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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
설교날짜 2020.5.10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창 9 : 18 - 29
 

200510 박동찬목사님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
창세기 9장 18-29절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늘 어버이의 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만 늘 바쁘다 보니 잊고 지내다가 어버이주일이 되면 우리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이 어떠했는가 다시한번 돌아보면서 그 사랑을 되새기고 또 감사하는 그런 주일입니다. 그래서 이 어버이 주일이 참 귀한날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그런 부모님의 사랑을 잘 모르고 그렇게 살아가다가 이제 나이가 들고 나도 부모가 되고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아, 부모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셨구나.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이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참 나의 부족함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그런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어버이 주일에 우리 가정에서 함께 예배 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가정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 세상사람들은 “뭐 신앙생활 그거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지만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반드시 필수입니다. 신앙생활, 예수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 거기에 따른 결과는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고 극에서 극입니다. 죽느냐 사느냐가 결정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생명이냐 축복이냐 아니면 저주이냐, 죽음이냐 이것이 결정되는 그런 순간이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선택이 될 수 없습니다. 필수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나아가는 그런 우리 모든 성도님들과 또 우리 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렇게 축복과 생명을 얻게 되는데 근데 이것이 다 그냥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얻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세가지를 꼭 알아야합니다. 세가지를 지켜야 하는데 그게 뭐냐면 하나는 “예수님을 내가 믿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사해주시고 나의 구세주가 되심을 나는 믿습니다.” 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두번째는 “이제는 더이상 내가 과거에 짓던 죄와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돌아서겠습니다. 이제는 죄악된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 선한 길, 축복의 길, 진리의 길을 가겠습니다.” 죄에서부터 돌아서는 일이 있어야 하는 거에요. 그리고 세번째는 부모님을 존경하고 공경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해야 되는 거죠. 감사해야 되는 것. 이 세가지는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반드시 지켜야하는 중요한 세가지란 것입니다. 근데 이 세가지가 결국 다른 것이 아니라 한 몸체에요. 이 세 개는 결국 하나로 엮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진짜로 믿는다고 하면서 죄의 길을 떠나지 않으면 그건 진짜 믿음이 아니라는 거죠. 또 “내가 예수님을 믿노라” 하면서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고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도 내 믿음이 진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는 거에요. 나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 두번째 세번째, 죄와 타협하지 아니하고 내가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 이 두가지가 반드시 수반되어서 증거되어 질 때 첫번째 나의 믿음, 예수그리스도가 내 죄를 사해주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나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확증하게 되어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세가지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또 반면에 이 두번째 세번째는 잘 지켜요. 죄와 타협하지 않고 바르게 살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또 부모님을 공경도 하지만 나는 예수님을 안 믿지 않는것. 이건 믿음이라고 얘기할 수가 없다는 거에요. 세상에 착하게 사는 사람도 많고 또 부모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의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 죽음을 믿지 않는 사람을 우리가 신앙인이라고 얘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가지가 반드시 한 묶음이라는 거죠. 근데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보면 예수님을 믿고 죄와 싸우는 것, 여기까지는 우리가 고군분투하고 열심히 하는데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해야 하는 그 부분에서는 우리가 소홀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축복받고 장수의 비결이 어디있느냐. 바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에, 사랑하는 것에 있다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이 날이 참 귀한 날이에요. 오늘 이 어버이주일 만큼이라도 오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귀한분이 우리 부모님 아니겠습니까? 그 부모님을 향해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꼭 고백할 수 있는 그런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 홍수가 난 이후에 노아가 이제 방주에서 내려오게 되죠. 그리고 농사를 짓게 되는데 포도열매를 결실하게 된 거에요. 그래서 포도열매를 가지고 포도주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먹다 보니까 취해가지고 잠이 들었는데 원래 취해서 잠이 들면 정신이 없는 거죠. 그래서 벌거벗고 그렇게 잠을 자고 있게 된 거죠. 그런데 그의 아들 중에 둘째 아들 함이라고 하는 아들이 이렇게 들어와서 보니까 아버지가 술 취해서 누워서 잠을 자는데 술냄새가 나고있고 보니까 옷을 다 벗고 자는 거에요. 근데 그걸 보고서는 나와서 그 아버지의 그 옷을 입질 않았으니 그 옷으로 덮어드리든지 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고 나와서 그 형제들에게 얘기하는 거죠. 셈과 야벳에게 아버지가 술 먹고 지금 자는데 하체를 다 드러내놓고 저렇게 자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한 거에요. 셈과 야벳은 그 얘기를 듣고는 바로 옷을 준비해가지고 덮을 것을 준비해서 뒷걸음질쳐서 들어가는 거에요. 아버지가 자고 있는 그 곳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그 벗은 몸을 보지 않고 그 아버지의 몸을 덮어 주었다는 거죠, 그것을 나중에 노아가 술이 깨고 난 다음에 보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 이것을 깨닫고 나서 노아가 화가 나서 이 둘째아들 함을 저주하는 거에요. 너는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냐 형제의 종이 아니라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 이렇게 저주를 했는데 그것이 그대로 그렇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노아의 세 아들이 사실은 이제 이 모든 인류의 조상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셈은 우리가 아는 대로 아시아권에 있는 사람들이 셈족의 후예들 이렇게 얘기하고 야벳족은 야벳의 그 후손들은 지금의 서양인 서구인들을 얘기하고 함의 후손들이 흑인들이다. 이렇게 아프리카 쪽으로 가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고생을 참 많이 했죠. 그 모든 결과가 노아가 저주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아버지의 저주라고 하는 것이 참 무섭다고 하는 거죠.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을 조심해야 하고 축복과 저주, 해야 한다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해서 그 복된 삶,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는 지혜로운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오늘 우리가 ‘부모를 잘 공경한다’라고 하는 것, 이것이 참 중요하다 라고 하는 거에요. 출애굽기 20장에도 보면 십계명이 나오는데 출애굽기 20장 12절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첫 번째 네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입니다. 나 외의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우상을 섬기지 말고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네 계명이 있고 그 다음 다섯 번 째 가운데에 박혀 있는게 뭐냐면 부모를 공경해야 된다. 하나님 다음으로 중요한게 부모님을 공경해야 된다. 그리고 여섯번 째 부터 나오는 계명이 뭐냐하면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이 순서를 보면 이 죄의 정도를 센 정도부터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살인하지 않는 것 보다 더 강력하게 얘기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부모를 공경하면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너의 생명이 길 것이다 . 장수의 축복을 허락해 주신다는 거에요. 전 오늘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부모님과 관련된 두가지 중요한 교훈의 말씀을 전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단순한 내용. 우리가 다 잘 아는 내용이지만 그러나 이 두가지를 꼭 지킴을 통해서 우리가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이 신앙생활을 잘 하느냐 거기에 달려 있구요 그 다음에 또 하나가 부모를 공경하느냐 안 하느냐 거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애도 지켜야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거기 안에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이 있다는 것을 우리 성도님들이 깨달으시고 부모님을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두가지가 있습니다. 이 두가지 말씀을 잘 새기시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가정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넘쳐나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첫번째는, 부모님을 늘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며 살아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늘 귀하게 여기고 감사해야 돼요. 아니 부모님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많아요. 마음으로는 귀하게 여기는데 삶에 있어서는 참 부모님을 향해서 막대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몰라요, 마음은 안그런거 알아요. 근대 우리가 살아갈 떄 보면 다 그저 우리가 부모님에게 실수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타박하기도 하고 힘들게 하는 그런 경우들이 많다는 거에요. 근데 잘 생각해보세요. 세상에 가장 귀한 존재가 있다고 하면 부모님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이 세상에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지요. 세상에 많은 동물들이 있는데 그 동물들은 보면 특이한 것이 태어나게 되면 30분에서 한시간이 되면 일어나서 걷고 뛰어요. 모든 동물이 그렇습니다. 근데 인간만 태어나서 1년동안 뭐 거의 일어나지를 못해요. 걷지도 못하고 뛰지도 못하지요. 돌이 되면 겨우 기우뚱 기우뚱거리고 걷는다 이 말이지요.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의 모든 동물가운데 제일 약한 존재. 정말 부모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렇게 자기를 이렇게 몸을 뒤집지도 못해요, 그저 죽을 수 밖에 없어요. 자기의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하나도 없는 가장 약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냐'?"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 돌봄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자리까지 있을수 있다는 거에요. 오늘 우리가 예배하고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된 이 모든 배경에는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도우심이 있어서 이지만 둘째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부모님이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기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예배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라고 하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거기까지만 해도 너무나도 감사한 것 아니겠습니까? 뭘 더 바라겠어요. 그렇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내 힘으로 이제 살아갈 수 있는 자력을 주신 것, 여기까지 도와주신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그것을 잘 알지 못하고 오히려 부모의 사랑과 그 은혜를 져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지 몰라요. 어떤 분은 “목사님 감사하라구요? 내가 감사할 게 뭐가 있습니까.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주신 것은 간암밖에 없습니다. 저주밖에 없습니다. 이게 사는게 사는게 아닙니다. 우리 부모님은 남들처럼 그렇지도 못하면서 왜 나를 낳아가지고 이렇게 가난속에 허덕이게 만들었습니까?” 혹시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 계십니까? 절대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는것입니다. 오래전에 우리 성도님 가운데 아주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출산을 했어요. 노산에 아이를 출산하다 보니 제왕절개를 해가지고 이렇게 아기를 출산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까 이것이 너무나도 힘든 거에요. 몸이 다 망가지고 어려워지고 힘들어지고 그 이후에도 고생이 심했어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이 다 망가져도 태어난 아이를 보면서 기뻐하는 존재. 그게 바로 엄마라고 하는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뭘 의미하겠습니까? 너를 위해서라면 내 몸이 다 망가져도 상관이 없다.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인 것 아니겠습니까? 너를 위해서라면 내가 다 무너져도 상관없다. 세상에 나를 위해서 이런 마음을 가져주는 존재는 세상에 없어요. 부모밖에는, 어머니밖에는 없다는 거에요. 물려준 것이 간암밖에 없다구요? 바꿔서 생각을 해보세요. 그 가난 중에서도 그 힘듦 중에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최선의 힘을 다해서 우리를 위해주시고 키워 주신 버리지 않고 우리를 고아원에 내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포기하지 않고 그 힘듦 중에서도 어떻게든지 버텨내 왔던 그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절대로 슈퍼맨이 아니라는 거에요. 우리가 다 잘 아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가 슈퍼맨이라고 생각을 하지요. 부모님은 슈퍼맨이야.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고 모든 것을 다 해.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중학교에 들어가고 보니까 ‘어 우리 부모님이 못하는 것도 있네. 내가 숙제를 질문을 하고 보니까 모르는 것도 있네. 아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었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지요. 즉 고등학생쯤 돼서 사춘기를 지나게 되면 언젠가부터 부모라는 존재가 번거롭고 귀찮은 존재가 되는 거에요. 왜 저렇게 잔소리가 많은지 그냥 듣기 싫고 문을 닫고 들어가버리거나 가출을 하거나 듣기 싫고 그냥 귀찮은 존재로 보이는가, 에요.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면 나를 멋지게 후원해주지 못하는 부모를 보면서 원망이 생기기도 해요. ‘왜 우리 부모님은 돈도 없고 저렇게 성공 못하고 남들처럼 저렇지 못해서 나를 좀 뒤에서 이렇게 막 잘 밀어줬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못하고 왜 저러시나?’ 원망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근데 막상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나도 인제 부모라고 하는 자리에 서고 나니까 어떻게 됩니까? 그 다음부터 아 이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내가 너무 철이 없어가지고 이때는 그런 부모님에 대해서 이런 것을 타박하고, 저런 것을 타박하고 원망하고 그랬구나.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는거죠. 그래서 사람은 부모가 돼 봐야 성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 얘기에요. 바로 부모님의 그 힘들어했던 그 모습을 우리가 깨닫고 그리고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른이 되는거지요. 그 전에는 철이 없어요. 그저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이제 결혼하고 나도 부모가 되니까 ‘이제는 나도 열심히 돈 벌어서 우리 부모님 호강 시켜드리고 잘해야 되겠다.’ 그리고 열심히 뛰지만 그런데 우리가 뛴다고 해서 그렇게 성공하느냐? 그렇지 못한다는 거죠. 또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조금만 더 벌면 내가 우리 부모님 어떻게 더 잘해드려야지,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를 기다려 주냐면 기다려주지 않잖아요. 그렇게 시간을 지나고 보니까 어느덧 우리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버리게 될 때가 있다는 거에요. 그 다음에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거죠. 이런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부모님을 잃은 사람들. 이런 분들은 늘 부모님을 떠올릴 때 마다 마음이 아파오는 거에요. 생전에 계실 때 늘 잘할 것을, 늘 후회만 하는 거죠. 자신이 철이 없었던 것, 탄식하고 그저 뭘 내가 성공해서 뭘 도와드려. 그냥 그 순간순간 내가 그 부모님을 잘 섬겼으면 좋았을 것을 그거 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는거에요. 언제까지 후회가 되느냐? 내가 죽을 때 까지 후회가 되는거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모의 사랑이 이렇게 가슴에 와닿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 살면서 때로 지치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자녀들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울고싶을 때도 한두번이 아니지요.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뒤돌아 서서 애를 씁니까 우리가 자녀일때는 몰라요. 그러나 부모가 되고 나면 알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부모에게 잘하려고 마음을 먹지만 너무 늦어버리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이 우리 주변에는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엄마라고 하는 어머니라고 하는 그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많이 있다는 거죠.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제 말을 믿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100% 후회합니다. 아니 목사님 목사님 말씀이 성경 말씀도 아니고 뭘 목사님 말씀을 믿으라고 그러세요 다른 부분은 몰라도 부모님에 관한 한 존경하고 사랑하고 감사히 여기는 것 이것은 성경의 이야기에요. 그리고 우리 주변에도 보면 이것으로 인해서 늘 아파하고 이것으로 인해서 늘 문제가 풀리지 않고 이것으로 인해서 매여 있어요. 이 가정에서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있는 한 축복의 문이 열리지 않는거에요. 내가 닫아버리는 거에요. 성경에 보면 내가 땅에서 메면 하늘에서도 메인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메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축복의 문을 다 잡아 메는 거에요. 다 닫혀있는거에요. 그 부모님에게 잘하고 순종하고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있게 될 때 축복의 문이 열려지는 거에요. 부모에게 공경할 때 이 땅에서 장수의 축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또 보너스로 주시는 축복의 역사가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가정에 넘쳐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다고 한다면 무조건 사랑하시고 감사하시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두번째로 꼭 기억하셔야되는것은 부모를 절대 업신여기지 말고 어떤 허물이든지 덮어드려야 되는거에요. 절대로 업신여기지 마세요.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한다고 해서 아 몰라서 그런다는 둥, 교육을 못 받아서 그렇다는 둥, 가방 끈이 짧아서,… 이런 생각은 굉장히 불효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 드려야 하고 그 다음에 허물이 있으면 그 허물을 덮어드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세상에 제일 못난 자식이 어떤 자식이냐면 부모 앞에 심판자가 되는 자식이에요. 부모가 뭐라고 하면 “그거 틀렸어요, 맞았어요. 왜 그래요? 이래요. 저래요.” 지나고 보니까 그것처럼 참 무례한 일이 없고 그것처럼 이 어리석은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허물이 있다면 그 허물을 덮어드리는 자가 되어야지 자꾸 그 들춰내는 사람,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가 알아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고 감사하고 두번째 허물을 덮어드리세요. 절대로 업신여기지 않는. 이 두가지만 잘 지키셔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에 넘쳐나는 것을 보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 모든 부모님들은 자녀의 허물이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덮어주려고 애를 써요. 그것으로 인해서 세상에서 타박을 받게 되면 오히려 내 허물이다 내가 잘못해서 그렇다고 하고 자녀의 허물까지도 내 허물인 것 처럼 그렇게 포장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그런 존재가 누구냐 부모라고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의 진심을 누가 아느냐, 하나님이 아시는 거에요. 부모라는 존재는 그런 존재다. 하나님은 그 부모의 마음을 알아. 자녀는 몰라도, 하나님은 그 부모의 마음을 아신다는 거에요. 아니 하나님은 어떻게 아십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아시냐면 그런 마음을 부모의 마음속에 넣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시는 거에요. 그러면 하나님 왜 그런 마음을 부모의 마음속에 왜 그런 마음을 넣어 주셨습니까? 그래서 왜 부모님을 힘들게 하십니까? 힘들잖아요. 자녀들을 위해서 내가 대신 질타도 받고 대신 내가 허물을 다 뒤집어 쓰려고 하고 아니 왜 부모에게 그런 마음을 주셔가지고 부모님들 저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왜 부모에게 그 마음을 주셨냐 하면 그 부모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사랑의 마음이 어떤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부모의 마음속에 하나님은 그런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그런 마음을 담아 주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다른 말로 하면 부모라고 하는 존재는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을 가르치는 대리인으로 세워주셨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모님을 멸시하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멸시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런 부모를 존중히 여길 때 우리는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깨닫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그 부모를 공경하는 그 모습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경외한다는 것을 하나님은 보신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굉장히 땅에서 첫번째 되는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입니다. 착하게 사는게 아니에요. 선을 베풀면서 사는거 아니에요. 첫번째 계명, 그런 것도 다 중요하지만 첫번째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땅에서 잘되는 첫번째 계명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노아의 아들들 중에 함이 이 둘째아들이죠 벌거벗고 잠에 취한 아버지 노아를 비웃었단 말이에요. 그런 아들을 향해서 노아가 저주를 하는 거에요. 아니 뭐 그렇다고 저주를 할 것 까지는 없잖아요. 근데 그 저주는요, 사실 어떻게 보면 노아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저주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에요. 마태복음 `10장 29절에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아요. 그런데 노아가 어느 날 갑자기 그냥 이 함을 보고 저주를 했느냐 아니라는 거에요. 평소에 이 함의 마음속에는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거에요. 그것이 무심적으로 자기의 행동속에 나오는 거지요. 그러나 반면에 셈과 야벳은 아버지를 존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는 거에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옷을 가지고 뒷걸음질쳐서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줬다. 허물을 덮어줬다, 이말이죠. 누가 봐도 아버지 왜 술 먹고 왜 대낮부터 그렇게 잠이 드세요 왜 그렇게 실수하세요 왜 그렇게 신중하지 못하세요 왜 그렇게 술을 드셨어요 타박할 수 있는 얘기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함은 아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와 가지고 평소에 존경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 들이 행동으로 무의식중에 나오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평소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진심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근데 셈과 야벳은 평소에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고 가려 드려야지.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가려 드려야지, 뒷걸음질을 치고 들어가가지고 아버지에게 옷을 덮어드리는 그 행위. 그 뭘 의미합니까? 평소에 셈과 야벳은 아버지를 존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는 이야깁니다.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이야기죠. 

사랑하는 성도님들 안타까운 것은 요즘에 어머니의 사랑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해요 그런데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는 좀 못미더워 하는 그런 경우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많은 가정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몰라요. 자녀들 사이에서 아버지 정말 싫다고, 아버지를 미워하는 그런 경우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래요. 어머니 날을 인정하겠는데 아버지 날은 인정 못하겠습니다. 그러는 분도 있어요. 상처가 있으니까. 아버지의 실수로 인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니까 “하나님도 아버지면 나는 안믿을래요.”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죠. 어떻게 보면 이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맞아요 어머니의 사랑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제가 아버지이기 때문에 잘 알아요. 자녀를 키우다 보니까 어머니의 사랑을 아버지가 따라갈 수가 없더라고요. 근데 우리 성도님들 그거 아셔야 되는게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에게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주셨지만 아버지에게는 책임이라고 하는 것을 주셨어요. 사랑으로는 모성애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근데 살아가는 동안 가정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 누구냐 아버지라고 하는 거에요. 그것을 위해서 고독한 존재처럼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내 가정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그 모든 험한 짐을 다 내가 지고 내 자녀를 위해서 그렇지만 자녀를 봤을 때 애틋한 마음이나 사랑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퉁명스럽게 나갈 때가 있어요. 무뚝뚝하게 얘기가 나갈 수도 있어요. 모성애와 같은 그런 사랑을 아버지에게는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그 가정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때로는 아버지들이 어떤 험한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그거 자녀들은 모른다는 거에요.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또 사람들을 만나면서 대하는 그 험한 꼴들 그러나 그런 것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넘겨요 침을 꿀꺽 삼키듯이 그런 아픔을 삼켜버리고 마는거죠.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 아픔이라고 하는 것은 모른다는 거에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알지 못하니까 우리는 아버지를 때로는 그 아버지가 그 삶이 너무 힘들다 보니까 삶을 포기하는 아버지들도 있는 거에요. 때로는 도망치는 사람도 있어요. 그것도 못 견뎌내세요 그렇게 우리가 얘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 삶의 무게가 너무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도망치는 아버지들도 있다는 거에요. 근데 우리는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미움과 원망의 대상으로 삼고 그 아버지를 공격하는 그런 모습이 이 시대를 시대가 지나갈수록 점 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점 점 얘기를 들어보면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아버지 죽이고 나도 죽겠다. 얼마전에도 뉴스를 보니까 뭐 그런 얘기들이 나와요. 참 그런 얘기들을 들을 때 가슴 아파요. 어쩌다가 가정이 저렇게 저지경이 됐는가?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제일 먼저 만든 조직이 무엇입니까? 가정이라는 조직이에요. 그래서 교회도 가정공동체처럼 그렇게 세워 가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거죠. 거룩한 가정, 천국과 같은 가정. 그 가정 어디다 세우셨습니까? 에덴동산에 세우셨거든요. 천국과 같은 가정을 만들기를 원하시는데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가정들이 다 무너져 내리고 세상의 가치관이 들어오고 하니까 이게 다 무너져요. 자기의 쾌락주의 이기주의를 쫓아가다 보니까 이 가정이 다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말이죠. 여러분 가정이 회복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에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에서부터 가정은 회복될 수가 있어요. 힘들고 어려움가운데 있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끝까지 견뎌내려고 힘쓰고 애쓰는 그 아버지의 그 삶의 무게를 이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공경할 수 있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저는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서 한번 이런 고백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지금 이렇게 온라인으로 인해서 가족단위로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데 이 온라인 예배가 좋은 것은 그건거 같아요. 늘 교회오면 흩어져서 예배를 드리다가 이제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려니까 어쩔 수 없이 다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지금도 뭐 혼자 드리시는 분 부부가 예배를 드리는 분도 있겠지만 가족들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우리 자녀들이 오늘 이 시간에 아버지를 향해서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한번 고백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 지금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시는 우리 자녀들, 아버지를 향해서 아버지 감사합니다. 한번 고백해 보시지요. 혹시 부부가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 남편, 수고 많이 하셨어요. 한번 인사해보면 어떨까요? 때로 남자들은 너무 그냥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서 제가 마음이 안좋습니다. 아버지들 힘내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반대로 우리 함께 예배를 드리는 어머니께도 우리 자녀들이 감사를 고백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늘 나의 어머니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번 고백들 해보시지요. 부부가 예배를 드리면 남편은 아내에게 여보 사랑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번 고백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을 축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가정에 늘 기쁨과 감사 행복이 넘쳐나기를 오늘 하나님은 원하신다고 하는 거에요. 근데 이 가정이 엉망진창이 되고 깨어지고 부모를 향해서 미움과 원망을 가지게 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사탄의 공격이지요. 사탄이 그 천국이 되어야 할 가정을 뱀이 나타나서 아담과 하와의 그 모든 관계를 깨어버린 것처럼 사탄이 지금도 가정을 공격하는 거에요. 부부 사이에 또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갈들이 일어나게 만들고 오해가 일어나게 만들어요. 거기 속으면 안돼. 어리석은 존재가 돼 가지고 우리 다 거기에 넘어가가지고 누구를 바라보며 비판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거에요. 감사의 마음을 갖자. 그 다음에 두번째 이유는 내가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은요 저절로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노력해야 이루어지는 거에요. 

제가 결혼식 주례할 때 많이 하는 예화입니다. 미국에서 살 때 보면 미국에는 앞에 정원들이 있는데 어떤 집은 보면 정원이 아주 아름답게 잘 단정이 돼있는 정원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집은 정말 쑥대밭이 돼 가지고 정말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그런 집을 만들어 놓는 가정도 있어요. 똑같은 땅인데 왜 이집은 아름다운 천국을 만들어 놓고 이집은 흉가처럼 돼있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 이 가정은요 늘 정원을 가꿨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꽃을 심고 잡초를 뽑고 늘 잔디를 깎고 정원을 가꾸니까 천국과같이 아름다운 정원이 되는 거지만 그냥 내버려두고 방치해두면 흉가와 같이 그렇게 폐가와 같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가정 천국을 이루시길 원하신다면 내가 먼저 노력을 해야되는 거에요. 부모님이 하셔야 되는게 아니라 내가 해야하는 거에요. 가정을 향해서 내가 노력을 하고 부모를 향해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닦고 쓸고 내가 열심히 노력을 하면 가정은 아름다운곳이 되는 거에요. 행복이 넘치는 곳이 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전한 두가지 말씀을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을 늘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고 감사하며 사세요. 그리고 허물이 있다고 해서 그걸 들춰내지; 마시고 덮으시고 그리고 업신여기지 말고 존경하는 마음 가지시고 그렇게 살아갈 때 그 가정에도 복이 임할 뿐만 아니라 부모를 향해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를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시고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는 것을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그래서 하나님께 찬양하고 아름다운 가정 천국을 이루어가는 우리 일산광림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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