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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설교날짜 2020.7.19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계 2 : 12 - 17
 

200719 박동찬목사님


요한계시록 2장 12-17절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경험했던 삶의 양식들을 모아서 문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또 여러 사람들이 같이 섞여 살다 보니 불편한 점들이 많이 있지요. 그래서 가장 공공의 선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법입니다. 우리가 그 문화와 관습,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다 보면 떄로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탈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늘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삶을 살다보니 조금 벗어나고 싶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럴때 가장 좋은 것은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니거나,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를 잘 관리하는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생각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때로는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면 안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보면 가끔가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분 들의 자기 변명은 결국 합리화입니다. 내가 원하니까, 내가 하고싶으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합리화를 시켜서 내가 하고싶은 것을 꼭 하고 마는 것. 이것이 현대인들이 사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에게 유익이 되고 돈벌이가 되고 나만 좋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며 하는 이야기는 "아이고, 좋은게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 구렁이 담넘어가듯 해서는 안되는 일을 강행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래서는 안됩니다.

우리 말 가운데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말들이 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한다."이것도 별로 좋은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오르지 못 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아라." 이것도 잘못 된 이야기에요. 우리는 바라보고 꿈을 꾸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이야기들 중에 가장 안좋은 이야기는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이 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참 위험한 이야기입니다. 

법이나 문화, 윤리, 도덕상으로 해서 안되는 일이지만 그냥 눈 감고 넘어가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말은 참 어떻게 보면 위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씩, 둘씩 그것들을 허용하기 시작하다보면 무너지게 됩니다. 작은 균열이 큰 댐을 다 무너뜨리듯이 결국 좋은게 좋은것이라는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했을 때 결국 그것이 우리의 관습과 윤리와 모든것들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결국에는 나 자신도 무너지게 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런 자세는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데에 있어서도 매우 경계해야 할 내용 중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버가모 교회 이야기입니다. 요즘 매주 주일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더 깨어서 요즘 교회 안에 세속주의가 들어오고 혼합주의가 들어오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오늘 주시는 칭찬의 말씀이 무엇인지, 책망의 말씀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 말씀을 지켜나가려고 하지 않으면 우리 자손들의 신앙교육은 누가 하겠습니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봐도 주님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모든 상황들이 성경에서 계시하고 있는 말씀들과 엇비슷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더욱 더 깨어서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버가모교회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버가모라고 하는 곳은 당시의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그 당시의 로마의 행정 수도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우상들이 총 집합했습니다. 온갖 종류의 신전들이 다 모여 있던 곳이지요. 그 곳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전에 있던 그리스 로마시대,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이고 우상을 숭배하는 신전에 가보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 숭배에 반드시 따라오는 음행입니다. 이 두가지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였습니다. 신전을 지키는 여사제들과 다 그렇게 음행을 저지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우상숭배를 빗대어서 이야기 할 때 호세아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음탕한 아내가 늘 바람을 피우러 나가서 아이를 낳고 하는 것을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 숭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신전이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어떤 신전같은 곳에는 일천명의 여사제가 있는 정도로 대단한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그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그곳에서 경제활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부요한 도시가 되다 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오고 더욱 쾌락적인 것들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특별히 버가모라고 하는 도시에는 아스클레피우스라고 하는 치료의 신이 있었습니다. 그 치료의 신은 바로 뱀신이었습니다. 버가모의 상징물도 뱀이 되었지요. 뱀이나 용은 성경에서 사탄의 상징물로 여겨집니다. 뱀이 아담을 유혹했던 것 처럼. 요한계시록에서는 버가모교회를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라고 표현합니다. 신전이 있고, 음행하고 육체적인 쾌락을 누리고 돈이 많고 치료의 신도 있으니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곳이 바로 버가모였습니다. 

이런곳에서 생활을 잘 하려고 하면 서로 인정하고 합리화시키고 화합하면 잘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이것에 대해서 분명한 확신이 있는데 그곳에 섞여서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살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들끼리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하니 버가모에서 볼 때에는 눈엣가시처럼 보여지는 것이지요. 미움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배척당하게 되고 온갖 위협과 협박, 박해가 끊이질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의 확신이 있는, 분명한 신앙이 있는 크리스천들이 거기에 섞여서 살아갈 수 있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버가모교회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좋은게 좋은거다 이것을 참 경계해야 해요.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할 때 깨어서 나 자신을 잘 관리해야 하는데 저는 오늘 한가지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 한가지를 우리가 잘 지켜나갈 때 이런 세속의 위협 가운데에서 이겨나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에도 보면 [육체의 소욕은 이러한 것이니]하고 쭉 나열되어있습니다. 육체가 원하는 것, 내 몸이 원하는 것, 이것을 조심해야합니다. 사람은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육체가 원하는 것을 따라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즐겁기를 원하고, 편하기를 원합니다. 그저 즐겁고 행복한 것을 즐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것들을 즐기면서 내 몸이 원하는 것을 행하면서 살려고 할 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입니다. '돈이 많으면 내가 원하는 것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돈을 벌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내 육체의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질문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게 뭐 잘못 된 것입니까?" 예스라고도 말할 수 있고, 노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한마디로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게 되어있는 거예요. 내가 돈을 벌어서 내 마음이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키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내 인생의 주인이 '나'이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 분의 청지기다.]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말씀에 대해서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이 말씀에 동의가 안된다고 하면, 내가 아무리 교회와서 예배를 드리고 내가 인생을 멋지게 잘 사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나는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존재이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도 그렇고 요단강물에 완전히 침례를 합니다. 완전히 물속에 잠겨졌다가 나오지요. 그것을 지금 우리 현대 교회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에 굳이 다 들어갈 필요가 없으니 머리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물속에 완전하게 잠겼다가 나오는 것은 내가 죽어 땅속에 묻혔다가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예수님과 더불어 부활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것의 나는 죽어서 사라졌고, 예수님과 더불어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고 나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부활한 존재로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무엇입니까? 나는 청지기 라는 거예요. 그분의 일을 감당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의미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볼 때 내가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번다, 그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그런데 돈을 버는 목적이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것. 그것이 전부라고 하면 그것은 잘못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가서 후회를 하게 되어있다는 거예요. 성경은 절대로 돈과 물질의 주인이 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관리인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니 목사님,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었는데 그게 어떻게 하나님 것이 될 수 있습니까?" 여러분 내가 진짜 열심히 해서 벌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내가 열심히 해도 돈을 벌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내가 엄청난 돈을 가졌다 할지라도 한번도 써보지 못하고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많은 것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내 음식을 떠서 내가 맛있게 씹어서 삼킬 수 없는 것이 우리라고 하는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주셨기 때문에 돈을 벌고, 건강하고, 삶을 살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기도하고 열심히 일해서 벌어도 나는 그 돈의 주인이 아닌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곳에 써야지 이것을 오직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서 쓴다고 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횡령이라는 것입니다. 말라기서에서는 [너희들은 도둑들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가로챘다는 이야깁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써야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돈을 많이 벌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것을 위해서는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돈 뿐만 아니라 다른 무엇이 되었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 내 편의를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버가모교회는 책망을 받습니다. 자기가 편리한 대로 세상과 타협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책망받았습니다. 그것을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행위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발람이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의 대명사처럼 불려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민수기 22장 25장까지 보면 발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발람이 선지자인데 모압이라고 하는 나라, 이스라엘 옆에 모압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어요. 모압의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이기기 위해서 거짓 선지자인 발람을 초청합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발람은 돈에 눈이 멀어 저주하러 갑니다. 가는 길을 하나님이 막으셨습니다. "네가 이스라엘을 위해서 저주한다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겠다." 하니 저주를 하러 가서 축복을 하고 오는 거예요. 이런 상황들이 반복됩니다. 돈은 받아야겠고 하나님의 벌은 두려우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할 수 있는 좋은 계략을 모압 왕 발락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 발람이 저주하지 않아도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너희 모압 여인들 중 예쁜 여인들을 모아 이스라엘 백성들과 음행하게 만들어라."라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게 한 후에 모압 여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같이 섬기게 만들어라. 음행과 우상숭배를 같이 하도록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지요. 정말 그렇게 했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 발람의 이야기입니다. 발람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닌 모압왕의 편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하는 길을 가르쳐 주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돈욕심입니다.

돈은 무서운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라고 말합니다. 모든 악의 뿌리는 결국 돈입니다. 무슨 살인 사건이 나도 보면 뒤에는 돈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결국에는 돈때문에 믿음에서 떠나가게 된다는 것이지요. 돈때문에 근심이 되는 것이고 스스로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지요. 더 중요한 것은 발람이 그렇게 해서 돈을 받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돈을 풍족하게 사용했느냐? 쓰지 못하고 바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내가 그것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돈을 사랑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차, 좋은 집을 가지고 근심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돈을 사랑하다가 못해 이제는 숭배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른 것이죠. 돈에 매여서 따라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돈이 좋은 것이기는 해요. 삶에 편리를 주니까.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상황이 어떠하든지 돈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실 수 있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말로는 늘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돈입니다. 이런것이 다 유혹이고 미혹입니다. 그런자리에 넘어지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절박해도 돈이나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마세요. 이런 위기가 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 같아요. 평소에 좋을 때, 아무 문제 없을 때는 "내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런 고백 하기 쉽지요. 그런데 위기에 닥쳐보면 네가 진짜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돈을 의지하는지 아니면 다른 세상 무엇을 의지하는지 하나님은 보신다는 이야깁니다. 제가 이렇게 설교하는 것이 식상하게 들리시지는 않으시나 모르겠어요. 만약 그렇다고 하면 우리의 심령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 세상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요즘 성경 말씀은 요즘 시대와 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라고 합니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만큼 죄악의 길에 익숙해져 있다고 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도 믿고, 세상에서 돈도 많이 벌고 육체의 즐거움도 즐기며 살고 싶은 것이 크리스천들의 소망이라고 하면 이제라도 그런 생각에서 돌아서야합니다. 보다 분명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요즘 젊은 청년들에게는 돈보다도 육체의 즐거움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돈 벌어야지, 그러면 고개를 젓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달려갑니다. 자동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셀레이터가 아닌 브레이크입니다. 멈춰서야하는 것입니다. 위험할 때 에는 멈춰야 하는데 브레이크 없이 전진하는 자동차라고 하면 그것은 살인마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달리고 보자. 돈도 필요 없어. 육체의 즐거움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이성간에도 거룩하게 교제해야하고 거룩한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 속에는 결혼해서 배우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육체의 즐거움을 즐기는데 그게 뭐가 나쁘냐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에게 그것이 죄라고 이야기하면 그 순간 부터 저는 '꼰대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웃음) 반대로 괜찮다고 말하게 되면 그때부터 저는 '열린 목사, 현대적인 목사, 세련되고 교양있는 목사, 소통이 되는 목사'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지요.

제가 "그래도 그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아뇨 목사님, 괜찮다고 말하는 목사도 있어요."하는데 세상에 그게 괜찮다고 말하는 목사가 어디있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그게 뭐냐,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목사라는 것입니다.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목사 인 것입니다. 말도 안되지요.

종교혼합주의, 이것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안되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기본적인 삶에 있어서도 가만히 보면 모든 것들이 혼합주의입니다. 기독교인이면서 점도 보고, 기독교인이면서 타로점도 보고 기독교인이면서 세속이 원하는 것들을 다 한단 말이에요. 교회에서는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지만 세상에 나와서는 쾌락도 괜찮고 점치는 것도 괜찮고 도박도 괜찮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 이것을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 양심이 화인 맞은 양심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이야기 하면 "그래도 됩니다! 요즘 교회는 그런게 문젭니다!" 이렇게 말하는 시대 가운데 우리가 왔습니다. 

일제시대 때에 신사참배라는 것을 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좋은 일입니까? 지금에 와서는 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고 회개해요. 그런데 그때는 그것은 하나의 사회적인 의무, 일종의 문화로 보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다가도 동방요배를 했단 말이지요. 제가 생각해봤어요. 제가 그 시대에 목회를 했다면 어땠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많은 옆 교회와 선배 목사님들 교회가 다 그렇게 하니까 저도 했을 것 같아요.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서 합리화를 하는거죠. "이건 문화니까, 이건 절대 우상숭배가 아냐. 이건 국가에서 우리에게 부여한 의무이니까 국가적인 의무를 지켜야해." 하면서 했을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지금 편안한 시대에 있다고 그 분들을 비난 할 만큼 우리의 신앙이 분명하게 서있습니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은 우리의 많은 부분, 신앙에 있어서 분명하게 붙잡고 있어야 할 수많은 것들이 무너져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행위를 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무엇이든지 나만 피해받지 않으면 된다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이것이 발람의 교훈입니다.

버가모교회가 또 책망받는 이유는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른다. 비슷한 내용이에요. 그런데 니골라라고 하는 사람은 우리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사도들이 일곱 집사를 세운다고 해요. 그 중에 스데반도 있고 빌립 집사도 있고,  일곱 집사를 세우는데 안디옥에서 온 니골라 라고 하는 사람이 일곱번째 집사로 세워지는 거예요. 니골라라고 하는 안디옥에서 온 집사를 따르는 세력들이 니골라 당입니다. 

초대 교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니골라 당은 플라톤의 철학을 따랐어요. 플라톤의 철학은 '영은 온전한 것이고 육은 근본 자체가 악한 것이다. 그러니 육까지 깨끗하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에요.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었으면 우리의 육은 그냥 방종한 삶을 살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도 두 갈래인 것입니다. 온전히 다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니골라당처럼 육은 워낙 악한 것이니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여러분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 두가지를 내어놓고 어느 것을 따르겠냐고 하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진정한 기독교 따르겠다고 하겠습니까? 세상을 향해서 열려있고 마음대로 다 해도 된다고 하고, 죽어서도 구원을 얻는다고 하니 다 니골라 당을 따르겠지요.

문제는 뭔지 아십니까? 이런 사상이 기독교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된 형태로 비춰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더 열려져야 한다. 더 진보해야 한다. 세상을 이해해야한다. 뭐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기독교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는 점점 세상화 되어가는 위험한 종교가 되어져 갈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니골라 당의 가르침 역시 혼합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뭐가 되었든 좋은게 좋은거다. 두루뭉실하게 살자.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좋은게 좋은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신다면 오늘부터 좋은 게 좋은거라는 이 자세를 버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진짜 좋은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의지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손가락질 당할수도 있어요. 주변 친구들로 부터 어리석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좋은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진리를 추구하는 삶, 이 삶이야 말로 나중에 우리가 영원히 후회하지 않고 영원히 기뻐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우리 성도님들이 알아야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구약시대 때 부터 중요한 예배 의식을 지낼 때 먹었던 빵이 있습니다. 그것을 '무교병'이라고 말합니다. 무교병이라는 말의 뜻은 '누룩이 섞이지 않은 빵' 이라는 것입니다. 누룩이 섞이고 양념이 섞이면 얼마나 크고 맛있는 빵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거룩한 예식을 치룰 때 마다 이 무교병을 사용했지요. 이것을 썼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 교회에 원하는 것은 세상과 혼합되지 않는 것입니다. 순수하기를 원하시고 거룩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라는 이야깁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육체의 소욕을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라고 갈라디아서에 나와있습니다. 서로 대적하는 부분인데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서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날에 와서 달라졌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뉴스에 보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성범죄 사실들이 다 드러나고 있습니다. 경악할 만한 소식들이 매일마다 끊이지를 않습니다. 어린 아이에서 부터 6-70대까지의 성범죄 이야기. 우상숭배, 주술. 요즘같은 최첨단 시대에 기독교는 낡은 종교라고 이야기 하면서 젊은 아이들은 타로점을 보고 나이드신 분들은 토정비결을 보곤 합니다.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화를 못참고 분을 내는 것이 다 우리의 모습니다. 어쩌면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확장판이에요. 거기에 지금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합니다.

"아니 목사님,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삽니까? 인생을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살아야합니까?" 몰라서 그렇지요.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은 외줄타기 입니다. 천길 낭떠러지에 균형 잡는 막대기를 잡고 한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그 삶이 어떻게 보면 오늘 우리들의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우리는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너무 세상 사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위해서는 매일매일 자신과 싸우고 투쟁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여태까지 발람의 교훈을 따라 사신 분들에게도 다행인 것들이 있다면 성경은 항상 돌이키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꺠달았으면 돌이켜서 이기는 자가 되라고, 바른 길을 가라고 기회를 주십니다. 오늘부터라도 우리가 그런 길에 있었다고 하면 돌이킬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버가모교회에서 우리는 안디바라는 사람에 주목해야합니다. 안티파스,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은 철저하게 반대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 안디바는 버가모교회에서 순교당하게 되지요. 얼마나 주변사람들이 볼 때 답답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티파스는 "아니, 나는 내가 지켜야 할 길, 내가 가야 할 길을 가야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결국 순교당하게 되는 것이지요. 인생을 안티파스는 참 어리석게 잘 못 산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칭찬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결론을 말씀 드립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면서 많은 일들에 직면하게 될 거에요. 그랬을 때, 내 육체의 소욕을 따른다고 하면 돌아보지 마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하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허용하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을 드립니다. 세상 살면서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일이면 돌아보지 마십시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내가 지금 나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요." 해도 속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미끼만 던졌더라도 우왕좌왕 하고 좋아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조롱합니다. 그런 유혹이 있었을 때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위반되기 때문에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하고 돌아서서 주님만을 바라본다고 했을 때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것이 진짜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보면서 믿음의 길을 지켜 나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좋아보이는 것 먹었다가 탈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 겉에는 고깃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안에는 가시 투성이일 수도 있습니다. 사탄의 전략이 이렇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버가모교회가 오늘 이 현대 교회에 주는 교훈이 참 귀합니다. 절대 좋은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내 육체의 소욕을 위한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돌아보지 않는 지혜가 오늘 우리 성도님들에게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믿음으로 끝까지 진리를 고수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칭찬 받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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