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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탄의 깊은 것을 분별하자  
 
사탄의 깊은 것을 분별하자
설교날짜 2020.7.26
설교자 박동찬 목사
본문말씀 계 2 : 18 - 29
 

200726 박동찬목사님


요한계시록 2장 18-29절

사탄의 깊은 것을 분별하자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탄입니다. 어떤 분들은 "사탄, 그런게 진짜 존재합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분들도 의외로 많이 있지요. 그런데 악한 영, 사탄, 흑암의 권세, 어둠의 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없는 것 처럼 하면서 우리를 공격하고 유혹하고 그래서 넘어지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아주 엄청난 영적 전쟁터 가운데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으며 그렇게 믿는 자들을 믿음의 자리에서 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공격하는 존재가 사탄과 어둠의 세력들이라는 것을 오늘 우리가 알아야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 생활을 잘 하려고 하면 내가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탄이 어떤 방법으로 나를 공격하고 있구나, 지금 어떤 식으로 나에게 접근해 오고 있구나.' 이것을 우리가 잘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네번째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책망받는 다섯 교회, 칭찬 받는 두 교회, 이렇게 있지요. 책망 받는 다섯 교회 중에 한 교회가 됐던 것이 이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두아디라 교회가 굉장히 신앙적인 열심이 있었던 교회에요. 최선을 다하고 본이 되고 정말 많은 것들을 하고 그랬던 그래서 칭찬받는 교회였는데 그 사탄의 유혹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은 책망받는 그런 교회가 됐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보니까 두아디라에 남아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 우린 그저 그냥 신앙생활 하면서 좋은 말씀 듣고 그저 내가 범사에 형통하면 좋겠지. 이런 말씀 듣지 사탄이 지금 어떤 식으로 계략을 짜고 나를 죽이려고 한다라고 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별로 알려고 안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다 보니까 뭐가 유혹이고 뭐가 하나님의 축복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것 같이 그렇게 신앙 생활을 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보면 사탄의 속임수 가운데 넘어지는 일들이 있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지금 오늘 우리에게 하고있는 말씀인 것이지요. 

안타까운 것은 이 두아디라 교회는 신앙적인 열심이 있었던 교회에요. 그래서 19절에 보면 너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 이것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거예요. 인내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열심히 했어요. 내 나중 행위가 처음것보다 많도다. 보통의 경우는 처음에 열심히 하다가 점점 식어가는 것이 정상인데 이 두아디라 교회는 처음에도 열심이었지만 점점 갈수록 더 많은 일을 했다는 거예요. 점점 더 처음 것보다 많았다. 정말 칭찬 받을 만한 그런 교회였다. 근데 의외로 책망을 받게 되니 참 안타깝잖아요. 열심히 노력하고 책망받으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근데 그 이유를 가만히 보니까 사탄의 속임수에 속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 할 때 우리는 흔히 생각하는 것이 그저 막 무서운 핍박과 어려움과 환란과 이런 것으로 우리를 공격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사실 그런 식으로 우리를 공격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죠. 때로는 그런 핍박과 어려움을 견디는 사람들, 있지요.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핍박과 어려움이 있으면 그런걸 이겨내요. 근데 더 그런 어려움 환난보다 더 참 우리가 이기기 힘든 것이 있으니 그건 뭐냐면 편안함과 나태함과 게으르게 하고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가게 만들고 우리를 유혹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세상에 빠지게 만드는 것, 이것이 어떻게 보면 핍박과 환난보다 더 이기기 어려운 시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같은 경우는 핍박과 그런 어떤 환난과 고난이 오게 될 때 그것을 끝까지 이겼어요. 칭찬받는 교회가 됐어요. 두아디라 교회는 서머나 교회처럼 핍박이 있는 교회는 아니었어요. 근데 그 세상과 겸하여 섬기게 만드는 거예요. 교회와서는 신앙생활 열심히 하게 하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과 그런 것을 따라서 살도록 만드는거죠. 돌아서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돌아서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일에 와서 말씀을 듣고 성경공부를 하고 깨달음을 얻는 이유는 그 자체로 만족하기 위해서 우리가 말씀을 들으면서 깨닫는 것이 아니죠. 깨달았으면 우리가 한주간 동안 세상 나가서 살면서 거기서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어요. 그런데 깨달았기 때문에 세상에 나가서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이것을 좀 싸워 이기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깨달았으니 이제는 돌아서야 되겠다. 그래서 과거에 일주일에 열번 죄를 지었다고 하면 다섯 번으로 줄이는거죠. 또 교회와서 예배하고 회개하고 힘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또 세상에 나가서 다섯번 죄를 짓던것을 세번으로 줄이는 거고 점점 줄여나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는 이 세상과 싸우면서 늘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것,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교회와서 회개하고 예배 잘 드리고 거룩하게 하고 그다음에 세상에 나가서는 마치 세상사람들인 것 처럼 그대로 죄에서 돌아서지 않고 그 죄 가운데 그렇게 살아간다는 거예요. 그러고 또 교회와서 또 예배드리고 또 세상 나가서는 세상 그대로 살고. 오늘 두아디라 교회가 책망을 받은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두아디라 교회의 이야기를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이것이 참 오늘날 교회에 주는 교훈이 크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주일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받으면서 힘을 얻게되면요, 그 힘으로 세상의 유혹이나 세상적으로 살아라 이런 어떤 그런 타협이나 이런것들이 오게 될 때 그것을 지키지 않는 거예요. 근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세상 사는 것이 골리앗 앞에 서있는 다윗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는 거에요. '세상의 유혹을 내가 어떻게 이길 수가 있을까, 넘어갈 수가 있을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우리는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거룩을 지키며 그렇게 살아가는 그런 하나님 앞에 칭찬받는 존재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오늘 두아디라 교회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두가지 말씀을 잠시 생각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거짓 가르침을 분별해야 합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이유는 첫번째 이유는 뭐냐면 진리를 따라 살겠다는 거예요. 세상의 유혹이나 거짓 가르침이나 이런 것 따라서 살다보면 결국 내 인생은 거짓 인생이 되고 마는거죠. 그러려고 하면 우리가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분명하게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는 그런 지혜가 없어요. 오늘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이 진리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통해서 말씀이 가르치는 것 외에 잘못된 것 다른 거짓 복음을 전하면 그거에 대해서 단호하게 끊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기술이 얼마나 발전을 했는지 몰라요. 꽃을 봐도 이게 생화인지 조화인지 이게 구분이 안돼요. 만져봐야 알아요. 생화처럼 보이는데 조화인 경우가 있고 또 조화처럼 보이는데 만져보면 생화인 경우가 있어요. 세계의 명작 그림 같은 것도요. 요즘에 얼마나 솜씨들이 좋은지 그대로 모사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비전문가들의 눈에는 이게 어느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없는거죠.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쓰는 방법이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 또 그럴 듯 한 거짓 가르침, 이런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때 그것을 우리가 구분하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보니까 이 보석상에 도둑이 들었잖아요? 잠깐 10초만에 망치를 들고 와가지고 다 깨서 그것을 순식간에 다 채가지고 다 도망을 쳐버렸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보석들을 다 훔쳐갔으니 얼마나 자기가 이제 마음이 들뜨게 했죠. '내가 부자가 됐다 이제 사는데 지장이 없겠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까 가져간게 다 가짜라잖아요. 가짜 진열해 놓은 것을 다 가져가면서 이제는 내가 잘 살 것 처럼 말이죠 이제는 이거 가지고 내가 어려움 없이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하고 가져갔는데 보석상 얘기가 그것은 다 가짜를 진열해 놓은 것을 가져갔습니다. 진짜가 아니라는 거예요. 도둑질도 이제는 진짜 가짜 구분을 못하면 헛고생이 되는 거죠. 요즘 젊은 아이들 말로 이런것을 웃프다고 말해요. 웃긴데 슬프다. '웃프다'라는 단어가 있어요. 오늘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짜 뭐가 진짜고 뭐가 거짓일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 진리를 추구하며 사는 존재로 우리는 기독교인이라고 얘기한단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뭐 그런거 보석같은거 뭐 꽃같은거 그거 진짠지 가짠지 그거 구분 못해도 괜찮아요.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하는 얘기 가운데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뭐 그런얘기 있잖아요 근데 그것도 맞는 얘기는 아니에요. 진짜 다 잃는 것은 영혼을 잃어버릴 때 다 잃는 것이에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건강을 잃는 것이 다 잃는 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존재가 아니에요. 영원한 세상에서 사는 존재에요. 이 땅의 세월이라고 하는 것이 지나가면 참 이 시간이라는게 야속해요. 그저 그냥 시간이 조용히 잘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마에 주름살이 그 시간의, 세월의 흔적이 남게 되잖아요. 볼에도 흔적이 남고 근육이 빠져나가고. 이 세월, 이 시간이라고 하는것이 참 무서워요. 지나고나면 쪼글쪼글해집니다. 길어봐야 100년이라는 거죠. 그죠? 근데 그 다음에 그러고 끝이 난다고 하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근데 그게 끝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 이후에 영원한 삶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그 영원한 삶을 준비하고 사는 사람이 진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 땅을 바라보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존재에요. 그러다보니까 무엇이 진짜 중요하냐, 건강도 중요하겠죠. 이 땅에 사는 100년 동안에 건강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원한 세상을 사는 우리의 영혼,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영혼을 지켜야하는데 영혼을 지키려고 하면 필요한 게 뭐냐 내가 이 땅을 살면서 진리를 추구하며 살 것이냐 아니면 세상의 유혹을 따라 살 것이냐. 진짜를 쫓아 살 것이냐 가짜를 쫓아 살 것이냐. 여기에 달려있다는 거죠.

두아디라를 넘어뜨린 사탄의 전략을 보세요. 교회 안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안에 거짓 가르침을 집어넣은 거예요. 그래서 진리를 왜곡시켜요. 제가 설교 때마다 하는 얘기가 있죠, 내가복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도 아니고 내가복음. 성경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거예요. 그래도 된대. 성경에 안된다고 돼있는데 그래도 된다. 요즘 우리는 성경을 그렇게 엉터리로 해석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두아디라라고 하는 곳은요 핍박은 없었어요. 그런데 지난 주간에 제가 말씀을 전한 버가모교회 이야기를 했는데 버가모 교회가 소아시아의 수도라고 할 수 있을만큼 중요한 도시였어요. 그래서 로마의 행정도시로 있던 곳인데 여기가 그래서 지켜야하는데 두아디라는 버가모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에요. 그래서 두아디라가 강건해야 버가모가 안전할 수 있는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이 두아리라라고 하는 곳에 로마의 군인들이 굉장히 많이 와가지고 주둔을 하게 돼요. 그런데 천연적인 자연물이 있는게 아니에요. 그냥 평지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적이 쉽게 쳐들어 올 수가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지 중요한 곳이니까 막아야는 되겠고, 그러다보니까 로마의 수많은 군사들이 와가지고 진을 치고 있는 곳이 두아디라라는 말이에요. 두아디라에 그렇게 군인들이 모이니까 뭐가 오겠습니까? 장사꾼들과 상인이 모여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많은 상업활동이 일어나니까 공업도시가 되는거에요. 공업도시가 되니까 사람들이 몰려올 때 자기들의 신을 데리고 오잖아요. 신전들이 많이 서있는 곳이 바로 이 두아디라였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버가모와 비슷한 상황이죠. 다른 것이 있다고 하면 버가모는 우상 숭배를 하지 않으면 핍박이 있었던 곳이지만 두아디라는 핍박까지는 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경제적인 부유함과 번영함을 찾다 보니까 핍박이 아니더라도 세상 속에서 빠져 살도록 하는 그런 유혹이 있던 곳이 이 두아디라라는 거에요. 그래서 이 두아디라에는  요즘 뭐 조합이라는 게 있듯이 길드, 조합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어요. 그래서 모여가지고 같이 생산을 하기도 하고 뭐 이런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곳이 두아디라입니다. 경제적으로 번영이 되는 것은 좋은데 자기의 그 조합에 들어오게 되면 그 조합에서 믿는 신을 숭배해야 되는 거예요. 우상을 숭배하고, 지난 시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우상숭배와 음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가는거란 말이죠. 그런데 먹고 살려고 하면 거기에 참여를 해야하는 거예요. 

요즘도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저한테 와서 고민을 하소연 하는 분들이 있어요. 뭐냐면 회사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고사를 지낸다는 거예요. 돼지 머리 놓고 거기 다 회장님부터 해가지고 다 절을 하고 그렇게 고사를 지내는데 이거 안지낼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되는지. 너무 괴롭다는 거죠. 오늘 두아디라 교회가 처한 상황이 그런 곳이었다는 거예요. 정말 이 세상적으로 장사도 하고 그러려고 하면 저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런걸 따라가야 하는데 나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러다보니까 따라간 거예요. 근데 감사한 것은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 감사한거예요. 진짜 감사한게 아니고. 그 사람들에게 어떤 복음처럼 들려온 얘기가 있었는데 그게 뭐냐면 그 교회에 이세벨이라고 하는 자칭 여자 선지자가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하는 얘기가 그렇게 살아도 된다. 얘기를 한거예요. 어차피 그건 실생활의 문제니까 신앙생활과 상관 없이 그렇게 세상 나가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된다 얘기를 한것을 용납했다는 거예요. 

20절에 보면 이렇게 이야기하죠. 내가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내가 용납함이니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근데 이 이세벨이 누구냐? 우리가 잘 아는대로 엘리야와 대결했던 구약시대 성경에 나오는 아합 왕의 아내였단 말이에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도록 만드는 거예요. 우상을 숭배하게 만들고 음행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빼내서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의 길로 가게 만들었던 그 여자가 이세벨이라는 말이죠. 두아디라가 그렇다는 거예요. 정말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두아디라 교회에 들어와서 세상 사는거 그렇게 살아도 된다 유혹을 하면서 그렇게 세상에 넘어지도록 만들었는데 이거 아니라고 얘기를 헀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그 얘기가 기쁘게 들렸다는 거예요. 복음처럼 들린거예요. 기쁜 소식으로 들리는 거예요. 안그래도 내가 지금 돼지머리에 절을 해야 되나 안되나 이게 양심에 걸린단 말이죠. 근데 이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래도 된다고 얘기하니 얼마나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냥 살아가면서 말이죠. 하나님도 잘 섬기고 또 세상에 나가서 세상도 잘 섬기고 그러면서 문제가 없는 것 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저에게 와서 "아유 목사님 제가 이 정말 직장을 다니는데 매번 이 돼지머리에 고사를 지내야하고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럴때 제가 "괜찮아요. 그거 뭐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렇다고 직장 그만 둘 수 없지 않습니까? 그냥 가서 눈 딱 감고 하세요. 괜찮아요. 하나님도 다 이해하실 거예요." 이게 뭡니까? 이세벨의 교훈이라는 거예요. 그럼 안된다는 거죠. 아유 차라리 잘리더라도 그러시면 안됩니다. 신앙을 지켜야합니다. "나는 크리스천이라서 그럴 수 없습니다." 라고 얘기를 하세요. 그 다음에 어떤 핍박이 오던지 감수하세요. 그걸 감수하고 이겨나가게 되면 내가 모든 것을 잃게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내 삶을 넘어지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더 좋은 길로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 하나님이신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그 믿음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을 이기지 못해요. 사탄이 와서 이렇게 유혹하면 거기 또 넘어지게 되고 저렇게 유혹하면 저기 또 넘어지게 되고 거기 끌려다니다보면 하나님 앞에 예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말씀도 지키지 못하는 그런 인생이 되어져 버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보면 이단들의 교훈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몰라요. 구원파라고 하는 이단이 있죠. 세월호의 사건과도 연관되어있는 구원파 말입니다. "한번 구원 받으면 그 다음부터는 막 살아도 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부산에 가는 배를 탔으면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아도 결국 부산으로 간다.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예수님의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한번 외치고는 회개기도도 하지 않고 사는 것이 구원파입니다. 

신천지와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가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을 잘 섬기도록 하고 나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니 그곳에 다 빠져버리는 것이죠.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미 한국 교회에 수도 없이 많이 침투해 있는 이단들의 거짓 가르침들을 잘 분별하시고 또 넘어지지 않으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면 섬세하게 살피셔야 합니다. 

보석감별사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보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려면 렌즈를 눈에 대고 아주 섬세하게 보석을 살핀 후에 감정 결과를 내어줍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렌즈를 우리의 눈에 끼우고 봐야합니다. 지금 나의 삶에 들어오는 유혹과 지금 내가 듣기 좋은, 보기에 아름다운 것들을 말씀의 렌즈를 끼고 가만히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거짓 유혹은 아닌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유혹은 아닌가.' 잘못된 가짜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두번째 교훈은 내가 처한 상황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늘 타협합니다. 첫번째 교훈이 가르침을 받는 것이면 두번째 교훈이 가르침 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이유는 그렇게 살기 위해서 받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살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황에 적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하고 상황과 타협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매우 실질적인 문제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실생활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는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공격합니다. 이 방법이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이 방법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자리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데에 있어서 박해의 위협보다 세상의 달콤한 것으로 유혹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 할 때 아무리 힘들어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두아디라교회의 성도들의 입장,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살기 위해 그들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생각이 어떠하든지 두아디라교회는 결국 책망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보다 이 세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하늘의 영광보다 이 세상에서 내가 먹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 세상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만큼 강하지도 못한데 어떻게 했을까?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런 상황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습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짜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해서는 절대로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결국 사랑의 문제입니다. 지난 목-토요일 선교포럼이 있었습니다. 2박3일동안 아침부터 저녁 밤 11-12시까지 꼬박 세미나실에 앉아 계속해서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선교의 대부라고 하는 선교사님들이 다 오셨습니다. 50여명을 초청해서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몰라요. 참 감사한 것은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선교지에서 순교의 고난을 당하면서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분들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3-40년 전 선교지를 떠날 때에는 지금과 같은 선교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선교에 갈때는 얼마나 유별난 모습으로 갔는지 모릅니다.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선교사를 죽으러 가는 사람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자리로 가는 그 자리가 이후 천국에서 만나게 될 것을 아는 환송식이 됐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환송을 받고 나가 40여년의 세월이 다 지나 그 때 이야기를 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죽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뜨겁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들을 제가 경험하고 '하나님이 참 기뻐하시겠다, 저 분들 때문에 하나님이 참 기쁘시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과 마음이 있으면 어떤 곳에 가서도, 죽음의 위협이 있어도 이겨내는 것이지만 내가 내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우리는 작은 시험에도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선교사님이 말씀 해 주셨습니다. "왜 코로나 때문에 그렇게 두려워 하는 것입니까? 본인들은 칼과 죽음의 위협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코로나가 왜 두렵습니까? 손 세정제로 씻으면 죽어버리는 하찮은 것들 때문에 두려워 하고 있는 것입니까?" 참 가슴에 와닿는 말씀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의 의미는 "나는 죽고 예수님께서 사신 것입니다." 입니다. 온갖 방법의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서 죽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초대교회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것들 앞에서도 넘어지고, 작은 것들을 더 가지겠다고 하나님을 손 쉽게 버리는 작고 연약한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입니다. "너희들의 얄팍한 예배를 받지 않겠다."는 이유로 코로나가 온 것이 아닐까, 혹 하나님의 마음이 그러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목숨을 내어놓고 드리지 않는 것은 예배가 아니다.

뉴노멀이라고 하는 시대입니다. 진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드려지는 그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코로나를 통해서 저는 이런 메시지를 받습니다. 신앙생활에 위배되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합니다.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 성경말씀에 위배되는 것에 대해서 타협하지 않으며 사는 분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들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며 갈등하며 사는 분이 있습니다. 고민도 없이 성경은 성경, 세상은 세상이라고 말하며 사는 분들도 있지요. 이 세 종류의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세번째 사람이 가장 최악입니다. 매우 위험한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가슴에 새기세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의 이야기입니다. 200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다 서야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성경에 조심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이 적혀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울대에 달릴 때 우리는 변명 할 수가 없습니다. 돌아서야합니다. 

21절의 말씀을 보세요.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에 "돌아서라, 회개해라,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기회를 주셨지만 오늘 우리는 주일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돌아서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그 의지가 있으십니까? 아니면 "목사님 요즘 설교가 너무 나를 힘들게 해요."하며 힘만 들고 마시겠습니까? 결단하셔야합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성도님들이 되셔야합니다. 돌아서지 않으면 결국에 후회하는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살았다고 한다면 이제는 정말 회개하고 "하나님,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를 고수하고 살아가겠습니다."이야기 해야합니다.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우리 자녀를 위해서라면 죽더라도 세상을 버리고 자녀를 택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내가 정말 사랑한다고 하면 우리가 세상을 선택 할 수가 없습니다. 

알면서도 망하는 길을 걷는 사람들이 의외로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성도님들 죄와 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몸부림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40년동안 광야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잡으시니 40년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적인 것을 놓으면 죽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하늘에서 만날 날을 보시고 세우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강해지셔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시험과 환난과 유혹이 올 때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아무리 신앙이 좋아보여도 강한 의지가 없으면 나머지는 배교의 길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 교회는 너무 약합니다. 요즘 현대 교회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불면 뿌리 채 뽑혀져 버릴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도님들 마지막까지 하나님 붙잡는 성도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말씀을 듣고 언어의 유희 가운데 빠져 말씀을 잊지 마시고, 들은 말씀을 토대로 한 주간을 살아가셔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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