거에요. 죽은 개처럼 보잘것없는 존재가 내 주 왕을 이렇게 멸시하고 저주해?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저 자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내가 달려가 저 자의 머리를 베고 오겠다. 충분히 그럴수 있는거죠. 근데 다윗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수르야의 아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참 겸손한 표현이에요. "왜 나때문에 네가 그런짓을 해야하느냐?" 나때문에 네가 그렇게 수고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비세를 말립니다.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내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나님께서 저주하게 했으니 시무이가 저렇게 저주하는건데 가서 너 왜 나를 저주하느냐 이렇게 얘기할수 없다는거에요. 왜? 하나님께서 저주하라고 했으니 저주하는것일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그러면서 그 시무이를 죽이겠다는 아비세를 만류하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나를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 여호와께서 그의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도록 내버려둬라. 혹시 여호와께서 내가 원통한 일을 당하는 것이면 오늘 저 저주때문에 하나님께서 오히려 나를 불쌍히 여기고 그것을 선으로 나에게 갚아줄것이다. 그러니 지금 저주 하도록 내버려둬라." 그러면서 다윗은 시무이가 계속 다윗을 저주하며 돌을 던지는것을 가만히 내버려두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다윗이 힘이 없어서 시무이를 가만히 둔것이 아니죠. 혹시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어떡하나. 이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시무이를 화나는 내 감정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는 다윗의 모습. 이런 일련의 다윗의 행동들은 그 모습속에 다윗이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했는지 하나님께 보여주는 행위가 아닐수가 없다는 이야깁니다. 사람은 조금만 힘이있으면 자기 힘을 휘두르고 싶어하지요. 특히나 누가 나를 대적한다 싶으면 가만히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우리 성도님들은 "목사님, 그러고 싶어도 힘이 없습니다." 이렇게 혹시 생각하는 분 있으신가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힘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것이 아닙니다. 힘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라도 하나님 나라를 헐뜯으면 안되는 거에요. 또 누군가를 비방해서도 안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사람은 그렇게 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그까짓거 없어져야한다.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얼마나 교회를 향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요. 그들은 몰라서 그런다 치고, 교회 다니는 우리 성도님들은 그래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거에요. 내 생명처럼 귀하게 여겨야해요. 하나님을 진짜 사랑하는 자에게는 교회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험담, 비난, 저주하지 않아요. 오히려 축복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가운데 넘쳐날수 있도록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어린이 주일을 지나며 자녀들에게 축하 선물을 사주고 싶은 분들도 있을거에요. 그렇게 받는 선물이 기쁨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잠깐의 기쁨일 뿐이지요.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우리는 선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자녀들이 어디를 가던지 존귀히 여김받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세상을 이기는 자로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물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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