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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
설교날짜 2020.7.5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계 2 : 1 - 7
 





200705 박동찬목사님


요한계시록 2장 1-7절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

요즘 들어서 부쩍 제 마음 속에 하나의 열정이 생기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한번 전체적으로 강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의 경우는 하루, 이틀 지나면 그런 마음이 없어지는데 이번에는 이게 꽤 오랫동안 요한계시록에 대한 말씀이 제 마음을 때리고 그래서 한번 계시록의 말씀을 잘 정리를 해서 우리 성도님들께 수요일이든지 이럴 때 계속 해서 강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을 전체적으로 보면 1장은 반모섬에 유배되어 있던 사도 요한에게 계시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그 내용이 1장의 내용이고 2장과 3장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아시아 이고교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베소교회, 서머나교회, 빌라델비아교회, 라오디게아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버가모교회. 이렇게 일곱 교회가 나오죠. 근데 그렇게 2장 3장에 일곱교회가 등장하는 이유는 뭐냐하면 사도요한에게 주신 계시의 말씀을 누구에게 전하느냐 이 일곱 교회에게 전하라는 거에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전달 받아야 될 대상자, 수신자들이 누구냐 하면, 일곱교회라 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장 3장에 있듯 이것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돌아서고 회의게 하고 다시 바른길로 가야 될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는게 바로 교회들입니다. 그래서 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가만히 연구를 하다 보면 사실은 다른 성경의 많은 부분들도 중요하죠.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지만 한 계시록은 특별히 교회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 교회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교회가 가야 될 방향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잘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 요한계시록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생활에 어떤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 모든 성도가 지켜야 할 지표 표본 이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해서는 안되는 일, 해야되는 일, 하나님이 중요하게 말씀하시는 것 우리 영적인 비밀 이런 것들을 다 소개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이 계시록에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고 그러고 잘 듣고 그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그런 지혜로운 우리 성도님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 일곱 교회를 이야기 하면서 제일 먼저 이야기 하는 것은 에베소 교회 얘기를 하는거에요. 근데 이 에베소라고 하는 이 도시는 지금도 성지순례를 가보면 에베소가 굉장히 사도바울도 활동하던 지역이고 사도 요한이 살던 곳이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다음에  예수님의 어머니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데리고 어디로 왔느냐 에베소로 왔다 이 말이야. 에베소에서 활동을 하고 에베소가 그 당시에는 뉴욕이나 파리 만큼 변화하했던 유명했던 도시가 에베소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아는대로 클레오파트라라고 하는 이집트의 여왕이 진주를 사기 위해서 종종 쇼핑하러 갔던 곳이 이 에베소란 말이죠. 셀수수 도서관이라고 하는 그런 도서관이 있고 2만명 이상이 모이는 대형 원형경기장, 고급 대중 목욕탕이 있구 뭐, 말할 수 없이 번화한 도시였다는 것. 이천년 전에 어떻게 이렇게 살았을까.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번화한 그런 곳이 바로 이 에베소라는 말이죠, 그리고 거기에는 아르테미스 성경의 표현으로는 아뎀이라고 하는 여신을 숭상하는 곳이 아뎀의 신전 거대한 아뎀의 신전이 있었다. 그곳이 바로 사도행정 19장에도 나오지만 에베소라고 하는 도시란 말이에요.근데 그게 얼마나 큰지 고대 불가사이 가운데 하나가 이 아데미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지금은 다 파괴되고 없어요. 기둥하나 남아있을 뿐인데. 근데 이 기둥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기둥을 보면서 가이 이 아데미 신전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곳이 이 에베소라고 하는거에요. 

반모섬에 유배를 갔던 사도요한이 다시 돌아왔어요. 다시돌아온 곳이 에베소로 다시돌아와서 거기서 말년 생애를 다 지나고 그러고 죽게되는 거에요. 그 사도요한이 죽은 자리를 기리면서 사도요한 기념교회가 지금도 세워져있습니다. 사도요한의 죽은 자리가 어디이다 소개하는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에베소에 대해서 사도요한은 남다른 애정이 있었어요. 반모섬에 유배되어서 갔을때도 에베소에 있는 제자들 남겨둔 제자들이 늘 궁금하고 그랬던거죠.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께서 계시의 말씀을 주시면서 에베소 교회에게 가장먼제 말씀을 주시는 것이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이다 이렇게 볼수가 있습니다. 근데 이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면서 칭찬 받을 것이 있고 책망받을 것이 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들을때 칭찬 받는 부분은 뭐때문에 칭찬을 받고 책망은 왜 받았는지 잘 분배를 해서 우리가 그 교훈을 우리의 마음에 새기게 될떄 우리는 실수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바른길로 걸어가는 복된 성도님이 될 것을 믿습니다. 

근데 에베소 교회에 대한 칭찬에 맒씀이 오늘 2절과 3절에 나오는거에요. 내 수고와 인내 최선을 다한 교회로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악한자들 용납하지 아니하지 않은 것이나 거짓된 일꾼들의 거짓됨을 다 들어내는 그런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해서 잘못된 것을 짤라내는 그런 지혜가 있었던 것도 칭찬을 받았어요. 예수님을 위해서 힘든일도 마다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다 견디고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한 것을 너 참 수고 했다고 칭찬을 받는거에요. 한마디로 엄청 일 잘하고 봉사하고 섬겼던 교회 에베소 교회라는 거죠. 이 칭찬을 방았어요.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것이 아니라 책망할 것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거에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 그러면서 5절에서 하시는 말씀이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곰곰히 생각해보고 회기해라 그러고 돌아서라는 거에요. 처음 마음 처음 사랑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해야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 촛대를 그자리에서 움직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요 참 하나님을 사랑하는거 근데 어렵고 힘든 상황속에서도 내가 봉사하고 섬기고 최선을 다했던거 이게 더 중요한거 같아 보인단 말이에요, 그런데 오늘 에베소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교훈은 이거보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거 하나님을 사랑하는거 잃어버린거 이것이 더 큰 문제라는거에요. 이거 아무소용 없다는 거에요. 이 사랑을 잃어버린거 때문에 촛대를 옮기겠다는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로 옮겨버리는거에요. 그리고 이기는자가 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회복이 되야질떄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이지요. 오늘 말씀의 제목을 처음 사랑을 회복하자. 이 에베소 교회에 주시는 이 교훈의 말씀이 가만히 묵상해보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거라 하는거에요. 

우리도 처음에 신앙생활을 했을 떄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어요. 교회오는게 너무 즐거웠고 예배를 드릴때도 찬송을 부르다보면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근데 왜 이 좋은 것을 안 믿습니까 엄아 물어보고 전화하기도 하고 어떻해서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이 되가지고 교회오는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또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고. 말씀을 들으면 들을떄마다 가슴을 울리고 말이죠. 그렇게 좋았다는 말이에요. 근데 이것이 자꾸 교회를 다니다보니까 점점점점 시들해지고 이제는 눈물이 말라가는거죠. 감사도 잃어버려요. 봉사도 하려고 하면 이제 나 할만큼했으니까 하기 싫습니다. 이렇게 되는거죠.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하는데 있어 가장 본질적으로 생각해야되는 중요한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관계를 깨트리면  안된다는거에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회에서 수고하고 봉사하고헌신하는거 하나님이 뜻하시면 못하실게 뭐가 있겠습니까. 뭐든지 다 할 수가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에게 있어서 중요한건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뭐를 봉사하고 수고하고 이것도 좋지만 그것이 본질이 아니라는거에요. 진짜 본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에요. 이 마음을 잃어버리면 나의 수고와 봉사와 헌신이 이 모든것들이 헛된것이 되어지고만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이 말씀 속에 담긴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고 하는 회복해야만한다고 하는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두가지 말씀을 잠시 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우리의 모든 수고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하고 봉사하고 섬기고 하는 것은 그 동기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으면 우리의 수고 헌신은 모두 헛된 것이 되어져 버리고 만다. 교회에 보면 우리가 참으로 헌신하고 봉사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참 감사하고 좋은 일입니다. 그때 때로 그러다보면 다투는 일이 종종 일어나요. 왜 다투는가 보면 아 나는 이런걸 이렇게 헌신적으로 하는데 저사람은 안하는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손해보는거 같다는거에요. 그래서 화가나는거에요. 하면 다 같이 해야지 누구는 이만큼하고 누구는 안합니까? 비교하게 되느거에요. 나도 모르게 뒤에서 수근거리고 그 사람을 비난하게 되고 그런 경우들이 종종 있는 것을 보게 됐다는거에요. 

근데 성경에도 보면 이런 예가 있어요. 그 예는 뭐냐면 우리가 잘 아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지요. 마르다의 이야기.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뛸 듯이 기뻤어요.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이 오시니까 내가 그 분을 대접해야겠다고 하며 예수님 오시는데 예수님 잠깐만 계세요 그러고서 부엌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사실은 내가 사랑하는 그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내가 섬기는 자리에 있다고 하는것은 그 자체가 복된 일이지요. 그 자체가 감사한 일이에요.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대접하는게 얼마나 기쁩니까? 그 자체가 감사한 일인데 마르다가 마리아를 본 거예요. 동생을 보니까 아 동생은 나를 돕지 않고 예수님 돕는 일에 내가 이 부엌일을 하면 좀 와서 같이 도와야하는데 돕지 않고 예수님 밑에 앉아서 예수님 하는 말씀 듣고 예수님이랑 대화를 하는거예요. 그래서 짜증이 올라오는 거죠. 화가 날 만도 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 그 부엌 일 많이 하시는 여자 성도님들 이 마음이 이해되지 않으십니까? 갑자기 화가나는 거예요. 실상은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내가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내가 섬긴다, 이렇게 섬기는 도구가 될 수있다고 하는게 감사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보니까 마리아를 보니까 비교가 되면서 화가 나는 거예요. 감사할 상황인데 화가 올라오는 거죠. 그래가지고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마르다가 예수님을 찾아가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마리아를 붙잡고 마리아야 나좀 도와줘 그러면 될 것을 예수님을 찾아가지고 얘기를 하는거예요. 어떻게 보면 재판을 해달라는 거예요,.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해주십쇼. 그냥 마리아한테 마리아 내가 지금 힘드니까 좀 도와줘 이럴수도 있는건데 왜 예수님한테 가서 얘기를 하냐고요. 마르다가 보면 누가복음 10장에 예수님께 나아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 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십니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이거 불공평하잖아요 예수님, 마리아에게 좀 얘기해주십시오 하는겁니다. 이것은 마르다의 생각이지만 우리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그러면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가서 "마리아야 언니 좀 봐라, 언니 저렇게 봉사하는데 너가 여기 있으면 안돼. 너 인생 이렇게 살면 왕따 돼. 그러니까 빨리 가서 언니 도와줘." 그럴 줄 알았던 거예요. 그리고 마르다는 자기가 이렇게 수고하고 헌신하는 것에서 칭찬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의외로 정 반대의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마르다가 상처받았을 것 같아요. 뭐라고 하냐면,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이 얘기는요 누가 너더러 일하라그랬니? 이런 말입니다. (웃음) 어찌보면 굉장히 서운한 답변인거죠. 마리아는 말씀 듣는 것이 좋아서 내 옆에서 말씀듣고 있는데 너도 그럼 말씀 들어. 참 상처됐을 것 같아요. 그죠? 이 얘기는 뭡니까? 말씀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뜻도 있지만 무엇을 하든지 기쁨으로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하지 않고 노동으로 하는 것은 덕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런 것 하지 말아라. 이런 이야기라는 거예요.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길 수 있고 연약한 성도를 섬길 수 있고 봉사할 수 있고 내가 수고할 수 있다고 하는것. 그 자체가 감사한 것입니다. 그 자체를 감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런데 옆을 보니 다른 사람들은 놀고있고 나 혼자만 이용당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게 되면 화가 나는 거예요. 그죠? 그래서 결국에는 나는 바보인가? 억울한 생각이 들고 에이 나도 안해, 이런 마음을 갖게 되는경우들이 종종 있더라는 것입니다. 근데 이것은 명명백백 잘못된 자세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질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내가 지금 이렇게 수고하고 봉사하는 것 왜 하는가? 그 본질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상처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봉사 자체도 허사가 돼버리고 마는거예요. 억울하다는 거죠. 본질을 망각했기때문에 그럽니다 .내가 지금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너무 감사해서 내가 뭔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어서 이렇게 봉사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시는 우리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동기가 중요합니다.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잖아요. 나의 착함이나 나의 일 잘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하는것이 아니잖아요. 무엇때문에 이렇게 봉사하고 섬기는가? 한가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에. 만약에 그렇지 않다고 하면 우리의 모든 수고는 헛된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깁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이라고 얘기하는 장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 보면 이렇게 돼있어요.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참 비유를 해도 너무 과격해요. 표현이.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될 텐데 성경에는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얼마나 짜증나는 이야기입니까? 울리는 꽹과리소리 들어보셨습니까? 그냥 꽹과리소리를 한번만 들어도 속에서부터 짜증이 올라옵니다. 근데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는데도 그것이 울리는 꽹과리로 비교가 되는거예요.참 놀랍지 않습니까? 더한 것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정말 쓰레기와 같은 것을 한다고 하는거예요. 내가 예언하는 대단한 능력이 있고 모든 것을 알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게 그래서 어쨌냐는 거예요. 니가 점쟁이랑 다를게 뭐가있느냐? 그런 이야깁니다.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 자랑거리도 아니라는 이야기죠. 오히려 하나님 앞에 책망거리가 되어진다는 이야깁니다. 

그다음에 더 한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너에게 있는 모든것으로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엄청난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이지요. 쓸데 없는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사랑의 동기가 없는 행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입니까? 그 정의가 고린도전서 13장 4절부터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사랑이라고 하는것이 뭔지 소개해줍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 온유한 것, 시기하지 않는 것, 자랑하지 않는 것,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이런것이 사랑입니다. 모든것을 믿으며, 모든것을 바라며 모든것을 견디는 것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할 수 있죠. 

"아 그렇게 힘든게 사랑이면 도대체 누가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사랑이 그렇게 어떻게 보면 끔찍한거라는 거예요. 이렇게 끔찍한 것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끔찍한 것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머리로 생각하면 사랑할 수 없지만 진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이렇게 하게 돼있습니다. 오래 참는 것이 내가 진짜 사랑을 하면 오래 참는게 기쁨이에요. 시기한다고요? 시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자녀가 잘되면 시기합니까? 아 내 자녀가 잘돼요, 화가나요, 시기가 돼요. 내가 잘 되어야 하는데 자녀가 잘돼요. 그런다고 시기가 올라옵니까? 아니잖아요. 기쁨이 되는거잖아요. 남들이 잘 되는것을 보면 시기가 되는데 내 자녀가 잘되는것을 보면 기뻐요.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잘 되면 시기가 나요. 참을 수가 없고 견딜수가 없지만 사랑하는 내 자녀가 잘되는 것은 기쁨이 되는거예요. 내 사랑하는 자녀가 실수를 해도 믿어주고, 바라고, 견디게 되어있습니다. 언제까지? 끝까지. 사랑하면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되는거예요. 

우리 어머니들 보세요. 가정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합니다. 자녀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니가 해먹어 그래도 되는것을 일어나서 또 해주고 만들어주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수고의 대가를 자녀들로부터 받지도 않습니다. 아버지들도 마찬가지이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아요. 어떻게 해서든지 내 가정을 지키려고 세상에서 정말 상처가 되는 소리 험한 소리 들어가면서 그렇게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집에들어와보면 자녀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도 받지 못하시죠. 그래서 억울합니까? 그래서 부모님들 중에서 억울하다고 이야기하는 부모 본적이 없어요. 자녀들이 얄밉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내가 수고한것으로 인해서 가정이 지켜지고 내 자녀가 배부를 수 있고 내 자녀가 편안할 수 있고. 그것 자체가 나의 수고로 인해서 자녀가 평안할 수 있다고 하면 그것 자체로도 나에게 보람이고 기쁨인것아니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오래 참는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사랑하면 온유하게 되어있어요. 사랑할 때는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나한테 엉터리같은 이야기를 해도 웃게 되어있습니다. 시기하지 않아요. 자랑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뎌요. 사랑이라는 거죠. 사랑이라는 것은 참 신기한 것입니다. 때로 너무 맹목적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사랑해서는 안되는 것들, 또는 사랑해서는 안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매우 위험해지는 것입니다. 무슨 사고를 칠 지 몰라요. 사랑은 우리를 맹목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축복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을 하나님이 보실 때 그 인생을 하나님이 붙드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우리에게 쏟아부어주시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교회에서 봉사하고 수고하고 섬기시고 또 세상에 나가서도 우리가 겸손히 섬기는 자리에 서서 그들을 받들어 섬겨주는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런 일을 할 때 모든것의 동기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러할 때 그것보다 더 귀한것은 없습니다. 


두번째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 속에 담겨있는 교훈은 봉사나 섬김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같지만 다릅니다. 첫번째 조건이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동기가 돼서 해야한다. 두번째는 무슨 일을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목사님 그런데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맞아요 뭔지 잘 모르겠죠. 우리가 사람을 사랑할 때에는 외모가 보입니다. 첫눈에 반했다, 뭐 그런 이야기도 합니다. 보는 순간 호감이 생기고 나의 이상형이고 그래서 금방 사랑에 빠질 수가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뭘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걸까요? 

사랑할 대상이 내 앞에 있으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사랑이 되겠는데 하나님과 어떻게 사랑의 교재를 나눈다는 이야긴지 잘 모르겠습니다. 맞는 이야기에요. 우리가 중요한 것, 하나님과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볼수는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는 것으로 인해서 사랑하는 것보다 진심을 알고 사랑한는 것이 훨씬 더 귀하고 값진것이라고 하는것을 알아야합니다. 첫눈에 반했다는 것은 더 멋진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겠다는 것입니다. 보는 것으로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 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 안보이셔서 참 다행인 것 같습니다. 우리중에 까탈스러운 사람들은 하나님 외모를 보니까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저는 절로 가겠습니다 이러면 안되잖아요? (웃음) 우리가 하나님의 진심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알게 되는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구절절한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하나님의 진심이 어떤것인지,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배척하고 멀리 떠나고 도망치려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바라시고 우리를 붙잡으시고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그 구구절절한, 정말 간절한 하나님의 사랑을 성경을 통해 보다보면 하나님의 사랑 앞에 고꾸라지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면 굶어도 노래가 나옵니다. 진정한 사랑 가운데 빠지게 되면 신기하게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게 됩니다. 아무리 험한 일을 해도 험한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고 하면 그것은 나에게 고생이 아니라 기쁨이 되는거예요.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찬송을 부르다가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 수가 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찬송 394장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 뿐일세.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지 않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가끔 길을 걸으면서도 흥얼거립니다. 정말 좋아하는 찬송가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예수 내 친구. 참 얼마나 힘이 되고 기분이 좋습니까? 

여러분 길 가다가 예수님과 말 걸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길 걸어가다 말 걸어보세요. 예수님 나와 함께 하시지요? 지금도 내 옆에 계시지요? 그럴때요 알수없는 기쁨이 이 안에서 충만하게 올라옵니다.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하신다고 했으니까 그 약속의 말씀을 믿는거예요. 여러분 어느 곳에 가든지 주님과 대화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제가 대학시절에 읽었던 신앙서적 가운데 좌행참이라고 하는 책이 있었어요. 중국의 영적인 지도자가 쓴 책인데 이게 번역이 됐어요. 영어로도 번역이 되고 한국말로도. 좌=sit 행=walk 참=stand. 앉고 걷고 서라,이런 뜻입니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앉는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은혜안에, 주님의 사랑의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것이 첫번째 내용이고 그 다음 행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 같이 주님과 걷는 삶. 나 혼자 걷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걷는 인생을 이야기합니다. 참은 서는것입니다. 우리를 죽이려고 공격해오는 마귀 사탄의 권세에 대해서 강하고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서서 대적하라는 이야깁니다. 그것을 막아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고 그렇게 마귀사탄의 계획에 대적해서 싸워서 이기려고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기초가 중요한데 기초는 바로 먼저 주님의 은혜안에, 사랑 안에 앉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쉬어야 합니다. 주님으로 부터 오는 능력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 가운데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깊은 교제가운데에 들어가게 될 때 우리는 비로서 걸을 수 있고 설 수가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의 이 깊은 사랑의 교제가 없는 가운데 걷고 설려고 하다보면 우리가 넘어질 때가 많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의 교제가 없는 가운데 교회에서 봉사하다 보면 아까도 말씀드린 것 처럼 나만큼 열심히 섬기지 않는 사람을 보면 화가 올라오고 혈기가 올라오고 용서가되지 않고 내가 넘어지는 거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를 용납할 만큼의 여유가 마음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우리 마음속의 여유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다 품어 안게 되는거예요. 새신자가 와서 실수를 해도 그것이 귀해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또 험한 말을 해도 그 때는 그럴 수 있어요 그러고 그것을 품어안게 되는거죠. 근데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마음이 조급해요. 견딜 수가 없어요. 참아낼 수가 없는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누가 툭 치고가면 짜증이 올라오고 길이 조금 막혀도 짜증이 올라오고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이 우리 안에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통해서 그분의 넉넉한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가 살면서 조금 손해보는 것 아무렇지도 않아요. 누가 나를 향해서 비난하는 그 소리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런 분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가 이 분에게 충만히 임하여 있는 사람이로구나,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 반대라고 한다면, 그래서 작은 일에도 화가 난다고 하면 아직 그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히 임하지 못한 결과라고 하는 이야깁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내가 누구보다도 더 교회에서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는 것, 그것은 특권입니다. 감사해야 할 일이지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서 짜증낼 일이 아니고 화를 낼 일이 아니고 비난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우리 성도님들이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 그것이 우리 안에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너를 책망 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에배소교회에 주시는 이 교훈의 말씀입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해라.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사랑을 다시 회복하심으로 세상을 이기는 우리 성도님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만드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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